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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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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戌年(B.C. 203)
西楚四年 漢四年이라
冬十月 漢韓信 襲破齊하니 齊王 烹酈食其하고 走高密注+以酈生爲賣己烹之. 高密縣在膠西. 宣帝本始元年, 爲高密國.하다
◑ 漢王 復取成皐하고 與楚皆軍廣武하다
數挑楚戰호대 曹咎不出이어늘 使人辱之注+挑, 徒了切. 挑戰, 擿嬈敵以求戰也. 古謂之致師.한대
咎怒하야 渡兵汜水러니 半渡 擊破之하니 咎自剄注+汜, 凡‧祀二音. 臣瓚曰 “今成皐城東汜水是也.”이어늘
漢王 乃引兵渡河하야 復取成皐하고 軍廣武하야 就敖倉食注+戴延之西征記曰 “三皇山上有二城, 東曰東廣武, 西曰西廣武, 各在一山頭, 相去百步. 汴水從廣澗中東南流, 今涸無水. 城各有三面, 在敖倉西.”한대
羽聞之하고 亦還軍廣武하야 相守하다
楚食少
乃爲高俎하야 置太公其上注+俎, 音阻, 所以盛肉.하고 告漢王曰 今不急下하면 吾烹太公호리라
王曰 吾與若으로 俱北面受命懷王하야 約爲兄弟注+若, 汝也.하니 吾翁 卽若翁이라
必欲烹而翁인대 幸分我一桮羹注+而, 亦汝也. 桮, 與杯同. 古者以杯盛羹.하라
羽怒欲殺之어늘 項伯 曰 爲天下者 不顧家하나니 殺之無益이요
秪益禍耳注+秪, 適也.니라
羽謂漢王曰 天下匈匈數歲 徒以吾兩人注+匈, 許容切, 又上聲. 匈匈, 諠擾之義.이니 願與王挑戰決雌雄하야 毋徒苦天下父子爲也하노라
笑謝曰 吾寧鬪智언정 不能鬪力이라하고
因數之曰 羽負約하고 王我於漢하니 罪一이요
矯殺卿子冠軍하니 罪二
救趙不報而擅劫諸侯入關하니 罪三이요
燒秦宮室하고 掘始皇帝冢하고 私其財하니 罪四
殺秦降王子嬰하니 罪五
詐阬秦子弟新安二十萬하니 罪六이요
王諸將善地而徙逐故主하니 罪七이요
出逐義帝하고 自都彭城하고 奪韓梁地하니 罪八이요
使人陰殺義帝江南하니 罪九
爲政不平하며 主約不信하니 天下所不容大逆無道 罪十也
吾以義兵으로 從諸侯誅殘賊하니 使刑餘罪人으로 擊公이라 何苦乃與公挑戰注+刑餘罪人, 言輕賤也.이리오
羽大怒하야 伏弩射漢王傷胸한대
乃捫足曰 虜中吾指로다
因病創臥注+捫, 音門, 摸也. 傷胸而捫足者, 以安衆心. 創, 初莊切, 傷也.어늘 張良 彊請起行勞軍하야 以安士卒注+行‧勞, 竝去聲.하니 從之러니
疾甚하야 因馳入成皐하다
楚救齊어늘 十一月 漢韓信 擊破之하고 殺其將龍且하고 虜齊王廣하니
田橫 自立爲齊王이라가 戰敗走어늘 遂定齊地하다
楚使龍且 將兵二十萬救齊注+且, 子余切.어늘 或曰 漢兵 遠鬪窮戰하니 其鋒 不可當이요
齊楚 自居其地하니 兵易敗散注+士卒, 近家, 進無必死之心, 退有歸投之處, 易以敗散也.이라
不如深壁하고 令齊王으로 使其信臣으로 招所亡城注+信臣, 常所親信之臣.하면
亡城 聞王在하고 楚來救하면 必反漢하리니
漢兵 客居하야 其勢無所得食이니 可不戰而降也리라
且曰吾知韓信爲人이로니 易與耳
寄食於漂母하니 無資身之策이요 受辱於袴下하니 無兼人之勇이니
不足畏也
且救齊不戰而降之 吾何功注+通鑑, 且下有夫字.이리오
今戰而勝이면 齊半 可得也注+自謂當得封齊之半地.라하고 進與漢軍으로 夾濰水而陳注+濰, 音維. 地理志 “濰水出琅邪箕屋山東北, 經臺昌入海.”하다
夜令人으로 囊沙하야 壅水上流注+囊沙, 爲囊盛沙.하고 旦渡擊且라가 佯敗還走한대
且喜曰 吾固知信怯也라하고 遂追之어늘 使決壅囊하니 水大至 且軍大半不得渡注+大, 音泰. 凡數, 三分有二爲太半. 有一分爲少半.어늘
急擊殺且하고 追至城陽하야 虜齊王廣注+此城陽, 卽漢城陽國之地.하니
田橫 遂自立爲齊王이어늘 灌嬰 擊走之하고 盡定齊地하다
立張耳爲趙王하다
◑ 漢王 還櫟陽留四日하야 復如廣武하다
◑ 春二月 立韓信爲齊王하고 徵其兵擊楚하다
韓信 使人言於漢王曰 齊 偽詐多變反覆之國也
請爲假王以鎭之하노이다
漢王 大怒罵曰 吾困於此하야 旦暮望若來어늘 乃自立邪 張良陳平 躡王足附耳語曰注+躡, 蹈也. 漢方不利하니 寧能禁信之自王乎
不如因而立之하야 使自爲守
不然이면 變生하리이다
하야 復罵曰 大丈夫定諸侯하고 卽爲眞王이니 何以假爲리오
二月 遣良操印하야 立信爲齊王하고 徵其兵擊楚하다
項羽聞龍且死하고 大懼하야 使武涉說信하야 欲與連和하야 三分天下어늘
謝之曰 臣 事項王 官不過郞中이요 位不過執戟注+郞中, 宿衛執戟之人也.하며
言不聽畫不用이라
故倍楚而歸漢하니 漢王 授我上將軍印하고 予我數萬衆하며 解衣衣我하고 推食食我하며 言聽計用이라
故吾得至於此注+下衣, 於旣切. 下食, 讀曰飼.하니
夫人 深親信我어늘 我倍之不祥이니 雖死 不易호리라
幸爲信謝項王하라
武涉 已去어늘 蒯徹 知天下權 在信하고 乃說之曰 天下初發難也 憂在亡秦而已注+志在滅秦, 所憂者唯此.러니
今楚漢 分爭하야 使天下之人으로 肝膽 塗地하며 暴骸中野 不可勝數
楚人 乘利席卷하야 威震天下하나 然迫西山而不得進者三年矣
漢王 距鞏洛阻山河하야 一日數戰호대 無尺寸之功하니 此所謂智勇俱困者也
今兩主之命 縣於足下하니 莫若兩利而俱存之
三分天下하야 鼎足而居하면 其勢莫敢先動하리니
足下據强齊從燕趙注+從, 如字. 使燕趙服從己也.하야
因民之欲하야 西向爲百姓請命하면 則天下風走而響應矣注+爲, 去聲. 齊國在東, 故曰西向, 止楚漢之戰鬪. 士卒不死亡, 故曰請命. 風走, 言疾趨如風也.리라
蓋聞天與不取 反受其咎 時至不行이면 反受其殃이라하니
願足下 熟慮之어다
信曰 漢王 遇我甚厚하니 吾豈可以鄕利而倍義乎
徹曰 始張耳陳餘相與爲刎頸之交라가
及爭張黶陳澤之事 耳遂殺餘泜水之南하야 頭足異處하니
今足下交於漢王 必不能固於二君之相與也注+相與, 言相與交善也. 而事多大於張黶陳澤者하니
故臣 竊以爲足下必漢王之不危已亦誤矣注+必, 謂必信之也.라하노라
野獸已盡而獵狗烹하나니
願足下 深慮之하라
且勇略 震主者 身危하고 功蓋天下者 不賞하나니
今足下戴震主之威하고 挾不賞之功하니 欲持是安歸乎注+安, 焉也. 信謝曰 先生 休矣어다
吾方念之호리라
數日 復說曰 夫聽者 事之候也 計者 事之機也注+聽, 謂能聽善謀也. 聽過計失이요 而能久安者鮮矣
故智者 決之斷也 疑者 事之害也 審毫釐之小計하고 遺天下之大數하야 智誠知之호대 決弗敢行者 百事之禍也
夫功者 難成而易敗 時者 難得而易失이니 時乎時乎不再來注+嘆時之不可失.니라
猶豫不忍倍漢하고 又自以功多하니 終不奪我齊라하야 遂謝徹하니
因去하야 佯狂爲巫하다
秋七月 立黥布爲淮南王注+高帝更名九江爲淮南國, 廬江‧衡山‧豫章皆屬焉.하다
◯ 八月 初爲算賦하다
民年十五以上至五十六 出賦錢호대 人百二十爲一算하야 治庫兵車馬하다
北貉燕人 致梟騎助漢注+貉, 與貊同, 胡名, 在東北方. 一說, 貉, 卽濊也. 梟, 音澆. 最勇健曰梟.하다
◯ 漢王 令軍士死者 吏爲棺斂하야 送其家注+棺, 工喚切. 斂, 力贍切. 與作衣衾而斂尸於棺也.하다
◯ 漢 以周昌爲御史大夫注+昌, 苛從弟也.하다
◯ 楚與漢約하야 中分天下하고 九月 歸太公呂后於漢하고
解而東歸하다
項羽自知少助食盡하고 韓信 又進兵擊之러니
遣侯公說羽하야 請太公한대 羽乃與漢約하야 中分天下하야 鴻溝以西 爲漢하고 以東 爲楚注+杜佑曰 “鄭州滎陽縣西有鴻溝.”하고 九月 歸太公呂后하고 解而東歸어늘
漢王 欲西歸러니 張良陳平 曰 漢 有天下大半하고 楚兵 飢疲하니 今釋弗擊하면 養虎自遺患也라한대 從之하다
程子曰
張良 才識 高遠하야 有儒者氣象이로되 而亦以此 說漢王하니 則其不義甚矣로다


무술년(B.C. 203)
서초패왕西楚霸王 4년, 한왕漢王 4년이다.
[綱] 겨울 10월에 나라 한신韓信나라를 습격하여 깨트리니, 제왕齊王역이기酈食其하여 죽이고 고밀高密로 도망하였다.注+역이기酈食其가 자기를 팔아넘겼다고 하여 팽한 것이다. 고밀현高密縣교서膠西에 있다. 나라 선제宣帝 본시本始 원년(B.C. 73)에 고밀국高密國이 되었다.
[綱] 한왕漢王이 다시 성고成皐를 취하고 나라와 함께 모두 광무廣武에 군사를 주둔하였다.
[目] 나라가 자주 나라와 싸우려고 도발을 하였지만 조구曹咎가 나와 응대하지 않으니 사람을 시켜 욕을 하였다.注+(도전하다)는 도료徒了이다. “도전挑戰”은 적을 도발하여 싸우기를 구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것을 치사致師라고 하였다.
조구가 화가 나서 군사들로 사수汜水를 건너게 하였는데 반쯤 건너갔을 때 나라가 격파하니 조구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注+의 두 가지 음이 있다. 신찬臣瓚이 말하기를, “지금의 성고성成皐城 동쪽 사수汜水가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한왕漢王이 병사를 이끌고 하수河水를 건너 다시 성고成皐를 빼앗고 광무廣武에 군대를 주둔시켜서 오창敖倉의 곡식을 차지하였다.注+의 《서정기西征記》에 이르기를, “삼황산三皇山에는 두 개의 성이 있는데, 동쪽은 동광무성東廣武城이고 서쪽은 서광무성西廣武城이며, 각각 산의 정상이 있고 서로 간의 거리가 100보이다. 변수汴水광무廣武의 사이를 지나서 동남쪽으로 흘러가는데 지금은 물이 말라서 물이 없다. 성에는 각각 3면이 있으며, 오창敖倉의 서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항우가 그 소식을 듣고 또한 군사를 이끌고 광무로 돌아와 서로 대치하였다.
[目] 나라가 식량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도마를 높이 만들고, 그 위에 을 앉혀 놓고는注+는 음이 인데, 고기를 담는 것이다.한왕漢王에게 통고하기를 “지금 빨리 항복하지 않으면 내가 태공을 삶아 죽이겠다.”라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내가 너와 함께 회왕懷王을 섬겨서 명을 받아 형제가 되기로 약속을 하였으니,注+은 너라는 말이다. 내 아버지가 곧 네 아버지이다.
꼭 네 아버지를 삶아 죽이려거든 내게도 국 한 그릇 나누어주면 다행이겠다.”注+도 너라는 말이다. 와 같은 자이니, 옛날에 국을 에 담았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항우項羽가 화가 나서 죽이려고 하였는데, 항백項伯이 말하기를 “천하를 도모하는 자는 가정을 돌보지 않으니, 죽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단지 재앙만 더할 뿐이다.”注+는 다만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항우가 한왕에게 말하기를 “천하가 몇 년 동안 흉흉한 것은 한갓 우리 두 사람 때문이니,注+허용許容이고 또 상성上聲이다. “흉흉匈匈”은 분잡하고 어지럽다는 뜻이다. 원컨대 왕과 한번 싸워서 자웅을 결판내서 천하의 부자父子된 사람에게 부질없는 고통을 주지 않고자 한다.”라고 하자,
왕이 웃으며 사절하기를 “내가 차라리 지혜를 다툴지언정 힘으로 싸우지는 않겠다.”라고 거절하였다.
[目] 그리고 항우項羽의 잘못을 하나하나 따지기를, “항우가 약속을 어기고 나를 나라의 왕으로 삼은 것이 첫 번째 죄이고,
천자의 명령이라 속이고 경자관군卿子冠軍(송의宋義)을 죽인 것이 두 번째 죄이고,
나라를 구하고도 보고하지 않고 멋대로 제후를 겁박하여 함곡관函谷關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 세 번째 죄이고,
나라 궁실을 태우고 시황제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쳐서 그 재물을 제 것으로 한 것이 네 번째 죄이고,
항복한 나라 자영子嬰을 죽인 것이 다섯 번째 죄이고,
나라 자제 20만 명을 속여서 신안新安에 생매장한 것이 여섯 번째 죄이고,
여러 장수들은 좋은 땅의 왕을 시키고 옛 군주를 몰아낸 것이 일곱 번째 죄이고,
의제義帝를 몰아내고 스스로 팽성彭城에 도읍하여 한왕韓王의 땅과 지방을 빼앗은 것이 여덟 번째 죄이고,
사람을 시켜 강남江南에서 몰래 의제義帝를 죽인 것이 아홉 번째 죄이고,
정치를 하되 공평히 하지 않고 약속을 주관하고도 지키지 않아 천하에 용납되지 않는 대역무도한 것이 열 번째 죄이다.
나는 의병義兵으로 제후를 따라서 잔적殘賊을 죽이는 것이니, 그대에게 형벌을 받은 죄인을 시켜서 공을 공격하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힘들게 내가 그대와 싸운다는 말인가.”注+형여죄인刑餘罪人”은 경시하고 천대한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目] 항우項羽가 크게 노하여 쇠뇌를 매복시켰다가 한왕漢王을 쏘아서 가슴에 맞추었다.
그러자 왕이 발을 문지르며 말하기를 “저 종놈이 내 발가락을 맞추는구나.”라고 하였다.
왕이 상처로 인하여 앓아누웠는데,注+은 음이 인데 문지르는 것이다. 가슴을 다쳤는데 발을 문지른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이다. 초장初莊이니 다쳤다는 뜻이다.장량張良이 억지로 일어나 순행하며 군사들을 위로하고 사졸들을 안심시키라고 청하니,注+(순행하다)과 (위로하다)는 모두 거성去聲이다. 왕이 따랐다.
그러다 병이 심해져서 그 때문에 급히 성고成皐로 달려 들어갔다.
[綱] 나라가 나라를 구원하였는데, 11월에 나라 한신韓信이 격파하여 그 장수인 용저龍且를 죽이고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포로로 잡았다.
전횡田橫이 스스로 서서 제왕齊王이 되었다가 싸움에 패하여 도망하자 한신이 드디어 나라 땅을 평정하였다.
[目] 나라가 용저龍且로 하여금 군사 20만을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는데,注+자여子余이다. 어떤 이가 용저에게 말하기를, “나라 병사들은 먼 곳에서 달려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으니 그 예봉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는 그대로 자기가 살던 땅에 있어서 싸울 마음이 없으니 군사가 쉽게 패하여 흩어질 것입니다.注+사졸은 집이 가까우면 진격할 적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마음이 없고, 후퇴할 적에 돌아가서 의탁할 곳이 있으면 쉽게 싸움에 패하여 흩어진다.
따라서 성벽을 굳게 하여 웅거하고 제왕齊王으로 하여금 항복한 성에 심복을 보내어 끌어들이게 하십시오.注+신신信臣”은 항상 가까이 두고 신임하는 신하이다.
그러면 항복한 성에서는 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가 와서 구해주면 반드시 나라를 배반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 병사는 객지에 머물게 되어 그 형세상 식량을 얻을 곳이 없으니 싸우지 않고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目] 그러자 용저龍且가 말하기를, “내가 한신韓信의 사람됨을 아는데 상대하기가 쉽다.
빨래하는 아낙에게 밥을 얻어먹었으니 스스로 벌어먹을 대책이 없으며, 남의 바짓가랑이로 사이로 기어가 모욕을 당하였으니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용기는 없는 사람이다.
두려워할 것도 못 된다.
나라를 구원하는데 싸우지도 않고 한신을 항복시킨다면 내가 무슨 공이 있겠는가?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의 아래에 자가 있다.
지금 싸워서 그를 이기게 되면 나라의 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注+나라 땅의 반을 마땅히 봉지로 받아야 한다고 스스로 말한 것이다.라고 하고, 진군하여 나라 군사와 유수濰水를 끼고서 진을 쳤다.注+는 음이 이다. 《지리지地理志》에 “유수濰水낭야군琅邪郡 기옥산箕屋山 동북쪽에서 나와 대창臺昌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目] 한신韓信이 밤에 사람을 시켜 모래주머니를 만들어서 상류를 막아놓고,注+낭사囊沙”는 주머니에 모래를 채운 것이다. 아침에 강을 건너가 용저龍且를 공격하다가 거짓으로 패한 체하며 돌아서서 도주하였다.
용저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한신이 겁쟁이인 줄을 알겠다.”라고 하며 추격하였는데, 한신이 강을 막았던 모래주머니를 터놓게 하니, 물이 크게 닥쳐와서 용저의 군사 태반이 건너지 못하였다.注+는 음이 이다. 대개 수를 셀 때 있어 3분의 2는 태반太半이라 하고, 3분의 1은 소반少半이라 한다.
그러자 한신이 급히 공격하여 용저를 죽이고 성양城陽까지 추격하여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포로로 잡았다.注+여기서 말하는 성양城陽은 곧 나라 성양국城陽國의 땅이다.
그러자 전횡田橫이 스스로 올라서 제왕齊王이 되었는데, 관영灌嬰이 공격하여 패주시키고 나라 땅을 모두 평정하였다.
[綱] 나라가 장이張耳를 세워서 조왕趙王으로 삼았다.
[綱] 한왕漢王역양櫟陽으로 돌아와 4일을 머물고 다시 광무廣武로 갔다.
[綱] 봄 2월에 나라가 한신韓信을 세워 제왕齊王으로 삼고 그 병사를 징발하여 나라를 공격하였다.
[目] 한신韓信이 사람을 보내어 한왕漢王에게 말하기를 “나라는 거짓말을 잘하고 변화가 많아 자주 번복하는 나라입니다.
청컨대 제가 임시 왕이 되어 진압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한왕이 크게 노하여 꾸짖기를 “내가 이곳에서 곤궁하게 지내며 아침저녁으로 네가 오길 바라고 있는데, 스스로 왕이 된단 말이냐.”라고 하니, 장량張良진평陳平이 한왕의 발을 꾹 밟아 제지하고 귀에 대고 말하기를注+은 밟는다는 뜻이다.나라가 지금 불리하니 어찌 한신이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계기로 왕으로 세워서 스스로 지키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고가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한왕이 즉시 깨닫고는 다시 꾸짖기를 “대장부가 제후를 평정하고 곧바로 진짜 왕이 되는 것이니 무엇 때문에 임시로 한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目] 2월에 장량張良을 보내어 인수를 가지고 가서 한신韓信제왕齊王으로 세우고는 그 병사를 징발하여 나라를 공격하였다.
항우項羽용저龍且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크게 두려워하여, 무섭武涉을 한신에게 보내어 자신과 강화講和하여 천하를 삼분三分하는 형세를 이루자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한신이 거절하며 말하기를 “신이 항왕項王을 섬길 때에는 벼슬이 낭중郎中에 지나지 않고 지위는 창잡이를 넘지 못하였습니다.注+낭중郞中은 숙위하며 창을 잡고 있는 사람이다.
말을 해도 듣지 않았고 계책을 내어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배반하고 나라로 돌아갔는데, 한왕漢王은 저에게 상장군上將軍의 인수와 수만 명의 군사를 주었으며, 옷을 벗어 나에게 입히고 자신의 음식을 밀어 나에게 먹였으며, 말을 하면 들어주었고 계책을 내면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注+〈“해의이아解衣衣我” 중에〉 아래 (입히다)는 어기於旣이고, 〈“퇴식사아推食食我” 중에〉 아래 (먹이다)는 로 읽는다.
무릇 남이 나를 깊이 신임하고 가까이하는데 내가 그를 배신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니, 비록 죽더라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대신하여 항왕에게 말씀해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目] 무섭武涉이 떠나간 후에 괴철蒯徹이 천하의 저울대(권력)가 한신韓信에게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한신을 설득하기를 “천하가 처음 봉기하였을 때는 오직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에만 생각이 있었습니다.注+〈“우재망진이이憂在亡秦而已”는〉 뜻이 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있으니, 근심하는 바는 오직 이것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나라와 나라가 다투어서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간장肝臟과 쓸개가 땅에 널려 있게 하고 들판에 널려진 해골은 그 수를 셀 수가 없습니다.
나라 사람들은 승승장구하여 그 위세가 천하에 진동하지만 서산西山에 가로막혀서 앞으로 나가지 못한 지가 3년이 되었습니다.
한왕漢王을 점거하고 험준한 산세와 황하를 끼고 하루에 몇 번을 싸우는데도 한 치의 땅도 넓히지 못하니, 이것이 이른바 지혜와 용기가 모두 곤궁해진 경우입니다.
지금 두 임금의 명운이 족하에게 달려 있으니, 둘 다 이롭게 하여 모두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천하를 삼분하여 솥의 다리처럼 버티면 그 형세가 누구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족하는 강한 나라에 웅거하여 나라와 나라를 따르게 하십시오.注+(따르다)은 본음대로 읽는다. 나라와 나라로 하여금 자기에게 복종하게 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백성의 소원에 따라서 서쪽으로 향하여 〈나라와 나라의 싸움을 그치게 하여〉 백성들을 살리자고 두 임금에게 청한다면 천하가 바람에 쓸리듯 따를 것입니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나라가 동쪽에 있었던 까닭에 서쪽으로 향한다고 말한 것이니, 나라와 나라의 싸움을 그치게 하는 것이다. 사졸들이 죽지 않는 까닭에 목숨을 청한다고 하였다. “풍주風走”는 따르는 것이 마치 바람처럼 빠르다는 말이다.
듣건대 하늘이 주는데도 갖지 않으면 오히려 벌을 받게 되고, 때가 이르렀는데 거사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원컨대 족하는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目] 그러자 한신韓信이 말하기를 “한왕漢王이 나를 매우 후대하니, 내가 어떻게 이익을 따라서 의리를 배신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괴철蒯徹이 말하기를 “처음에 장이張耳진여陳餘가 서로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친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장염張黶진택陳澤(진석)의 일로 다투고 나서는 장이가 마침내 지수泜水의 남쪽에서 진여를 죽이니, 머리와 다리가 잘려서 따로 뒹굴었습니다.
이제 족하가 한왕과의 관계를 반드시 위 두 사람이 친밀했던 것보다 더 굳게 하지는 못할 텐데,注+상여相與”는 서로 더불어 좋은 관계라는 뜻이다. 일은 장염과 진석의 경우보다 더 크고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삼가 족하가 한왕이 반드시 족하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역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注+은 반드시 믿는다는 것이다.
들짐승이 사라지면 사냥개는 솥으로 들어가는 법입니다.
원컨대 족하는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또 용기와 지략이 주인을 두렵게 하는 자는 그 몸이 위태롭고, 공이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줄 수 없습니다.
이제 족하가 주인을 두렵게 하는 위엄을 머리에 이고, 상을 줄 수 없는 공을 옆에 끼고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어디로 돌아가시려 합니까?”注+은 어디로이다.라고 하자, 한신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선생은 쉬도록 하십시오.
내가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目] 며칠 후에 괴철蒯徹이 다시 설득하기를 “무릇 말을 듣는 것은 성공할 조짐이고, 깊이 생각하는 것은 성공의 관건이니,注+은 좋은 계책을 너끈히 듣는다는 것이다. 틀린 말을 듣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도 능히 오래도록 편안한 경우는 없습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는 결단을 속히 하고, 의심하는 자는 일에 해가 되니, 털끝처럼 자잘한 계교를 살피고 천하의 큰 운수를 잃어버려서, 머리로는 진실로 알지만 결단하여 감행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일의 재앙입니다.
무릇 공은 이루기는 어렵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는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우니, 때여! 때여!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注+때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탄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신韓信이 머뭇거리며 차마 나라를 배신하지 못하고, 또 스스로 자신의 공로가 많으니, 나라가 끝내 자신의 나라를 빼앗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마침내 괴철蒯徹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괴철이 떠나서 거짓으로 미친 체하여 무당이 되었다.
[綱] 가을 7월에 나라가 경포黥布를 세워서 회남왕淮南王으로 삼았다.注+고제高帝( 고조高祖)가 구강九江회남국淮南國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니, 여강廬江, 형산衡山, 예장豫章이 모두 이에 속하였다.
[綱] 8월에 나라가 처음으로 정세丁稅산부算賦를 징수하였다.
[目] 백성으로 나이 15세 이상으로부터 56세까지 세금을 내되, 한 사람마다 120을 1으로 하여 병기와 거마를 마련하였다.
[綱] 북맥北貉 지방의 나라 사람들이 날래고 용감한 기병을 보내어 나라를 도왔다.注+과 같으니 오랑캐의 이름으로 동북방에 산다. 일설一說에 “은 바로 이다.”라고 하였다. 는 음이 인데 가장 용감하고 강력한 것을 라고 한다.
[綱] 한왕漢王이 명령을 내려서 관리들로 하여금 군사 중에 죽은 이를 거두어 관에 넣어 그 집에 보내도록 하였다.注+공환工喚이고, (주검)은 역섬力贍이다. 옷과 이불을 만들고 관에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다.
[綱] 나라가 주창周昌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注+주창周昌의 사촌 아우이다.
[綱] 나라가 나라와 천하를 반으로 나누기로 약속하고는注+두우杜佑가 “정주鄭州형양현滎陽縣 서쪽에 홍구鴻溝가 있다.”라고 하였다. 9월에 태공太公여후呂后나라에 돌려보냈다.
그리고 포위를 풀고서 동쪽으로 돌아갔다.
[目] 항우項羽가 스스로 원조는 없고 식량은 떨어진 것을 알았고, 또 한신韓信이 군사를 전진시켜서 공격하였다.
나라가 후공侯公을 보내어 항우를 설득하여 태공太公을 보내달라고 하니, 항우가 나라와 천하를 반으로 나누어 홍구鴻溝 서쪽은 나라로 하고 동쪽은 나라로 하기로 약속하고는, 9월에 태공太公여후呂后를 돌려보내고 포위를 풀고서 동쪽으로 돌아갔다.
한왕漢王이 서쪽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장량張良진평陳平이 말하기를 “나라는 천하의 태반을 가지고 있고 나라 병사는 굶주리고 피곤하니, 지금 풀어주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이는 호랑이를 길러서 스스로 근심을 남기는 것입니다.”라고 하자, 왕이 따랐다.
[目] 정자程子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장량張良은 재주와 식견이 뛰어나고 높아서 유자儒者의 기상이 있었는데, 또한 이런 말로 한왕漢王을 설득하였으니 그 불의한 것이 매우 심하다.”


역주
역주1 戴延之 : 戴祚로 字가 延之이고, 東晉 江東 사람이다. 南朝 宋나라 武帝 劉裕가 後秦을 공격할 때 따라가서 《西征記》를 지었다. 나중에 西戎主簿를 지냈다. 《隋書》 〈經籍志〉에 《甄異傳》과 《西征記》를 저술하였다고 하였다.
역주2 太公 : 漢王의 아버지이다. 太公과 呂后가 項羽에게 사로잡힌 것은 본서 漢王 2년조에 보인다.
역주3 周苛 : 漢王(劉邦)의 內史가 되었다가 御史大夫로 임명되었다. 楚漢 전쟁 때 魏豹, 樅公과 함께 滎陽을 지켰는데, 項羽가 형양을 포위하자 위표가 일찍이 漢나라에 배반했다 하면서 먼저 그를 살해했다. 나중에 항우가 형양을 함락하자 포로로 잡혔다. 항우가 항복을 권하면서 上將軍으로 임명하겠다고 제안했으나 항복하지 않다가 죽임을 당했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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