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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3)

자치통감강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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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B.C. 202)
己亥年(B.C. 202)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3권은 기해년己亥年 나라 고조高祖 5년(B.C. 202)부터 시작해서 갑신년甲申年 나라 문제文帝 7년(B.C. 157)까지이니, 모두 46년이다.
起己亥漢高帝五年하여 盡甲申漢文帝後七年이니 凡四十六年이라
漢太祖高皇帝五年注+諡法無高, 以帝爲功最高而爲漢帝之太祖, 故特起名焉.이라
[綱] 나라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 5년이다.注+시법諡法자를 쓴 경우가 없는데, 고조高祖(유방劉邦)는 황제皇帝로서 공이 가장 높고 나라 황제의 태조太祖이기 때문에 특별히 ‘고황제高皇帝’라고 한 것이다.
[綱] 10월에 한왕漢王(유방劉邦)이 항적項籍(항우項羽)을 추격하여 고릉固陵에 이르니, 제왕齊王 한신韓信, 나라의 상국相國 팽월彭越, 유가劉賈나라 장수 주은周殷을 유인하여, 〈주은이 나라를 배반하고〉 경포黥布를 맞이하여 다 모였다.
十二月 圍籍垓下한대 走自殺하니 楚地悉定하다
12월에 항적을 해하垓下에서 포위하였는데, 항적이 달아나다 자살自殺하니, 나라 땅이 다 평정되었다.
十月 漢王 追項羽하여 至固陵注+ “陳國陽夏縣, 有固陵.”한대 齊王信, 魏相國越 期會不至하고 楚擊漢軍大破之어늘
[目] 10월에 한왕漢王항우項羽를 추격해서 고릉固陵에 이르렀는데,注+유소劉昭의 《후한서後漢書》 〈군국지郡國志〉에 “진국陳國 양하현陽夏縣고릉固陵이 있다.” 하였다.제왕齊王 한신韓信나라의 상국相國팽월彭越이 회합하기로 약속하였으나 오지 않았고, 나라 군대가 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漢王 復堅壁自守하고 謂張良曰 諸侯不從하니 奈何 對曰
한왕漢王은 다시 성벽을 견고하게 하여 스스로 지키고 장량張良에게 이르기를 “제후諸侯들이 따르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장량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楚兵且破 二人 未有分地하니 其不至固宜注+分, 扶問切, 言信等雖名爲王, 未爲分畫疆界也, 固宜, 理宜然也.
나라 군대를 장차 격파할 상황인데, 군왕君王께서 이 두 사람에게 아직도 땅을 구분 지어 주지 않으셨으니, 그들이 오지 않는 것은 진실로 당연합니다.注+(구분, 한계)은 부문扶問이니, 한신韓信 등이 비록 명목상으로는 왕이지만 아직 경계를 나누어 봉지封地를 주지는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고의固宜”는 이치상 당연하다는 말이다.
君王 能與共天下하시면 可立致也注+共天下, 共有天下之地, 割而封之.리이다
군왕께서 이들과 천하를 함께 소유하시면 당장 오게 할 수가 있습니다.注+공천하共天下”는 천하의 땅을 공유하여 떼어서 봉해주는 것이다.
信之立 非君王意 不自堅이요 且其家在楚하여 欲得故邑注+非君王意, 言信自請爲假王, 乃立之耳, 非君王本意.하고 本定梁地하여 亦望王注+王, 望王, 謂望爲王也.이어늘 而君王不早定하시니 今能出捐此地하여 以許兩人하여 使各自爲戰이면 則楚易破也리이다
한신을 제왕齊王으로 세운 것은 군왕의 본뜻이 아니므로 그 지위가 자연 견고하지 못하고, 그의 집이 나라에 있어서 옛날 살았던 고을을 얻고자 하며,注+비군왕의非君王意”는 한신韓信이 〈제왕齊王이 된 것은〉 가왕假王(임시 왕)으로 세워줄 것을 자청해서 세워준 것일 뿐이지 군왕의 본의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팽월은 본래 나라 땅을 평정해서 그도 왕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데,注+(왕이 되다)은 본음대로 읽으니, “망왕望王”은 왕이 되기를 바람을 말한 것이다. 군왕께서는 일찍 왕으로 봉해주지 않으셨으니, 지금이라도 능히 이 땅을 내놓고 이 두 사람이 왕이 되는 것을 허락해주어 각자 스스로 싸우게 한다면 나라를 쉽게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從之한대 於是 信越 皆引兵來하다
한왕이 이 말을 따르자, 한신과 팽월이 모두 군대를 이끌고 왔다.
十一月 劉賈圍壽春하여 誘楚大司馬周殷한대 畔楚하고 擧九江兵하여 迎黥布皆會하다
[目] 11월에 유가劉賈수춘壽春을 포위하여 나라의 대사마大司馬주은周殷을 유인하자, 주은이 나라를 배반하고 구강九江의 군대를 다 동원해서 경포黥布를 맞이하여, 모두 회합하게 되었다.
十二月 羽至垓下하니 兵少食盡注+垓, 音該. 垓下, 聚邑名. 一云 “垓, 堤名.” 正義 “垓下, 是高岡絶巖, 今猶高三四丈. 其聚邑及堤, 在垓之側, 因取名焉, 今在亳州眞源縣東十里.”이라
12월에 항우項羽해하垓下에 이르니, 병력이 적고 식량이 다하였다.注+는 음이 이니, 해하垓下취읍聚邑(취락聚落)의 이름이다. 일설에 “는 제방의 이름이다.” 하였다. 에 “해하垓下는 높은 산의 깎아지른 암벽이니, 지금도 높이가 3, 4이 된다. 이곳의 취읍聚邑과 제방이 의 옆에 있어서 이로 인해 이름을 취한 것이니, 지금 박주亳州 진원현眞源縣 동쪽 10리 되는 곳에 있다.” 하였다.
信等 以大軍乘之하니 羽敗入壁이어늘 漢及諸侯兵 圍之數重注+重, 平聲.이러니
한신 등이 대군을 거느리고 이때를 틈타 공격하니, 항우가 패해서 성벽으로 들어가자, 나라와 제후의 군대들이 몇 겹으로 포위하였다.注+(거듭하다)은 평성平聲이다.
羽夜聞漢軍四面皆楚歌注+楚歌者, 爲楚人之歌, 猶言吳謳越吟也. 九江兵歸漢, 故多楚聲.하고 乃大驚曰 漢 皆已得楚乎
항우는 밤에 나라 군대의 사방에서 모두 나라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는注+초가楚歌”는 나라 사람의 노래를 부른 것이니, ‘이라는 말과 같다. 구강九江의 군대가 나라로 귀속되었기 때문에 나라 노랫소리가 많았던 것이다. 크게 놀라 말하기를 “나라가 이미 나라를 모두 차지하였는가?
是何楚人之多也오하고 起飮帳中하고 悲歌忼慨하여 泣數行下注+忼, 口黨切, 亦作慷. 慨, 口漑切. 忼慨, 悲歎也. 行, 胡郞切. 下, 胡嫁切.하니 左右皆泣하여 莫能仰視러라
어찌하여 나라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가?” 하고, 일어나 장막 안에서 술을 마시고 서글픈 심정으로 구슬피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몇 줄기 흐르니,注+(강개하다)은 구당口黨이니 으로도 쓰고, (개탄하다)는 구개口漑이니 강개忼慨는 슬퍼서 탄식하는 것이다. (항렬)은 호랑胡郞이고, (내리다)는 호가胡嫁이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울면서 우러러보지를 못하였다.
於是 羽乃乘其駿馬하고 從八百餘騎하여直夜潰圍하여 南出馳走注+直, 讀曰値, 當也.러니
[目] 이에 항우項羽는 자신의 준마駿馬를 타고 80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서 밤중에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탈출하여 달아났다.注+로 읽으니, 한다는 뜻이다.
渡淮至陰陵하여 迷失道注+班志 “陰陵縣, 屬九江郡.”하여 問一田父한대 田父紿曰左하라
회하淮河를 건너 음릉陰陵에 이르러서 길을 잃었는데,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음릉현陰陵縣구강군九江郡에 속하였다.” 하였다. 어느 농부에게 길을 물으니, 농부가 왼쪽으로 가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하여 乃陷大澤中注+上左字, 田父欺令項羽向左去也. 下左字, 羽從其言而向左去也.하니 漢騎將灌嬰 追及之하다
이에 왼쪽으로 가다가 대택大澤 가운데에 빠지니,注+위에 자는 농부가 속여서 항우項羽에게 왼쪽으로 가라고 한 것이고, 아래에 자는 항우가 그의 말에 따라 왼쪽으로 간 것이다. 이 때문에 나라 기장騎將 관영灌嬰이 따라잡을 수 있었다.
至東城注+班志 “東城縣, 屬九江郡.”하니 乃有二十八騎 漢追者 數千人이라
동성東城에 이르니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동성현東城縣구강군九江郡에 속하였다.” 하였다. 28명의 기병騎兵만 남았는데 추격하는 나라 군사들은 수천 명이었다.
羽謂其騎曰
항우는 자신의 기병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吾起兵八歲 七十餘戰호대 未嘗敗北하여 遂霸天下러니
“내가 군대를 일으킨 이후 8년 동안 70여 번의 전투를 하였지만 일찍이 패배한 적이 없어서 마침내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今卒困此하니 天亡我 非戰之罪也
그런데 지금 마침내 여기서 곤궁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 탓이 아니다.
今日 固決死호리니 願爲諸君決戰하여 必潰圍斬將하여 令諸君知之호리라하고
오늘 참으로 죽기로 결심하였으니, 내가 제군들을 위해 결전을 벌여서 반드시 적의 포위망을 무너뜨리고 장수의 목을 베어 제군들에게 이를 알게 하겠다.”
乃分其騎하여 爲四隊四鄕注+鄕, 讀曰嚮.하니 漢軍 圍之數重이어늘
항우는 마침내 자신의 기병을 4로 나누어 사방을 향하게 하니,注+(향하다)은 으로 읽는다.나라 군대가 몇 겹으로 포위하였다.
羽令四面騎馳下하여 期山東爲三處注+期遇山東分爲三處.하다
그러자 항우가 기병들에게 사면으로 말을 달려 내려가서 산의 동쪽 세 곳에서 나누어 모이기로 약속하였다.注+산의 동쪽을 세 곳으로 나누어 만나기로 약속한 것이다.
於是 大呼馳下하여 斬漢一將하고 與其騎 會爲三處하니
이에 항우가 크게 소리치며 달려 내려가서 나라 장수 한 명을 베고 자신의 기병과 세 곳에서 모였다.
漢軍 不知羽所在하여 乃分軍爲三하여 復圍之어늘 羽復馳하여 斬漢一都尉하고 殺數十百人하고 復聚其騎하니 亡其兩騎耳
나라 군대가 항우가 있는 곳을 몰라서 마침내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다시 포위하자 항우가 다시 달려가서 나라 도위都尉 한 명을 베고 수십여 명을 죽인 다음 다시 자신의 기병들을 모았는데, 기병 둘을 잃었을 뿐이었다.
謂其騎曰 何如 皆曰 如大王言하니이다
항우는 자신의 기병들에게 말하기를, “어떠한가?” 하니, 모두 “대왕大王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였다.
於是 羽欲東渡烏江注+地理志 “烏江, 在東城縣.”이러니 亭長檥船待曰注+檥, 音蟻, 附也. 附船著岸也. 江東雖小 地方千里 衆數十萬이니 亦足王也
[目] 이에 항우가 동쪽으로 가서 오강烏江을 건너려고 하였는데,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오강烏江동성현東城縣에 있다.” 하였다.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대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말하기를,注+는 음이 이니 붙인다는 뜻이다. 〈“의선檥船”은〉 배를 강기슭에 대는 것이다.강동江東 지역이 비록 작지만 땅이 사방 천 리이고 백성도 수십만 명이나 되니, 또한 충분히 왕 노릇을 할 수가 있습니다.
獨臣有船하니 願大王 急渡하소서
지금 저만이 배를 가지고 있으니, 원컨대 대왕께서는 서둘러 건너소서.” 하니,
羽笑曰 籍 與江東子弟八千人으로 渡江而西러니 今無一人還하니 縱江東父兄 憐而王我 我獨不愧於心乎아하고
항우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강동 지역의 자제 8천 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었는데, 지금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으니, 설령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더라도 내 마음에 유독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乃刎而死하다
하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楚地悉定호대 獨魯不下
[目] 나라 땅이 모두 평정되었으나 나라 지역만은 항복하지 않았다.
王欲屠之하여 至城下러니 猶聞弦誦之聲하고
한왕漢王나라 지역을 도륙하고자 하여, 나라의 도성 아래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현악기를 타고 를 외는 소리가 들렸다.
爲其守禮義之國이니 爲主死節注+爲, 去聲. 懷王初封項籍爲魯公.이라하고 乃持羽頭示之한대 乃降이어늘
이에 한왕이 나라는 예의禮義를 지키는 나라이니 주군主君을 위해 목숨을 바쳐 절개를 지키려는 것이라고 하고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회왕懷王이 처음 항우項羽를 봉해 노공魯公을 삼았었다. 〈그러므로 군주를 위해 충절을 지킨다고 한 것이다.〉항우項羽의 머리를 가져다가 보여주니, 나라 사람들이 그제야 항복하였다.
以魯公禮 葬羽於穀城注+皇覽 “項羽冢, 在東郡穀城東, 去縣十五里.”하고 親爲發哀하여 哭之而去하다
그러자 한왕은 항우를 노공魯公의 예로 곡성穀城에 장사 지낸 다음注+에 “항우의 무덤은 동군東郡 곡성穀城의 동쪽에 있는데, 에서 15리 떨어져 있다.” 하였다. 직접 항우의 을 공포하고 조문弔問하여 곡하고 돌아갔다.
諸項氏枝屬 皆不誅하고 封項伯等四人하여 爲列侯하여 賜姓劉氏하고 諸民略在楚者 皆歸之注+列者, 見序列也.하다
그리고 여러 항씨項氏지속枝屬들을 모두 죽이지 않고, 항백項伯 등 4인을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고는 유씨劉氏 을 내려주었으며, 나라에 잡혀 있던 백성들을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注+은 서열을 나타낸 것이다.
太史公曰
[目] 태사공太史公(사마천司馬遷)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羽放逐義帝而自立하고 怨王侯叛己하니 難矣
自矜功伐하여 奮其私智而不師古하고 欲以力征으로 經營天下라가 國亡身死호대 尙不覺寤하고 乃引天亡我非戰之罪하니 豈不謬哉리오
스스로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고 사사로운 지혜를 뽐내어 옛 도리를 본받지 않고서 무력 정벌로 천하를 경영하려고 하다가 나라가 망하고 자신은 죽게 되었으나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자신이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니라고 말하였으니,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揚子曰
[目] 양자揚子(양웅揚雄)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屈群策하여 群策屈群力注+屈, 盡也.이어늘憞群策而自屈其力注+憞, 徒對切, 惡也.하니 屈人者하고 自屈者하나니
나라는 여러 사람의 계책을 다 받아들여서 여러 사람의 계책을 가지고 여러 사람의 힘을 다 썼는데注+은 다한다는 뜻이다.나라는 여러 사람의 계책을 싫어하여 자신의 힘만을 썼으니,注+도대徒對이니, 싫어한다는 뜻이다. 남의 힘을 다 받아들여 쓴 자는 이기고 자신의 힘만을 쓰는 자는 지는 법이다.
天曷故焉注+言天豈故爲之哉. 亦人事也.이리오
하늘이 어찌 일부러 망하게 하였겠는가.”注+〈“천갈고언天曷故焉”은〉 하늘이 어찌 일부러 망하게 하였겠는가. 또한 사람이 한 일일 뿐이라는 뜻이다.
還至定陶하여 하다
[綱] 한왕漢王이 돌아와 정도定陶에 이르러 제왕齊王 한신韓信의 성벽(진영)으로 달려 들어가서 그의 군대를 빼앗았다.
◑ 遣劉賈하여 擊臨江王共尉하여 虜之注+尉, 敖之子也.하다
[綱] 유가劉賈를 보내 임강왕臨江王 공위共尉를 공격해서 사로잡았다.注+공위共尉의 아들이다.
◑ 春正月 하고 魏相國越爲梁王하다
[綱] 봄 정월에 제왕齊王 한신韓信을 바꾸어 초왕楚王으로 삼고, 나라 상국相國 팽월彭越양왕梁王으로 삼았다.
韓信 至楚하여 召漂母하여 賜千金하고 召辱己少年하여 以爲中尉하고 曰此壯士也注+漢制, 諸侯王國, 有中尉, 掌武職.라하다
하다
[綱] 사면赦免하였다.
令曰
[目] 조령詔令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
兵不得休八年이라 萬民與苦甚注+與, 音預.이러니 今天下事畢하니 其赦天下殊死已下注+殊死, 斬刑也. 殊, 絶也, 異也, 言其身首離絶而異處也.하라
“병사들이 8년 동안 쉴 수가 없었고, 모든 백성들도 매우 고생을 하였는데,注+(참여하다)는 음이 이다. 이제 천하의 일이 끝났으니, 온 천하의 참형斬刑 이하에 해당하는 자들을 사면하라.”注+수사殊死”는 참형斬刑이다. 는 끊고 분리된다는 뜻이니, 몸과 머리가 분리되고 끊기어 따로 있음을 말한 것이다.
二月 하다
[綱] 2월에 이 황제의 자리에 나아갔다.注+부검敷劍이다. 이 말하기를 “범수氾水제음현濟陰縣의 경계에 있다.” 하였다.
諸侯王 皆請尊漢王爲皇帝어늘 二月甲午 卽位于氾水之陽注+氾, 敷劍切. 張晏曰 “氾水在濟陰界.”하다
[目] 제후왕諸侯王이 모두 한왕漢王을 높여 황제로 삼자고 하자, 2월 갑오일甲午日에 〈한왕이〉 범수氾水의 북쪽에서 황제의 자리에 나아갔다.
更王后曰皇后라하고 王太子曰皇太子라하고 追尊先媼曰昭靈夫人이라하다
[綱] 왕후王后를 고쳐 황후皇后라 하고, 왕태자王太子를 고쳐 황태자皇太子라 하고, 선온先媼(죽은 어머니)을 추존追尊해서 소령부인昭靈夫人이라 하였다.
◑ 立故衡山王芮爲長沙王하고 故粤王無諸爲閩粤王注+芮封衡山王, 都邾, 今封長沙王, 都臨湘. 粤, 通作越. 無諸, 越王句踐之後. 閩, 音緡, 春秋, 七閩地. 戰國時, 越人所居, 其人本蛇種, 其字從虫.하다
[綱] 注+항우項羽가〉 오예吳芮형산왕衡山王으로 봉해서 에 도읍하게 하였었는데, 이제 장사왕長沙王에 봉해서 임상臨湘에 도읍하게 하였다. 과 통용하여 쓰인다. 무제無諸월왕越王 구천句踐의 후예이다. 은 음이 이니, 《춘추春秋》에 나오는 의 지역이다. 전국戰國시대에 나라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인데, 이 지역 사람들이 뱀에서 근본했다고 여기므로 글자에 자를 쓴 것이다.
◑ 帝西都洛陽하다
[綱] 황제가 서쪽으로 낙양洛陽에 도읍하기로 정하였다.
◑ 夏五月 하다
[綱] 여름 5월에 군대를 파(해산)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詔民前或相聚保山澤하여
[目] 조령詔令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
不書名數者 令各歸其縣하여 復故爵田宅注+保, 守也, 安也, 守而安之, 以避難也. 名數, 戶籍也, 復, 還也.하고
“백성들 가운데 예전에 간혹 산택山澤에 모여 피난해서 호적戶籍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을 모두 자기 으로 돌아가게 해서 옛날의 작위爵位전택田宅을 돌려주고,注+는 지키고 편안히 하는 뜻이니, 지켜서 편안히 하여 난리를 피하는 것이다. “명수名數”는 호적戶籍이고 은 돌려주는 것이다.
吏以文法敎訓辨告호대 勿笞辱注+辨告者, 分別義理以曉喩之.軍吏卒하고
관리는 그들에게 글과 법을 가르쳐서 의리를 분별하게 하되 군대의 이졸吏卒들에게 태장笞杖을 쳐서 욕보이지 말고,注+변고辨告”는 의리義理를 분별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爵及七大夫以上 皆令食邑하고 已下 皆復其身及戶하고 勿事注+七大夫, 公大夫也, 爵第七, 故謂之七大夫. 秦制, 列侯乃得食邑, 今七大夫以上皆食邑, 所以寵之也. 復, 除也. 除免其身役‧戶稅也. 勿事, 不給徭賦也.하다
작위爵位 이상인 자는 모두 식읍食邑을 받게 하며, 이 이하인 자는 모두 신역身役호세戶稅를 면제하고, 요역徭役부세賦稅를 면제하게 하라.”注+칠대부七大夫공대부公大夫이니, 작위爵位의 순위가 일곱 번째이므로 칠대부라고 한 것이다. 나라 제도에 열후列侯여야 식읍食邑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때에는 칠대부 이상이 모두 식읍을 받게 하였으니, 이는 총애한 것이다. 은 면제하는 것이니, 〈“복기신급호復其身及戶”는〉 신역身役호세戶稅를 면제해주는 것이다. “물사勿事”는 요역徭役부세賦稅가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置酒南宮하다
[綱] 남궁南宮에서 술자리를 베풀었다.
置酒洛陽南宮注+秦時, 洛陽已有南北宮.할새 上曰 徹侯諸將 毋敢隱朕하고 皆言其情하라
三傑을 임용하다三傑을 임용하다
[目] 낙양洛陽남궁南宮에서 술자리를 베풀었는데,注+나라 때 낙양洛陽에 이미 남궁南宮북궁北宮이 있었다.이 말하기를 “와 여러 장수들은 감히 에게 숨기지 말고, 모두 자신의 실제 생각을 말하도록 하라.
吾所以有天下者 項氏之所以失天下者
내가 천하를 소유한 까닭은 무엇이며, 항씨項氏가 천하를 잃은 까닭은 무엇인가?” 하니,
高起, 王陵 對曰注+高起, 姓名. 陛下 使人攻城略地하여는 因以與之하여 與天下同其利하시고
고기高起왕릉王陵이 대답하기를注+고기高起는 사람의 성명姓名이다. “폐하께서는 사람을 시켜 성을 공격하고 땅을 공략하면 그로 인하여 그 성과 땅을 그들에게 주어서 천하와 그 이익을 함께하셨는데,
項羽 不然하여 有功者 害之하고 賢者 疑之하며 戰勝而不予人功하고 得地而不予人利하니 此其所以失天下也니이다
항우는 그렇지 않아서 공이 있는 자를 해치고 어진 자를 의심하였으며, 싸워 이겨도 그 사람의 을 인정해주지 않고 땅을 빼앗아도 그 사람에게 땅을 나누어주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가 천하를 잃은 이유입니다.” 하였다.
上曰
이에 이 말하였다.
公知其一이요 未知其二로다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는구나.
夫運籌帷幄之中하여 決勝千里之外 吾不如子房注+籌, 筭也, 如借食前箸, 指畫爲漢王, 陳不可者八之類. 帷幄, 軍幕也. 子房, 張良字.이요塡國家, 撫百姓하고 給餉餽하여 不絶糧道 吾不如蕭何注+塡, 與鎭同. 給, 供給也. 餽, 與饋同. 連百萬之衆하여 戰必勝, 攻必取 吾不如韓信하니
군막軍幕 안에서 궁리하고 계책을 내어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자방子房(장량張良)만 못하고,注+는 계산한다는 뜻이니, 예를 들면 유악帷幄군막軍幕이다. 자방子房은 장량의 이다. 국가를 잘 진정시키고 백성들을 어루만지며 군량을 공급하여 군량 수송로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蕭何만 못하고,注+(진무하다)은 과 같다. 공급供給한다는 뜻이고 (군량)는 와 같다. 백만의 군사를 연합하여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 것은 내가 한신韓信만 못하다.
三者 皆人傑이어늘 吾能用之하니 此吾所以取天下者也注+傑, 言傑然獨出也.
이 세 사람은 모두 인걸人傑인데 내가 능히 이들을 쓸 수 있었으니, 이것이 내가 천하를 차지한 까닭이다.注+은 특출하게 홀로 뛰어남을 말한다.
項羽 有一范增而不能用하니 此所以爲我禽也라하니
항우는 범증范增 한 사람이 있었으나 능히 쓰지 못하였으니, 이 때문에 나에게 사로잡힌 것이다.”
群臣 說服이러라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기뻐하며 복종하였다.
楊氏曰
[目] 양씨楊氏(양시楊時)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項籍無道하여 所過殘滅하니 民不親附
항적項籍무도無道해서 지나가는 곳의 백성들을 모두 죽이고 없애버렸으니 백성들이 친근하게 여기지 않았다.
范增 爲之謀主하여 曾無一言以救其敗하고 其得計 不過數欲害沛公耳
그런데 범증范增은 자기 군주를 위해 계책을 세우면서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나마 세운 계책도 여러 차례 패공沛公을 해치고자 한 것일 뿐이었다.
嗚呼 誠不改其轍이면 則前日之亡秦
아, 항적이 참으로 예전의 잘못된 방식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은 바로 지난날 멸망한 나라의 행위인 것이다.
是也 借令沛公死라도 天下 豈無沛公乎
가령 패공이 죽었더라도 천하에 어찌 패공과 같은 자가 없겠는가.
然則籍雖用增이나 亦未必有益於敗亡也리라
그렇다면 항적이 비록 범증의 말을 들어주었더라도 패망하는 데에는 별 보탬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召故齊王橫이러니 未至 自殺하다
[綱] 예전에 제왕齊王이었던 전횡田橫을 불렀는데, 경사京師에 이르기 전에 자살自殺하였다.
田橫 與其徒屬五百餘人으로 入海하여 居島中注+渤海中有島, 名嗚呼, 又號半洋山.이러니
[目] 전횡田橫이 자신의 무리 500여 명과 함께 해도海島에 들어가 거주하였다.注+발해渤海 가운데에 섬이 있는데, 이름을 오호嗚呼라고도 하고 또 반양산半洋山이라고도 한다.
帝恐其爲亂하여 赦橫罪하고 召之曰 橫하라
황제는 이들이 난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전횡의 죄를 사면하고, 부르기를 “전횡아, 오너라.
大者이요 小者 乃侯耳注+大者封王, 小亦不失爲侯.어니와 不來 且擧兵加誅焉호리라
네가 오면 크게는 을 시킬 것이고 작게는 를 시킬 것이지만,注+〈“대자왕大者王 소자내후이小者乃侯耳”는〉 크게는 을 봉해주고, 작아도 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만일 오지 않으면 장차 군대를 동원해서 죽일 것이다.” 하였다.
乃與其客二人으로 乘傳詣洛陽하여 至尸鄕廐置注+傳, 張戀切. 四馬高足爲置傳, 四馬中足爲馳傳, 四馬下足爲乘傳, 一馬二馬爲軺傳, 急者乘一乘傳. 古者以車, 謂之傳車, 其後單置馬, 謂之驛騎. 正義 “尸鄕在洛州偃師縣西南五里亳阪之北.” 廏置, 謂置馬以傳驛處.하여 謂其客曰
전횡이 마침내 문객門客 두 사람과 함께 전거傳車를 타고 낙양에 올라왔는데, 시향尸鄕의 역참에 이르러注+(수레)은 장련張戀이다. 준마駿馬 4마리가 끄는 수레를 치전置傳이라 하고, 중마中馬 4마리가 끄는 수레를 치전馳傳이라 하고, 하마下馬 4마리가 끄는 수레를 승전乘傳이라 하고, 말 1마리나 2마리가 끄는 수레를 초전軺傳이라 하는데, 급한 경우에는 4마리가 끄는 한 대의 수레를 탄다. 옛날에는 수레를 전거傳車라고 했었는데, 그 뒤에 말만 둔 것을 역기驛騎라고 하였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시향尸鄕낙주洛州 언사현偃師縣 서남쪽 5리쯤에 있는 박판亳阪의 북쪽에 있다.” 하였다. “구치廏置”는 역말을 둔 역참驛站을 이른다. 문객에게 말하기를
始與漢王으로 俱南面稱孤러니 今漢王爲天子어늘 而橫乃爲亡虜하여 北面事之하니 其恥固已甚矣
“내가 처음에 한왕漢王과 함께 남면南面하여 라고 일컬었는데, 지금 한왕은 천자가 되었으나 나는 망한 나라의 포로가 되어 북면北面해서 섬기게 되니, 그 부끄러움이 참으로 심하다.
且吾烹人之兄하고 與其弟 倂肩而事主注+其弟, 謂酈食其弟酈商也. 先是, 齊烹食其. 倂, 步鼎切. 倂肩, 謂比肩竝立也.하면 縱彼不動注+此下脫一我字. 我獨不愧於心乎아하고 遂自剄하여 令客奉其頭하여 從使者馳奏之한대
그리고 내가 이제 그의 아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군주를 섬긴다면注+그의 아우는 역이기酈食其의 아우 역상酈商이다. 이보다 앞서 나라에서 역이기를 팽형烹刑에 처하였다. 보정步鼎이니, “병견倂肩”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서 있는 것을 이른다. 비록 그가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注+이 아래에 자가 빠져 있다.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고 문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머리를 받들어 사자使者를 따라 달려가 아뢰게 하였다.
帝爲流涕하고 以王禮葬之하다
이에 황제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로 장사 지내주었다.
二客 自剄하니 餘五百人在島中者 聞之하고 亦皆自殺하다
〈장례가 끝나자〉 두 문객이 스스로 목을 찔러 죽고, 해도海島에 있던 나머지 500명도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자살自殺하였다.
以季布爲郞中하고 斬丁公以徇하다
[綱] 계포季布으로 삼고 정공丁公하여 조리돌렸다.
楚人季布 爲項籍將하여數窘辱帝注+季, 姓也. 窘, 巨隕切, 迫也.러니
[目] 예전에 나라 사람 계포季布항적項籍의 장수가 되어 여러 번 황제를 곤궁하게 하고 욕보였다.注+이다. 거운巨隕이니, 핍박한다는 뜻이다.
籍滅 帝購求布千金호대 敢有舍匿이면 罪三族注+舍, 止也. 匿, 隱也.호리라
항적이 멸망하자 황제가 계포를 잡으려고 천금千金을 현상금으로 내걸고 ‘감히 계포를 집에 머물게 하거나 숨겨주면 삼족三族을 멸하겠다.’注+는 머물게 한다는 뜻이고, 은 숨긴다는 뜻이다. 하였다.
布乃髡鉗爲奴하여 自賣於魯朱家注+髡, 音坤, 𩮜髮也. 鉗, 其炎切, 以鐵束頸也. 朱家, 魯人也.어늘
계포가 마침내 머리를 깎고 목에 항쇄項鎖를 차고 노예가 되어서 스스로 나라 지역의 주가朱家에게 팔려갔다.注+은 음이 이니 머리를 깎는 것이고, 기염其炎이니 쇠로 목을 묶는 것이다. 주가朱家나라 지역 사람이다.
朱家心知其季布也하여 買置田舍하고 身之洛陽하여 見滕公하고
주가는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 계포임을 알고 그를 사서 전사田舍(농가農家)에 두고는 자신이 직접 낙양洛陽에 가서 등공滕公(하후영夏侯嬰)을 만나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季布 何罪
“계포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臣各爲其主用 職耳注+爲, 去聲. 職耳, 言臣職當然耳.
신하는 각각 자기 군주를 위하여 쓰이는 것이 당연한 직분입니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직이職耳”는 신하의 직분에 당연함을 말한 것이다.
項氏臣 豈可盡誅邪
항씨項氏의 신하를 어떻게 다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今上 始得天下하여 而以私怨求一人하시니 何示不廣也
지금 께서 처음으로 천하를 얻고서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한 사람을 찾으시니, 어찌 넓지 못한 도량을 보이신단 말입니까.
且以布之賢으로 漢求之急하니 此不北走胡 南走越耳
그리고 나라에서 그를 급하게 잡으려 하니, 계포의 현명함으로 볼 때, 북쪽의 로 달아나지 않으면 남쪽의 나라로 달아날 것입니다.
夫忌壯士以資敵國 此伍子胥所以鞭荊平之墓也注+子胥, 伍員字, 父奢爲楚平王所殺. 員奔吳, 敎吳伐楚, 平王已卒, 掘墓取屍, 鞭之三百.니라
대저 장사壯士를 꺼려하여 적국에게 주는 것은 오자서伍子胥나라 평왕平王의 묘에 매질한 이유입니다.”注+자서子胥오원伍員인데 아버지인 오사伍奢나라 평왕平王에게 살해당하였다. 오원이 나라로 달아나서 나라로 하여금 나라를 치게 하였는데, 평왕이 이미 죽고 없자 그의 무덤을 파서 시신을 꺼내 300대나 채찍질을 하였다.
滕公 言於上한대 上乃赦布하고 召拜郞中하니 朱家遂不復見之하다
등공이 이것을 상에게 말하자, 상이 계포를 사면하고 불러 낭중郎中을 제수하니, 주가는 마침내 〈자신이 은혜를 베푼 것을 남들이 알까 두려워하여〉 더 이상 계포를 만나지 않았다.
母弟丁公 亦爲項羽將하여 逐窘帝彭城西하여 短兵接注+丁公, 名固, 布同母異父弟. 短兵, 刀劍也. 謂用刀劍以相接擊也.이러니 帝急注+句.하여 顧曰 兩賢 豈相戹哉리오하니 丁公乃還注+回視曰顧. 兩賢者, 高祖自謂倂與固也. 戹, 乙革切, 或作厄.이러니
[目] 계포季布동모제同母弟정공丁公항우項羽의 장수가 되어 황제를 팽성彭城의 서쪽에서 추격하여 곤궁하게 해서 짧은 병기(칼)을 가지고 맞붙어서 싸웠는데,注+정공丁公은 이름이 이니,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계포季布의 아우이다. 단병短兵도검刀劍이니, 〈“단병접短兵接”은〉 도검을 사용하여 서로 맞붙어 싸움을 이른다. 황제가 다급하자注+여기서 를 뗀다. 정공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두 현자가 어찌 서로 곤궁하게 하는가?” 하니, 정공이 군대를 이끌고 그대로 돌아갔다.注+돌아보는 것을 라고 한다. “양현兩賢”은 고조高祖 자신과 정고丁固를 함께 말한 것이다. (곤궁하다)은 을혁乙革이니, 혹 으로도 쓴다.
至是謁見이어늘 帝以徇軍中曰 丁公 爲臣不忠하여 使項王失天下者也라하고 遂斬之曰 使後爲人臣으로 無傚丁公也注+傚, 倣也.라하니라
이때에 이르러 정공이 찾아와 뵙자, 황제가 정공을 군중에 조리돌리고 말하기를 “정공은 항왕項王(항우)의 신하가 되어 불충해서 항왕으로 하여금 천하를 잃게 했다.” 하고는 마침내 그의 목을 베고 말하기를 “후세에 남의 신하 된 자들로 하여금 정공을 본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注+는 본받는다는 뜻이다. 하였다.
司馬公曰
[目]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高祖罔羅豪桀하여 招亡納叛 亦已多矣注+魚罾謂之罔, 鳥罟謂之羅.로대
고조高祖가 호걸들을 망라하여 도망온 자들을 불러오고 배반한 자들을 받아들인 것이 또한 이미 많았다.注+물고기 잡는 그물을 이라 하고 새 잡는 그물을 라고 한다.
而丁公 獨以不忠受戮 何哉
그런데 정공丁公이 홀로 불충하다고 하여 죽임을 당한 것은 어째서인가?
當群雄角逐之際하여 民無定主하니 來者受之 固其宜也注+角, 競也爭也.어니와
여러 영웅들이 서로 다투던 때에는 백성들에게 정해진 군주가 없으니, 오는 자를 받아주는 것이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注+은 겨루고 다툰다는 뜻이다.
及貴爲天子하여는 海內爲臣하니 苟不明禮義以示人하여 使爲臣者 人懷二心하여 以徼大利 則國家豈能久安乎
그러나 존귀한 천자가 되어서는 사해四海 안의 사람들이 모두 신하가 되었으니, 만일 예의禮義를 밝혀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아서 신하 된 자로 하여금 모두 두 마음을 품어 큰 이익을 바라게 한다면 국가가 어찌 장구하게 편안할 수 있겠는가.
是故 斷以大義하여 使天下 曉然皆知爲臣不忠者 無所自容하여 而懷私結恩者 雖至於活己 猶不與也
이 때문에 큰 의리로 결단하여, 신하가 되어 불충한 자는 스스로 용납될 곳이 없어서, 사심私心을 품고 은혜를 맺은 자는 비록 자기를 살려주었다 해도 오히려 의리로 허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천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게 한 것이다.
戮一人而千萬人懼하니 其慮事 豈不深且遠哉리오
한 사람을 죽여 천만인을 두렵게 하였으니, 일을 생각함이 어찌 깊고 원대하지 않은가.”
帝西都關中하고 以婁敬爲郞中하여 하다
[綱] 황제가 서쪽으로 가서 관중關中에 도읍하기로 정하고, 누경婁敬낭중郞中으로 삼고서 유씨劉氏 을 하사하였다.
齊人婁敬戍隴西할새 過洛陽이라가 求見上曰 陛下都洛陽하시니 豈欲與周室比隆哉잇가 上曰 然하다
[目] 나라 사람 누경婁敬농서隴西에서 수자리를 살게 되어 낙양洛陽을 지나다가 을 만나뵙기를 청하고, 말하기를 “폐하께서 낙양에 도읍하기로 정하셨는데, 이것은 나라 왕실과 융성함을 견주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하니, 이 “그렇다.” 하고 대답하였다.
敬曰
누경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陛下取天下與周異하니 周自后稷으로 積徳絫善十有餘世注+絫, 古累字. 至於文武하여 而諸侯自歸之어늘 遂滅殷爲天子러니
“폐하께서 천하를 얻으신 것은 나라와는 다르니, 나라는 후직后稷으로부터 을 10여 대 동안 쌓아注+(쌓다)는 고자古字이다.문왕文王무왕武王 때에 이르러 제후들이 저절로 귀의하자, 마침내 나라를 멸하고 천자가 되었습니다.
及成王卽位 周公相焉하여 乃營洛邑하니 以爲此天下之中也 諸侯四方 納貢職 道里均矣일새니이다
성왕成王이 즉위하여서는 주공周公이 정승으로 보필하여 마침내 낙읍洛邑(낙양洛陽)을 경영하였으니, 이곳은 천하의 중심이 되는 곳이어서 사방의 제후들이 공물貢物을 바칠 때 오고 가는 거리가 고르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有徳則易以王이요 無徳則易以亡이니
〈낙양은〉 덕이 있으면 왕 노릇 하기가 쉽고, 덕이 없으면 망하기도 쉽습니다.
周之盛時 諸侯四夷莫不賓服이러니 及其衰也하여 天下莫朝호대 周不能制하니 非唯徳薄이요 形勢弱也니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번성했을 때에는 제후들과 사방의 오랑캐들이 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없었으나, 쇠약해지자 천하에 조근朝覲하는 나라가 없는데도 나라에서 제재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덕이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형도 약했던 탓입니다.
今陛下起豐沛하사 卷蜀漢하고 定三秦注+卷, 讀曰捲.하시고 與項羽 戰滎陽成皐之間하여 大戰七十이요 小戰四十하여
지금 폐하께서는 풍패豐沛에서 일어나서 한중漢中을 석권하고 삼진三秦을 평정하였으며,注+(말다)은 으로 읽는다.항우項羽형양滎陽성고成皐 사이에서 싸워 큰 전투는 70번, 작은 전투는 40번이나 벌였습니다.
使天下之民으로 肝腦塗地하여 哭聲未絶하고 傷者未起어늘 而欲比隆於成康之時하시니 臣竊以爲不侔也注+侔, 音牟, 等也.라하노이다
그리하여 천하 백성들로 하여금 를 땅에 범벅이 되게 하여 통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다친 사람들이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성왕成王강왕康王 때와 융성함을 견주고자 하시니, 신은 나라와 같지 않다고 삼가 생각됩니다.注+는 음이 이니 같다는 뜻이다.
夫秦地 被山帶河하여 四塞以爲固하고 卒然有急이어든 百萬之衆 可立具也니이다
대저 나라 지역은 산으로 덮여 있고 황하黃河가 띠처럼 둘러져 있어 사방이 요새로 막혀 견고하고, 별안간 급한 일이 있으면 백만 명의 군대를 즉시 갖출 수가 있습니다.
夫與人鬪 不搤其亢 拊其背하면 未能全其勝也注+搤, 音厄, 捉持也. 亢, 音剛, 咽喉也, 以喩關中. 拊, 音撫, 擊也. 以背脊喩天下.하나니
무릇 적과 싸울 적에 그 사람의 목을 조르고 그 사람의 등을 치지 않으면 완전하게 승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注+은 음이 이니 잡고 있다는 뜻이다. 은 음이 으로 인후咽喉이니 이것으로 관중關中을 비유한 것이다. 는 음이 로 친다는 뜻이다. 배척背脊(등)을 가지고 천하天下를 비유한 것이다.
今陛下案秦之故地하시면 此亦搤天下之亢而拊其背也니이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 나라의 옛 땅을 장악하시면 이것은 천하의 목을 조르고 등을 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帝問群臣한대 群臣 皆山東人이라 爭言 周 王數百年호대 二世卽亡注+王, 于況切.하니이다
[目] 황제가 여러 신하들에게 물으니, 신하들이 모두 산동山東 사람들이었으므로 다투어 말하기를 “나라는 수백 년 동안 왕 노릇 하였지만 나라는 2대 만에 곧바로 망하였습니다.注+(왕 노릇 하다)은 우황于況이다.
洛陽 東有成皐하고 西有殽澠하고 倍河鄕洛하니 其固亦足恃也注+河在洛陽城北, 故曰倍. 洛在洛陽城南, 故曰鄕.니이다
그리고 낙양洛陽은 동쪽에는 성고成皐가 있고 서쪽에는 효산殽山민지澠池가 있으며 황하黃河를 등지고 낙수洛水를 향하고 있으니, 그 견고함을 또한 충분히 믿을 만합니다.”注+하수河水낙양성洛陽城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라고 하였고, 낙수洛水는 낙양성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이라고 한 것이다. 하였다.
問張良한대 良曰
[目] 장량張良에게 물으니, 장량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洛陽 雖有此固 其中하여 不過數百里 田地薄하고 四面受敵하니 非用武之國也注+言無險可恃, 非用兵之地.어니와
낙양洛陽이 비록 이러한 견고함이 있으나 그 안이 작아서 수백 리에 불과하며, 전지田地가 척박하고 사면으로 적의 침공을 받을 수 있는 지형이니, 군대를 써서 싸우기에 적합한 지역이 아닙니다.注+〈“비용무지국非用武之國”은〉 믿을 만한 험한 지형이 없어서 용병用兵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關中 左殽函 右隴蜀이요 沃野千里注+沃者, 灌漑也, 言其土地皆有灌漑之利, 故曰沃野. 南有巴蜀之饒하고 北有胡苑之利注+養禽獸處, 通名曰苑. 謂安定‧北地‧上郡之北, 與胡地相接, 可以畜牧, 又多致胡馬, 故曰胡苑之利.하며 阻三面而守하고 獨以一面으로 東制諸侯하니이다
관중關中은 왼쪽에는 효산殽山함곡관函谷關이 있고 오른쪽에는 이 있고 비옥한 들이 천 리나 되며,注+관개灌漑하는 것이니, 이 지역의 토지가 모두 관개灌漑하는 이로움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옥야沃野라고 한 것이다. 남쪽으로는 의 풍요로움이 있고 북쪽으로는 의 초원에서 나오는 이익이 있으며,注+금수禽獸를 기르는 곳을 일반적으로 이라고 한다. 안정安定, 북지北地, 상군上郡의 북쪽 지역은 의 땅과 서로 인접해서 가축을 기를 수 있고, 또 호마胡馬를 많이 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호원胡苑의 이로움’이라고 한 것이다.삼면三面이 막혀서 저절로 지켜지고 오직 한쪽 면만 가지고 동쪽으로 제후들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諸侯安定이면 河渭漕輓天下하여 西給京師注+輓, 引也. 漢漕關東之粟, 自河入渭, 自渭而上, 輸之長安.하고 諸侯有變이면 順流而下하여 足以委輸注+委‧輸, 竝去聲, 謂輸送委積者.
제후들이 안정되면 하수河水위수渭水를 통해 천하의 곡식을 조운漕運해서 서쪽에 있는 경사京師에 실어다 줄 수 있고,注+은 끌어온다는 뜻이다. 나라는 관동關東의 곡식을 조운漕運해서 하수河水로부터 위수渭水로 들여오고, 위수渭水로부터 올라와서 장안長安으로 수송하였다. 제후들에게 변고가 있으면 물길을 따라 내려가서 관중의 양초糧草를 수송해줄 수 있습니다.注+는 모두 거성去聲이니, 쌓여 있는 곡식을 수송해감을 말한다.
此所謂金城千里 天府之國이니 敬說 是也注+金城, 言秦有四塞之固如金城. 財物所聚, 謂之府, 言關中之地, 物産饒多, 可備贍給, 故稱天府.니이다
그러니 이것은 이른바 금성金城(철옹성)이 천 리이고 천부天府(천연적인 부고府庫)의 나라라는 것이니, 누경婁敬의 말이 옳습니다.”注+금성金城”은, 나라 지역이 사방으로 막힌 견고함이 있는 것이 철옹성 같음을 말한 것이다. 재물財物을 쌓아놓은 것을 라고 하니, 관중關中 지역은 물산이 풍족해서 넉넉하게 공급할 수가 있기 때문에 천부天府라고 한 것이다.
卽日 西都關中注+卽日, 蓋謂其日卽定計, 非卽日遂行也.하고 拜敬郞中하여 號奉春君이라하고 賜姓劉氏注+春, 歲之始也, 以敬首謀都關中, 故號奉春君.하다
은 당일로 서쪽으로 관중에 가서 도읍하기로 정하고,注+즉일卽日”은 그날 즉시 계책을 정함을 말한 것이지, 그날로 즉시 결행한 것은 아니다. 누경을 낭중郎中에 제수하여 봉춘군奉春君이라 칭하였으며 유씨劉氏 을 하사하였다.注+은 한 해의 시작이니, 누경婁敬관중關中을 도읍으로 삼을 것을 맨 처음 건의하였기 때문에 봉춘군奉春君이라고 칭한 것이다.
胡氏曰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高帝起兵八年 歲無寧居라가 至是하여 天下平定하니 當亦少思安逸之時也어늘
고제高帝가 군사를 일으킨 8년 동안 편안히 지낸 해가 없다가 이때에 이르러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의당 편안하기를 조금 생각해야 할 때였다.
而敏於用言하여 不自遑暇 如此하니 其成帝業 宜哉로다
그런데 남의 말을 따르는 데에 민첩해서 스스로 편안하게 있지 않은 것이 이와 같았으니, 제업帝業을 이룬 것이 마땅하다.
光武下隴하고 歸才六日 潁川盜起어늘 而往征之하니 可謂能繩祖武矣로다
광무제光武帝을 함락하고 돌아온 지 겨우 6일 만에 영천潁川에서 도둑 떼가 일어나자 직접 가서 정벌하였으니, 광무제光武帝선조先祖(고제高帝)의 자취를 잘 계승했다고 이를 만하다.”
張良 注+辟, 必益切, 除也.하다
[綱] 장량張良이 병을 핑계 대고 물러가 있으면서 곡식을 먹지 않았다.注+필익必益이니, 배제排除한다는 뜻이다.
素多病이러니 入關 卽杜門道引하고 不食穀하고注+道, 讀曰導. 道引, 導氣令其和, 引體令其柔. 華陀傳曰 “古僊人導引之事, 熊經鴟顧, 引接要體, 動諸關節, 以求難.” 家世相韓이라가 及韓滅 不愛萬金之資하여 爲韓報讐彊秦하니 天下振動이러니
[目] 장량張良은 평소 병이 많았는데, 관중關中에 들어와서는 즉시 문을 닫고 도인導引하며 곡식을 먹지 않고 말하기를注+로 읽으니, 도인道引은 기운을 운행하여 조화롭게 하고 몸을 당겨 유연하게 하는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화타전華陀傳〉에 말하기를 “옛날 신선들이 도인導引하는 것은 곰이 나뭇가지를 잡고 매달려 있고 올빼미가 몸은 움직이지 않고 머리를 돌리는 것처럼 하여, 허리와 몸을 끌어당기고 관절關節을 움직여서 장수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하였다. “집안이 대대로 나라의 정승을 지냈는데, 천하가 진동하였다.
今以三寸舌 爲帝者師하여 封萬戶侯하니 布衣之極이니
이제 세 치의 혀로 황제의 스승이 되어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졌으니, 이는 포의布衣(평민)로서는 최고의 지위이다.
於良 足矣 願棄人間事하고 欲從赤松子遊耳注+赤松子, 仙人號也, 神農時, 爲雨師.라하니라
나에게는 충분하니, 인간人間의 일을 버리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놀고자 한다.”注+적송자赤松子는 신선의 이름이니, 신농씨神農氏 때에 우사雨師가 되었다. 하였다.
司馬公曰
[目]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夫生之有死 譬猶夜旦之必然이니 自古及今 固未嘗有超然而獨存者也
가 있음은 비유하면 밤과 아침이 반드시 있는 것과 같으니, 예로부터 지금까지 진실로 이것을 벗어나 홀로 생존한 자는 있지 않았다.
以子房之明辨達理 足以知神僊之爲虛僞矣리라
자방子房(장량張良)과 같이 밝게 분변하고 이치를 통달한 자는 신선술이 허망하고 거짓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이나 其欲從赤松子遊者 其智 可知也
그런데도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노닐겠다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그의 지혜로움을 알 수 있다.
夫功名之際 人臣之所難處
대저 공명功名을 이룬 바로 그때는 신하가 처하기 어려운 법이다.
淮陰誅夷 蕭何繫獄 非以履盛滿而不止邪
회음후淮陰侯(한신韓信)는 죽임을 당하였고 소하蕭何는 옥에 갇혔으니, 이는 성하고 가득 참을 누리고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子房 托於神僊하여 遺棄外物하니 所謂明哲保身者與인저
그러므로 자방이 신선神仙에 의탁해서 인간人間의 일을 버렸으니, 이른바 명철明哲하여 몸을 보존한 자라고 칭할 수 있다.”
楊氏曰
[目] 양씨楊氏(양시楊時)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子房之志 爲韓報仇而已 其事高祖 非本心也
자방子房의 마음은 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갚으려는 것일 뿐이었으니, 그가 고조高祖를 섬긴 것은 본심이 아니었다.
蓋自博浪之謀不遂 其心 固未嘗一日而忘秦也
그가 박랑사博浪沙에서 〈 시황始皇을 저격하려고〉 계획한 모의가 성공하지 못한 뒤로 그의 마음속에 참으로 하루도 나라를 잊은 적이 없었다.
以爲奮匹夫之勇하여 以僥倖於一旦 不若陰求天下之豪傑而徐圖之러니 及得沛公하여 而知其足以濟吾事也하고
그가 ‘필부의 용맹을 떨쳐 하루아침에 갑자기 요행을 바란 것은 천하의 호걸들을 은밀하게 구하여 서서히 도모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패공沛公을 만나게 되어서는 그가 자신의 일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於是 委身從之하여 敎以滅秦之計하고 及事之濟하여는 則去漢歸韓호대 而但敎以燒絶棧道하고 至於定三秦 討項氏之策하여는 則無一言及之하니 豈其智之不及哉리오
이에 패공에게 몸을 맡겨 나라를 멸망시킬 계책을 가르쳐주었고, 이 일이 이루어지자 나라를 버리고 나라로 돌아오면서 다만 잔도棧道를 불태워 끊어버리라고 가르쳐주었을 뿐, 삼진三秦을 평정하고 항씨項氏를 토벌할 계책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어찌 그의 지혜가 미치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는가.
其心 固將輔韓成하여 以馳騁於中原이요 而不欲漢王之東也러니
그의 마음은 진실로 장차 을 보좌해서 중원中原을 치달리려고 하였지, 한왕漢王이 동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及成爲項羽所殺하여는 則韓之子孫 無若成之賢者하여 而子房之志 無所復伸矣
그런데 한성이 항우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서는 나라 자손 중에 한성처럼 뛰어난 자가 없어서 자방의 뜻을 더 이상 펼 수가 없게 되었다.
이나 羽之讐 不可以不報 而欲報羽인댄 則非漢이면 又不足資以成功也
그러나 항우에 대한 원수를 갚지 않을 수가 없었고, 항우에게 복수를 하려고 할 경우 나라가 아니면 도와서 성공할 만한 나라가 없었다.
於是 不得已復西하여 以再致吾復讐之志하여 使漢事得成하고 而吾責亦塞然後 自託於神僊之說하여 以遂其不欲仕漢之本心焉하니
이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서쪽()으로 가서 자신의 복수하려는 뜻을 다시 바쳐 나라로 하여금 일을 이루게 하고, 자신의 책임을 마친 뒤에는 스스로 신선의 설에 의탁해서 나라에 벼슬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본심本心을 이루었다.
此子房之智謀節義 所以遠過於人하여 而自漢至今千有餘年 未有能窺之者
이것은 자방子房지모智謀절의節義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서 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천여 년 동안 이런 사실을 엿본 자가 없었던 것이다.
惟子程子蓋嘗言之하시고 又以爲子房進退從容하여 有儒者之風하니 非高祖之能用子房이요 實子房能用高祖라하시니 其可謂知子房矣로다
오직 정자程子께서 일찍이 이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기를 ‘자방의 진퇴進退는 조용하고 여유로워 점잖은 유자儒者의 풍모가 있었으니, 고조가 능히 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실은 자방이 능히 고조를 이용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자방을 알았다고 이를 만하다.
抑高祖之任子房 蓋亦不足以盡子房之術云이라
아니면 고조가 자방을 부림에 있어 자방의 계책을 다 쓰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六月하다
[綱] 6월에 사면赦免하였다.
◑ 秋七月 燕王臧荼反이어늘虜擊之하고 立盧綰爲燕王하다
[綱] 가을 7월에 연왕燕王 장도臧荼가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공격하여 장도를 사로잡고 노관盧綰을 세워 연왕燕王으로 삼았다.
綰家與上同里閈이요 綰生 又與上同日이라 故特王之注+閈, 音汗, 里門曰閈.하니라
[目] 노관盧綰의 집이 과 같은 마을이었고, 노관盧綰의 생일이 또 의 생일과 같았기 때문에 특별히 왕으로 삼은 것이다.注+은 음이 이니, 마을에 있는 문을 이라고 한다.
趙王張耳 卒하다
[綱] 조왕趙王 장이張耳하였다.
子敖嗣하다
[目] 아들인 장오張敖왕위王位를 계승하였다.
敖尙帝長女魯元公主爲后注+尙者, 尊也, 帝王之女, 尊而尙之, 不敢言娶. 元, 諡也, 食邑於魯.하다
장오는 황제의 장녀長女노원공주魯元公主와 결혼하여 공주를 로 삼았다.注+은 높인다는 뜻이다. 제왕帝王의 딸을 높여서 감히 (장가들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시호諡號이다. 그녀는 나라 지역을 식읍食邑으로 삼았다.
利幾反이어늘 帝自將擊破之注+利幾, 姓名. 以陳令降, 上候之潁川. 上至洛陽, 普召通侯, 而幾自以羽將, 故恐懼而反也.하다
[綱] 예전에 나라 장수였던 이기利幾가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격파하였다.注+이기利幾성명姓名이다. 이기가 지방의 현령縣令으로 있다가 항복하자, 이 그를 영천潁川에서 맞이하였다. 낙양洛陽에 이르러 통후通侯(철후徹侯)를 모두 불렀는데, 이기는 자신이 항우項羽의 장수로 있었던 것 때문에 두려워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 後九月 治長樂宮注+後九月, 卽閏九月. 秦以十月爲歲首, 應置閏者, 摠置於歲末, 漢因之, 久而不革. 或曰 “此說未盡. 秦知置曆有閏, 何故皆以爲九月乎. 蓋司馬氏爲史記, 旣以秦正月稱十月, 遂以閏月爲後九月, 是司馬氏如此敍之, 非秦法也.” 長樂宮, 本秦之興樂宮, 周迴二十里, 在長安城東隅.하다
[綱] 9월에 장락궁長樂宮을 수리하였다.注+후구월後九月”은 바로 9월이다. 나라는 10월을 세수歲首로 삼아서 윤달을 두어야 할 경우에는 모두 그해 말에 두었는데, 나라는 이것을 따르고 오랫동안 고치지 않았다. 혹자는 말하기를, “이 설은 완전하지 못하다. 나라는 책력에 윤달을 둘 줄 알았으니, 무엇 때문에 윤
달을 모두 9월로 삼았겠는가. 이는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저술할 적에 나라의 정월正月을 10월이라고 일컬었다 하여, 마침내 윤달을 후구월後九月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사마천이 이렇게 서술한 것이지 나라의 법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였다. 장락궁長樂宮은 본래 나라의 흥악궁興樂宮인데, 둘레가 20리이고 장안長安 의 동쪽 귀퉁이에 있다.
역주
역주1 冬十月……迎黥布皆會 : “王을 ‘漢’이라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漢나라를 기록한 篇이기 때문이다. 周殷을 어찌하여 ‘誘’라 썼는가? 功을 劉賈에게 돌린 것이다. 項籍을 어찌하여 ‘誅’라 쓰지 않았는가? 앞서 〈漢王 2년(B.C. 205)조에〉 ‘項籍을 토벌한다.’고 썼으면 項籍이 역적이 된 것을 충분히 밝힌 것이니, 굳이 ‘誅’를 쓰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王不書漢 何 漢篇也 周殷曷爲書誘 歸功賈也 項籍何以不書誅 前書討項籍 則足以明其爲賊矣 不必書誅可也]” 《書法》
역주2 : “固陵에서 추격할 때 항적은 이미 군대가 피로하고 양식이 다하였는데도 오히려 漢나라의 군대를 대파하였으니, 그렇다면 劉邦은 項羽의 적수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세 장수가 군대를 모아 끝내 항우를 격파하였으니, 漢나라가 인재를 잘 쓰고 항적이 자기 멋대로 한 것의 차이가 어찌 10배나 100배뿐이겠는가. 韓信, 彭越, 英布가 병력을 회합하여 싸운 사실을 자세히 쓴 것은 漢나라가 항적을 사로잡을 적에 끝내 세 사람의 힘을 의뢰했음을 나타낸 것이다. 항적은 군주를 弑逆한 죄를 지고 있는데도 주벌하여 바로잡지 못한 것은 漢나라가 본래 천하를 다투는 데 뜻을 두었고, 역적을 토벌하는 데 순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資治通鑑綱目》에서도 漢나라를 순수하게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固陵之追 籍已兵疲食盡 猶能大破漢軍 則劉非項敵明矣 然未幾 三將會兵 卒能破羽 則漢之用人 與籍之自用 其相去何翅什百 詳書信越英布會兵之實 所以見漢之擒籍 卒賴三人之力 若夫籍負弑逆之罪 而不正其誅者 漢本志於爭天下而非純於討賊 故綱目亦不得而純予之也]” 《發明》
書法은 ‘筆法’이란 말과 같다. 朱子는 《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할 적에 孔子의 《春秋》 筆法을 따라 綱과 目으로 나누었는바, 綱은 《春秋》의 經文을, 目은 《春秋左氏傳》 傳文을 따랐다. 《資治通鑑綱目》의 筆法을 밝힌 것으로는 劉友益(宋)의 《綱目書法》, 尹起莘(宋)의 《綱目發明》이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책은 현재 淸나라 聖祖(康熙帝)가 엮은 《御批資治通鑑綱目》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이 筆法은 綱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는데, 우리나라 學者들이 특별히 이 《자치통감강목》을 愛讀한 이유는 바로 이 筆法에 있었다. 《御批資治通鑑綱目》에는 이외에도 汪克寬(元)의 《綱目凡例考異》 등 많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나, 본서에서 다 소개하지 못하고 《강목서법》과 《강목발명》만을 소개하되, 《강목서법》은 중요한 것만을 발췌하였고, 《강목발명》은 전체를 수록하였다. 또한 陳濟(明)의 《資治通鑑綱目集覽正誤》을 인용하여 오류를 바로잡기도 하였다. 본고에서는 각각 《書法》, 《發明》, 《正誤》로 요약하여 표기하였다.
역주3 劉昭志 : 여기서는 《後漢書》 〈郡國志〉를 가리킨다. 《후한서》는 南朝 宋나라 范曄에 의해 편찬되었다. 그러나 범엽이 彭城王 劉義康의 반란에 참여했다가 처형되면서 《후한서》의 〈志〉 부분을 완성하지 못하였다. 梁나라 劉昭는 東晉 司馬彪가 편찬한 《續漢書》에서 여덟 개 〈志〉 부분에 註釋을 붙여 30권의 《補注後漢志》를 편찬하였고 이것이 나중에 《후한서》로 편입되었다.
역주4 : 反切音을 표시한 것이다. ‘反’은 뒤집는다(되치다)는 뜻으로 번역을 의미하고, ‘切’은 자른다는 의미이다. 앞 글자의 初聲을 따고 뒷글자의 中聲과 終聲을 따서 읽는다.
역주5 如字 : 한 글자에 여러 독음이 있는 경우 본음대로 읽으라는 것이다. 王의 경우 한글음은 같으나 여기서는 平聲, 去聲, 上聲의 경우를 가리킨 것이다.
역주6 史記正義 : 唐나라 때 張守節이 편찬한 《史記》 주석서로 모두 30권이다.
역주7 吳나라……읊음 : 고향을 생각하고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부르는 슬픈 노래를 말한다. “越吟”은 전국시대 越나라 사람 莊舃(장석)이 楚나라에서 벼슬하여 높은 관직에 올라 부귀를 누렸으나 고국을 잊지 못하여 병중에 越나라의 노래를 불러 고향을 그리는 정을 표한 데서 나온 말이다. 《史記 張儀列傳》
역주8 皇覽 : 魏나라 文帝 曹丕의 勅令으로 편찬된 최초의 類書이다. 1천여 편 40여 부로 구성되었으나 후대 산일되어 일부만 전해진다.
역주9 項羽가……아니겠는가 : 《史記》 〈項羽本紀〉에 보인다.
역주10 漢나라는……하였겠는가 : 《揚子法言》 〈重黎〉에 보인다.
역주11 馳入齊王信壁 奪其軍 : “앞서는 〈《資治通鑑綱目》 제2권 하 漢王 3년조에〉 ‘韓信의 군대를 빼앗았다.[奪韓信軍]’고 썼고, 여기에서 다시 ‘한신의 진영으로 달려 들어가서 그의 군대를 빼앗았다.[馳入壁 奪其軍]’고 썼으니, 그렇다면 高帝가 술수에 따라 행동함을 면치 못한 것이다. 이것이 한신이 신하의 절개를 끝까지 지키지 않은 이유이므로 《資治通鑑綱目》에서는 이를 자세히 썼으니, 여기서는 ‘달려 들어갔다[馳入]’고 칭한 것이다.[前書奪韓信軍矣 於是復書馳入壁 奪其軍 帝則未免任術矣 此信之所以不終臣節也 故綱目備書之 而此稱馳入]” 《書法》
역주12 共敖 : 項羽가 秦나라를 평정할 때 共敖는 南郡을 공격하여 많은 공을 세워 臨江王에 봉해졌다. 이후 항우의 명으로 吳芮, 黥布 등과 함께 楚나라 義帝를 시해하였다.
역주13 更立齊王信爲楚王 : “漢王이 項籍을 사로잡자 곧바로 韓信의 군대를 빼앗았다. 그러므로 《資治通鑑綱目》에서는 ‘齊王 한신의 진영으로 달려 들어갔다.’라고 써서 한신을 제압함에 이와 같이 급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한신은 군대를 잘 통솔하기로 이름났는데도 한왕이 두 번이나 그의 군대를 빼앗기를 마치 어린아이의 물건을 취하듯이 하였으니, 그렇다면 한신의 군대 또한 통제가 잘된 군대라고 할 수 없고, 장수를 통솔하는 한왕의 능력에는 더욱 미칠 수가 없는 것이다. 한신의 군대를 이미 빼앗고 또다시 바꾸어 봉하였으나 한신이 조금도 불평하는 뜻이 없었으니, 그렇다면 후일에 한신을 의심하여 사로잡은 것은 진실로 한왕의 잘못이다. 일을 나열하여 비교해 자세히 관찰하면 이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漢王方擒項籍 卽奪韓信軍 故綱目書馳入齊王信壁 以見其急於制信如此 然信號爲善兵 而漢王兩奪其軍 如取嬰兒之物 則信亦未得爲節制之師 而漢王將將之能 尤不可及矣 若夫信軍旣奪 又復改封 略無一毫不平之意 則他日疑而虜之 是固漢王之過也 比事詳觀 則得之矣]” 《發明》
역주14 韓信이……하였다 : 이 두 가지 일은 《資治通鑑綱目》 제2권 하 楚 義帝 원년조에 보인다.
역주15 卽皇帝位 : “천하를 얻었다는 말이 세 가지가 있으니, ‘황제의 지위에 나아갔다.[卽皇帝位]’는 것은 바른 것이요, ‘황제라고 칭하였다.[稱皇帝]’는 것은 자칭했을 뿐이요, ‘서서 황제가 되었다.[立爲皇帝]’는 것은 서서는 안 되는 자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황제의 지위에 나아갔다’고 쓴 것이 4번이니, 高帝와 光武帝, 昭烈帝와 晉 元帝이다. 宋나라(南朝 劉裕의 宋) 이후로 천하를 얻은 자는 ‘황제라고 칭했다.’라고 썼을 뿐이다. ‘서서 황제가 되었다.’라고 쓴 것이 모두 5번이니, 이들은 모두 서서는 안 되는 자들이다.[得天下之辭有三 卽皇帝位 正也 稱皇帝 自稱而已矣 立爲皇帝 不宜立者也 終綱目 書卽皇帝位者四 高帝也 光武也 昭烈也 晉元帝也 自宋以下 得天下者 書稱皇帝而已 書立爲帝爲皇帝凡五 皆不宜立而立者也]” 《書法》
“三代 이후로 오직 漢나라가 천하를 正道로써 얻었으니, 무도한 秦나라를 주벌한 것이 첫 번째 이유요, 項籍의 죄를 토벌한 것이 두 번째 이유요, 천하가 평정된 뒤에 비로소 尊位에 오른 것이 세 번째 이유이다. 후세에 겨우 조그만 한 지역의 땅을 얻고는 망령되이 스스로 높이고 큰 체한 자가 있으니, 漢나라와 견주어보면 다소 부끄러울 것이다.[自三代而下 惟漢得天下以正 誅無道秦一也 討項籍罪二也 天下已定 始卽尊位三也 後世有僅得蕞爾之地 而妄自尊大者 視此 可以少愧矣]” 《發明》
역주16 張晏 : 자가 子傳이며 삼국시대 魏나라 中山 사람이다. 저서에 《西漢書音釋》 40권이 있다.
역주17 예전에……삼았다 : 吳芮는 원래 鄱陽(파양)의 현령으로 이 일대에서 인심을 얻어 鄱君(파군)이라 불렸다. 나중에 百粤을 이끌고 項羽를 따라 함곡관에 들어간 功으로 衡山王에 봉해졌다. 《資治通鑑綱目 제2권 중 秦 二世皇帝 2년조‧제2권 하 楚 義帝 원년조》 粤王 無諸는 대대로 粤나라의 제사를 받들었는데 秦나라가 그 땅을 빼앗았다. 秦나라 말기에 군대를 거느리고 秦나라를 공격하였으나, 항우가 그를 폐하였다. 《資治通鑑 漢 高帝 5년조》
역주18 七閩 : 福建과 浙江의 남쪽 지방에 사는 閩族인데, 일곱 종족으로 나누어졌기 때문에 七閩이라고 부른 것이다.
역주19 兵罷歸家 : “高帝(漢 高祖)가 천하를 얻었을 적에 군대를 파하여 집으로 돌려보낸 일을 썼고, 光武帝가 中興했을 적에 郡國의 車騎와 材官을 파하여 백성의 대오로 돌아가게 한 일을 썼으니, 그 宏大한 기상이 어떠한가. 秦나라가 병기를 녹여 없앤 일과 隋나라가 병장기를 훼손한 일을 쓴 것과는 크게 다르다.[高帝之得天下也 書兵罷歸家 光武之中興也 書罷郡國車騎材官 還復民伍 其廣大氣象何如哉 與書銷兵器毁兵仗者 大不侔矣]” 《書法》
역주20 七大夫 : 《漢書》의 註에 臣瓚이 말하였다. “秦나라 제도는 列侯에 봉해져야 食邑을 얻을 수 있었는데, 지금 七大夫 이상은 모두 식읍을 갖게 하였으니, 이는 우대한 것이다.[秦制 列侯乃得食邑 今七大夫以上皆食邑 所以寵之也]” 顔師古가 말하였다. “七大夫는 公大夫이니, 작위가 일곱 번째이므로 七大夫라 한 것이다.[七大夫 公大夫也 爵第七 故謂之公大夫]” 軍功의 多寡로 운영된 秦나라의 20等爵制는 漢代에 들어서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하는 民爵制로 성격이 변화하였다. 이를 통해 향촌 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한편 이제는 백성들이 봉건귀족에게 귀속된 것이 아닌 백성들이 황제의 지배에 직접 속하게 되었음을 보이게 하였다. 20등작은 ① 公士 ② 上造 ③ 簪裊 ④ 不更 ⑤ 大夫 ⑥ 國大夫‧官大夫 ⑦ 七大夫‧公大夫 ⑧ 公乘 ⑨ 五大夫 ⑩ 左庶長 ⑪ 右庶長 ⑫ 左更 ⑬ 中更 ⑭ 右更 ⑮ 少上造 ⑯ 大良造‧大上造 ⑰ 駟車庶長 ⑱ 大庶長 ⑲ 關內侯 ⑳ 徹侯‧通侯‧列侯인데, 열후가 가장 높고 공사가 가장 낮다. 백성에게 작위를 내린 것은 1급인 공사에서 8급인 공승까지로 보인다.
역주21 徹侯 : 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軍功에 따른 20등급의 작위로 그중 가장 높은 것이 徹侯였다. 漢나라는 그대로 따랐는데, 王子가 봉해져 王이나 侯가 된 경우는 諸侯라 이르고, 성씨가 다른 여러 신하가 공을 세워 봉해진 경우는 列侯 또는 徹侯라 하였다. 뒷날 武帝(劉徹)의 諱를 피하여 通侯라고 하였다.
역주22 張良이……따위이다 : 《資治通鑑綱目》 제2권 하 漢王 3년 12월조에 보인다.
역주23 다른……했는데 : 酈商의 형은 바로 劉邦의 유세객인 酈食其(역이기)이다. 역이기가 전횡을 설득시켜 漢나라에 항복시켰는데, 韓信이 그 소식을 듣고도 군대를 거느리고 齊나라를 공격하자, 전횡이 역이기를 죽였다. 《資治通鑑綱目 제2권 하 漢王 3년 4년조》
역주24 [我] : 저본에는 없으나, 《史記》와 아래 訓義 ⑤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5 郞中 : 戰國시대 처음 출현했고, 秦漢시대에는 궁궐의 문과 車騎 등의 일을 관장하였으며 안으로는 시위에 충당되고 밖으로는 전쟁에 從軍하여 황제의 시종관의 통칭이 되었다. 후대 內朝가 강화되면서 요직으로 부상하였다.
역주26 賜姓劉氏 : “‘姓을 하사했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비난한 것이니, 처음으로 宗屬(宗親의 계통)을 어지럽힌 것이다. 姓을 하사하였다고 쓴 것이 이때 시작되어 이로부터 唐나라에 이르러서는 姓을 하사하고 이름을 하사한 것이 너무 많아 다 쓸 수가 없다.[書賜姓 何 譏也 始亂宗屬矣 書賜姓始此 自是至唐 賜姓賜名 不可勝書矣]” 《書法》
역주27 謝病辟穀 : “‘병을 핑계대고 물러갔다.’고 쓴 것이 있는데, ‘辟穀했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惠帝 6년(B.C. 189)에 張良이 卒한 것을 쓴 張本이 되었다. 여기에서는 ‘辟穀’이라 썼고 뒤에서는 ‘卒’이라 썼으니, 《資治通鑑綱目》의 뜻이 은미하다.[書謝病 有之矣 書辟穀 何 爲惠六年書卒張本也 此書辟穀 後書卒 綱目之意微矣]” 《書法》
역주28 韓나라가……하자 : 《資治通鑑》의 註에 이 사건이 秦 始皇 29년(B.C. 218)조에 보인다고 하였는데, 博浪沙에서 장량이 力士를 시켜 진 시황의 수레를 저격한 일을 가리킨다.
역주29 (者)[老] : 저본에는 ‘者’로 되어 있으나, 《後漢書》 〈華陀傳〉에 근거하여 ‘老’로 바로잡았다.
역주30 韓成 : 韓나라의 후손이다. 項梁이 楚나라의 후손 熊心을 세워 楚 懷王으로 삼자, 장량이 항량을 설득하여 韓成을 韓王으로 삼게 하고 자기는 司徒가 되어 韓나라 지역을 공략하였다. 이후 장량이 劉邦을 따라 관중에 들어갔는데, 홍문의 연회 이후 項羽가 彭城으로 돌아가면서 장량이 유방을 따른다는 이유로 한성을 끌고 갔다가 팽성에서 죽였다. 《史記 留侯世家》
역주31 自將 : “황제가 군대를 일으킨 뒤로 몸소 군대의 사이에 있은 지가 오래되었으나, ‘직접 군대를 거느렸다.[自將]’고 쓰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직접 군대를 거느렸다.’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이미 황제의 지위에 올랐기 때문이니, ‘직접 군대를 거느렸다.’고 쓴 것이 이때에 시작되었다.[帝自起兵 身親其間多矣 不書自將 此書自將 何 旣卽帝位也 書自將始此]” 《書法》
역주32 故楚將 : “무릇 ‘옛 장수[故將]’라고 쓴 것은 의리를 허여한 것인데, 여기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楚나라를 미워한 것이다.[凡書故將 予義也 此其書反 何 惡楚也]” 《書法》

자치통감강목(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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