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爾朱世隆이 卑辭諭兆하여 使之赴洛하고 又請魏主恭하여 納其女爲后하니 兆가 乃悅하여 并與天光度律로 復相親睦하니
將軍斛斯椿이 陰謂賀拔勝曰 天下가 怨毒爾朱어늘 而吾等이 爲之用하면 亡無日矣니 不如圖之로라
勝이 曰 天光이 與兆各據一方하니 去之不盡하면 必爲後患이리니 奈何오
椿이 曰 此易致耳라하고 乃説世隆하여 追天光等하여 共討髙歡할새 天光이 不至어늘 使椿往邀之하니 天光이 不得已從之라
將行
에 問策於雍州刺史賀拔岳
한대 岳
이 曰 王家
가 跨據三方
하여 士馬殷盛
注+① 兆北據幷․汾, 天光西奄關․隴, 仲遠擅命徐․兗, 是跨據三方.하니 髙歡烏合
이 豈能爲敵
이리오
莫若且鎭關中하여 以固根本하고 分遣銳師하여 與衆軍合勢하면 進可以克敵이요 退可以自全이리라하되 天光이 不從하다
目
閏月
에 天光
이 自長安
하고 兆
가 自晉陽
하고 度律
이 自洛陽
하고 仲遠
이 自東郡
하여 皆會于鄴
하니 衆號二十萬
이요 夾洹水而軍
注+① 水經注 “洹水逕鄴城南.”이러라 髙歡
이 出頓紫陌
할새 髙敖曹
가 以部曲從
注+② 鄴都記 “紫陌, 在鄴城西北五里.” 從, 才用切.이러니
歡이 曰 髙都督所將이 皆漢兵이라 恐不足集事라 欲割鮮卑千人雜之하니 如何오
敖曹
가 曰 敖曹所將
은 練習已久
하여 前後格鬪
가 不減鮮卑
注+③ 格, 敵也.라 今若雜之
하면 情不相洽
하여 勝則爭功
하고 退則推罪
니 不煩更配也
로라하다
歡
이 馬不滿二千
이오 歩兵不滿三萬
이라 乃於韓陵
에 爲圓陳
하고 連牛驢塞歸道
하여 以示必死
注+④ 五代志 “業縣, 有韓陵山.”러니
兆가 望見歡하고 責以叛己한대 歡이 曰 本所以戮力者는 共輔帝室이니 今에 天子가 何在오
兆曰 永安이 枉害天柱하니 我報讐耳로라 歡이 曰 以君殺臣커니 何報之有리오 今日義絶矣라하고
遂戰
할새 歡
이 將中軍
하고 敖曹
가 將左
하고 弟岳
이 將右
注+⑤ 岳, 歡之從父弟也.러라 歡
이 戰不利
하여 兆等
이 乘之
어늘
岳이 以五百騎로 衝其前하고 别將斛律敦이 收散卒하여 躡其後하고 敖曹가 以千騎橫擊之하니 兆等이 大敗하고 賀拔勝이 於陳降歡하니
兆
가 對慕容紹宗
하여 撫膺曰 不用公言
하여 以至於此
라하고 欲輕騎西走
注+⑥ 不用公言, 謂紹宗諫兆使歡統州鎭兵而兆不用也. 西走, 自鄴西走歸晉陽.어늘 紹宗
이 反旗鳴角
하여 收散卒
하여 成軍而去
하니
兆는 還晉陽하고 仲遠은 奔東郡하고 度律天光은 走洛陽하다
目
【目】 爾朱世隆이 겸손한 말투로 爾朱兆에게 권유하여 洛陽으로 가게 하고, 또 魏主(節閔帝 元恭)에게 요청하여 이주조의 딸을 맞아들여 皇后로 삼게 하니 이주조가 기뻐하여 爾朱天光ㆍ爾朱度律과 함께 다시 친해졌다.
장군 斛斯椿이 은밀히 賀拔勝에게 이르기를, “천하가 爾朱氏를 가슴 깊이 원망하고 있는데 우리들이 그들에게 쓰임이 되면 망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니 그들을 도모해 해치우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자,
하발승이 말하기를, “이주천광이 이주조와 함께 저마다 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들을 모조리 제거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터이니 이를 어찌해야겠는가.”라고 하였다.
곡사춘이 말하기를, “이것은 이루기 쉬운 것이다.”라고 한 뒤 이주세륭에게 권유하여, 이주천광 등을 재촉해서 高歡을 함께 치도록 했는데, 이주천광이 오지 않자 곡사춘으로 하여금 찾아가 요청하니 이주천광이 어쩔 수 없이 호응했다.
출발하려 할 적에 雍州刺史 賀拔岳에게 대책을 묻자, 하발악이 말하기를, “대왕의 집안에서 세 지역을 차지하여 병사와 말들이 강성한데
注+① 爾朱兆가 북쪽에서 幷州와 汾州를 차지하고, 爾朱天光이 서쪽에서 關中과 隴右를 전부 차지하고, 爾朱仲遠이 徐州와 兗州를 마음대로 통치하는 것이 ‘세 지역을 차지한 것’이다. 오합지졸인 고환이 어떻게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선 關中을 굳게 지켜 뿌리를 튼튼히 하고 정예 군사를 파견해서 뭇 군사들과 세력을 합치게 되면 진격하여서는 적을 무찌를 수 있고 물러나서는 자신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니, 이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지만 이주천광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目
【目】 윤3월에 爾朱天光은 長安, 爾朱兆는 晉陽, 爾朱度律은 洛陽, 爾朱仲遠은 東郡으로부터 출발해서 모두 鄴城에서 회합하니 군대의 규모가 20만이었고, 洹水 양안에 주둔했다.
注+① ≪水經注≫에 의하면, “洹水가 鄴城 남쪽을 곧장 지난다.”고 하였다. 高歡이 출격하여 紫陌에 주둔할 때 高敖曹가 部曲의 병사들을 이끌고 뒤따랐다.
注+② ≪鄴都記≫를 살펴보면 “紫陌은 鄴城 서북쪽 5리쯤에 있다.” 하였다. 從(추종하다)은 才用의 切이다.
고환이 말하기를, “高都督이 거느리는 병사들은 모두 漢人이어서 일을 이루기 여의치 않을 듯하니 1천 명의 鮮卑人을 주어서 함께 섞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하자,
고오조가 말하기를, “제가 거느린 병사들은 오랫동안 연습을 해서 전후 전투에서 鮮卑보다 약하지 않았습니다.
注+③ 格은 대적함이다. 지금 만일 뒤섞게 되면 감정이 서로 소통하지 못해, 승리하게 되면 공을 다투고 물러나게 되면 죄를 서로 미룰 것이니 번거로이 섞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고환이 2천이 안 되는 馬兵과 3만이 안 되는 步兵으로 韓陵에 원형의 진지를 구축하고 소와 나귀를 끈으로 연결시켜 돌아가는 길을 막아 결사항전의 모습을 보였다.
注+④ ≪五代志≫를 살펴보면 “業縣에 韓陵山이 있다.” 하였다.高敖曹
爾朱兆가 고환을 향해 자신을 배반했다고 꾸짖자, 고환이 말하기를, “본디 온 힘을 바치려 했던 것은 함께 황실을 보좌하려 함이었는데 지금 천자의 존재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니,
이주조가 말하기를, “永安(孝莊帝 元子攸)이 天柱大將軍(爾朱榮)을 죄 없이 죽였기에 내가 그 원수를 갚은 것일 뿐이다.”라고 하자, 고환이 말하기를, “임금이 신하를 죽인 것인데 무엇을 갚는단 말인가. 오늘 〈이주씨와의〉 모든 정의는 사라졌다.”라고 하고
마침내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고환은 中軍을 거느리고 고오조는 左軍을 거느리고 고환의 堂弟 高岳은 右軍을 거느렸다.
注+⑤ 高岳은 高歡의 사촌 아우이다. 고환이 싸움에서 수세에 몰리자 이주조 등이 승세를 타고 공격해왔다.
고악이 500기병을 이끌고 정면에서 맞닥뜨리고 别將 斛律敦이 흩어진 병사들을 수습해 이주조의 후면을 공격하고 고오조가 1천 기병을 이끌고 측면을 공격하자, 이주조 등이 크게 패퇴했고 하발승이 陣中에서 고환에게 투항했다.
이주조가 慕容紹宗을 만나 가슴을 쓰다듬으며 이르기를, “공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하고 輕騎를 이끌고 서쪽으로 달아나려 하자,
注+⑥ ‘不用公言’이란 慕容紹宗이 爾朱兆에게 高歡으로 하여금 州鎭의 군사를 통솔하지 말도록 권유했으나 이주조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말한다. ‘西走’란 鄴城 서쪽에서 晉陽으로 달아나 돌아가는 것이다. 모용소종이 큰 깃발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호각을 불어 흩어진 병사들을 수습해서 진열을 편성해 물러났다.
이주조는 진양으로 돌아가고 이주중원은 동군으로 달아나고 이주도률과 이주천광은 낙양으로 달아났다.
目
【目】 爾朱天光이 동쪽으로 내려갈 때 그의 아우 爾朱顯壽를 남겨 長安을 지키게 하고 侯莫陳悅을 불러 함께 동쪽으로 가려 했다. 賀拔岳은 이주천광이 반드시 패할 것을 알고 侯莫陳悅을 머물게 하여 함께 爾朱顯壽를 도모하려 하자
宇文泰가 말하기를, “후막진열이 장수이긴 해도 사람들을 제어할 수 없으니 만일 먼저 그 무리들을 설복시키면 반드시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하여 후막진열이 동쪽으로 가게 되면 爾朱氏와 약속한 날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고 물러나면 사람들의 마음이 변할까 두려워할 것이니, 이때를 틈타 그에게 권유하면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자, 하발악이 좋아하며 따랐다.
후막진열이 하발악과 함께 長安을 습격할 때 高歡이 하발악을 關西大行臺로 삼자, 하발악이 宇文泰를 左丞으로 삼아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겼다.
目
【目】 魏主 元朗이 邙山에 이르자, 高歡은 그가 황족과의 혈통이 멀다고 하여 魏蘭根을 시켜서 魏主 元恭의 됨됨이를 관찰하게 해서 그를 황제로 다시 추대하려고 했다.
注+① 章武王 拓跋太洛은 獻文帝(拓跋弘)의 막내아우이다. 탁발태락이 元融을 낳고 원융이 安定王(元郞)을 낳았는데 孝明帝(元詡)에게 있어 緦麻服(8寸)의 친척이어서 혈통이 먼 것이다. 魏收의 ≪魏書≫에 의하면, “章武王 拓跋太洛은 景穆帝(拓跋晃)의 아들로, 元彬을 후계로 삼았는데 원빈의 아들이 元融이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이면 혈통이 더욱 먼 것이다. 위란근은 원공의 神采가 고명함으로 훗날 제어하기 어렵게 되지 않을까 싶다며 고환에게 폐할 것을 권유하였다.
고환이 백관들을 모아 누구를 세워야 할지 묻자 응답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太僕 綦毋儁이 “원공은 현명하기에 응당 社稷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해서 고환이 이를 따르려 하였다.
崔㥄이 정색을 하며, “廣陵(元恭)이 이미 반역을 일으킨 胡族(爾朱氏)에게 옹립되었는데 어떻게 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注+② 廣陵은 節閔帝이며, 앞서서 廣陵王이었다. 만일 기무준의 말을 듣게 되면 대왕의 군대가 어떻게 義擧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고환이 마침내 원공을 崇訓寺에 유폐시키고 결국 洛陽으로 돌아왔다.
斛斯椿이 賀拔勝에게 이르기를, “지금 천하 일이 나와 그대의 손에 달려 있으니 만일 먼저 남을 제어하지 않으면 남에게 제압당할 것이다. 고환이 막 도착했으므로 도모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자, 하발승이 말하기를, “사람이 공을 세웠는데 그를 해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하니 곡사춘이 계획을 멈췄다.
당시 여러 왕들이 대부분 도망가 숨어 있었다. 平陽王 元脩는 元懷의 아들로 시골 집에 숨어 있었는데, 고환이 그를 황제로 옹립하려 하여 곡사춘에게 찾아가게 하였다.
곡사춘은 원수가 친한 王思政을 통해 원수를 만났는데, 원수가 벌벌 떨며, “나를 내다 팔 참인가.”라고 하자, 왕사정이 “아닙니다.” 하였다. “보장할 수 있겠는가.” 하자, “수많은 변화가 도사리고 있는데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고환이 원랑을 위하여 詔書를 지어 원수에게 帝位를 禪讓했다.
注+③ 爲(위하다)는 去聲이다.
目
【目】 元脩가 帝位에 오를 때 代都의 옛 제도를 사용하여 黑氈(검은 모포)을 일곱 사람에게 씌윘는데 高歡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원수가 흑전 위에서 서쪽 하늘을 향해 절하기를 마치고 御殿에 들어와 고환을 大丞相 天柱大將軍으로 삼았다. 고환이 司馬子如를 行臺尙書 參知軍國으로 삼고 賀拔岳을 불러 冀州刺史로 삼았다.
하발악이 조정에 들어가려 하자, 行臺右丞 薛孝通이 말하기를, “고환이 지금 안으로 뭇 영웅들을 어루만지고 밖으로 강한 적들을 대항하고 있는데 어찌 자기 집을 버리고서 公(귀하)과 關中 땅을 다투겠습니까.
공이 華山을 성곽으로 삼고 黃河를 참호로 삼게 되면 진격했을 땐 山東을 겸유할 수 있고 물러났을 땐 函谷關을 걸어 잠글 수 있는데, 어찌 손이 묶인 채 남에게 제압당하려 하십니까.”라고 하니
注+① 後漢 王元이 隗囂에게 말하기를, “제가 대왕을 위해 진흙 한 알로 동쪽 函谷關을 봉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하발악이, “그대 말이 옳다.”라고 하고,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