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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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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年(136)
永和元年이라 冬十二月 以王龔爲太尉하다
疾宦官專權하여 上書極言其狀하니 諸黃門 使客으로 誣奏龔罪한대
命龔亟自實注+亟, 疾也. 自實, 自首其罪也.하다 李固奏記於梁商曰 王公 以堅貞之操 橫爲讒佞所構하니 衆人聞知 莫不歎慄注+橫, 胡孟切.이니이다
夫三公尊重하여 無詣理訴冤之義하니 纖微感槪 輒引分決注+理, 獄官也. 詣理, 謂往法司辯對也. 感槪, 謂感意氣而立節槪也. 引, 長也. 分, 亦決也. 決, 通作訣. 引決, 長別之義. 或曰 “猶言自裁, 謂裁決生死也.”이라
是以 舊典 不有大罪 不至重問注+大臣獄重, 故曰重問. 成帝時, 丞相薛宣․御史大夫翟方進有罪, 上使五二千石雜問.하니 王公 卒有他變이면 則朝廷獲害賢之名하고 群臣無救護之節矣注+卒, 讀曰猝.리이다
語曰 善人在患이면 飢不及餐이라하니 斯其時也注+飢不及餐, 言當速救之也.니이다 卽言之하니 事乃得釋하다
冀嗜酒逸遊하여 居職縱暴어늘 商客呂放 以告商하여 讓之하니 冀遣人殺放하고 而推疑放之怨仇하여 捕滅其宗親賓客百餘人注+推, 通回切. 惡自冀出, 欲嫁之他人, 故託其辭, 疑放之怨仇爲之.하다
武陵蠻하다
武陵太守言 蠻夷率服하니 可增租賦注+率服, 言相率而來服.라한대 虞詡曰 自古聖王 不臣異俗하시니이다
先帝舊典 貢稅多少 所由來久矣 今猥增之하면 必有怨叛이라 計其所得 不償所費 必有後悔리이다 帝不從이러니
至是 果爭貢布非舊約이라하여 遂殺鄕吏하고 擧種反注+貢布, 貢獻賨布也. 漢興, 歲令武陵諸蠻, 大人輸布一匹, 小口二丈, 謂之賨布. 賨, 徂宗切. 賨者, 摠率其所有, 不切責之也.하다


병자년丙子年(136)
나라 효순황제 영화孝順皇帝 永和 원년元年이다. 겨울 12월에 왕공王龔태위太尉로 삼았다.
왕공王龔환관宦官들이 권력을 독차지하는 것을 미워하여 글을 올려서 그 내용을 자세히 말하니, 여러 황문黃門으로 하여금 무함하여 왕공의 를 아뢰게 하였다.
이 왕공에게 하여 빨리 죄를 자수하게 하자注+은 빠름이다. “자실自實”은 자기의 자수自首하는 것이다., 이고李固양상梁商에게 다음과 같이 주기奏記하였다. “왕공王公(왕공王龔)이 꼿꼿하고 바른 지조 때문에 참소하고 아첨하는 자들에게 억울하게 무함을 당하여 죄를 얻게 되니, 여러 사람들이 이 사실을 들어 알고는 탄식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注+(억울하다)은 호맹胡孟이다.
삼공三公은 지위가 높고 책임이 중하여 옥관獄官에 나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의리가 없으니, 조금이라도 의기意氣에 감동(분개)하여 절개를 세우면 영원히 과 결별하게 됩니다.注+옥관獄官이다. “예리詣理”는 법사法司에 가서 변론하고 대답함을 이른다. “감개感槪”는 의기意氣에 감동하여 절개節槪를 세움을 이른다. 은 긺이요, 또한 결단함이다. 과 통하니, “인결引決”은 영원히 이 세상과 이별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자재自裁(자결自決)’라는 말과 같으니, 생사生死를 결단함을 이른다.” 하였다.
이 때문에 옛 법에 삼공三公에게 큰 가 있지 않으면 하게 심문하지 않았으니注+대신大臣옥사獄事는 사안이 중하기 때문에 ‘중문重問’이라 한 것이다. 성제成帝승상 설선丞相 薛宣어사대부 적방진御史大夫 翟方進가 있자, 이 다섯 명의 이천석二千石으로 하여금 모여 심리審理하게 하였다., 왕공王公에게 갑자기 다른 변고가 생기면, 조정朝廷(황제)은 현자賢者를 살해했다는 오명을 얻고, 여러 신하들은 현자를 구원하고 보호하는 충절이 없게 될 것입니다.注+(갑자기)은 로 읽는다.
속담에 이르기를 ‘선인善人이 환란에 있으면 굶주려도 미처 밥을 먹지 못하고 달려가 구원한다.’ 하였으니,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注+기불급찬飢不及餐”은 마땅히 속히 구원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양상이 즉시 이 일을 아뢰니, 일이 비로소 해결되었다.
양기梁冀하남윤河南尹으로 삼았다.
양기梁冀는 술을 좋아하고 방탕하게 놀아서, 관직에 있을 적에 방종하고 포악하였다. 장사하는 나그네인 여방呂放이 이 사실을 양상梁商(양기의 )에게 고하여 꾸짖게 하니, 양기가 사람을 보내 여방을 죽이고는 여방의 원수에게 의심을 떠넘겨서 그 종족과 빈객賓客 100여 명을 체포하여 멸족하였다.注+(밀치다)는 통회通回이다. 악행惡行양기梁冀가 저질렀는데 죄를 타인他人에게 전가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 말을 가탁하여 여방呂放의 원수가 죽였다고 의심하게 한 것이다.
무릉武陵만족蠻族이 배반하였다.
】 처음에 무릉태수武陵太守가 말하기를 “만이蠻夷들이 무리를 서로 거느리고 와서 복종하니 조세와 부역을 더 올릴 수 있다.”注+솔복率服”은 서로 거느리고 와서 복종함을 말한다. 하자, 우후虞詡가 아뢰기를 “예로부터 성왕聖王은 풍속이 다른 오랑캐를 신하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선제先帝의 옛 법에 공세貢稅의 많고 적음이 유래由來가 있은 지 오래되었으니, 지금 갑자기 공세를 올리면 오랑캐들이 반드시 원망하여 배반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계산해보건대, 얻는 것이 잃는 것을 보상하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였으나, 황제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때에 과연 만족蠻族이 공물로 바치는 삼베의 양이 옛 약속과 다르다고 다투고는 마침내 향리鄕吏를 죽이고 모든 종족이 배반하였다.注+공포貢布”는 공물로 바치는 종포賨布(종포)이다. 나라가 일어나자 무릉武陵의 여러 만족蠻族들로 하여금 매년 대인大人(성인)은 삼베 한 을 바치고, 소구小口(미성년자)는 두 (반 필)을 바치게 하였는데, 이것을 종포賨布라 하였다. 조종徂宗이니, 이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대강 징수하고 각박하게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역주
역주1 以梁冀爲河南尹 : “〈앞에서 ‘以王龔爲太尉’라고 썼는데〉 여기에서 다시 ‘以’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王龔을 梁冀와 구별한 것이니, ≪資治通鑑綱目≫에서 어진 자와 불초한 자를 구별한 것이 엄격하다. 西漢의 세대에는 ‘京兆尹’을 쓴 것이 8번인데, 黃霸 이외에는 모두 엄격하고 유능한 자들이었다. 東漢은 雒陽에 도읍한 지 100여 년에 河南尹 중에 알려진 자가 없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梁冀 兄弟를 썼으니, 楊秉과 朱儁이 아니라면 거의 훌륭한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東漢이 끝날 때까지 ‘河南尹으로 삼았다.’고 쓴 것이 3번이요, 사건을 통해서 나타낸 것이 3번이다.[再書以 何 殊龔於冀也 綱目之別賢不肖嚴矣 西漢之世 書京兆尹八 自黃霸外皆嚴能者也 東漢都雒百有餘年 河南尹無聞焉 於是 始書梁冀兄弟 微楊秉,朱儁 幾無人矣 終東漢 書以爲河南尹三 因事見者三]다” ≪書法≫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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