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8)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丙子年(136)
병자년丙子年(136)
永和元年이라 冬十二月 以王龔爲太尉하다
나라 효순황제 영화孝順皇帝 永和 원년元年이다. 겨울 12월에 왕공王龔태위太尉로 삼았다.
疾宦官專權하여 上書極言其狀하니 諸黃門 使客으로 誣奏龔罪한대
왕공王龔환관宦官들이 권력을 독차지하는 것을 미워하여 글을 올려서 그 내용을 자세히 말하니, 여러 황문黃門으로 하여금 무함하여 왕공의 를 아뢰게 하였다.
命龔亟自實注+亟, 疾也. 自實, 自首其罪也.하다 李固奏記於梁商曰 王公 以堅貞之操 橫爲讒佞所構하니 衆人聞知 莫不歎慄注+橫, 胡孟切.이니이다
이 왕공에게 하여 빨리 죄를 자수하게 하자注+은 빠름이다. “자실自實”은 자기의 자수自首하는 것이다., 이고李固양상梁商에게 다음과 같이 주기奏記하였다. “왕공王公(왕공王龔)이 꼿꼿하고 바른 지조 때문에 참소하고 아첨하는 자들에게 억울하게 무함을 당하여 죄를 얻게 되니, 여러 사람들이 이 사실을 들어 알고는 탄식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注+(억울하다)은 호맹胡孟이다.
夫三公尊重하여 無詣理訴冤之義하니 纖微感槪 輒引分決注+理, 獄官也. 詣理, 謂往法司辯對也. 感槪, 謂感意氣而立節槪也. 引, 長也. 分, 亦決也. 決, 通作訣. 引決, 長別之義. 或曰 “猶言自裁, 謂裁決生死也.”이라
삼공三公은 지위가 높고 책임이 중하여 옥관獄官에 나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의리가 없으니, 조금이라도 의기意氣에 감동(분개)하여 절개를 세우면 영원히 과 결별하게 됩니다.注+옥관獄官이다. “예리詣理”는 법사法司에 가서 변론하고 대답함을 이른다. “감개感槪”는 의기意氣에 감동하여 절개節槪를 세움을 이른다. 은 긺이요, 또한 결단함이다. 과 통하니, “인결引決”은 영원히 이 세상과 이별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자재自裁(자결自決)’라는 말과 같으니, 생사生死를 결단함을 이른다.” 하였다.
是以 舊典 不有大罪 不至重問注+大臣獄重, 故曰重問. 成帝時, 丞相薛宣․御史大夫翟方進有罪, 上使五二千石雜問.하니 王公 卒有他變이면 則朝廷獲害賢之名하고 群臣無救護之節矣注+卒, 讀曰猝.리이다
이 때문에 옛 법에 삼공三公에게 큰 가 있지 않으면 하게 심문하지 않았으니注+대신大臣옥사獄事는 사안이 중하기 때문에 ‘중문重問’이라 한 것이다. 성제成帝승상 설선丞相 薛宣어사대부 적방진御史大夫 翟方進가 있자, 이 다섯 명의 이천석二千石으로 하여금 모여 심리審理하게 하였다., 왕공王公에게 갑자기 다른 변고가 생기면, 조정朝廷(황제)은 현자賢者를 살해했다는 오명을 얻고, 여러 신하들은 현자를 구원하고 보호하는 충절이 없게 될 것입니다.注+(갑자기)은 로 읽는다.
語曰 善人在患이면 飢不及餐이라하니 斯其時也注+飢不及餐, 言當速救之也.니이다 卽言之하니 事乃得釋하다
속담에 이르기를 ‘선인善人이 환란에 있으면 굶주려도 미처 밥을 먹지 못하고 달려가 구원한다.’ 하였으니,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注+기불급찬飢不及餐”은 마땅히 속히 구원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양상이 즉시 이 일을 아뢰니, 일이 비로소 해결되었다.
양기梁冀하남윤河南尹으로 삼았다.
冀嗜酒逸遊하여 居職縱暴어늘 商客呂放 以告商하여 讓之하니 冀遣人殺放하고 而推疑放之怨仇하여 捕滅其宗親賓客百餘人注+推, 通回切. 惡自冀出, 欲嫁之他人, 故託其辭, 疑放之怨仇爲之.하다
양기梁冀는 술을 좋아하고 방탕하게 놀아서, 관직에 있을 적에 방종하고 포악하였다. 장사하는 나그네인 여방呂放이 이 사실을 양상梁商(양기의 )에게 고하여 꾸짖게 하니, 양기가 사람을 보내 여방을 죽이고는 여방의 원수에게 의심을 떠넘겨서 그 종족과 빈객賓客 100여 명을 체포하여 멸족하였다.注+(밀치다)는 통회通回이다. 악행惡行양기梁冀가 저질렀는데 죄를 타인他人에게 전가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 말을 가탁하여 여방呂放의 원수가 죽였다고 의심하게 한 것이다.
武陵蠻하다
무릉武陵만족蠻族이 배반하였다.
武陵太守言 蠻夷率服하니 可增租賦注+率服, 言相率而來服.라한대 虞詡曰 自古聖王 不臣異俗하시니이다
】 처음에 무릉태수武陵太守가 말하기를 “만이蠻夷들이 무리를 서로 거느리고 와서 복종하니 조세와 부역을 더 올릴 수 있다.”注+솔복率服”은 서로 거느리고 와서 복종함을 말한다. 하자, 우후虞詡가 아뢰기를 “예로부터 성왕聖王은 풍속이 다른 오랑캐를 신하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先帝舊典 貢稅多少 所由來久矣 今猥增之하면 必有怨叛이라 計其所得 不償所費 必有後悔리이다 帝不從이러니
선제先帝의 옛 법에 공세貢稅의 많고 적음이 유래由來가 있은 지 오래되었으니, 지금 갑자기 공세를 올리면 오랑캐들이 반드시 원망하여 배반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계산해보건대, 얻는 것이 잃는 것을 보상하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였으나, 황제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至是 果爭貢布非舊約이라하여 遂殺鄕吏하고 擧種反注+貢布, 貢獻賨布也. 漢興, 歲令武陵諸蠻, 大人輸布一匹, 小口二丈, 謂之賨布. 賨, 徂宗切. 賨者, 摠率其所有, 不切責之也.하다
이때에 과연 만족蠻族이 공물로 바치는 삼베의 양이 옛 약속과 다르다고 다투고는 마침내 향리鄕吏를 죽이고 모든 종족이 배반하였다.注+공포貢布”는 공물로 바치는 종포賨布(종포)이다. 나라가 일어나자 무릉武陵의 여러 만족蠻族들로 하여금 매년 대인大人(성인)은 삼베 한 을 바치고, 소구小口(미성년자)는 두 (반 필)을 바치게 하였는데, 이것을 종포賨布라 하였다. 조종徂宗이니, 이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대강 징수하고 각박하게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역주
역주1 以梁冀爲河南尹 : “〈앞에서 ‘以王龔爲太尉’라고 썼는데〉 여기에서 다시 ‘以’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王龔을 梁冀와 구별한 것이니, ≪資治通鑑綱目≫에서 어진 자와 불초한 자를 구별한 것이 엄격하다. 西漢의 세대에는 ‘京兆尹’을 쓴 것이 8번인데, 黃霸 이외에는 모두 엄격하고 유능한 자들이었다. 東漢은 雒陽에 도읍한 지 100여 년에 河南尹 중에 알려진 자가 없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梁冀 兄弟를 썼으니, 楊秉과 朱儁이 아니라면 거의 훌륭한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東漢이 끝날 때까지 ‘河南尹으로 삼았다.’고 쓴 것이 3번이요, 사건을 통해서 나타낸 것이 3번이다.[再書以 何 殊龔於冀也 綱目之別賢不肖嚴矣 西漢之世 書京兆尹八 自黃霸外皆嚴能者也 東漢都雒百有餘年 河南尹無聞焉 於是 始書梁冀兄弟 微楊秉,朱儁 幾無人矣 終東漢 書以爲河南尹三 因事見者三]다” ≪書法≫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