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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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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亥年(B.C. 226)
秦二十一 楚二 燕二十九 魏二 齊三十九 代二年이라
冬十月 秦拔薊한대 燕王 走遼東하야 斬其太子丹하야 以獻於秦하다
◯ 秦李信 伐楚하다
秦王 問於李信曰 吾欲取荊하노니度用幾何人注+王父莊襄王諱楚, 故謂楚爲荊. 度, 大各切. 對曰 不過二十萬이니이다
問王翦한대 曰 非六十萬人이면 不可니이다
王曰 將軍 老矣로다
何怯也 乃使信及蒙恬으로 將二十萬人하야 伐楚어늘
翦謝病歸頻陽注+翦, 頻陽人也. 班志 “頻陽縣屬京兆.”하다


을해년(B.C. 226)
나라 왕 21년, 나라 왕 부추負芻 2년, 나라 왕 29년, 나라 왕 2년, 나라 왕 39년, 나라 왕 2년이다.
[綱] 겨울 10월에 나라가 를 함락하자, 나라 왕이 요동遼東으로 달아나 태자 을 베어 나라에 바쳤다.
[綱] 나라 이신李信나라를 정벌하였다.
[目] 나라 왕이 이신李信에게 묻기를 “내가 나라를 탈취하려고 하는데, 얼마나 되는 군사를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가?”注+왕의 부친 장양왕莊襄王의 휘가 였으므로 이라고 일컬었다. 대각大各이다. 하니, 이신이 대답하기를 “20만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왕전王翦에게 물으니, 왕전이 대답하기를 “60만 명이 아니면 불가합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장군이 늙었도다.
어찌 겁을 내는가?” 하고는 이신李信몽념蒙恬으로 하여금 20만 명을 이끌고 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왕전이 병을 핑계로 관직을 사양하고 빈양頻陽으로 돌아갔다.注+왕전王翦빈양頻陽 사람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빈양현頻陽縣경조京兆에 속한다.”고 하였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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