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綱】 한漢나라 효헌황제 건안孝獻皇帝 建安 11년이다. 봄 정월正月에 패성孛星이 북두성北斗星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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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조조曹操가 고간高幹을 공격하여 참수하고, 양습梁習을 병주자사幷州刺史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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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이때 흉년이 들고 난리가 난 뒤라서 호적胡狄(당시 병주幷州의 흉노匈奴)이 기세를 떨치니, 관리와 백성들이 배반하고 도망하여 그들의 부락部落으로 들어가고注+장張(펼치다)은 거성去聲이니, 〈“웅장雄張”은〉 스스로 큰 체하는 것이다. 남흉노南匈奴의 부락部落이 모두 병주幷州의 경계에 있었다., 병가兵家(군벌)들이 병력을 보유하여 각각 노략질을 자행하였다.注+〈“병가옹중兵家擁衆”은〉 여러 호우豪右 중에 병력을 보유하여 스스로 보전한 자를 이른다.
양습梁習은 관청에 부임하자, 이들을 타이르고 불러들여서 호우豪右(대가大家)들을 모두 예우하여 부르고 차츰 천거薦擧하여 막부幕府에 나오게 하였고注+호우豪右는 대가大家이다., 그 다음으로는 여러 장정 중에 체력이 강한 자들을 징발하여 의종義從(군대의 칭호)으로 삼았다.注+종從(따르다)은 재용才用의 절切이다. “의종義從”은 군호軍號(군대의 칭호)이니, 의리로써 종군從軍함을 말한 것이다.
또 대군大軍이 출정出征한 틈을 타서 대군의 장수들로 하여금 이들을 자신들의 군대에 분속시켜 용력勇力(군대의 칭호)으로 삼도록 하게 하였으며注+용력勇力 또한 군호軍號이다., 관리와 병사들이 이미 떠나간 뒤에는 차츰 그 집안을 이주시켜서 전후前後에 걸쳐 업현鄴縣으로 보낸 자가 모두 수만 명이었다.注+“이거지후已去之後”는 장정 중에 체력이 강한 자가 관리와 병사가 되어 이미 떠나간 뒤를 이른다.
그리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니, 선우單于는 공순恭順하게 명을 따르고 명왕名王은 이마를 땅에 조아리고 〈그들의 부곡部曲이〉 편호編户(호적에 편입된 평민)와 똑같이 복종하여 섬기고 직책을 바쳤다.注+명왕名王은 바로 흉노匈奴의 여러 부部의 왕王이다. 편編은 서로 이어져 열을 이룸이니, 백성을 편민編民이라 이르고 또한 편호編戶라고 이르는 것은, 집집마다 나란히 열을 이루어 살면서 민적民籍에 편입되어 높고 낮음의 차등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이에 변경이 엄숙하고 깨끗하여 백성들이 들에 가득하였는데, 양습이 농사짓고 누에 치는 것을 부지런히 권장하니, 명령하면 행해지고 금하면 그쳐졌다.注+〈“영행금지令行禁止”는〉 명령하면 행해지고 금하면 그쳐지는 것이다. 양습은 마침내 명사名士인 상림常林과 양준楊俊의 무리를 조정에 천거하였는데, 이들은 뒤에 모두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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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중장통仲長統을 상서랑尙書郎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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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처음에 산양山陽 사람 중장통仲長統이 병주幷州에 유학遊學와서 고간高幹을 방문하니注+과過(방문하다)는 공화工禾의 절切이다., 고간이 그를 잘 대우하고 세상일을 물었다.
중장통이 고간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웅장한 뜻이 있으나 비범한 재주가 없고 선비를 좋아하나 훌륭한 사람을 제대로 선별하지 못하니, 〈이것이 내가〉 그대를 위해 깊이 경계하는 바이다.” 하였다.
고간이 기뻐하지 않자 중장통이 떠나갔는데, 고간이 죽자 순욱荀彧이 중장통을 천거하여 상서랑尙書郎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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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중장통仲長統이 일찍이 논論을 지어 ≪창언昌言≫이라 하니注+창昌은 마땅함이니, “창언昌言”은 이치에 마땅한 말이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천명天命을 받은 영웅호걸이 처음에 천하天下의 몫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注+분分(몫)은 부문扶問의 절切이다.
천하의 몫이 없기 때문에 전쟁하는 자들이 다투어 일어나서, 지혜를 겨루는 자들은 모두 지혜가 다하고 힘을 겨루는 자들은 모두 힘이 부족해서注+각角은 다툼이고 비교함이다. 형세가 다시는 항거할 수 없고 세력이 다시는 비교될 수 없으면,
이에 비로소 머리를 묶고 목에 올가미를 매고서 나(창업한 군주)에게 복종한다.注+강伉은 구랑口浪의 절切이니, 대적(항거)함이다. 기羈는 말굴레이다. 함銜은 재갈이고, 설紲은 고삐이다. 그러다가 계체繼體(창업한 군주의 뒤를 이은 임금)의 때에 이르면 호걸豪傑들의 야심野心이 이미 끊기고 병사와 백성들의 뜻이 이미 안정되어서 신분의 귀함은 일정한 집안에 있고 존귀함은 군주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때를 당해서는 비록 하우下愚의 재주로 군주의 자리에 있더라도 은혜가 천지天地와 같고 위엄이 귀신鬼神과 대등하게 할 수 있으니, 저 창업한 군주의 뒤를 이은 임금은 천하 사람들이 감히 자신의 뜻을 어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은 하늘과 땅처럼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사로운 기호를 따르고 간사한 욕망에 치달려서 군주와 신하가 거리낌 없이 음탕한 짓을 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함께 악행을 저질러서, 여러 정사를 황폐하게 하고 인재를 버리고 잊는다.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9년에 “설야洩冶(설야)가 말하기를 ‘공경公卿들이 음탕한 행실을 보이면 백성들이 본받을 것이 없다.’ 하였다.” 하였는데, 두예杜預가 말하기를 “선宣은 보임이다.” 하였다.
군주가 신임하고 친애하는 자는 모두 아첨하고 영합迎合하여 군주를 기쁘게 하는 사람이고, 군주가 총애하여 존귀하고 풍요로운 자는 모두 후비后妃와 진첩姫妾들의 집안이다.注+열說(기뻐하다)은 열悅로 읽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천하 사람들의 기름을 다 태우고 백성들의 골수를 깎아내니注+오熬는 오로五勞의 절切이니, 태움이다. 착斲은 음音이 탁卓이니, 깎음이다. 백성들이 깊이 원망하고 편안히 살 수가 없어서 화禍와 난亂이 함께 일어난다.
중국中國이 소란하고 사방 오랑캐들이 침략하고 배반해서 나라가 흙처럼 무너지고 기왓장처럼 부서져 하루아침에 민심이 떠나가서注+≪한서漢書≫ 〈가의전賈誼傳〉에 “국가의 제도가 창양搶攘하다.” 하였는데, 진작晉灼이 말하기를 “창양搶攘은 어지러운 모양이다.” 하였다., 옛날 나의 길러줌을 받은 자손(백성)들이 지금은 모두 나의 피를 마시려고 하는 적과 원수가 되었다.
천운天運이 옮겨가고 형세가 떠나가는데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니, 어찌 부귀가 불인不仁을 낳고 향락享樂에 빠짐이 어리석은 병을 불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국가의 존망이 이 때문에 교체되고 치란治亂이 이로부터 또다시 반복되니, 이것이 천도天道의 떳떳한 큰 법칙이다.”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11년에 “선사善事나 악사惡事나 〈세성歲星이〉 일주一周하는 12년마다 반드시 반복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하늘의 도道(자연의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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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오환烏桓이 변경을 침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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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오환烏桓이 천하天下가 혼란한 틈을 타서 한漢나라 백성 10여만 호户를 노략질하여 차지하였고, 그중에도 답돈蹋頓(답돈)이 더욱 강성하여 원소袁紹에게 후대를 받았다.
그러므로 원상袁尙의 형제兄弟가 그에게 귀의하니, 답돈은 자주 변방에 들어와 침략하여 원상을 도와 옛 땅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조조曹操가 장차 이들을 공격하려 할 적에 먼저 평로거平虜渠와 천주거泉州渠를 뚫어서 조운漕運을 통하게 하였다.注+≪삼국지三國志≫ 〈위서 무제기魏書 武帝紀〉에 “개천을 팠는데 호타하呼沱河로부터 시작하여 고수泒水로 들어가니, 이름을 평로거平虜渠라 한다. 구하泃河의 어귀로부터 파서 노하潞河로 들어가니, 이름을 천주거泉州渠라 하여 바닷길과 통하게 했다.” 하였다. 고泒는 음音이 고孤이고, 구泃는 음音이 구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