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綱] 한漢나라 세종世宗효무황제孝武皇帝천한天漢 원년이다.注+이때 수년 동안 자주 가뭄에 시달리니,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운한시雲漢詩에 선왕宣王이 한해旱害를 만나 덕德을 닦고 정사를 부지런히 힘써 비가 내리게 하였음을 찬미하였는데, 이를 따라 천한天漢을 연호年號로 삼아서 단비가 내리기를 기원한 것이다.
〈한漢나라 사신이〉 도착하여 선우에게 폐백을 주니, 선우가 더욱 교만하여 한漢나라에서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注+한漢나라에서는 흉노匈奴가 마음을 돌려 선善을 향할 것을 바랐는데, 지금 도리어 더욱 교만하였다. 그러므로 “한漢나라에서 바라던 바가 아니다.[비한소망非漢所望]”라고 한 것이다.
이때 마침 장수長水의 우상虞常 등이 모의하여 흉노에 항복한 한漢나라 사람인 위율衛律을 죽이고 선우의 어미인 연지閼氏를 겁박하여 한漢나라로 데려오려고 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이것을 선우에게 고자질하였다.注+《수경주水經注》에 “장수長水는 두현杜縣백록원白鹿原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패수霸水에 들어간다.” 하였다. 우상虞常 또한 먼저 흉노匈奴에게 패하여 전몰戰歿된 자이다. 이연년李延年이 위율衛律을 천거해서 흉노에 사신으로 가게 했었는데, 〈위율이〉 사행使行에서 돌아오다가 이연년의 집안이 죄를 지어 체포당했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망명하여 흉노에 항복하였다.
이때 위율이 정령왕丁靈王이 되어서 신분이 귀하고 선우의 총애를 받아 권력을 행사하였다.注+영靈은 혹 영令으로 쓰는데, 일본一本에는 영零으로 되어 있다.
에 “정령丁靈은 북적北狄의 종족 이름이니, 강거康居의 북쪽에 있는바, 흉노匈奴의 왕정王庭접습수接習水에서 7천 리 떨어져 있다.” 하였다.
目
[目] 선우單于가 위율衛律로 하여금 이들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우상虞常이 “소무蘇武의 부관副官인 장승張勝이 이 모의를 알고 있다.”고 끌어들이니,注+인引은 끌어들여 옥사獄辭가 미침을 이른다. 우상虞常은 한漢나라에 있을 적에 평소 장승張勝과 서로 잘 알고 지냈는데, 은밀히 장승에게 찾아가 이르기를 “들으니 ‘한漢나라 천자가 위율衛律을 몹시 원망한다.’ 하니, 내가 한漢나라를 위해서 노수弩手를 매복시켰다가 위율을 쏘아 죽이겠다.” 하니, 장승이 이를 허락하였다. 선우가 노하여 한漢나라의 사자使者장승張勝을 죽이고자 하였다.
좌이질자左伊秩訾가 말하기를注+자訾는 자이子移의 절切이다. 좌이질자左伊秩訾는 오랑캐 왕의 칭호이다. “바로 선우를 도모하였으니, 무슨 죄가 이보다 더 클 수 있겠는가.
모두 강제로 항복시켜야 한다.”注+“하이복가何以復加”는 위율衛律을 도모하여 죽이려 하였으니, 그 벌이 매우 무거움을 말한 것이다. 하고는, 소무를 불러 답변하는 말(조사)을 받게 하였다.
소무는 가리假吏인 상혜常惠 등에게 이르기를注+“수사受辭”는 선우單于의 명을 전달하여 그의 대답하는 말을 받는 것이다. “가리假吏”는 겸리兼吏라는 말과 같으니, 이때 상혜常惠 등이 임시로 사신의 관리가 된 것이다. “절개를 굽히고 황명皇命을 욕되게 한다면 비록 살아남은들 무슨 면목으로 한漢나라에 돌아가겠는가.” 하고는, 차고 있던 장도를 끌어다가 스스로 찌르니, 위율은 놀라 직접 소무를 안고서 만류하였다.
소무가 기절한 지 반나절 만에 다시 깨어나니,注+식息은 숨을 내쉼을 이른다. 선우는 그의 충절을 장하게 여겨 아침저녁으로 사람을 보내 소무의 안부를 묻고 장승을 구금하였다.
目
[目] 소무蘇武는 상처가 많이 치유되었는데, 마침 우상虞常을 논죄하여 칼로 우상을 참수斬首한 후였다.注+회會는 마침 만남이니, 마침 우상虞常을 논죄하여 죽인 때를 만난 것이다.
위율衛律이 말하기를 “한漢나라 사신 장승張勝이 선우單于의 가까운 신하를 죽이려고 모의하였으니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나, 항복하면 죄를 용서하겠다.” 하고는, 검劍을 들어 치려 하자, 장승은 항복을 청하였다.注+“근신近臣(가까운 신하)”은 위율衛律이 자기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위율이 소무에게 이르기를 “부관副官(장승張勝)이 죄가 있으니, 마땅히 서로 연좌되어야 할 것이다.” 하니, 소무가 말하기를 “나는 본래 이것을 모의한 적이 없고, 또 장승은 나의 친속이 아니니, 어찌 서로 연좌시킨다고 말하는가.” 하였다.
위율이 다시 검을 들어 소무를 치려고 하였으나, 소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目
[目] 위율衛律은 소무蘇武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소군蘇君아!
내가 예전에 한漢나라를 저버리고 흉노匈奴에 귀순하였는데, 다행히 큰 은혜를 입어서 높은 칭호를 하사받아 왕王이라 불리고 수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였으며, 말과 가축이 산에 가득하여 부귀함이 이와 같으니,注+축畜(가축)은 허우許又의 절切이다. 미彌는 가득함이다. 소군이 오늘 항복하면 내일 다시 나와 같게 될 것이다.
공연히 몸을 죽여서 초야를 기름지게 하면 누가 다시 알아주겠는가.”注+고膏(기름지다)는 고호古號의 절切이다.
소무가 응하지 않자, 위율이 위협하기를 “그대가 나를 통하여 항복하면 내 그대와 형제가 될 수 있지만, 지금 나의 계책을 따르지 않으면 뒤에 비록 다시 나를 만나보고자 하나 될 수 있겠는가.” 하였다.
目
[目] 소무蘇武는 위율衛律을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네가 신하가 되어서 은혜와 의리를 돌아보지 않고 군주와 어버이를 배반하여 오랑캐에게 항복한 포로가 되었으니, 내 무엇하러 너를 만나본단 말인가.注+〈“하이여위견何以汝爲見”은〉 어찌 너를 만나볼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또 선우單于가 너를 신임하여 너로 하여금 사람의 생사生死를 결단하게 하였는데, 공평한 마음으로 바름을 지키지 않고, 도리어 두 나라 군주를 싸우게 하여 화패禍敗를 보고자 한단 말인가.
남월南越이 한漢나라의 사자를 죽였다가 도륙을 당하여 한漢나라의 9개 군郡이 되었고, 대완大宛의 왕王이 한漢나라의 사자를 죽였다가 머리가 북쪽 대궐에 매달렸고, 조선朝鮮이 한漢나라의 사자를 죽였다가 즉시 주륙誅戮을 당하여 멸망하였다.
너는 내가 항복하지 않을 줄을 분명히 알면서注+약若은 너이니, 너는 내가 기꺼이 항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안다고 말한 것이다. 두 나라로 하여금 서로 공격하게 하고자 하니, 흉노匈奴의 화禍가 나를 죽임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目
[目] 위율衛律이 선우單于에게 이러한 사실을 아뢰자, 선우는 더욱 소무蘇武를 항복시키고자 하여 마침내 소무를 큰 지하 창고에 유치幽置하고 일절 음식물을 먹이지 않았다.注+교窖는 공효工孝의 절切로 지하에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니, 예전에 쌀과 곡식을 보관해두던 지하 창고의 빈 곳을 이른다. 음飮(마시게 하다)은 어금於禁의 절切이다. 식食(먹이다)는 사飤로 읽는다.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리자, 소무는 눈을 씹어 방석의 털과 함께 삼켜서 며칠 동안 죽지 않으니,注+전旃(모전)은 전氈과 같다. 연咽은 음이 연宴이니, 삼킨다는 뜻이다.흉노匈奴 사람들은 신神이라고 여겨 소무를 북해北海 가의 사람이 없는 곳에 옮겨서 숫양을 기르게 하였다.
그리고는 “숫양이 새끼를 낳아야 비로소 돌아갈 수 있다.” 하고, 소무의 관속官屬들을 구별하여 각각 다른 곳에 가둬두었다.注+북해北海는 바로 상해上海이니, 흉노匈奴 가운데의 땅이다. 저羝는 정해丁奚의 절切이니, 숫양이다. 유乳(기르다)는 거성去聲이니, 생육生育함이다. 숫양은 새끼를 낳을 수 없는데, 새끼를 낳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반드시 돌아갈 날이 없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綱
[綱] 흰 털이 비처럼 내렸다.注+리氂는 역지力之의 절切이니 털 중에 강하고 굽은 것(곱슬)이다.
綱
[綱] 여름에 크게 가물자, 사면赦免하였다.
綱
[綱] 적수謫戍(수자리 사는 죄인)를 징발하여 오원五原에 주둔시켰다.
역주
역주1遣中郞將蘇武 使匈奴 :
“이때에 匈奴가 蘇武를 억류하였는데, ‘억류하였다.’라고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張勝을 蘇武와 연관시키지 않으려 하였으므로 쓰지 않은 것이다. 뒤에 ‘蘇武가 匈奴로부터 돌아왔다.’고 썼으니, 억류당했음이 분명하다.[於是匈奴留武 不書留之 何 不以張勝累武也 故不書 後書還自匈奴 則被留明矣]” 《書法》
역주2單于의……하였는데 :
閼氏는 單于의 夫人으로 高祖 9년(B.C. 198)에 家人의 자식을 취하여 長公主라 이름해서 冒頓單于에게 시집보냈었는데, 그녀가 아들을 낳아 單于가 되었으므로 ‘單于의 어미’라고 한 것이다. 그녀는 漢나라 사람이었으므로 이때 그녀를 귀환시키려 한 것이다.
역주3魏略 :
西晉 시기 魚豢(어환)이 지은 책으로 원본은 산실되었으나, 그 일문이 《三國志》 裵松之의 註 등에 인용되어 있다.
역주4(飮)[飤] :
저본에는 ‘飮’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飤’로 바로잡았다.
역주5雨白氂 :
“〈惠帝 4년에〉 일찍이 ‘핏빛의 비가 내렸다.’고 썼었는데 여기에 ‘흰 털이 비처럼 내렸다.’고 썼으니, 큰 이변이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한 번뿐이다.[嘗書雨血矣 於是書雨氂 大異也 終綱目一而已]” 《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