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초楚나라 회왕懷王 심心 원년, 조왕趙王 조헐趙歇 원년, 제왕齊王 전시田市(전불) 원년, 연왕燕王 한광韓廣 2년, 위왕魏王 위표魏豹 원년, 한왕韓王 한성韓成 원년이다.
이해에 초왕楚王 진승陳勝, 조왕趙王 무신武臣, 제왕齊王 전담田儋, 위왕魏王 위구魏咎가 모두 망하였다.
오래된 나라가 하나이고, 새로 생긴 나라가 다섯이니 모두 여섯 나라이다.
目
[目] 이량李良이 이미 상산常山을 평정하고서 돌아와 보고하자, 그로 하여금 다시 태원太原을 경략하게 하였다.
이량이 돌아와 군사를 더 주기를 요청하였는데, 오는 도중에 조왕趙王(무신武臣)의 누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량이 그를 조왕이라고 여기고는 길가에 엎드려서 배알하였다.
그러자 왕의 누이가 술에 취하여 이량이 장군인 줄 모르고, 기사를 시켜서 이량에게 감사를 표하게 하였다.
그러자
조왕의 누이를 죽이고는 드디어
한단邯鄲을 습격하여 조왕을 죽였다.
조趙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장이張耳와 진여陳餘의 귀와 눈 노릇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들 두 사람만은 죽지 않고 달아날 수가 있었다.
目
[目] 처음에 진승陳勝이 이미 왕이라고 칭하였을 적에 옛 친구들이 모두 가서 의지하였으며, 진승의 장인도 그를 찾아갔었다.
그때 진승이 그를 다른 손님들과 같은 예로 대우하여 길게 읍하기만 하고 절은 하지 않았다.
注+“장읍長揖(길게 읍하다)”은 손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끝까지 내리는 것이다.
여러 빈객들이 출입을 하다가 진승과 더욱더 가깝게 지내어 편안해지게 되자, 진승의 옛날 일을 말하는 자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진승에게 “손님들이 어리석고 아는 것이 없어서 제멋대로 망령된 말을 하여 왕의 위신을 가볍게 합니다.”
注+전顓(제멋대로 하다)은 전專과 같다. “경위輕威”는 임금이 된 사람의 중한 위엄을 경시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니, 진승이 자신의 옛일을 말한 자를 참수하였다.
그러자 여러 친구들이 모두 몸을 거두어 떠나가 버렸다.
진승이 주방朱防을 중정中正으로 삼고 호무胡武를 사과司過로 삼아 여러 신하들을 감찰하게 하였는데, 이들은 가혹하게 감찰하는 것을 충성을 다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에 여러 장수들이 진승에게 친하게 붙지 않아서, 마침내 이로 인해 패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注+중정中正과 사과司過는 모두 관직 이름이다. 가苛는 음이 하何이니, 가느다란 풀이데, 이것으로 번잡함을 비유한다.
目
[目] 경구景駒가 패공沛公으로 하여금 진秦나라와 더불어 싸우게 하였는데,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다.
다시 탕碭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그곳에 있던 군사 6,000명을 얻었는데, 예전부터 데리고 있던 군사들과 합하니, 9,000명이나 되었다.
다시 풍豐을 공략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目
[目]
동양東陽에 사는 젊은 사람들이
동양현령東陽縣令을 살해하고는 서로 모여 있는 자들이 2만 명이나 되었는데,
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동양현東陽縣은 임회군臨淮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한漢나라 명제明帝 때 나누어서 하비下邳에 속하게 하였으며, 뒤에 다시 나누어서 광릉廣陵에 속하게 하였다. 이들이 예전에
영사令史로 있던
진영陳嬰이 본래
근신謹信하는
장자長者라는 이유로, 그를 세워서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注+에 이르기를, “영令의 아전은 영사令史라 하고, 승丞의 아전은 승사丞史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진영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갑작스럽게 큰 이름을 얻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注+포暴은 갑자기라는 뜻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휘하에 소속되는 것만 못하니, 그럴 경우 일이 이루어지면 오히려 제후에 봉해질 수 있고, 일이 실패하더라도 쉽게 도망칠 수 있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진영이 이에 군리들에게 이르기를, “항씨項氏는 대대로 장군의 집안으로 초楚나라 지역에 이름이 나 있다.
지금 대사를 거행하고자 한다면, 장차 이 사람이 아니면 성사시키지 못할 것이다.
注+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장수를 삼을 경우 승리를 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들이 이름난 가문에 의지한다면, 반드시 진秦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니, 사람들이 그 의견에 따랐다.
이에
진영陳嬰 및
영포英布와
포장군蒲將軍이 모두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항량項梁에게 소속되니, 군사의 숫자가 드디어 6, 7만 명이나 되었다.
注+포蒲는 성이다.
항량이 말하기를, “
진왕陳王(
진승陳勝)이 가장 먼저
기병起兵하다가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여,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
注+“수사首事”는 가장 먼저 기병한 것을 이른다.
그런데 지금 진가秦嘉가 경구景駒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대역무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나아가서 진가를 쳐서 진가를 죽였다.
目
[目]
거소居鄛 사람인
범증范增은 나이가 70세였으며, 기이한 계책을 쓰기를 좋아하였다.
注+소鄛는 본래 소巢로 되어 있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거소현居巢縣은 여강군廬江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항량項梁을 찾아가서 유세하기를, “
진승陳勝이 패망한 것은 참으로 당연합니다.
注+그 계획이 옳지 않으므로 의당 패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무릇 진秦나라가 육국六國을 멸망시켰는데, 그 가운데 초楚나라가 가장 죄가 없습니다.
초楚 회왕懷王이 진秦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서부터는 초楚나라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이를 가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楚나라
이 말하기를, ‘
초楚나라가 비록 세 집만 남아 있더라도
진秦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반드시
초楚나라일 것이다.’
注+고故는 소이所以라는 말과 같으며, 옛날의 초楚나라를 이르는 것은 아니다. 남공南公은 남쪽 지방에 사는 노인으로, 육국六國 시대의 사람이다. 초楚나라 사람들이 진秦나라를 원망하는 것이 아주 깊어서 단지 세 집만 남아 있더라도 진秦나라를 충분히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설一說에는, 삼호三戶는 지명이라고 한다. 남공南公이 흥성興盛하고 패망敗亡하는 운수를 잘 알아서 진秦나라가 반드시 삼호三戶라는 곳에서 망할 것을 알았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뒷날에 항우項羽가 과연 삼호진三戶津을 건너서 장한章邯의 군대를 격파하자, 장함이 항우에게 항복하여 진秦나라가 드디어 망하였으며, 동제東濟가 이로 인하여 지명으로 삼았으니 아마도 이 설이 맞는 듯하다. 다만 수雖자가 있어서 문세가 순하지 않으니, 이것은 어찌 남공南公이 본래 그 지명을 분명하게 가리켜 드러내놓고 말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비슷하게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진승이 가장 먼저 기병起兵하고서 초楚나라의 후손을 왕으로 세우지 않고, 자신이 서서 왕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 형세가 길게 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당신께서 강동江東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초楚나라 지역에서 벌 떼처럼 일어난 여러 장수들이 모두 앞다투어 와서 당신에게 붙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 집안이 대대로
초楚나라 장수를 지냈으므로, 능히 다시
초楚나라 왕의 후손을 세워 왕으로 삼을 것이라고 여겨서입니다.”
注+봉蠭자는 봉蜂의 고자古字이다. “봉기蠭起”는 벌떼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많은 것을 이른다. 일설에 봉蠭자는 봉鋒자와 같은 뜻으로, 칼끝을 날카롭게 하여 일어나는 것을 이른다고 한다. 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아래 구절에 나오는 ‘위인爲人’의 위爲도 같다.라고 하였다.
항량이 그 말을 옳게 여기고는, 마침내 초 회왕의 손자인
심心을 백성들 사이에서 찾아내었는데,
심心은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양을 치고 있었다.
注+심心은 이름이다.
目
[目]
이세황제二世皇帝가 자주 좌승상
이사李斯를 꾸짖으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삼공三公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어찌하여 도적들로 하여금 이렇게 설치도록 내버려두는가?”
注+삭數은 음이 삭朔이다. 초誚는 재초在肖의 절切이니, 꾸짖는 것이다. 진秦나라에서는 승상丞相과 태위太尉와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삼공三公이라 하였다.라고 하니, 이사가 두려워하였다.
그러면서도
작록爵祿을 중하게 여겨서
注+중重은 아깝게 여기는 것이다. 이세황제의 뜻에 아부하여 글을 올려 대답하기를, “어진 군주는 반드시
독책督責하는 방도를 잘 행하는 법입니다.
注+독督은 살피는 것이다. “독책督責”은 그 죄를 살펴서 형벌로써 꾸짖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 말하기를,
注+신자申子는 이름이 불해不害이다. ‘천하를 차지하고서도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것을 보고 천하로
질곡桎梏을 삼는다고 하는 것이다.’
注+자恣는 자이資二의 절切이다. 휴睢는 호계呼季의 절切이다. “자휴恣睢”는 제멋대로 하고 방자하게 구는 것이다. 질桎(수갑)은 음이 지質이다. 곡梏(차꼬)은 고옥古沃의 절切이다. “질곡桎梏”은 형구이다. 발에 채우는 것을 질桎이라 하고, 손에 채우는 것을 곡梏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독책하는 방도를 행하여 천하를 가지고 스스로 즐기지 못하고,
注+적適은 즐기는 것이다. 한갓
형신形神을 수고롭히면서 자신의 몸을 백성을 위해서 바치기를
요堯임금이나
우禹임금처럼 한다면, 이것은 일반 백성의 일을 하는 것이지, 천하 사람들을 양육하는 천자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일러 질곡桎梏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직 밝은 임금만이 능히 독책을 행하여 위에서 독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권한이 신하들에게 있지 않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야 능히
인의仁義의 도를 없앨 수 있고, 간하는 말을 끊을 수 있어서, 드러내놓고 자신의 뜻대로 다 행하더라도 감히 거역하는 자가 없게 될 것입니다.
注+낙犖은 역각力角의 절切이니, 탁월하여 아주 뛰어난 것이다.
이와 같다면 뭇 신하들과 백성들이 모두 자신의 잘못에서 벗어나기에도 겨를이 없을 것인데, 어찌 감히 변란을 도모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독책을 더욱더 엄하게 행하여, 백성들에게 세금을 혹독하게 거두는 자는 현명한 관리가 되고, 사람을 죽이기를 많이 한 자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었다.
형벌을 받은 자가 길을 가는 사람 중에 반이나 되었으며, 죽은 사람의 시신이 날마다 저잣거리에 쌓였다.
그러자 진秦나라 백성들이 더욱더 놀라고 두려워하여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目
[目]
이사李斯가 어떤 일에 대해서 말하였는데,
조고趙高가 이사를 보고 말하기를, “
함곡관函谷關의 동쪽 지역에 도적 떼가 많이 일어나는데도
황상皇上께서는 더욱더 요역을 일으켜
아방궁阿房宮을 짓고 계십니다.
注+요繇는 요徭와 통용한다. “발요發徭”는 요역을 일으키는 것이다.
신이 이에 대해서 간하고 싶어도 지위가 낮기 때문에 간할 수가 없습니다.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아래 의 위爲도 같다.
이것은 참으로 군후君侯(이사李斯)의 일입니다.
그런데 군후께서는 어찌하여 간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자, 이사가 말하기를, “황상께서 깊은 궁궐 안에만 계시어서 뵙고자 해도 뵐 틈이 없습니다.”
注+견見(뵈다)은 행련行練의 절切이다. 간間은 거현居莧의 절切이니, 틈이라는 뜻이다. 또한 한閑으로 읽는데, 여가를 말한다.라고 하니, 조고가 말하기를, “황상께서 한가하실 때를 살펴서 당신에게 말해주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조고는 이세황제二世皇帝가 한창 잔치를 베풀어서 아녀자들이 앞에 잔뜩 있을 때를 기다렸다가 사람을 시켜 이사에게 ‘일을 아뢰어도 괜찮겠다.’고 말해주었다.
이사가 이르러서 황상을 배알하겠다는 말을 올렸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세 차례나 하였으므로, 이세황제가 노하였다.
조고가 이로 인하여 이세황제에게 아뢰기를, “사구沙丘의 모의에 승상이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이미 황제가 되었으나, 승상의 귀함은 더 올라가지 못하였으니, 그 뜻은 역시 땅을 나누어 차지해서 왕 노릇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장남인 이유李由가 삼천三川의 군수로 있는데, 초楚 지방에서 일어난 도적들이 모두 그의 이웃 고을에 살던 자들입니다.
이 때문에 도적들이 공공연히 삼천 지역을 지나다니고 있으며,
注+“방현傍縣”은 가까운 현이다. 이사李斯는 여남현汝南縣 상채上蔡 사람이고, 진승陳勝은 영천현潁川縣 양성陽城 사람인데, 여남汝南과 영천潁川은 서로 가깝다. 그들이 서로 문서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모르기 때문에, 감히 자세하게 아뢰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승상은 바깥에 살고 있기 때문에 권한이 폐하보다도 더 중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세황제가 이에 사람을 시켜서 삼천의 군수가 도적들과 내통한 정상을 조사해보게 하였다.
注+안案은 안按과 통용해서 쓰이니, 살펴보는 것이고, 시험해보는 것이다.
目
[目] 이사李斯가 그 소식을 듣고는 글을 올려 조고趙高의 죄에 대해 말하니, 이세황제二世皇帝가 말하기를, “조고는 사람됨이 아주 깨끗하고 힘이 있으며, 아래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서 잘 알고, 위로는 짐의 뜻을 능히 맞추어, 짐이 실로 현명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짐이 조고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면, 누구에게 일을 맡기겠는가?”
注+촉屬은 음이 촉燭이니, 맡기는 것이다. 아래 도 같다.라고 하였다.
이사가 또 우승상
풍거질馮去疾과 장군
풍겁馮劫과 함께 나아가서 간하여 아뢰기를, “뭇 도적들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은 모두가 수자리를 서고
조운漕運을 하고
전운轉運을 함에 있어서 일이 괴롭고 부세가 많기 때문입니다.
注+수戍는 정벌하는 것이다. 조漕는 수로로 운반하는 것이고, 전轉은 육로로 운반하는 것이다. 작作은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사고事苦는 그 일이 수고롭고 괴로움을 말한다.
바라건대 아방궁阿房宮을 짓는 것을 중지하고, 사방 변경 지역에서 수자리를 사는 것과 전운을 하는 것을 줄이소서.”라고 하니, 이세황제가 말하기를, “그대가 도적들을 금지하지 못하고 또 선제께서 하시던 일을 파하고자 하니, 이것은 위로는 선제에게 보답할 뜻이 없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짐을 위해 충성과 힘을 다 바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옥리에게 회부하여 죄를 따지게 하였다.
그러자 풍거질과 풍겁은 자살하였으나, 이사는 스스로 자신의 말주변에 대해 자부하였으며, 공은 있고 반란을 일으킬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하여, 옥으로 나아갔다.
注+부負는 믿는 것이다.
目
[目] 이세황제二世皇帝가 조고趙高에게 맡겨 이사李斯의 죄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조고는 이사가 이유李由와 더불어 모반한 상황을 들어 따지면서, 종족과 빈객들을 체포하여 1천 번이 넘도록 고문하였다.
그러고는 옥중에서 글을 올려 전에 세운 공에 대해 스스로 진술하여, 이세황제가 잘못을 뉘우치고 사면해주기를 바랐다.
注+“방략搒掠”은 음이 팽량彭亮(방량)이며, 볼기를 치면서 고문하는 것이다. 방搒(볼기를 치다)은 방篣과 통용하여 쓰이며, 또 방榜으로도 쓰인다. “자무복自誣服”은 사실과는 반대로 스스로를 속이면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고가 관리를 시켜 이를 폐기해버리고 상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고는 또 그의 문객 10여 명을 시켜서 거짓으로 어사와 알자와 시중 등이 되어 번갈아 오가면서 이사를 반복하여 심문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사가 다시 사실대로 대답하면, 그때마다 문득 볼기를 쳤다.
注+경更(번갈아)은 평성平聲이다. 복覆은 부복敷伏의 절切이니, 상세히 조사하는 것이다. 신訊은 음이 신信이니, 캐묻는 것이다.
그 뒤에 이세황제가 사람을 시켜서 이사를 조사하게 하였는데, 이사는 전과 같이 사실대로 답하면 매질을 할 것이라고 여겨, 끝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目
[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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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이르기를, “항량項梁이 이미 동아東阿에서 장한章邯을 격파하고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와서 정도定陶에 이르러 재차 진秦나라 군사를 격파하였다.”라고 하였다.
이에 송의宋義가 간하여 말하기를, “전투에 이겼다고 하더라도 장수가 교만해지고 사졸이 나태해질 경우에는
지금 병졸들이 조금 나태해졌는데, 진秦나라의 군사는 날로 불어나고 있으니, 신은 그대를 위하여 이를 두려워합니다.”라고 하였으나, 항량이 듣지 않았다.
이세황제二世皇帝가 모든 군사를 일으켜 장한章邯에게 주어 초楚나라 군대를 치게 해서 정도定陶에서 크게 격파하였는데, 이때 항량이 죽었다.
초楚 회왕懷王이 팽성彭城으로 도읍을 옮기고는 항우項羽와 여신呂臣의 군사를 아울러서 직접 거느렸다.
그러고는 항우項羽를 노공魯公이라고 호칭하였다.
目
[目] 장한章邯이 초楚나라에 있는 군사들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여겨, 이에 북쪽으로 가서 조趙나라를 공격하여 한단邯鄲을 격파하였다.
장이張耳가
조왕趙王과 함께
거록鉅鹿으로 달아나자,
진秦나라 장수
왕리王離가 이를 포위하였다.
注+진秦나라에서 조趙나라를 멸망시키고 거록군鉅鹿郡을 두었다. 왕리王離는 왕전王翦의 손자이다.
진여陳餘가 북쪽으로 가 군사를 거두어 모아 수만 명의 군사를 얻어 거록성鉅鹿城의 북쪽에 진을 치고, 장함은 그 남쪽에 진을 쳤다.
조趙나라에서 자주 초楚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구원해주기를 요청하였다.
초楚나라 왕은
송의宋義가
무신군武信君(
항량項梁)이 반드시 패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아내었다는 말을 듣고는,
注+책策은 헤아리는 것이다. 무신군武信君은 항량項梁이다. 그를 불러다가 함께 일을 헤아려보고는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고는 인하여 송의宋義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삼고, 항우項羽를 차장次將으로 삼았으며, 범증范增을 말장末將으로 삼아 조趙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송의를
이라고 불렀으며, 여러 별장들은 모두 그 휘하에 속하였다.
注+“경자卿子”는 당시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하여 서로 기리고 높이는 칭호로, 공자公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일설에 “경卿이라는 것은 대부大夫의 호칭이고, 자子라는 것은 자남子男의 작위이다.”라고도 하였다. 관冠(으뜸)은 고완古玩의 절切이다. “관군冠軍”이라는 것은 그가 여러 군대의 위에 있음을 말한다.
目
[目] 처음에 초楚나라 회왕懷王이 여러 장수들과 약속하기를, “먼저 관중關中으로 들어가 평정하는 자를 왕으로 삼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때에는
진秦나라 군사들이 아직도 강성하여, 여러 장수들이 먼저
함곡관函谷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롭지 않게 여겼다.
注+“막리莫利”는 관중關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롭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항우項羽만은
진秦나라를 원망하여 기세를 떨쳐 일어나,
패공沛公과 함께 서쪽으로 가기를 원하였다.
注+“원진怨秦”은 진秦나라가 항량項梁을 죽인 것을 원망하는 것을 이른다. 분奮은 분격하는 것이다.
그러자 여러
노장老將들이 말하기를, “항우는 드세고 사나우며 교활하고 잔인합니다.
注+표慓는 표僄나 표剽와 같은 뜻으로, 빠른 것이고 가벼운 것이다. 한悍은 용감한 것이다. 활猾은 교활한 것이다. 적賊은 잔악하게 해치는 것이다.
일찍이 양성襄城을 공격하였을 적에는 양성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게 하였으며, 지나가는 곳마다 모두 쓸어버리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초楚나라에서
진秦나라를 자주 공략하여 취한 바가 많았으나, 모두 패하고 말았습니다.
注+“수진취數進取”는 공략하여 취한 바가 많다는 말이다.
그러니 다시
장자長者를 보내어 의를 앞세우고 서쪽으로 나아가,
注+경更은 고치는 것이다. 장자長者는 나이가 많고 후덕한 사람으로,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부의扶義(의를 앞세우다.)”는 장의杖義(의를 주장하다.)와 같다.진秦나라의 부형들에게 유시하게 하느니만 못합니다.
진秦나라의 부형들이 그들의 임금을 괴롭게 여긴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참으로 장자를 얻어 그곳으로 가게 하여, 난폭하게 침략하지 않으면 그들을 복종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패공沛公만이 본래 관대한 장자이니, 그를 보내야만 합니다.”라고 하였다.
초楚나라 왕이 이에 패공沛公을 보내어 진왕陳王과 항량項梁의 휘하에 있다가 흩어진 병졸들을 수습하여, 그들을 거느리고 가서 진秦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