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孝文王柱元
과 楚十三
과 燕五
와 魏二十七
과 趙十六
과 韓
十三
과 齊十五年
이라
目
孝文王이 卽位三日而薨이어늘 子楚立하야 尊華陽夫人하야 爲華陽太后하고 夏姬로 爲夏太后하다
目
燕將
이 攻齊聊城
하야 拔之
注+將, 卽亮切. 聊城在濟水之北. 班志 “聊城縣屬東郡.”러니 或
이 譖之燕王
한대 燕將
이 保聊城不敢歸
어늘
齊田單
이 攻之
하야 歲餘不下
러니 魯仲連
이 乃爲書約之矢
하야 以射城中
하야 遺燕將曰
注+約之矢, 纏束書於矢上. 爲公計者
는 不歸燕則歸齊
니
今獨守孤城하야 齊兵이 日益하고 而燕救不至하니 將何爲乎오
燕將
이 見書泣三日
하야 猶豫不能決
하야 遂自殺
注+猶, 夷周‧余救二切. 猶, 獸名, 玃屬. 豫, 亦獸名, 象屬. 此二獸, 皆進退多疑. 人多疑惑者似之, 故謂之猶豫. 一云 “猶, 犬子也. 人將犬行, 犬好豫在人前, 待人不得, 又來迎候, 故謂不決曰猶豫.” 玃, 厥縛切.하니 聊城亂
이어늘 田單
이 克之
하고
仲連
이 逃之海上曰 吾與富貴而詘於人
으론 寧貧賤而輕世肆志焉
注+詘, 與屈同, 勢相傾軋也. 輕世, 眇視天下也. 肆志, 放縱志意也.이라하더라
魏王이 問天下之高士於子順한대 子順이 曰 世無其人也어니와 抑可以爲次는 其魯仲連乎인저
진秦나라 효문왕孝文王 주柱 원년, 초楚나라 고열왕考烈王 13년, 연燕나라 왕 희喜 5년, 위魏나라 안희왕安釐王 27년, 조趙나라 효성왕孝成王 16년, 한韓나라 환혜왕桓惠王 23년, 제齊나라 왕 건建 15년이다.
綱
[綱] 겨울 10월에 진秦나라 왕이 훙薨하자 아들 초楚가 즉위하였다.
目
[目] 효문왕孝文王이 즉위한 지 3일 만에 훙薨하자 아들 초楚가 즉위하여 화양부인華陽夫人을 높여 화양태후華陽太后로 삼고 하희夏姬를 하태후夏太后로 삼았다.
綱
[綱] 연燕나라가 제齊나라를 정벌하여 요성聊城을 함락시키자 제齊나라가 정벌하여 빼앗았다.
目
[目]
연燕나라 장수가
제齊나라
요성聊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注+장將(장수)은 즉량卽亮의 절切이다. 요성聊城은 제수濟水의 북쪽에 있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요성현聊城縣은 동군東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어떤 자가
연燕나라 왕에게 참소하자
연燕나라 장수가 요성을 지킬 뿐
연燕나라로 감히 돌아가지 못하였다.
제齊나라
전단田單이 요성을 공격하였으나 1년이 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자,
노중련魯仲連이 이에 편지를 써서 화살에 묶어 성 안으로 쏘아
연燕나라 장수에게 보냈는데, 그 편지에 말하기를
注+“약지시約之矢”는 화살 위에 편지를 묶은 것이다. “그대를 위한 계책은
연燕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면
제齊나라로 귀순하는 것이다.
지금 홀로 고립된 성을 지키는데, 제齊나라 군사는 날로 늘어나고 연燕나라의 구원병은 오지 않으니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 하였다.
연燕나라 장수가 편지를 읽고 3일 동안 울면서 머뭇머뭇 결정을 못하다가 마침내 자살하여
注+유猶는 이주夷周의 절切과 여구余救의 절切이다. 유猶는 짐승의 이름이니, 원숭이 부류이다. 예豫도 짐승의 이름이니, 코끼리 부류이다. 이 두 짐승은 모두 나아가고 물러날 때에 의심이 많으니, 사람이 의심이 많은 경우에 이와 비슷하므로 이러한 것을 유예猶豫라고 부른다. 일설에, “유猶는 개이다. 사람이 개를 끌고 길을 가면 개는 미리 사람의 앞에 가서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람을 기다리다가 오지 않으면 다시 돌아와서 사람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유예猶豫라고 한다.”고 하였다. 확玃(원숭이)은 궐박厥縛의 절切이다. 요성이 혼란에 빠지자 전단이 공격하여 이겼다.
전단이 돌아와 제齊나라 왕에게 노중련에 대해 아뢰어 작위를 주려고 하였다.
노중련이 바닷가로 달아나 말하기를 “내가 부귀하면서 남에게 굴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빈천하면서 세상을 가벼이 보고 내 뜻대로 하리라.”
注+굴詘은 굴屈과 같으니, 세력으로 서로 밀쳐내는 것이다. “경세輕世”는 천하를 경시하는 것이다. “사지肆志”는 뜻대로 방종하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이 천하의 고상한 선비를
에게 묻자 자순이 대답하기를 “세상에 그러한 사람이 없습니다만, 그 다음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노중련일 것입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