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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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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亥年(B.C. 238)
秦九 楚二十五 燕十七 魏五 趙七 韓王安元注+安, 桓惠王子. 齊二十七年이라
伐魏하야 取垣蒲注+括地志 “垣在絳州垣縣西北, 蒲邑在隰州隰州縣南蒲水之北.”하다
◑ 夏四月 大寒하니 民有凍死者러라
◑ 秦王하고 帶劒注+冠, 古玩切, 卽加元服也. 冠者, 禮之始也, 將以責成人之禮, 故古人重之.하다
◑ 秦 伐魏하야 取衍氏注+正義, 衍氏在鄭州.하다
◑ 秋九月
秦嫪作亂이라가 伏誅夷三族하고
秦王 遷其太后於雍하다
秦王 卽位年少
太后時時與文信侯私通이러니 王益壯하얀 文信侯恐事覺及禍하야
乃以舍人嫪毐 詐爲宦者進之注+舍人, 本親近左右之通稱, 後遂以爲私屬官號. 嫪, 郞報切. 毐, 烏改切. 嫪毐, 姓名.하야
生二子하고 封毐爲長信侯하야 政事 皆決於毐러니
至是하야 有告毐實非宦者어늘
下吏治毐한대 毐懼하야 矯王御璽하야 發兵爲亂이어늘
使相國昌平君昌文君으로 攻之注+昌平君, 楚公子也. 立以爲相, 後徙於郢, 項燕立以爲荊王. 史失其名. 昌文君, 名亦不知也.한대
毐戰敗走어늘 獲之하야 夷三族注+三族, 父族‧母族‧妻族也.하고
遷太后於雍萯陽宮하고 殺其二子注+萯, 音倍, 山名也. 應劭曰 “宮在扶風鄠縣, 秦文王所建.”하고 下令호대 敢諫者호리라 諫而死者二十七人이라
斷其四支하야 積之闕下러니 齊客茅焦請諫한대
大怒하야 按劒而坐하야 口正沫出하더라
趣召鑊欲烹之注+沫, 音末, 涎也. 趣, 讀曰促. 鑊, 胡郭切, 鼎大而無足.어늘 焦徐行至前하야 再拜謁하고 起稱曰
聞有生者 不諱死 有國者 不諱亡이라하니
諱死者 不可以得生이요 諱亡者 不可以得存이니 死生存亡 聖主 所欲急聞也
陛下欲聞之乎注+陛者, 升堂之陛. 王者必有執兵陳於階陛之側, 群臣與至尊言, 不敢指斥, 故呼在陛下者而告之, 因卑以達尊之意也. 若今稱殿下‧閣下‧節下‧足下‧侍者‧執事, 皆此類.잇가
曰 何謂也
焦曰 陛下有狂悖之行호대 不自知邪
車裂假父하며 囊撲二弟注+假父, 指嫪毐. 囊撲, 以囊盛其人, 撲而殺之.하며 遷母於雍하고 殘戮諫士하니
桀紂之行 不至於是矣
令天下聞之 盡瓦解하야 無嚮秦者注+解, 下懈切, 散也. 瓦解, 言如衆瓦之解散也.리니 臣竊爲陛下危之하노이다
臣言 已矣라하고 乃解衣伏質注+質, 讀曰鑕, 鐵椹也. 古者, 斬人加於椹上而斫之. 椹, 通作枮.한대
下殿手接之하야 爵以上卿하고
自駕虛左方하야 迎太后歸하야 復爲母子如初하다
楚王完하니 盜殺黃歇하다
楚考烈王 無子어늘 春申君 求婦人宜子者하야 進之甚衆호대 卒無子러라
趙人李園 進其妹於春申君이러니 旣有娠이어늘 使妹說春申君曰 楚王 無子하니 卽百歲後 將更立兄弟注+人謂死後爲百歲後.하리니
彼亦各貴其故所親이니 又安得常保此寵乎리오
且君 貴用事久하야 多失禮於王之兄弟하니
兄弟立이면 禍且及身矣리라
今妾 有娠而人莫知하나니
誠以君之重으로 進妾於王하야 賴天而有男則是 君之子爲王也
楚國 可盡得이니 孰與身臨不測之禍哉
春申君 乃出之하야 謹舍而言諸王注+謹舍者, 別爲館舍以居之, 奉衛甚謹也.한대
召幸之하야 遂生男하야 立爲太子하고 園妹爲后하니
亦貴用事 恐春申君 泄其語하야 陰養死士하야 欲殺春申君하야 以滅口하니
國人 頗有知之者러라
이어늘 朱英 謂春申君曰 李園 君之仇也 不爲兵而養死士之日 久矣注+君之仇, 言園是春申君之仇也. 戰國策, 君之仇作王之舅, 兵下有將字.
이면 必先入據權하야 殺君以滅口하리니
君若置臣郞中하면 王薨園入이어든 臣爲君殺之注+班書百官表 “郞掌門戶, 出充車騎. 有議郞‧中郞‧侍郞‧郞中.”하리라 春申君 曰 園 弱人也
僕又善之하노니 且何至此리오
知言不用하고 懼而亡去하다
後十七日이어늘 果先入하야 伏死士於棘門之內注+棘門, 壽春城門名.하야 刺殺春申君하고 滅其家하다
太子立하니 是爲幽王이라


계해년(B.C. 238)
나라 왕 9년, 나라 고열왕考烈王 25년, 나라 왕 17년, 나라 경민왕景閔王 5년, 나라 도양왕悼襄王 7년, 나라 왕 원년,注+나라 환혜왕桓惠王의 아들이다.나라 왕 27년이다.
[綱] 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여 를 탈취하였다.注+괄지지括地志》에 “강주絳州 원현垣縣 서북쪽에 있고, 포읍蒲邑습주隰州 습주현隰州縣 남쪽 포수蒲水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綱] 여름 4월에 나라에 큰 추위가 닥쳐 백성들 가운데 얼어 죽는 자가 있었다.
[綱] 나라 왕이 관례冠禮를 치르고 검을 찼다.注+고완古玩이니, 곧 을 씌우는 것이다. 관례冠禮는 예의 시작이니, 성인成人의 도리를 책임지우는 예이다. 그러므로 고인古人이 중요시하였다.
[綱] 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여 연씨衍氏(연지)를 탈취하였다.注+에 “연씨衍氏정주鄭州에 있다.”고 하였다.
[綱] 가을 9월이다.
나라 노애嫪毐가 난을 일으켰다가 복주伏誅되고 삼족이 멸해졌다.
나라 왕이 태후太后으로 옮겼다.
[目] 처음에 나라 왕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다.
태후가 수시로 문신후文信侯(여불위呂不韋)와 사통하였는데, 왕이 점차 장성하자 문신후가 일이 발각되어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웠다.
이에 사인舍人 노애嫪毐를 거짓으로 환관을 만들어 태후에게 바쳤다.注+사인舍人은 본래 가까운 주변 사람에 대한 통칭이었는데, 나중에 마침내 개인에게 소속된 관인官人의 호칭이 되었다. 낭보郞報이고, 오개烏改이다. 노애嫪毐는 성명이다.
태후가 두 아들을 낳고 노애를 봉하여 장신후長信侯로 삼으니, 정사가 모두 노애에게서 결정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노애가 실제로 환관이 아니라고 고하는 자가 있었다.
왕이 옥리獄吏에게 맡겨 노애의 일을 처리하게 하였는데, 노애가 두려워하여 왕의 어새를 위조하여 군대를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다.
왕이 재상인 창평군昌平君창문군昌文君으로 하여금 그를 공격하게 하였다.注+창평군昌平君나라의 공자이다. 나라 왕이 그를 세워 재상으로 삼았는데, 나중에 으로 옮겨갔고, 항연項燕이 그를 세워 형왕荊王으로 삼았다. 역사서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창문군昌文君의 이름도 알 수 없다.
노애가 싸움에서 패하여 달아나자 잡아다 삼족을 멸하였다.注+삼족三族은 부족, 모족, 처족이다.
태후를 부양궁萯陽宮(배양궁)으로 옮기고, 두 아들을 죽이고는注+는 음이 이니, 산의 이름이다. 가 말하기를 “부양궁萯陽宮부풍扶風 호현鄠縣에 있다. 나라 문왕文王이 세운 것이다.” 하였다. 명령을 내리기를 “감히 간하는 자가 있으면 죽이리라.” 하였는데, 간하다 죽은 사람이 27인이었다.
그들의 사지를 잘라 궐문 아래에 쌓아두었는데, 나라에서 온 유세객 모초茅焦가 간하기를 청하였다.
왕이 크게 노하여 검을 어루만지며 앉았는데 입에 거품을 물 정도였다.
모초를 불러 큰 솥에다 삶아 죽이라고 재촉하였는데,注+은 음이 이니, 침이다. (재촉하다)은 으로 읽는다. 호곽胡郭이니, 솥이 크고 발이 없는 것이다. 모초가 천천히 와서 왕의 앞에 이르러 두 번 절하고 일어나 다음과 같이 크게 말하였다.
“신이 듣건대 살아 있는 자는 죽음에 대한 말을 꺼리지 않고 나라를 소유한 자는 망국에 대한 말을 꺼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말을 꺼리는 자는 살 수가 없고 망국에 대한 말을 꺼리는 자는 나라를 존속시킬 수 없으니, 사생死生존망存亡성명聖明한 군주가 급히 듣고자 하는 바입니다.
폐하께서 이것을 들어보고자 하십니까?”注+는 당에 오르는 섬돌이다. 왕은 반드시 무기를 소지한 병사를 섬돌 옆에 두는데, 신하들이 임금과 말을 할 때에 감히 임금을 바로 부를 수가 없으므로 섬돌 아래에 있는 자를 불러서 고하니, 낮은 데에서 높은 데로 전달하는 의미이다. 지금의 전하殿下, 각하閣下, 절하節下, 족하足下, 시자侍者, 집사執事와 같은 호칭이 모두 이러한 부류이다.
왕이 “무슨 말인가?”라고 하였다.
모초가 아뢰기를 “폐하께서 포악하고 사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셨는데 스스로 모르십니까?
가부假父를 수레에 매달아 찢어 죽이고, 두 동생을 자루에 넣어 쳐서 죽이고,注+가부假父노애嫪毐를 가리킨다. “낭박囊撲”은 사람을 자루에 넣어 쳐서 죽이는 것이다. 모후를 에 옮기고, 간하는 선비를 잔혹하게 죽이셨습니다.
걸왕桀王주왕紂王의 악행도 이러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듣게 한다면 민심이 모두 와해되어 나라에 충성하는 자가 없을 것이니,注+하해下懈이니, 흩어진다는 뜻이다. “와해瓦解”는 많은 기와가 흩어지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신은 삼가 폐하를 위해 위태롭게 생각합니다.
신이 드릴 말씀은 끝났습니다.” 하고는 옷을 벗고 모루 위에 엎드렸다.注+로 읽으니, 모루이다. 옛날에 사람을 벨 때에 모루[] 위에 올려두고 벴다. 와 통용하여 쓰인다.
왕이 전각을 내려와 그를 직접 맞이하여 상경上卿의 작위를 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수레를 몰아 왼편의 자리를 비우고 가서, 태후를 맞이하여 돌아와 모자의 관계를 이전처럼 회복하였다.
[綱] 나라 왕 하니, 황헐黃歇(춘신군春申君)을 도살(암살)하였다.
[目] 나라 고열왕考烈王이 아들이 없자, 춘신군春申君이 아들을 낳을 만한 부녀자를 찾아 많이 바쳤으나 끝내 아들이 없었다.
나라 사람 이원李園이 자신의 누이를 춘신군에게 바쳤는데, 임신이 되자 이원이 누이를 시켜 춘신군을 설득하게 하기를 “나라 왕이 아들이 없으니, 왕이 죽은 뒤에 장차 형제가 즉위할 것입니다.注+사람들이 죽은 뒤를 백 세 뒤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들이 또한 각각 자신이 옛날에 친했던 자들을 존귀한 자리에 앉힐 것이니, 군께서 다시 어떻게 이러한 총애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군께서 존귀한 지위에서 정사를 맡은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왕의 형제들에게 실례를 범한 일이 많습니다.
형제가 즉위하면 재앙이 장차 몸에 미칠 것입니다.
지금 첩이 임신하였는데 사람들이 모릅니다.
진실로 군의 존귀한 신분으로 첩을 왕에게 올려서 하늘이 보우하여 아들을 낳는다면 이것은 군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모두 가질 수 있을 것이니, 예측할 수 없는 화가 몸에 닥치는 것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 하였다.
[目] 춘신군春申君이 이에 그녀를 집에서 빼내어 안전하게 머물 곳을 마련해주고 왕에게 아뢰었다.注+근사謹舍”라는 것은 별도로 머물 곳을 마련하여 살게 하고 호위를 매우 신중하게 하는 것이다.
왕이 그녀를 불러 총애하여 마침내 아들을 낳으니, 태자로 세우고 이원李園의 누이를 왕후로 삼았다.
이원도 존귀하게 되어 권세를 누렸는데, 춘신군이 자신의 말을 누설할까 두려워하여 죽음을 각오한 용사들을 몰래 양성하여 춘신군을 죽여서 입을 막고자 하였다.
나라 사람들 다수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왕이 병이 들자 주영朱英춘신군春申君에게 이르기를 “이원은 군의 원수이니, 나라의 군사는 돌보지 않고 죽음을 각오한 용사를 양성한 지 오래입니다.注+군지구君之仇(그대의 원수)”는 이원李園춘신군春申君의 원수라는 말이다. .
왕이 하시면 반드시 먼저 궁궐에 들어와 권력을 장악하고 군을 죽여 입을 막을 것입니다.
군께서 만약 신을 낭중郞中의 자리에 두신다면, 왕이 하여 이원이 들어왔을 때에 신이 군을 위해 그를 죽이겠습니다.”注+한서漢書》 〈백관표百官表〉에, “은 문호를 담당하고 수레와 말을 내어주는 것을 담당한다. 의랑議郞, 중랑中郞, 시랑侍郞, 낭중郞中이 있다.”라고 하였다. 하니, 춘신군이 말하기를 “이원은 나약한 사람입니다.
내가 또 그를 잘 대해주었으니, 장차 어찌 그런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하였다.
주영이 자신의 말이 쓰이지 않을 줄 알고서 두려워 달아났다.
17일 뒤에 왕이 하자 이원이 과연 궁궐에 먼저 들어와 죽음을 각오한 용사들을 극문棘門 안에 매복시켰다가注+극문棘門수춘성壽春城의 문 이름이다. 춘신군을 찔러 죽이고 그 집안을 멸족시켰다.
태자가 즉위하니, 이 사람이 유왕幽王이다.


역주
역주1 元服 : 元은 머리를 뜻하니, 元服은 곧 머리에 쓰는 관을 가리킨다.
역주2 史記正義 : 唐나라 때 張守節이 편찬한 《史記》의 주석서로 모두 30권이다. 《四庫全書》 史部 正史類에 채록되었다. 장수절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으나, 이 책에 보면 관직이 諸王侍讀率府長史라고 하였다.
역주3 (毒)[毐] : 저본에는 ‘毒’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근거하여 ‘毐’로 바로잡았다. 아래 나오는 ‘毐’도 모두 이와 같다.
역주4 應劭 : 東漢 사람으로, 자가 仲遠이다. 박학다식하여 《漢官禮儀故事》와 《風俗通》 등을 저술하였고, 曹操가 洛陽에서 許로 수도를 옮긴 뒤에 朝廷制度를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역주5 戰國策……있다 : 《戰國策》 〈楚策 4〉에는 “이원이 정권을 잡지는 않았으나 왕의 처남입니다. 장수도 아니면서 몰래 죽음을 각오한 용사를 양성한 지 오래입니다.[李園不治國 王之舅也 不爲兵將 而陰養死士之曰久矣]”라 하였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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