에게 다음과 같이 하사하였다.注+황자皇子를 나라에 봉할 적에 부傅 한 명을 두어서 왕을 선善으로 인도하는 것을 주관하게 하니, 스승과 같이 예우하고 신하로 삼지 않았다. “동평왕東平王이 하직하고 작별한 뒤에 홀로 앉아 있으니, 마음이 즐겁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수레에 올라 돌아오면서, 식軾에 엎드려 읊조리면서 멀리 바라보고 깊이 그리워하노라니, 실로 내 마음이 괴롭다.
≪시경詩經≫을 외다가 〈채숙采菽〉에 미치자 탄식하는 마음이 더한다.注+〈채숙采菽〉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 이름이니, 이 시詩에 이르기를 “콩을 채취하고 콩을 채취하여 네모진 광주리에 담고 둥근 광주리에 담도다. 군자가 와서 조회하니, 무엇을 선물로 주어야 하는가.” 하였다. 내가 일전에 동평왕東平王에게 묻기를 ‘집에서 거처할 적에 어느 것이 가장 즐거운가?’ 하였는데, 왕이 말하기를 ‘선善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 하였으니,
그의 말이 매우 커서 그의 큰 허리와 배에 부합한다.注+요要(허리)는 요腰로 읽으니, 유창劉蒼의 허리띠가 10위圍(뼘)이었다. 이제 열후인列侯印 19개를 보내니, 여러 왕자 중에 5세 이상으로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절할 수 있는 자는 모두 인印을 차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