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上이 頗修飾宮室車服하고 外戚許, 史, 王氏貴寵이라
陛下惟思世務하사 將興太平하시니 詔書每下에 民欣然若更生하니이다
臣伏思之
하니 可謂至恩
이나 未可謂本務也
注+言天子如此, 雖於百姓, 爲至恩, 然未盡政務之本也.라
欲治之主 不世出
注+言有時遇之, 不常値.이어늘 公卿
이 幸得遭遇其時
하여 言聽諫從
이라
然이나 未有建萬世之長策하여 擧明主於三代之隆也요 其務在於期會, 簿書, 斷獄, 聽訟而已니 此는 非太平之基也니이다
目
一馬自負三十日食이면 爲米二斛四斗와 麥八斛이요 又有衣裝, 兵器하여 難以追逐이라
虜必商軍進退
注+商, 計度也. 하고 稍引去
하여 逐水草
하여 入山林
이리니
隨而深入이면 虜卽據前險하고 守後阨하여 以絶糧道하여
先零
이 首爲畔逆
이요 它種
은 劫略
注+言被劫略而反叛, 非其本心.이라
故로 臣愚策은 欲捐䍐幵闇昧之過하고 先行先零之誅하여 以震動之하면
因赦其罪하고 選擇良吏知其俗者하여 拊循和輯하면 此全師保勝安邊之策이니이다
目
[目] 상上이 궁실과 수레와 의복을 치장하여 아름답게 꾸미고, 외척外戚인 허씨許氏, 사씨史氏, 왕씨王氏들의 신분이 귀해지고 총애를 받았다.
이에 간대부諫大夫 왕길王吉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폐하陛下께서 오직 세상을 잘 다스리는 일을 생각하시어 장차 태평성세를 이룩하려 하시니, 조령詔令이 매번 내려질 때마다 백성들이 다시 살아나듯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신臣이 엎드려 생각하니, 이는 지극한 은혜라고 말할 수 있으나
정사政事의
본무本務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注+천자天子가 이와 같이 하면 비록 백성들에게 지극한 은혜가 되나, 정사政事의 본무本務에는 미진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세상을 잘 다스리고자 하는 군주는 세상에 자주 나오지 않는데,
注+때로 우연히 만나볼 뿐, 항상 만나지는 못함을 말한 것이다. 이제
공경公卿들이 다행히 이러한 시대를 만나서 폐하께서 신하들의 말을 들어주고
간언諫言을 따라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만세萬世의 장구한 계책을 세워서 현명한 군주를 삼대三代의 융성함으로 들어 올리는 자는 있지 않고, 그 힘씀이 날짜를 맞추고 문서를 정리하며 옥사獄事를 결단하고 송사訟事를 다스림에 있을 뿐이니, 이는 태평성대의 기업基業이 아닙니다.
目
[目] 신臣이 들으니, 덕德을 베풀고 교화를 펼침은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시작해야 하니, 조정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면 정치를 말하기 어렵고, 좌우에 있는 신하들이 바르지 못하면 먼 곳을 교화하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백성은 약하나 이길 수가 없고 어리석으나 속일 수가 없으니, 성주聖主가 홀로 깊은 궁중에서 정사를 행하실 적에 잘하면 천하 사람들이 칭송하고, 잘못하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비난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군주는 마땅히 좌우에서 보좌하는 신하를 삼가 선발하고, 가까이 부리는 사람을 잘 가려 뽑아야 합니다.
좌우는 군주의 몸을 바로잡는 자이고 부리는 사람은 군주의 덕을 펼치는 자이니, 이것이 바로 근본입니다.
위를 편안히 하고 백성을 다스림은 예禮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왕자王者가 아직 예를 제정하지 못했을 때에는
선왕先王의
예禮 중에 지금에 합당한 것을 원용하였으니, 원컨대 폐하께서는 옛
예禮를 계승하고
왕자王者의 제도를 밝혀서 한 세상의 백성들을 몰아
인수仁壽의 경지에 오르게 하신다면,
注+인仁은 비루하고 속이지 않는 것이고, 수壽는 요절하지 않는 것이다. 풍속이 어찌
성왕成王과
강왕康王만 못하며 장수함이 어찌
고종高宗만 못하겠습니까.
注+
目
[目] 조충국趙充國은 이때 나이가 70이 넘었다.
상上은 그를 늙었다고 여겨서 병길丙吉을 보내어 장수를 시킬 만한 자가 누구인지를 묻게 하니, 대답하기를 “노신老臣보다 나은 자가 없습니다.” 하였다.
상上이 조충국에게 묻기를 “병력을 몇 명이나 동원해야 하겠는가?”
注+탁度(헤아리다)은 대각大各의 절切이니, 아래도 같다. 하니, 조충국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백 번 듣는 것이 직접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니, 군대의 일은 멀리서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注+유隃(멀다)는 요遙와 같다.
신臣이 원컨대
금성金城에 달려가서 지도를 그리고
방략方略(방책)을 올리겠습니다.
注+방법을 세우는 것을 방方이라 하고 계략을 펼치는 것을 약略이라 하니, 방략方略은 바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지형地形을 그리고 아울러 적을 공격하고 토벌할 방략方略을 세워 함께 상주上奏한 것이다.
강족羌族의 작은 오랑캐 무리들이 천도天道를 거역하고 배반하니, 멸망할 날이 오래지 않습니다.
원컨대
폐하陛下께서는 늙은
신臣에게 맡기시고 근심하지 마소서.”
注+촉屬은 지욕之欲의 절切이니, 맡기는 것이다.
상上이 웃으며 “좋다.” 하고는, 병력을 크게 징발하여 조충국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서강西羌을 공격하게 하였다.
目
[目] 수백 명의 오랑캐 기병이 와서 한군漢軍 진영의 곁을 드나들었으나, 조충국趙充國은 말하기를 “우리의 병사와 말이 피곤하니 달려가서 적을 쫓을 수 없고, 이들은 모두 날랜 기병이며 또 저들이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군대일까 염려된다.
오랑캐를 공격함은 완전히 섬멸함을 목표로 삼아야 하니, 작은 이익은 탐할 것이 못 된다.” 하고, 병사들에게 공격하지 말게 하고 기병을 보내어 사망협四望陿 가운데를 정탐하게 하였는데, 오랑캐가 없었다.
조충국은 마침내 병력을 이끌고 전진할 적에
注+산이 가파르면서 물을 양쪽에 끼고 있는 것을 협陿이라 한다. 사망四望은 협陿의 이름이다. 날쌘
교위校尉들을 불러 이르기를 “나는
강족羌族의 오랑캐들이 군대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함을 아노라.
만일 오랑캐들이 수천 명을 출동시켜 사망협 가운데를 지키고 막았다면 우리 군대가 어찌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注+수守는 방비함이고 두杜는 막는다는 뜻이다. 하였다.
目
[目] 천자天子가 이 글을 신하들에게 내려 의논하게 하니, 조충국趙充國은 다음과 같이 반대하였다.
“말 한 필에다가 병사 한 명이 30일 동안 먹을 양식을 지게 하면, 쌀 2곡斛 4두斗와 보리 8곡斛이고 게다가 옷과 행장行裝, 병기兵器까지 있으니, 너무 무거워서 적을 쫓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오랑캐들은 반드시 아군의 진퇴를 살피며
注+상商은 헤아림이다. 군대를 이끌고 조금씩 떠나가
수초水草를 따라 산림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오랑캐들을 따라 깊이 쳐들어가면, 오랑캐들은 즉시 전방의 험한 곳을 의지하고 후방의 막힌 길목을 지켜서 군량 수송로를 차단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우리 군대가 반드시 손상을 입고 위태로운 지경에 빠질 우려가 있으니,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선령先零이 맨 먼저 반역을 하였고, 다른 부족들은 협박〮을 당하여 배반한 것입니다.
注+다른 부족들은 협박을 당해 배반한 것이고 그 본심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臣의 어리석은 계책은, 극䍐과 〮〮〮견幵의 애매한 허물을 용서하고 먼저 선령에게 주벌을 행하여 이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극䍐과 견幵은 마땅히 잘못을 뉘우치고 선善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인하여 그들의 죄를 사면하고, 훌륭한 관리로서 이 지방 풍속을 잘 아는 자를 선발해서 이들을 어루만져 평화롭게 살게 한다면, 이는 군대를 온전히 하고 승리를 확보하며 변방을 편안히 할 수 있는 좋은 계책입니다.”
目
[目] 선령先零이 배반하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극䍐, 견幵과 원한 관계를 풀고서 항상 극䍐과 견幵이 위급할 때에 먼저 달려가서 그들과의 맹약을 견고히 하고자 합니다.
지금 오랑캐들은 말이 살찌고 양식이 풍족하니, 우리가 이들을 공격하면 적에게 손상을 입히지 못할까 두렵고, 다만 선령으로 하여금 강䍐羌에게 은덕을 베풀게 하여, 그 맹약을 견고히 하고 그 무리를 모으게 할 뿐입니다.
이들이 여러 작은 부족들을 협박해서 오랑캐의 병력이 점점 많아진 뒤에, 이들을 주벌하려 하면 몇 배의 힘이 더 들어갈 것입니다.
注+“시덕施德”은 스스로 은덕恩德을 베푸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臣은 국가의 우환이 십수 년에 이어져 2, 3년에 그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注+누累(우환)는 역서力瑞의 절切이니, 아래 “누중累重”도 같다.
먼저 선령을 주벌하면 극䍐과 견幵의 족속은 군대를 번거롭게 동원하지 않아도 복종할 것이요, 복종하지 않더라도 내년 정월이 되어 공격하면 계책의 이치에 맞고, 또 시기도 좋습니다.
지금 군대를 출동한다면, 진실로 그 이로움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7월에 옥새를 찍은 친서親書로 조충국趙充國의 계책을 따른다고 답하였다.
目
[目] 상上이 신무현辛武賢 등에게 명하여 12월에 조충국趙充國과 군대를 연합하여 선령先零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이때 강족羌族의 항복한 자가 만여 명이었다.
조충국은 그들이 반드시 무너질 것임을 헤아리고는,
注+탁度(헤아리다)은 대각大各의 절切이니, 아래의 “계도計度”, “탁지度支”, “도로度虜”도 모두 같다. 기병을 해산하고
둔전屯田하여 오랑캐들이 피폐하기를 기다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상주문上奏文을 만들어 올리기도 전에 마침 진군하라는 친서를 받았다.
그의 아들 조앙趙卬이 문객門客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간諫하였다.
“가령 군대를 출동했다가 우리 군대가 격파되고 장수를 죽게 해서 국가를 기울게 한다면 장군이 〈진격하지 않고〉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기고 지는 것을 또 어찌 다툴 것이 있겠습니까.
注+즉卽은 바로 지금이다. 이병利病은 승부勝負라는 말과 같다.
하루아침에
성상聖上의 뜻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수의사자繡衣使者를 보내와서 장군을 책망하면 장군의 몸도 스스로 보전하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국가를 편안히 하겠습니까.”
注+수의繡衣는 어사御史를 이른다.
目
[目] 조충국趙充國은 탄식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정에서 본래 나의 말을 따랐더라면
강족羌族 오랑캐가 어찌 이처럼 강성해졌겠는가.
注+〈“강로득지시사羌虜得至是邪”는〉 미리 방비하였더라면 오늘날 강족의 침략이 없었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지난번에
강족羌族에게 먼저 사신으로 갈 수 있는 자를 천거할 적에 내
신무현辛武賢을 천거했었는데,
승상丞相과
어사御史가 다시 아뢰어
의거안국義渠安國을 보내서 끝내
강족羌族을 무너뜨리는 일을 저해하였다.
注+행行(행실)은 거성去聲이다. 저沮는 파괴(저해)함이다.
그리고
금성金城의
황중湟中에 곡식 값이 1
곡斛에 8
전錢이므로, 내
경중승耿中丞에게 ‘300만
곡斛의 곡식을 매입하면
강족羌族들이 감히 동요하지 못할 것이다.’
注+경중승耿中丞은 경수창耿壽昌으로 사농중승司農中丞이 되었는바, 경耿은 성姓이다. 적糴은 정력亭歷의 절切이니, 곡식을 매입하는 것이다. 미리 양식을 저축했으면 적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라고 했었는데,
경중승이 100만 곡斛을 매입할 것을 청하여 겨우 40만 곡斛을 얻었을 뿐이요, 의거안국이 두 차례 사신 가느라 또 그 절반을 소비하였다.
이 두 가지 실책으로 강족들이 감히 반역을 하게 된 것이다.
털끝만큼의 실수가 천 리를 어긋나게 하는 것이니, 이는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지금 전란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데, 사방 오랑캐들이 갑자기 동요하여 서로 따라서 일어나면,
注+졸卒(갑자기)은 졸猝로 읽으니, 아래 “졸금卒禁”도 같다. 비록 지혜로운 자가 있더라도 그 뒷수습을 잘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강족만 근심하겠는가.
注+지知(지혜)는 지智로 읽는다. 혹시라도 이와 같게 되면 근심하는 바가 비단 강족羌族에게만 있지 않음을 말한다.
내 진실로 죽음으로써 지킬 것이니, 현명한 군주君主께는 충언忠言을 올릴 만하다.”
目
[目] 신臣의 옛 부하 병사들이 산중에 들어가 재목을 베어서 물가에 쌓아두었습니다.
신은 원컨대
기병騎兵을 파하고
보병步兵을 남겨두어
요해처要害處에 나누어 주둔하다가 얼음이 풀리면 물길로 재목을 운반하여
향정郷亭(초소)을 수리하고 개천을 준설하고
注+“조하漕下”는 물을 따라 재목을 운반하여 내려오는 것이다. 선繕은 보수하는 것이다. 준浚은 바닥을 깊이 파내는 것이다. 황협湟陿 이서以西의 도로와 교량을 수리할 것이니, 그리하면
선수鮮水 좌우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注+선鮮은 음이 선僊이니, 《한서漢書》에 “선호善豪가 선수해鮮水海 땅을 왕망王莾에게 바치자, 서해군西海郡을 설치했다.”는 것이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봄이 되어 사람들이 밖에 나가 농사를 짓게 되면, 백성들에게 농지를 20
묘畮씩 나누어주고,
注+“전사출田事出”은 봄이 되어 사람들이 나가 밭을 경영함을 이른다. 부賦는 나누어줌을 이른다. 4월에 이르러 풀이 자라면 우리
군郡의 기병 및
속국屬國의 오랑캐 기병 각 1천 명을 징발해서
초목草木의 무성한 곳을 따라 다니며
둔전屯田에서 농사짓는 자들을 호위하는
유병遊兵(유격대)으로 삼고 〈수확한 곡식을〉
금성군金城郡에 보충하여 넣고서 더욱 저축하게 하면, 큰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注+“취초就草”는 풀밭에 나아가 가축을 기름을 말한 것이다.
지금 대사농大司農이 수송해온 곡식이, 1만 명이 1년 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으니, 둔전屯田하는 곳과 사용하는 기물과 장부를 삼가 올립니다.”
상上이 답하기를 “만일 장군將軍의 계책대로라면 오랑캐를 어느 때에 죄를 물어 주벌誅伐하며, 병난을 어느 때에 해결할 수 있겠는가.
그 편리함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다시 아뢰라.”
注+숙孰은 숙熟과 같다. 하였다.
目
[目] 조충국趙充國이 다음과 같이 글을 올렸다.
“신臣이 들으니, 제왕帝王의 군대는 온전히 함으로써 승리를 취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계책을 귀하게 여기고 싸움을 천하게 여기는 것이니, 백 번 싸워 백 번 승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먼저 적이 승리하지 못하게 만들어놓고서 우리가 적에게 승리할 수 있을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注+ 먼저 스스로 완전무결하게 대비해서 적이 우리를 이기지 못하게 만들어놓아야 비로소 적을 이길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오랑캐의 습속이 비록 예의를 지키는 중국과 다르나, 해로움을 피하고 이로움을 추구하고자 하며 친척을 아끼고 사망을 두려워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目
[目] 신臣은 삼가 출병出兵하지 않고 군영에 남아서 둔전屯田하는 것이 편리한 열두 가지 일을 조목조목 아뢰겠습니다.
보병步兵의 9개 교校(부대)의 관리와 병사 1만 명을 남겨두어 주둔시켜 수비하고, 인하여 둔전屯田을 해서 곡식을 얻으면 위엄과 은덕이 함께 행해질 것이니, 이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또 인하여
강족羌族들을 꺾어 비옥한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해서 그 무리들을 빈궁하게 하여 깨트려서 서로 배반하는 조짐을 조성하는 것이 그 두 번째요, 거주하는 백성들이 함께 농사일을 해서 농업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그 세 번째입니다.
注+병竝은 함께한다는 뜻이다.
기병騎兵의 군마軍馬가 한 달 동안 먹는 곡식과 마초를 헤아려보면 둔전屯田하는 보병이 1년을 지탱할 수 있는 양이 소요되니, 기병을 파하여 큰 비용을 줄이는 것이 그 네 번째요, 봄에 갑옷을 입은 사졸士卒을 줄이고 하수河水와 황수湟水를 따라 곡식을 조운漕運해서 임강臨羌에 이르러 강족羌族들에게 보여주어 위무威武를 드날려 대대로 절충折衝하는 도구로 삼는 것이 그 다섯 번째요, 한가한 때에 베어놓았던 목재를 내려보내 우정郵亭을 수리하고서 금성金城으로 채워 들여오는 것이 그 여섯 번째입니다.
目
[目] 상上이 다시 다음과 같은 답서를 내렸다.
“병란의 해결을 기월期月이면 바랄 수 있다는 것은 올겨울을 두고 말한 것인가?
장군은 어찌하여 오랑캐들이 우리 군대가 자못 피폐하다는 소문을 들을 것을 계산하지 못하는가?
또 적의 장정들이 서로 모여서 둔전하는 자들을 공격하여 어지럽히며 인민人民을 죽이고 약탈할 것이니, 장차 이것을 어떻게 저지하겠는가?
目
[目] 조충국趙充國이 다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신臣이 들으니, 군대는 계책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계책을 많이 세운 자가 계책을 적게 세운 자를 이기는 것입니다.
注+《손자孫子》에 하였다.
선령先零의 강족羌族들은 지금 남아 있는 정예병이 7, 8천 명에 불과합니다.
땅을 잃고 먼 곳에 나그네 신세가 되어 서로 분산되어 굶주리고 헐벗어서, 저들을 배반하고 우리에게 귀순하는 자가 끊이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신臣은 생각하건대, 오랑캐를 파괴하는 것은 며칠이나 몇 달로 기대할 수 있으며 멀어도 내년 봄에는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병란의 해결을 기월期月이면 바랄 수 있다.’라고 한 것입니다.
신臣이 삼가 북쪽 변방을 살펴보니,
돈황燉煌에서
요동遼東까지 11,500여 리에는 요새를 타고 각지에 벌려 있는 우리의 관리와 병졸이 수천 명인데, 오랑캐들이 자주 큰 병력으로 이들을 공격했으나 해치지 못하였습니다.
注+“열지列地”는 〈조충국전趙充國傳〉에는 “열수列隧(여러 길)”로 되어 있다.
지금 기병을 해산하더라도 오랑캐들은 둔전屯田하는 우리 군대의 정예병이 1만 명인 것을 볼 것이요, 지금부터 3월까지는 풀이 없어서 오랑캐의 말들이 수척할 것입니다.
그러니 감히 그들의 처자식들을 다른 종족에게 버려두고 멀리 하수河水와 산을 건너와서 침략하지 못할 것이며, 또 감히 그 처자식과 무거운 짐을 가지고 옛 땅으로 돌아가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臣의 어리석은 계책으로 오랑캐들을 헤아려봄에, 반드시 장차 그곳에서 와해되어 싸우지 않고도 격파할 수 있는 계책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注+“와해기처瓦解其處”는 각각 처한 곳에서 스스로 와해되는 것이다.
오랑캐들이 소규모로 도둑질하여 때로 우리의 인민人民을 죽이는 경우는, 그 근원을 갑자기 금할 수가 없습니다.
目
[目] 신臣이 듣건대, 전쟁은 승리를 기필할 수 없으면 구차히 병기를 접하여 싸우지 않고, 공격하여 점령을 기필할 수 없으면 구차히 군대를 수고롭게 동원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가령 군대를 출동하여 선령先零을 멸망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오랑캐들로 하여금 절대로 소규모의 침략을 못하게만 할 수 있다면 출병을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 똑같이 소규모의 침략을 저지하지 못할 바에야, 가만히 앉아서 승리할 수 있는 방도를 버려두고 위태로운 형세를 타고서,
注+“즉금동시卽今同是”는 똑같이 소규모의 도둑질(침략)을 그치게 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출전하여도 끝내 이로움을 얻지 못하고 안을 비워두어 스스로 피폐해져서
중국中國의 막중한 위엄을 떨어뜨려 스스로 훼손하는 것은, 오랑캐들에게 보여줄 계책이 아닙니다.
注+“폄중貶重”은 중국의 막중한 위엄을 폄손貶損함을 이른다.
또 큰 병력이 한 번 출동했다가 돌아오면 다시 변방에 주둔하게 할 수 없고
注+〈“환불가불류還不可復留”는〉 큰 군대가 변방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사람들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있어서, 다시 남겨 주둔시켜 강족羌族을 대비하게 할 수 없음을 말한다. 황중湟中도 또한 비워둘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요역을 다시 일으켜야 할 것이니, 어리석은 신臣은 불편하다고 여깁니다.
신은 속으로 생각해보건대,
조령詔令을 받들고 변방으로 나가서 군대를 이끌고 멀리 공격하여
천자天子의 정예병을 다 죽게 하고 수레와 갑옷을 산야에 흩어버리면서 조그마한
공功도 세우지 못하고도 〈
황명皇命을 따르지 않았다는〉 혐의를 피하는 편리함을 구차히 얻어 후일의 잘못과 책임이 없게 하는 것은,
注+유婾는 구차함이다. 이는 신하로서
불충不忠한 이로움이니, 현명한 군주와 사직의 복이 아닙니다.”
目
[目] 상上은 이에 조충국趙充國에게 ‘가납嘉納한다.’고 답하고, 또한 신무현辛武賢과 허연수許延壽가 여러 번 ‘강족을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여, 이에 그들의 계책을 둘 다 따라 두 장군에게 명하여 중랑장中郞將 조앙趙卬과 함께 출격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적을 항복시키고 참수한 것이 각각 수 천 명이었고, 조충국이 항복시킨 것이 또 5천여 명이었다.
이에 명命하여 군대를 해산하고 오직 조충국이 남아 둔전屯田을 하게 하였다.
目
[目] 예전에 장창張敞이 산양태수山陽太守가 되었을 때에 교동膠東에 도적이 일어났는데, 장창이 이들을 다스릴 것을 자청하자, 황제는 그를 교동왕膠東王의 재상으로 제수하였다.
장창은 분명하게 현상懸賞하여 번갈아 서로 목 베고 체포하게 해서, 교동국膠東國이 마침내 평정되었다.
교동왕의
태후太后가 자주 나가 놀고 사냥을 하자, 장창이 간하기를 “
예禮에
군모君母가 문을 나가게 되면
치병輜輧을 타고,
당堂에서 내려올 적에는
부모傅母를 따른다.”
注+병輧은 보천步千과 보정步丁의 두 절切이다. 치병輜輧은 옷을 수송하는 수레이다. 하였습니다.
지금 사냥을 하며 마음껏 방종하신다고 이름이 나서 위로 황제께 알려지는 것은 또한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태후가 마침내 다시는 외출하지 않았다.
目
[目]
경조윤京兆尹은
조광한趙廣漢이 죽임을 당한 뒤로
황패黃霸 등 여러 사람이 맡았으나,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장안長安에 도둑이 많았다.
注+경更은 지내다는 뜻이다.
상上이 대책을 장창에게 물으니, 장창張敞이 금할 수 있다고 말하므로, 마침내 장창을 경조윤京兆尹으로 삼았다.
장창은 도둑의
추장酋長 몇 사람을 찾아내어
注+추酋는 재유才由의 절切이니, 추장酋長은 괴수이다. 불러다가 문책하고는, 도둑들을 불러와서 스스로 속죄하게 하였다.
注+치致는 이른다는 뜻이니, 이끌어 관부官府에 오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루에 수백 명을 잡아다가 끝까지 치죄하여 법을 시행하니, 이로 말미암아 시장에 도둑이 없게 되었다.
장창은 상과 벌을 시행함이 분명하였으며, 때때로 월법越法 행위를 하여 사람들을 풀어주는 경우가 있었으나, 본래 《춘추春秋》를 전공하여 경학經學으로 보조하고 순수하게 형벌만을 쓰지 않으니, 이 때문에 능히 스스로 온전하였다.
조정에 큰 의논이 있을 적에 옛날과 지금의 일을 인용하여 편리하고 마땅하게 처리하니, 공경公卿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目
[目] 마침 서강西羌을 토벌하는 군대가 일어났다.
장창張敞은 강족羌族의 오랑캐들이 비록 격파되었으나 백성들이 남은 저축이 없다 하여, 죄가 있는 자들로 하여금 변방 고을에 곡식을 바쳐 속죄贖罪할 것을 청하였다.
소망지蕭望之 등은 이것을 의논하여 다음과 같이 반대하였다.
“백성들은 음과 양의 기운을 다 포함하고 있어서
인의仁義와
이익利益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교화로 돕는 바에 달려 있습니다.
注+함凾(포함하다)은 함含과 같다.
요堯임금은 백성들의 이익利益을 좋아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였으나 의義를 좋아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게 하였고, 걸왕桀王은 백성들의 의義를 좋아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였으나 이익利益을 좋아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요堯임금과
걸왕桀王의 구분은
의義와
이익利益에 달려 있을 뿐이니, 백성을 인도함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注+도道(인도하다)는 도導로 읽는다.
지금 백성들로 하여금 곡식을 바쳐 속죄하게 한다면, 이는 가난한 자와 부자에 대한 형벌이 달라서 법法을 시행함이 똑같지 않은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형父兄이 죄를 짓고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면 자제子弟된 자들이 장차 죽고 망할 것을 돌보지 않고서, 재리財利를 가지고 달려가서 돈을 바쳐 구원되기를 바랄 것이니, 한 사람이 살게 되면 열 사람이 망합니다.
정교政敎가 한 번 기울면 회복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注+복復(회복하다)은 부목扶目의 절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