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온은 마침내 치초와 더불어 의논하여 계책을 정하였는데,
注+① 郗超는 桓溫의 마음을 알고 영합하니, 환온이 마침내 그와 더불어 의논을 결정한 것이다. 황제(司馬奕)가 평소 조심하여 허물이 없으나 침상의 일을 가지고 誣陷하기 쉽다 해서,
注+② 笫는 側里와 壯士 두 가지의 切이니, 침상의 자리이다. ≪春秋左氏傳≫ 襄公 27년에 “鄭伯이 垂隴에서 趙孟에게 연향을 베풀 적에 伯有가 ≪詩經≫ 〈鄘風〉의 〈鶉之奔奔(메추라기는 짝맞추어 날다.)〉의 시를 읊자, 조맹이 말하기를 ‘침상의 말은 문지방 밖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하였다.” 하였는데, 杜預의 注에 “이 시는 淫亂을 풍자한 것이다. 그러므로 침상의 말이라 한 것이다.” 하였다. 마침내 “황제가 일찍부터 陰痿의 병환이 있었는데, 총애하는 신하 朱靈寶 등이 内寢에서 가까이 모시면서 두 부인이 세 아들을 낳으니, 장차 황제의 基業을 옮기려 한다.”고 소문을 퍼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