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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0)

자치통감강목(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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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3권 하
漢 獻帝 建安 8년(203)~漢 獻帝 建安 13년(208)
癸未年(203)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3권 하
한 헌제漢 獻帝 건안建安 8년(203)~한 헌제漢 獻帝 건안建安 13년(208)
계미년癸未年(203)
八年이라 春二月 曹操攻黎陽하니 譚, 尙 敗走러니 夏四月 操追至鄴而還하다 攻尙이러니 不克하다
나라 효헌황제 건안孝獻皇帝 建安 8년이다. 봄 2월에 조조曹操여양黎陽을 공격하니 원담袁譚원상袁尙패주敗走하였다. 여름 4월에 조조가 추격하여 업현鄴縣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원담이 원상을 공격하였는데 이기지 못하였다.
曹操攻黎陽하니 譚, 尙 敗走還鄴하다 操追至鄴하니 諸將 欲遂攻之어늘 郭嘉曰
조조曹操여양黎陽을 공격하니, 원담袁譚원상袁尙이 패주하여 업현鄴縣으로 돌아갔다. 조조가 추격하여 업현에 이르자, 여러 장수들이 마침내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곽가郭嘉는 다음과 같이 반대하였다.
袁紹愛此二子하여 莫適立也注+適, 主也.러니 今權力相侔하고 各有黨與注+謂辛評ㆍ郭圖等附譚, 審配等附尙也.하니 急之則相保 緩之則爭心生하리이다
원소袁紹가 이들 두 아들을 모두 사랑해서 둘 중 한 사람을 주장하여 후계자를 세우지 못하였습니다.注+은 주장함이다. 그런데 이제 이들 둘은 권력이 서로 비슷하고 각각 당여黨與가 있으니注+〈“각유당여各有黨與”는〉 신평辛評곽도郭圖 등은 원담袁譚에게 붙고, 심배審配 등은 원상袁尙에게 붙음을 이른다., 우리가 급히 공격하면 서로 보호할 것이고 우리가 느슨히 하면 서로 다투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不如南向荆州하여 以待其變이니 變成而後擊之 可一擧定也리이다 操曰 善하다하고 留賈信하여 守黎陽而還하다
우리가 남쪽으로 형주荆州를 향하고서 그들에게 변고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니, 변고가 생긴 뒤에 공격하면 일거一擧에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가 “좋다.” 하고 가신賈信을 남겨 여양黎陽을 지키게 하고 돌아갔다.
謂尙曰 今曹軍退 人懷歸志 及其未濟하여 出兵掩之 可令大潰 此策 不可失也니라
원담이 원상에게 이르기를 “지금 조조의 군대가 후퇴함에 장병들이 돌아갈 마음을 품고 있다. 그들이 아직 강을 건너가지 않았을 때에 군대를 출동시켜 습격하면 크게 궤멸시킬 수 있으니, 이 계책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하였다.
疑之어늘 大怒攻尙이러니하여 引兵還南皮注+南皮縣, 屬勃海郡.하다
원상이 이를 의심하자, 원담이 크게 노하여 원상을 공격하였다. 원담이 패하여 군대를 이끌고 남피南皮로 돌아갔다.注+남피현南皮縣발해군勃海郡에 속하였다.
譚别駕王脩 自靑州來救注+漢靑州刺史治臨淄.어늘 欲更還攻尙이러니 脩曰 兄弟者 左右手也
원담袁譚별가别駕왕수王脩청주靑州에서 와서 원담을 구원하자注+나라 청주자사靑州刺史임치臨淄치소治所로 삼았다., 원담이 다시 돌아가 원상袁尙을 공격하고자 하니, 왕수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형제는 마치 왼손, 오른손과 같습니다.
今與人鬪而斷其右手하고 曰我必勝이라하면 其可乎 夫棄兄弟而不親이면 天下其誰親之리오
지금 남과 싸우면서 자신의 오른손을 자르고는 ‘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형제를 버려두고 친애하지 않는다면, 천하에 그 누가 그를 친애하겠습니까.
彼讒人 離間骨肉하여 以求一朝之利하니 願塞耳勿聽也하라
저 참소하는 사람들이 골육骨肉의 사이를 이간질하여 하루아침의 이익을 바라니, 원컨대 귀를 막고 듣지 마십시오.
若斬佞臣數人하고 復相親睦하여 以御四方이면 可横行於天下니라 不從하다
만약 간신 몇 사람을 참수하고 형제간에 다시 서로 친목親睦하여 사방을 다스리면 천하에 횡행橫行할 수 있습니다.” 원담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秋八月 操擊劉表러니 圍譚於平原이어늘 冬十月 操還救却之하다
】 가을 8월에 조조曹操유표劉表를 공격하였는데 원상袁尙평원平原에서 원담袁譚을 포위하였다. 겨울 10월에 조조가 돌아와 원담을 구원하고서 원상의 군대를 물리쳤다.
操擊劉表하여 軍於西平注+西平縣, 屬汝南郡.이러니 袁尙 攻袁譚하여 大破之하니
조조曹操유표劉表를 공격하고서 서평현西平縣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었는데注+서평현西平縣여남군汝南郡에 속하였다., 원상袁尙원담袁譚을 공격하여 대파大破하였다.
犇平原이어늘 圍之急이라 遣辛評弟毗하여 詣曹操請救注+毗, 音脾.하다
원담이 평원平原으로 도망하자, 원상이 원담을 포위하여 맹렬히 공격하였다. 원담이 신평辛評의 아우 신비辛毗를 조조에게 보내서 구원을 청하였다.注+이다.
劉表以書諫譚曰 君子違難 不適讐國注+左傳, 公山不狃之言.이요 交絶 不出惡聲注+史記, 樂毅之言.이어든
유표가 원담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注+〈“군자위난 부적수국君子違難 不適讐國”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애공哀公 8년〉에 있는 공산불뉴公山不狃의 말이다. 注+〈“교절 불출악성交絶 不出惡聲”은〉 ≪사기史記≫ 〈악의열전樂毅列傳〉에 있는 악의樂毅의 말이다.,
況忘先人之讐하고 棄親戚之好하여 而爲萬世之戒하고 遺同盟之恥哉注+遺, 于季切, 下同. 表與袁紹同盟.
하물며 선인先人의 원수를 잊고 친족의 우호를 버려서 만세萬世의 경계가 되고 동맹에게 치욕을 끼친단 말인가.注+(주다)는 우계于季이니, 아래의 “유전부遺田父”의 도 같다. 유표劉表원소袁紹와 동맹을 하였다.
若冀州不弟어든 君當降志辱身하여 以濟事爲務 事定之後 使天下平其曲直 不亦爲高義邪注+尙爲冀州牧, 故稱冀州. 譚, 尙兄也, 今尙攻譚, 是爲不弟. 平, 音病.아하다
만약 기주冀州(원상袁尙)가 아우 노릇을 하지 않으면 그대가 마땅히 뜻을 낮추고 몸을 욕되게 하면서 일을 이루는 것을 힘써야 할 것이니, 일이 안정된 뒤에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잘잘못을 평론하게 하는 것이 높은 가 되지 않겠는가.”注+원상袁尙기주목冀州牧이 되었으므로 기주冀州라고 칭하였다. 원담袁譚은 원상의 형인데 지금 원상이 원담을 공격하였으니, 이는 아우 노릇을 하지 않은 것이다. (평론하다)은 이다.
又與尙書曰 青州 天性 峭急하여 迷於曲直注+譚據靑州, 故稱靑州. 峭, 峻也.하니 君當先除曹操하여 以卒先公之恨하고
유표劉表는 또 원상袁尙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었다. “청주青州(원담袁譚)는 천성天性이 급하여 잘잘못에 대해 분명하지 못하니注+원담袁譚청주靑州를 점거하였으므로 그를 청주靑州라 칭하였다. 는 준엄함이다., 그대가 마땅히 먼저 조조曹操를 제거하여 선공先公(선친先親)의 을 씻고,
事定之後 乃議曲直之計 不亦善乎 若迷而不返이면 則是韓盧, 東郭 自困於前하여 而遺田父之獲也注+戰國策 “齊欲伐魏, 淳于髡謂齊王曰 ‘韓子盧者, 天下之疾犬也, 東郭逡者, 海內之狡兎也. 韓子盧逐東郭逡, 環山者三, 騰山者五, 兎極於前, 犬廢於後, 犬兔俱罷, 各死其處, 田父見之, 無勞倦之苦, 而擅其功. 今齊魏久相持, 以頓其兵, 敝其衆, 臣恐強秦大楚承其後, 有田父之功.’” 逡, 㕙同, 狡兎名.니라 譚, 尙 皆不從하다
일이 안정된 뒤에 마침내 잘잘못을 의논하는 계책이 좋지 않은가. 만약 길을 잃고 돌아올 줄 모르면, 이는 한자로韓子盧동곽준東郭逡이 스스로 눈앞에서 지쳐서 농부에게 잡힌 것과 같다.”注+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나라가 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순우곤淳于髡제왕齊王에게 이르기를 ‘한자로韓子盧천하天下의 빠른 사냥개이고, 동곽준東郭逡해내海內의 교활한 토끼입니다. 한자로韓子盧동곽준東郭逡을 쫓아서 을 돈 것이 세 번이고 산에 오른 것이 다섯 번이었는데, 토끼는 앞에서 지쳐 쓰러지고 개는 뒤에서 쓰러져서 개와 토끼가 모두 피로하여 각각 그 자리에서 죽자, 농부가 이를 보고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그 (소득)을 독차지하였습니다. 이제 나라와 나라가 오랫동안 서로 버텨서 병사들을 지치게 하고 백성들을 피폐하게 하면, 은 강대국인 나라와 나라가 그 뒤를 이어서 농부의 공을 얻게 될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과 같으니, 교활한 토끼의 이름이다. 원담과 원상은 모두 따르지 않았다.
毗至西平이러니 操群下多以爲 劉表方彊하니 宜先平之라한대
신비辛毗서평현西平縣에 이르자, 조조曹操의 여러 부하들은 대부분 말하기를 “유표劉表가 한창 강성하니 마땅히 먼저 유표를 평정해야 한다.” 하였으나,
荀攸曰 天下方有事어늘 而劉表坐保江, 漢之間하니 其無四方之志 可知矣
순유荀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하에 한창 일(전쟁)이 있는데, 유표는 가만히 앉아서 장강長江한수漢水의 사이를 지키고 있으니 그가 사방(천하)을 차지하려는 뜻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袁氏據四州之地하여 帯甲 數十萬이라 紹以寬厚得衆心하니 使二子和睦하여 以守其成業이면 則天下之難 未息也注+謂能爲曹操患也.어늘
원씨袁氏을 점거하여 갑옷을 입은 병사가 수십만이고, 원소袁紹는 너그럽고 후덕厚德하여 민심을 얻었으니, 만약 두 아들이 화목하여 그가 이룩한 기업基業을 지킨다면 천하의 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注+〈“사이자화목使二子和睦……미식야未息也”는〉 능히 조조曹操의 걱정거리가 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今兄弟遘惡하니 其勢不兩全注+遘, 當作構. 或曰 “遘, 遇也, 謂以惡相遇也.”이라 若有所幷則力專이요 力專則難圖也注+謂譚尙若幷於一, 則能專力以禦操, 其勢難圖. 及其亂而取之 天下定矣리니 此時不可失也니이다
그런데 지금 형제가 서로 다투어 사이가 나쁘니, 그 형세가 둘 다 온전하지 못할 것입니다.注+는 마땅히 가 되어야 한다. 혹자는 “는 만남이니, 〈‘구악遘惡’은〉 미움으로써 서로 대함을 이른다.” 하였다. 만약 이들이 합병하면 힘이 전일해지고 힘이 전일해지면 도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注+〈“약유소병若有所幷……난도야難圖也”는〉 원담袁譚원상袁尙이 만약 하나로 합병되면 능히 힘을 전일하게 하여 조조曹操를 막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그 형세가 도모하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그들이 혼란할 때에 취하면 천하가 안정될 것이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操從之하고 謂毗曰 譚必可信이요 尙必可克不注+不, 讀曰否. 毗對曰 明公 無問信與詐也하고 直當論其勢耳
조조曹操신비辛毗의 말을 따르고 그에게 이르기를 “원담袁譚을 반드시 믿을 수 있고 원상袁尙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가?”注+(의문형 종결어미)는 로 읽는다. 하니, 신비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명공明公은 사실인지 속임수인지를 묻지 말고, 다만 마땅히 그 형세를 논해야 할 뿐입니다.
袁氏兄弟相伐하여 本謂天下可定於己注+謂幷靑, 冀爲一, 則可乘勢以定天下.러니 而一旦求救於明公하니 此可知也注+言其勢窮.
원씨袁氏의 형제가 서로 공격하여 본래 천하가 자기들의 손에 의해 평정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注+〈“천하가정어기天下可定於己”는〉 원담袁譚청주靑州원상袁尙기주冀州가 합병되어 하나가 되면 형세를 타고 천하를 평정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명공明公에게 구원을 청하니, 이에 저들의 형세가 곤궁함을 알 수 있습니다.注+〈“차가지야此可知也”는〉 그 형세가 곤궁함을 말한 것이다.
今其兵革敗於外하고 謀臣誅於内하며 兄弟讒䦧하여 國分爲二注+謀臣, 謂逢紀, 田豐等. 䦧, 闘狠也하여
지금 군대가 밖에서 패하고 도모하는 신하가 안에서 주살을 당하였으며, 형제가 모함하여 싸워서 나라가 나뉘어 둘이 되었습니다.注+모신謀臣”은 봉기逢紀전풍田豐 등을 이른다. 는 싸우는 것이다.
連年戰伐하여 介冑生蟣蝨하며 加以旱蝗하여 饑饉竝臻注+蟣蝨, 音幾瑟.이니이다
그리하여 해마다 전쟁하고 공격해서 병사들의 갑옷에서는 이와 서캐가 생기며, 게다가 가뭄과 충해로 기근까지 함께 닥쳐왔습니다.注+기슬蟣蝨”은 음이 기슬幾瑟이다.
今往攻鄴 不還救 卽不能自守 還救 卽譚踵其後하리니 此乃天亡尙之時也
지금 우리가 가서 업현鄴縣을 공격할 경우 원상이 돌아와 업현을 구원하지 않으면 능히 스스로 지키지 못할 것이요, 원상이 돌아와 구원하면 즉시 원담이 그의 뒤에서 공격할 것이니, 이는 바로 하늘이 원상을 망하게 하는 시기입니다.
天以尙與明公이어늘 明公 不取而伐荆州하면(니) 荆州 豊樂하여 國未有釁이니이다
하늘이 원상을 명공明公에게 주는데도 명공明公이 취하지 않고 형주荆州를 정벌하면(정벌하시니), 형주는 풍년이 들어 백성들이 생업을 즐거워하여 나라에 빈틈이 있지 않습니다.
二袁 不務遠略而内相圖하여 朝不謀夕하고 民命靡繼어늘
원씨袁氏가 멀리 경략經略하기를 힘쓰지 않고 안에서 서로 도모해서 아침에 저녁 일도 도모할 수 없고 백성들이 목숨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而不綏之하고 欲待他年하니 他年或登하고 又自知亡而改修厥德이면 失所以用兵之要矣注+歲熟曰登. 今因其請救而撫之 利莫大焉이니이다
그런데도 저들을 평정시키지 않고서 다른 해를 기다리고자 하시니, 다른 해에 혹 풍년이 들고 또 저들이 스스로 망할 줄을 알고 마음을 고쳐서 덕을 닦으면, 우리가 용병用兵할 수 있는 요점을 잃게 될 것입니다. 지금 원담이 구원을 청하는 틈을 타 저들을 어루만지면 이익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注+연사年事(농사)가 풍년이 든 것을 이라 한다.
且四方之寇 莫大於河北하니 河北平이면 則六軍盛하여 而天下震矣리이다 操曰 善하다하고 乃許譚平注+平, 和也.하다
또한 사방의 도둑으로는 하북河北보다 큰 것이 없으니, 하북河北이 평정되면 육군六軍이 강성해져서 천하가 진동할 것입니다.” 조조가 “좋다.” 하고는 마침내 원담과의 화해를 허락하였다.注+은 화해함이다.
十月 至黎陽하니 聞操渡河하고 乃釋平原還鄴이어늘 操引軍還하다
】 10월에 조조曹操여양黎陽에 이르자, 원상袁尙은 조조가 황하黃河를 건넜다는 말을 듣고는 마침내 평원平原을 버리고 업현鄴縣으로 돌아가니,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孫權 遣兵하여 討山越하여 平之하다
손권孫權이 군대를 보내어 산월山越을 토벌해서 평정하였다.
孫權 西伐黄祖하여 破其舟軍한대 而山寇復動注+丹陽ㆍ豫章ㆍ廬陵, 皆有山越.이어늘하여 使呂範等討之하고 又以呂蒙等으로 守劇縣令長하여 悉平之注+劇, 艱也ㆍ甚也. 言其地當山越之要, 最爲艱劇之甚者也.하다
손권孫權이 서쪽으로 황조黄祖를 공격하여 그의 수군水軍을 격파하니, 산의 도적(산월인山越人)들이 다시 동요하였다.注+단양丹陽예장豫章, 여릉廬陵에 모두 산월山越이 있었다. 손권이 돌아와서 여범呂範 등으로 하여금 토벌하게 하고, 또 여몽呂蒙 등에게 〈산월山越의 요충지에 해당하는〉 극현劇縣(다스리기 어려운 )의 영장令長을 임시로 맡겨서 모두 평정하게 하였다.注+은 어려움이요 심함이니, 이 지역이 산월山越의 요충지에 해당하여 가장 다스리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賀齊討建安할새 料出兵萬人注+建安, 本冶縣地, 會稽南部都尉治焉. 建安中, 分東官, 置建安縣, 用漢年號也. 時建安民作亂, 聚衆萬餘人. 料, 如字, 點閱見數也.하니 以爲平東校尉하다
하제賀齊건안建安을 토벌할 적에 병력을 점검하여 병사 만 명을 출동시키니注+건안建安은 본래 야현冶縣의 지역이니, 회계會稽남부도위南部都尉가 그곳에 치소治所를 두었다. 건안建安 연간(196~220)에 동후관東侯官을 나누어 건안현建安縣을 설치하니, 〈건안현이란 이름은〉 나라의 연호를 따른 것이다. 이때 건안현의 백성들이 난을 일으켜서 만여 명의 병력을 모았다. 는 본음 대로 읽으니, 현재 있는 수를 점검하는 것이다., 손권이 그를 평동교위平東校尉로 삼았다.
역주
역주1 군자가……않고 : ≪春秋左氏傳≫ 哀公 8년(B.C.487) 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吳나라가 邾나라를 위한 일 때문에 魯나라를 치려고 하여 叔孫輒에게 묻자 숙손첩이 “魯나라는 이름만 있고 실상이 없으니, 토벌하면 반드시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후 물러와서 公山不狃에게 고하자 공산불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께서 이렇게 말한 것은 禮가 아닙니다. 君子는 본국을 떠나 外國으로 亡命하는 경우에도 怨讐의 나라로 가지 않고, 도망간 나라의 신하가 되기 전에 그 나라가 本國을 치는 일이 있으면 본국으로 돌아가서 임금의 명을 받고 달려가 싸우다가 죽어야 하고, 이미 그 나라에 몸을 依託하였으면 그 토벌에 참여하지 않고 몸을 숨겨야 합니다.[非禮也 君子違 不適讐國 未臣而有伐之 奔命焉 死之可也 所託也則隱]”
역주2 친구와……않는데 : ≪史記≫ 권80 〈樂毅列傳〉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趙나라가 樂毅를 기용하자, 燕나라 惠王이 사람을 보내 악의를 질책하면서 한편으로는 사과하기를 “장군이 燕나라를 버리고 趙나라에 귀의하였으니, 스스로 계책을 세운 것은 괜찮지만, 선왕께서 장군을 대우했던 마음은 어떻게 갚겠는가?” 하였다. 그러자 악의가 답서를 보내기를 “신이 듣건대, 옛 군자는 교유를 끊을 때에 악평을 하지 않고, 충신은 나라를 떠날 때에 자신의 명성을 깨끗이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臣聞古之君子 交絶不出惡聲 忠臣去國 不潔其名]”라고 하였다.
역주3 네 주의 땅 : 네 州는 冀州와 靑州, 幽州, 幷州를 가리킨다. ≪資治通鑑綱目≫ 建安 2년(197) 3월에 “袁紹를 大將軍으로 삼아 冀州․靑州․幽州․幷州 네 州를 겸하여 맡게 하였다.[以袁紹爲大將軍 兼督冀靑幽幷四州]”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4 (候)[侯] : 저본에는 ‘候’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侯’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10)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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