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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5)

자치통감강목(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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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강목(1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興寧元年이라
秦甘露五 燕建熙四年이라
春三月 하다
太妃薨于琅邪第하니 帝就第治喪하고 詔會稽王昱하여 總内外衆務하다
帝欲爲太妃服三年注+① 爲, 去聲.한대 僕射江虨 啓 於禮應服緦麻注+② 虨, 統之子也. 虨, 逋閑切. 周禮, 王爲諸侯緦․縗, 弁而加環絰. 又禮爲人後者, 爲之子, 故爲所後, 服斬衰三年, 而降其父母期. 虨以爲應服緦者, 蓋以帝入後大宗, 則周氏者, 琅邪之母, 當以服諸侯者服之也. 厭, 於葉切, 厭降, 屈抑也. 嚴, 尊也.니이다
帝猶欲服期어늘 虨曰 厭屈私情 所以上嚴祖考라한대 乃服緦麻하다
夏五月 加桓溫大司馬都督中外諸軍錄尙書事하다
溫以王坦之爲長史하니 坦之 述之子也
又以郗超爲參軍하고 王珣爲主簿하고 毎事 必與二人謀之하니 府中 爲之語曰 髯參軍, 短主簿 能令公喜하고 能令公怒注+① 髯參軍․短主簿, 以超多髯而珣短也.라하니라
氣槪高邁하여 罕有所推하되 與超言 常自謂不能測이라하여 傾身待之하니 超亦深自結納이러라
導之孫也 與謝玄으로 皆爲溫掾하니 俱重之하여 曰 謝掾 年四十 必擁旄杖節이요 王掾 當作黑頭公이니 皆未易才也注+② 擁旄杖節, 言當方面也. 未易, 言難得也.라하니 安兄奕之子也
秋八月 有星孛于角, 亢注+① 角, 二星. 左角爲理, 主刑. 右角爲將, 主兵. 亢四星, 爲廟庭聽政之所. 角․亢․氐, 鄭․兗州分.하다
◑ 涼張天錫 弑其君玄靚而自立하다
張玄靚 庶母郭氏 以張天錫專政이라하여 與大臣謀誅之러니 事泄하니
天錫 皆殺之하고 遂弑玄靚하고 自稱涼州牧西平公하니 時年十八이라
遣司馬하여 奉章詣建康請命注+① 司馬, 姓綸, 名騫.하다
汝南太守朱斌 襲燕許昌하여 克之하다


【綱】 晉나라(東晉) 哀皇帝 興寧 원년이다.
【目】 秦나라(前秦) 符堅 甘露 5년이요, 燕나라(前燕) 幽帝 慕容暐 建熙 4년이다.
【綱】 봄 3월에 〈晉나라(東晉)의〉 皇太妃 가 薨하였다.
【目】 太妃가 琅邪王의 저택에서 薨하니, 황제(晉 哀帝)가 낭야왕의 저택에 가서 喪을 치르고 會稽王 司馬昱에게 조령을 내려 内外의 여러 사무를 총괄하게 하였다.
황제가 태비를 위하여 삼년복을 입으려 하자,注+① 爲(위하다)는 去聲이다. 僕射 江虨(강반)이 아뢰기를 “禮에 마땅히 緦麻服을 입어야 합니다.” 하였다.注+② 江虨(강반)은 江統의 아들이다. 虨은 逋閑의 切이다. ≪周禮≫에 하였다. 또 禮에 남의 양자가 된 자는 그의 아들이 되므로 자기 양부를 위하여 斬衰 삼년복을 입고, 자기 생부모를 낮추어 기년복을 입는다. 강반이 “마땅히 시마복을 입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황제가 入後하여 大宗을 이었으면, 周氏는 琅邪王의 어머니이니, 마땅히 제후왕의 복으로 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厭(누르다)은 於葉의 切이니, ‘厭降’은 굽히고 억누름이다. 嚴은 높임이다.
황제가 오히려 期年服을 입으려 하자, 강반이 말하기를 “사사로운 情을 누르고 굽히는 것이 위로 祖考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하자, 마침내 시마복을 입었다.
【綱】 여름 5월에 〈晉나라(東晉)가〉 桓溫에게 大司馬 都督中外諸軍 錄尙書事를 가하였다.
【目】 桓溫은 王坦之를 長史로 삼았는데, 왕탄지는 王述의 아들이다.
또 郗超(치초)를 參軍으로 삼고 王珣을 主簿로 삼고서 모든 일을 이 두 사람과 상의하니, 府 안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구레나루가 긴 參軍과 키가 작은 主簿가 능히 桓公을 기쁘게도 하고 환공을 노하게도 한다.” 하였다.注+① ‘髯參軍’, ‘短主簿’라고 한 것은 郗超는 구레나룻이 많고 王珣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환온은 氣槪가 있고 고매하여 推重하는 사람이 적었으나, 치초와 말할 적에는 항상 스스로 “치초의 인품을 측량할 수 없다.”고 칭찬하여 몸을 기울여 극진히 대우하니, 치초 또한 자연스럽게 깊이 교분을 맺고 정성을 바쳤다.
王珣은 王導의 손자이다. 謝玄과 함께 모두 환온의 掾吏가 되니, 환온이 모두 소중히 여겨 말하기를 “연리 사현은 나이 40에 반드시 지방 장관의 符節을 잡을 것이요, 연리 왕순은 마땅히 검은 머리의 壯年에 上公이 될 것이니, 모두 쉽게 얻을 수 없는 재주이다.” 하였으니,注+② 旄를 잡고 節을 잡는다는 것은 方面을 담당함을 말한 것이다. ‘未易’는 얻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사현은 謝安의 형 謝奕의 아들이다.
【綱】 가을 8월에 孛星이 角宿와 亢宿 사이에 나타났다.注+① 角宿는 두 별인데, 왼쪽 귀퉁이에 있는 것은 죄인을 다스림이 되니 형벌을 주장하고,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것은 장수가 되니 병사를 주관한다. 亢宿 네 별은 廟庭에서 정사를 다스리는 곳이 된다. 角宿, 亢宿, 氐宿는 鄭州와 兗州의 분야이다.
【綱】 涼나라(前涼) 張天錫이 그의 군주 張玄靚을 시해하고 스스로 즉위하였다.
【目】 張玄靚의 庶母 郭氏가 張天錫이 정사를 전횡한다 하여 大臣과 주살할 것을 도모하였는데, 일이 누설되었다.
그리하여 장천석이 그들을 모두 죽이고 마침내 장현정을 시해하고 스스로 涼州牧 西平公이라고 칭하니, 이때 나이가 18세였다.
司馬를 보내어 奏章을 받들어 建康에 이르러 晉나라(東晉)에 命을 내려줄 것을 청하였다.注+① 司馬의 姓은 綸이고, 이름은 騫이다.
【綱】 〈晉나라(東晉)의〉 汝南太守 朱斌(주빈)이 燕나라(前燕) 許昌을 기습하여 점령하였다.


역주
역주1 周氏 : 晉 哀帝의 생모로 隆和 원년(362)에 애제가 그녀를 皇太妃로 삼았다.
역주2 皇太妃周氏薨 : “薨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황제의 어머니여서이다. ≪資治通鑑綱目≫에서 戰國時代에 지역을 나누어 王이 된 것 외에 薨이라고 쓴 것은 제대로 人君 노릇을 이루지 못했거나 폐출된 황제나 폐출된 황후가 아니면 死後에 諡를 帝라고 하고 后라고 한 경우이다. 그렇지 않으면 황제의 어머니이거나 功이 있는 公主인 경우이다. 이것이 아니면 薨이라고 쓴 경우가 없다. 唐나라 會昌 이후에는 方鎭과 같은 大臣도 薨이라고 쓴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書薨 何 帝母也 綱目自戰國分王外 其書薨者 非不成君 廢帝廢后 則諡爲帝爲后者也 不然則帝母也 有功公主也 非是無薨道矣 唐會昌以後 方鎭大臣有書薨者 誤也]” ≪書法≫ 方鎭은 兵權을 잡고 한 지방을 鎭守하는 軍事長官을 말한다.
역주3 王은……가한다 : 緦는 15升을 절반으로 줄여 만든 緦麻이고, 縗는 깃옷이고, 弁은 고깔(두건)이고, 環絰은 머리와 허리에 두르는 띠로, 부모상에 입는 斬縗와는 다른 것인바, 이 내용은 ≪周禮≫ 〈春官 典命〉과 〈夏官 弁師〉에 보인다. 縗는 상복으로 衰와 통한다.

자치통감강목(15) 책은 2022.12.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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