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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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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辰年(B.C. 65)
병진년(B.C. 65)
元康元年이라
[綱] 나라 중종中宗 효선황제孝宣皇帝 원강元康 원년이다.
春正月 注+陵, 在長安南五十里.하다
봄 정월에 처음으로 황제의 수릉壽陵(예비 능)인 두릉杜陵을 만들었다.注+능은 장안長安 남쪽 50리 지점에 있었다.
◑ 三月하다
[綱] 3월에 사면赦免하였다.
以鳳皇集, 甘露降也注+五經通義曰 “和氣津凝爲露, 其濃甘者曰甘露.”
[目] 봉황이 내려앉고 감로甘露가 내렸기 때문이다.注+오경통의五經通義》에 “온화한 기운이 응집되어 이슬이 되니, 진하고 단 것을 감로甘露라 한다.” 하였다.
夏五月 追尊悼考爲皇考하고 立寢廟하다
[綱] 여름 5월에 도고悼考를 추존하여 황고皇考라 하고 침묘寢廟를 세웠다.
有司復言悼園 宜稱尊號曰皇考라하니 於是 立廟하다
[目] 유사有司가 다시 아뢰기를 “도원悼園의 존호를 높여 황고皇考라 해야 합니다.” 하니, 이에 침묘寢廟를 세웠다.
范鎭曰注+鎭, 宋成都人.
[目] 범진范鎭이 말하였다.注+범진范鎭나라 성도成都 사람이다.
宣帝於昭帝爲孫하니 則稱其父爲皇考可也
선제宣帝소제昭帝에게 손자뻘이 되니, 그렇다면 자기 아버지를 칭하여 황고皇考라 하는 것이 괜찮다.
이나 議者終不以爲是者 以其以小宗而合大宗之統也니라
그러나 의논하는 자들이 끝내 이것을 옳다고 여기지 않은 것은 소종小宗대종大宗정통正統에 합쳤기 때문이다.”
程子曰
[目] 정자程子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爲人後者 謂其所後者하여 爲父母하고 而謂其所生者하여 爲伯叔父母라하니
“남의 후사(양자)가 된 자는 자기의 양부모를 일러 부모라 하고, 자기를 낳아주신 생부모를 일러 백숙부모(백부와 백모 또는 숙부와 숙모)라 한다.
天地之大義 生人之大倫이니 不可得而變易者也
이는 하늘과 땅의 큰 의리요 인민人民의 큰 윤리이니,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이나 所生之義 至尊至大하니 雖當專意於正統이나 豈得盡絶於私恩이리오
그러나 낳아준 의리가 지극히 높고 크니, 비록 마땅히 온 마음을 정통正統인 양부모에 쏟아야 하나 어찌 사사로운 은혜를 다 끊을 수 있겠는가.
是以 先王制禮 旣明大義하여 降其服以正統緖
이 때문에 선왕이 를 제정할 적에 이미 대의를 밝혀서 을 낮추어 정통正統을 바로잡았다.
이나 不以正統之親疏하고 而皆爲齊衰不杖期以別之하니 則所以明其至重而與諸伯叔父不同也
그러나 정통의 친소를 따지지 않고, 모두 를 하여 구별하였으니, 그렇다면 은혜가 지극히 중하여 백숙부모와 똑같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宣帝稱其所生爲皇考하니 亂倫失禮 固已甚矣 而後之議禮者 又不能推所生之至恩하여 以明尊崇之正禮하고 乃欲奉以高官大國하여 但如期親尊屬故事하니 則亦非至當之論也
선제宣帝가 자기를 낳아주신 생부를 칭하여 황고皇考라 하였으니, 인륜을 어지럽히고 예를 잃음이 진실로 너무 심하고, 후세에 를 의논하는 자들은 또 낳아주신 분의 지극한 은혜를 미루어 존숭尊崇하는 올바른 를 밝히지 못하고, 마침내 높은 관직과 큰 나라로써 받들고자 하여 다만 에 대한 고사와 같이 하려 하였으니, 또한 지극히 합당한 의논이 아니다.
要當揆量事體하여 別立殊稱이니 若曰皇伯叔父某國大王이라하고 而使其子孫으로 襲爵奉祀하면 則於大統 無嫌貳之失이요 而在所生 亦極尊崇之道矣
[目] 요컨대 마땅히 사체事體를 헤아려서 별도로 다른 칭호를 세워야 할 것이니, 예컨대 황백숙부皇伯叔父 모국대왕某國大王이라 칭하고, 그의 자손들로 하여금 작위를 세습하여 제사를 받들게 한다면, 대통大統에 있어서는 두 가지가 되는 혐의의 잘못이 없고, 낳아주신 생부모에 있어서도 존숭하는 를 다하는 것이다.
이나 禮謂爲人後者 爲其父母云者하여 猶以父母稱之 何也
曰 旣爲人後 則所生之父母者 今爲伯叔父母矣
이미 남의 양자가 되었으면 자기를 낳아주신 생부모는 이제 백숙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나 直曰伯叔父母 則無以別於諸伯叔父母而見其爲所生之父母
그러나 다만 백숙부모伯叔父母라고만 칭하면 여러 백숙부모와 구별되지 아니하여, 낳아주신 부모임을 알 수 없다.
其立文 不得不爾 非謂旣爲人後而猶得以父母名其所生之父母也니라
그러므로 글을 씀이 이와 같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이미 남의 양자가 되고서도 여전히 자기를 낳아주신 생부모를 부모라고 불러도 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綱] 경조윤京兆尹 조광한趙廣漢을 죽였다.
趙廣漢 好用世吏子孫, 新進年少者注+言舊吏家子孫, 而其人後出求進, 又年少也.하여 專厲强壯蠭氣하니 見事風生하여 無所回避注+蠭, 與鋒同, 言鋒銳之氣. 陳濟曰 “字旣作蠭, 亦必兼取蠭義. 蓋所用諸年少行事猝暴, 如蠭之群飛螯人, 銳氣不可禦也.” 風生, 言其疾速, 不可當也. 回, 曲也. 無所回避, 言不畏避也.하여 率多果敢之計 莫爲持難注+爲, 去聲. 難, 猶重愼也, 言無有爲之持守重愼者.이러라
[目] 조광한趙廣漢세리世吏(대대로 옥리獄吏가 된 가문)의 자손 중에 신진으로서 나이가 젊은 자들을 등용하기 좋아하여注+〈“세리자손世吏子孫 신진년소자新進年少者”는〉 옛 관리[옥리獄吏]의 집안 자손으로, 뒤늦게 태어나 벼슬하기를 원하고 또 나이가 젊은 사람을 말한다. 오로지 강장强壯예기銳氣를 힘쓰니, 일을 보면 바람이 일어나듯 신속히 처리하여 회피하는 바가 없어서注+과 같으니, 〈“봉기蠭氣”는〉 봉예鋒銳의 기운을 말한다. 진제陳濟는 “글자를 이미 으로 썼으면 또한 반드시 벌의 뜻을 겸하여 취해야 하니, 등용한 여러 소년들의 행하는 일이 벌이 떼 지어 날면서 사람을 갑작스럽게 쏘는 것과 같아 예기銳氣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풍생風生(바람이 일어난다.)”은 빠르고 신속하여 당할 수 없음을 말한다. 는 굽음이니, “무소회피無所回避(회피하는 바가 없다.)”는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음을 말한다. 대부분 과감한 계책이 많고 잡아 지키며 신중히 하는 바가 없었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은 신중이라는 말과 같으니, 위하여 잡아 지키고 신중히 하는 자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以私怨으로 論殺男子榮畜注+初, 廣漢客私酤酒長安市, 丞相吏逐去. 客疑男子蘇賢言之, 以語廣漢, 案賢, 賢父上書訟罪, 廣漢坐貶秩. 疑其邑子榮畜敎令, 以它法論殺畜. 榮, 姓也.이러니 上書言之한대
조광한이 사사로운 원한으로 남자 영축榮畜을 논죄하여 죽였는데,注+처음에 조광한趙廣漢빈객賓客장안長安의 시장에서 사사로이 술을 팔았는데, 승상丞相의 아전이 그를 쫓아내었다. 그 빈객은 소현蘇賢이란 남자가 이것을 관청에 고발했다고 의심하고 조광한에게 말해서 소현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소현의 아버지가 글을 올려 소현에게 죄가 내려진 것이 억울하다고 송사하였으므로 조광한이 이에 걸려 질록秩祿이 깎였다. 조광한은 읍자邑子(고을 사람)인 영축榮畜이 소현을 교사하여 시킨 것이라고 의심하고, 다른 법률로 영축榮畜을 논죄하여 죽였다. 이다.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려 이 일을 황제에게 아뢰었다.
事下丞相, 御史按驗하니 廣漢 疑丞相夫人殺侍婢하여 欲以脅丞相注+丞相傳 “婢有過自絞死, 廣漢疑夫人妬殺之.”이라
이 일을 승상丞相어사御史에 회부하여 조사하게 하니, 조광한은 승상丞相(위상魏相)의 부인이 시비侍婢를 살해했다고 의심하여 이 일을 가지고 승상을 협박하고자 하였다.注+한서漢書》 〈승상전丞相傳(위상전魏相傳)〉에 “시비侍婢가 잘못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매 죽었는데, 조광한趙廣漢승상丞相의 부인이 질투하여 그녀를 죽였다고 의심하였다.” 하였다.
乃將吏卒하고 入丞相府하여 召其夫人하여 跪庭下受辭하고 收奴婢十餘人去注+受辭, 受其對辭也.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관리와 병사를 거느리고 승상부丞相府로 들어가서 승상의 부인을 불러 뜰아래에 무릎을 꿇게 하고 심문하여 자백을 받고는, 승상의 노비 10여 명을 체포하여 갔다.注+수사受辭”는 그의 대답하는 말을 받은 것이다.
丞相 上書自陳이어늘 事下廷尉治하니 不如廣漢言이라
승상이 글을 올려 이를 직접 아뢰자, 이 일을 정위廷尉에 회부하여 다스리게 하였는데, 조광한의 말과 같지 않았다.
惡之하여 下廣漢廷尉하니 吏民守闕號泣者 數萬人이로되 竟坐要斬注+守, 如字, 謂守待而不去也.하다
은 그를 미워해서 조광한을 정위에게 회부하여 죄를 다스리게 하니, 관리와 백성들 중에 대궐을 지키며 울부짖는 자가 수만 명이었으나, 끝내 죄에 걸려 요참형腰斬刑을 당하였다.注+
廣漢 廉明하여 威制豪彊하니 小民 得職이라 百姓 追思歌之注+得職, 各得其常所也.러라
조광한은 청렴하고 분명하여 위엄으로 호강豪彊한 자들을 제압하여, 백성들이 살 곳을 얻었으므로 그를 추모하여 노래하였다.注+득직得職”은 각각 떳떳하게 살 곳을 얻음을 이른다.
하여 爲泗水太傅注+泗水, 故東海郡地, 武帝封常山憲王舜子商, 始別爲國. 時, 商孫勤王綜嗣.하다
[綱] 소부少府 송주宋疇를 좌천하여 사수왕泗水王 태부太傅로 삼았다.注+사수泗水는 옛 동해군東海郡의 땅이니, 무제武帝상산헌왕常山憲王 유순劉舜의 아들 유상劉商을 봉하여 처음으로 따로 나라를 만들었다. 이때에 유상의 손자인 근왕勤王 유종劉綜이 뒤를 이었다.
疇議鳳皇下彭城러니 未至京師하여 不足美하다
[目] 송주宋疇는 봉황새가 팽성彭城에 내려앉았으나, 경성京城(장안長安)에 이르지 아니하여 아름다움이 될 수 없었다고 비난하였으므로 좌천시킨 것이다.
以蕭望之爲平原太守라가 復徵入守少府하다
[綱] 소망지蕭望之평원태수平原太守로 삼았다가, 다시 불러들여 수소부守少府로 삼았다.
選博士諫官通政事者하여 補郡國守相할새 以諫大夫蕭望之 爲平原太守하니
[目] 박사博士간관諫官 중에 정사(지방의 행정)에 달통한 자를 선발하여 군국郡國으로 보임할 적에 간대부諫大夫 소망지蕭望之평원태수平原太守로 삼으니,
望之上疏曰 陛下哀愍百姓하사 出諫官以補郡吏하시니이다
소망지가 글을 올려 아뢰기를 “폐하께서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간관을 내보내어 의 관리로 보임하셨습니다.
이나 朝無諍臣이면 則不知過리니 所謂憂其末而忘其本者也니이다 乃徵望之하여 入守少府注+漢法, 凡言守者, 滿歲爲眞.하다
그러나 조정에 간쟁하는 신하가 없으면 군주가 잘못을 알지 못할 것이니, 이른바 ‘그 끝을 근심하여 그 근본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하니, 은 마침내 소망지를 불러 들어와 수소부守少府가 되게 하였다.注+나라 법에 무릇 라고 말한 것은 만 1년이 되면 이 되었다.
以尹翁歸爲右扶風하다
[綱] 윤옹귀尹翁歸우부풍태수右扶風太守로 삼았다.
翁歸爲人 公廉明察이라
[目] 윤옹귀尹翁歸는 인품이 공정公正하고 청렴하고 분명하게 살폈다.
爲東海太守하여 過辭廷尉于定國하니 定國 欲託邑子하여 與翁歸語終日호되 不敢見注+定國家在東海郡. 邑子, 謂同邑之人也, 欲以屬託翁歸用之. 見, 形甸切. 言不敢令邑子出見翁歸.하고 曰 此賢 將汝不任事也 又不可干以私注+此賢, 指翁歸也. 任, 堪也. 干, 求也. 翁歸旣去, 定國乃謂邑子云.라하니라
동해태수東海太守가 되어서 정위廷尉 우정국于定國을 방문하여 작별 인사를 하니, 우정국은 읍자邑子(같은 고을 사람)를 그에게 부탁하고자 하여 윤옹귀와 종일토록 말했으나 감히 그 읍자邑子를 나와 뵙게 하지 못하고,注+우정국于定國의 집이 동해군東海郡에 있었다. 읍자邑子는 같은 고을의 사람을 이르니, 윤옹귀尹翁歸에게 부탁하여 그를 등용하고자 한 것이다. (뵙다)은 형전形甸이니, 〈“불감견不敢見”은〉 감히 읍자邑子로 하여금 나와 윤옹귀尹翁歸를 뵙게 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읍자邑子에게 이르기를 “이 현자賢者(윤옹귀尹翁歸)는 장차 그대가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길 것이요, 또 사사로운 일로 청탁할 수가 없다.”注+차현此賢”은 윤옹귀尹翁歸를 가리킨다. 은 감당함이고 은 요구한다는 뜻이다. 윤옹귀尹翁歸가 이미 떠나가자, 우정국于定國이 마침내 읍자邑子에게 말한 것이다. 하였다.
郡中吏民 賢不肖 及姦邪罪名 盡知之하고 縣各有記籍하여 自聽其政注+言決斷諸縣姦邪之事, 不委令長也.하여
윤옹귀는 안의 관리와 백성들의 어질고 불초함과 간사한 죄명을 모두 다 알았고, 마다 각각 기록한 장부가 있어서 직접 정사를 다스렸다.注+〈“자청기정自聽其政(직접 정사를 다스렸다.)”은〉 여러 의 간사한 일을 결단할 적에 이나 에게 맡기지 않았음을 말한다.
有急名則少緩之하고 吏民小解 輒披籍注+解, 讀曰懈, 怠也. 披籍, 披有罪者籍也.하여 取人 必於秋冬課吏大會中及出行縣하여 不以無事時하니
그리하여 너무 급하게 몰아붙인다는 말이 있으면 다소 늦추어주고, 관리와 백성들이 조금 해이해지면 번번이 죄인의 장부를 펼쳐注+로 읽으니, 태만함이다. “피적披籍”은 죄가 있는 자의 장부를 펼쳐 보는 것이다. 죄인을 잡아가되, 반드시 가을과 겨울에 관리들을 고과하는 큰 모임이나 을 순행할 적에 하고, 일이 없을 때에 하지 않았다.
其有所取也 以一警百注+於大會之中及行縣時, 則收取罪人以警衆也. 行, 去聲, 下改行ㆍ以行同.이라
그리하여 죄인을 잡아갈 때에 한 사람으로 백 명을 징계하였다.注+사람들이 크게 모이는 가운데나 을 순행할 적에 죄인을 처벌하면, 죄인 한 명을 잡아 여러 사람을 징계할 수 있다. (행실)은 거성去聲이니, 아래 “개행改行”과 “이행以行”도 같다.
吏民 皆服하여 改行自新이러라
이에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복종하여 행실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졌다.
以治郡高第 入爲扶風한대 選用廉平하여 以爲右職하여 接待以禮하고 好惡同之하며 其負翁歸 罰亦必行하며
[目] 윤옹귀尹翁歸을 다스린 높은 치적으로 들어와 부풍태수扶風太守가 되었는데, 청렴하고 공정한 자를 선발하여 등용해서 높은 관직을 맡겨 로써 접대하고 좋고 싫음을 함께하였으며, 윤옹귀를 배신하면 반드시 벌도 시행하였다.
緩於小弱하고 急於豪彊하니 課常爲三輔最 其在公卿間 淸潔自守하여 語不及私
법을 적용하기를 작고 약한 자에게는 느슨히 하고 호강豪彊한 자에게는 급하게 하니, 고과考課가 항상 삼보三輔 지방의 으뜸이었고, 공경公卿 사이에 있을 적에 청렴함과 깨끗함으로 자신을 지켜서 말이 사사로움에 미치지 않았다.
이나 溫良謙退하여 不以行能驕人이라 尤得名譽하니라
그러나 품성이 온순하고 착하고 겸손하여 행실과 재능을 가지고 남에게 교만을 떨지 않았으므로 더욱 명예를 얻었다.
[綱] 사차莎車가 배반하므로 위후衛候 풍봉세馮奉世황명皇命을 사칭하고 여러 나라의 군대를 징발하여 격파하니, 풍봉세를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삼았다.
令群臣으로 擧可使西域者하니 前將軍韓增 擧馮奉世어늘
[目] 이 신하들로 하여금 서역西域에 사신 보낼 만한 자를 천거하게 하니, 전장군前將軍 한증韓增풍봉세馮奉世를 천거하였다.
以衛候使持節하여 送諸國客하여
그리하여 그를 위후衛候로 삼아 부절符節을 가지고 여러 나라의 빈객(사신)을 전송하게 하였다.
至伊循城注+衛候, 官名.하다 故莎車王弟呼屠徵 與旁國으로 共殺其王萬年及漢使者하고 自立注+萬年, 莎車王名.하여 揚言北道諸國 已屬匈奴注+揚言, 謂宣揚其言於外也.라하더니
풍봉세가 이순성伊循城에 이르렀는데,注+위후衛候는 관직 이름이다. 마침 옛 사차왕莎車王(만년萬年)의 아우 호도징呼屠徵이 이웃 나라와 함께 왕 만년萬年나라의 사자使者를 살해하고, 스스로 즉위하여注+만년萬年사차왕莎車王의 이름이다. 소문을 퍼뜨리기를, “북도北道의 여러 나라가 이미 흉노匈奴에 소속되었다.”注+양언揚言”은 이 말을 밖에 널리 알림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於是 攻劫南道하여歃盟畔漢하니 從鄯善以西 皆絶不通이라
이때에 호도징이 남도南道를 공격하고 위협하여 나라를 배반하기로 맹약하니, 선선鄯善 이서以西 지방이 모두 길이 끊기고 통하지 못하였다.
奉世計以爲不亟擊之 則莎車日彊하여 其勢難制하여 必危西域이라하여
풍봉세가 ‘빨리 공격하지 않으면 사차莎車가 날로 강성해져서 그 형세가 제압하기 어려워 반드시 서역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遂以節諭告諸國하고 發其兵하여 進擊莎車하여 攻拔其城하니 莎車王 自殺이라
마침내 부절符節을 가지고 여러 나라를 효유曉諭하여 군대를 징발해서 사차를 진격하여 그 성을 함락하니, 사차왕(호도징)이 자살하였다.
傳首長安하고 更立他昆弟子爲王하니 諸國悉平이어늘
풍봉세는 그의 수급을 파발마로 장안長安으로 보내고, 다시 그 형제의 아들을 세워 왕으로 삼으니, 여러 나라가 모두 평정되었다.
奉世以聞하다
이에 풍봉세가 이를 보고하였다.
帝召見韓增하고 曰 賀將軍所擧 得其人하노라 議封奉世할새
[目] 황제는 한증韓增을 불러 만나보고 말하기를 “장군의 천거로 훌륭한 사람을 얻은 것을 축하하노라.” 하고, 풍봉세馮奉世로 봉할 것을 의논하였다.
丞相, 將軍 皆以爲可라호되 獨蕭望之以爲
이때 승상丞相과 장군은 모두 좋다고 하였으나, 유독 소망지蕭望之만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奉世奉使有指어늘 而擅矯制發兵하니 雖有功效 不可以爲後法注+奉使有指, 謂本爲送諸國客.이라
“풍봉세가 사명使命을 받들고 갈 적에 〈빈객을 전송한다는〉 명목名目이 있었는데, 제멋대로 황명皇命을 사칭하여 군대를 징발하였으니, 비록 공로가 있으나 후세의 법으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注+봉사유지奉使有指”는 본래 여러 나라의 빈객을 전송하기 위한 것임을 이른다.
卽封奉世하면 開後奉使者利하여 要功萬里之外하여 爲國家生事於夷狄하리니 漸不可長注+爲, 去聲.이라한대
만일 풍봉세를 봉한다면 후일 사명을 받든 자들의 이익을 열어주어 만 리의 밖에서 공을 세우려고 해서 국가를 위해 오랑캐에게 일을 만들 것이니, 이러한 풍조를 조장해서는 안 됩니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乃以爲光祿大夫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풍봉세를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삼았다.
역주
역주1 初作杜陵 : “‘初’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늦다는 말이다. 恭哀(許皇后의 시호)의 后를 南園에 장례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황제의 壽陵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宣帝가 즉위한 지 10년에 처음으로 杜陵을 만들었으면 ‘初’라고 쓰고, 世祖(光武帝)가 즉위한 지 25년에 처음으로 壽陵을 만들었으면 ‘初’라고 쓰고, 明帝가 즉위한 지 15년에 처음으로 壽陵을 만들었으면 ‘初’라고 쓴 것이다.[書初 何 緩辭也 恭哀后之葬南園 久矣 於是始作治焉 是故宣帝卽位十年 始作杜陵則書初 世祖卽位二十五年 始作壽陵則書初 明帝卽位十五年 始作壽陵則書初]” 《書法》
역주2 齊衰(자최)不杖期 : 자최복에 喪杖을 짚지 않는 期年服을 이른다. 원래 친부와 양부에게는 斬衰三年服을, 친모와 양모에게는 齊衰三年服을 입는데, 三年服에는 모두 喪杖이 있다. 그러나 양자를 갔을 경우 생부모에게 모두 강등하여 齊衰不杖期를 입는다. 喪杖은 상주의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것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喪杖이 있느냐와 없느냐에 따라 喪服의 중하고 가벼움이 판별되었다.
역주3 期親의 尊屬 : 期親은 期年服을 입는 친족이며, 尊屬은 높은 분으로, 祖父母와 伯叔父母가 여기에 해당된다.
역주4 남의……것이다 : 여기에서 말한 것은 조카가 伯叔父母에게 양자 갔을 경우를 가정하여 말한 것이다. 양자는 堂叔이나 再堂叔, 그 이상의 먼 친족에게도 入養되는데, 이때에는 양가의 寸數를 따지지 않고 자식을 낳아준 생부모에게는 모두 伯叔父母의 例를 따라 服을 입는다.
역주5 殺京兆尹趙廣漢 : “‘죽였다.[殺]’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宣帝가 지나쳤다고 여긴 것이다. 《周官(周禮)》에 죄인이 여덟 가지에 해당할 경우 평의하여 죄를 감면하였는데, 여기에 ‘어진 자’와 ‘능한 자’가 해당되었으니, 趙廣漢과 韓延壽로 말하면 ‘능하다’고 이를 만하였다. 비록 죄가 있었으나 어찌 죽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資治通鑑綱目》에 심하게 여겨서 ‘殺’이라고 쓴 것이다.[書殺 何 甚帝也 周官八議 議賢議能 若廣漢延壽 可謂能矣 雖有罪 豈足以死哉 故綱目甚之 書殺]” 《書法》
역주6 守는……이른다 : 守는 本音이 지키고 보살핀다는 뜻으로 上聲인 有韻에 속하지만, 官名인 郡守의 경우에는 去聲인 宥韻에 속한다. 우리 음에는 모두 ‘수’로 읽으나, 중국의 음에 있어서는 약간 차이가 있으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7 貶少府宋疇 : “少府에서 폄출되었을 뿐인데 어찌하여 이 일을 썼는가? 宋疇를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이보다 앞서 ‘鳳凰이 내려앉았다.’고 쓴 것이 3번이었으나 이것을 비판한 자가 있지 않았는데, 이때 봉황이 내려앉자 송주가 홀로 비난하였으니, 特立한 선비라고 이를 만하다. 《資治通鑑綱目》에서 봉황이 彭城에 내려앉은 일은 쓰지 않고 송주를 폄출한 일을 쓴 것은 그의 의논을 훌륭하다고 인정한 것이다.[自少府貶耳 何以書 予疇也 先是書鳳凰集三 未有議之者 於是鳳凰下彭城 疇獨非之 可謂特立之士矣 綱目於鳳凰下彭城 不書 書貶疇 予其議也]” 《書法》
역주8 莎車叛……光祿大夫 : “皇命을 사칭[矯]하여 비록 배반한 자를 토벌하였으나 반드시 ‘矯’라고 썼으니, 이는 백성들에게 군주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의 編修는 군주와 신하의 분별을 밝혔을 뿐이다.[矯制雖討叛 必書矯 示民有君也 綱目之修 君臣之分而已矣]” 《書法》
“莎車를 ‘叛’이라고 썼으니 죄가 없지 않고, 馮奉世가 이를 격파하였으니 功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矯’라는 한 글자를 끝내 면할 수가 없었으니, 그 경중을 저울질하여 書法을 공정히 하면 功과 罪가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莎車書叛 不爲無罪 奉世破之 不爲無功 然矯之一字 終不可得而免也 權其輕重而公其書法 則功罪見矣]” 《發明》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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