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郅支單于自以道遠하고 又怨漢擁護呼韓邪而不助己하여 困辱漢使者江乃始等하고 遣使求侍子하다
貢禹, 匡衡이 以爲郅支는 鄕化未醇하고 所在絶遠하니 宜令使者로 送其子하여 至塞而還이라호되
吉
이 願送至庭
이어늘 許之
注+庭, 郅支單于庭也.러니
自知負漢하고 又聞呼韓邪益彊하고 恐見襲擊이러니 會에 康居王이數爲烏孫所困하여 遣使迎郅支하여 欲與合兵取烏孫하다
郅支數怨烏孫
하여 遂引兵西
러니 衆寒道死
하고 餘三千人
注+道死, 死於道上也.이러라
康居王이 以女妻郅支하고 甚尊敬之하여 欲倚其威以脅諸國이러니
郅支數擊烏孫
하여 至赤谷城
하니 烏孫西邊
이 空虛不居者五千里
注+西域傳 “烏孫國, 治赤谷城, 西至康居蕃地五千里.” 若云空虛者五千里, 則自赤谷以西皆不居矣, 此已抵其國都, 不得居西邊也. 陳湯傳, 作且千里, 當從之.러라
目
[目] 질지선우郅支單于는 한漢나라와 길이 멀다고 생각하였고, 또 한漢나라가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를 옹호하고 자기를 돕지 않는 것을 원망해서 한漢나라 사자使者인 강내시江乃始 등을 곤궁하게 하여 욕을 보이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황제를 모시고 있는 자기 아들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였다.
한漢나라에서는 의논하여
위사마衛司馬 곡길谷吉을 보내어 그를 돌려보내기로 하였는데,
注+곡谷은 성姓이다.
공우貢禹와 광형匡衡이 이르기를 “질지선우는 귀의하여 복종하는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저들이 있는 곳이 매우 머니, 사자使者에게 질지선우의 아들을 전송하여 변방까지만 갔다가 돌아오게 해야 한다.” 하였으나,
곡길이 질지선우의
왕정王庭까지 전송하러 갈 것을 원하였으므로 이를 허락하였다.
注+정庭은 질지선우郅支單于의 왕정王庭이다.
질지선우는 스스로 한漢나라를 배신했음을 알고 또 호한야선우가 더욱 강성해졌다는 말을 듣고는 습격을 당할까 두려워했는데, 마침 강거왕康居王이 자주 오손烏孫에게 곤궁을 당하고는 사자使者를 보내어 질지선우를 맞이해서 함께 병력을 연합하여 오손을 점령하고자 하였다.
질지선우는 자주 오손을 원망하였으므로 마침내 병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출동하였는데, 병사들이 추위로 도중에 죽고 겨우 3천여 명만 남았다.
注+“도사道死”는 길 위에서 죽은 것이다.
강거왕康居王은 딸을 질지선우에게 시집보내고 질지선우를 몹시 존경해서 그의 위엄을 빌어 여러 나라를 위협하고자 하였다.
질지선우가 여러 번 오손을 공격하여
적곡성赤谷城에 이르니, 오손의 서쪽 변방이 텅 비어서 거주하지 않은 곳이 5천 리(거의 천 리)에 이르렀다.
注+《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에 “오손국烏孫國은 치소治所가 적곡성赤谷城인데, 서쪽으로 강거康居의 오랑캐 땅에 이르기까지 5,000리이다.”라고 하였으니, 만약 텅 비어 있는 땅이 5,000리라고 한다면 적곡성赤谷城 서쪽이 모두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이미 그 국도國都에 이르러 서쪽 변방에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한서漢書》 〈진탕전陳湯傳〉에는 ‘거의 천 리가 된다.’고 하였으니, 마땅히 이를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