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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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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未年(B.C. 110)
신미년(B.C. 110)
起辛未漢武帝元封元年하여 盡己未漢宣帝元康四年하니 凡四十九年이라
《자치통감강목》 제5권은 신미년辛未年 무제武帝 원봉元封 원년(B.C. 110)부터 시작하여 기미년己未年 선제宣帝 원강元康 4년(B.C. 62)에 끝났으니, 모두 49년이다.
元封元年注+始封泰山, 故改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원봉元封 원년이다.注+처음으로 태산泰山하였으므로 개년改年(개원改元)한 것이다.
冬十月 帝出長城하여 登單于臺하여 勒兵而還하다
[綱] 겨울 10월에 황제가 장성長城을 나가 선우대單于臺에 올라가서 군대의 무장武裝을 점검하고 돌아왔다.
又以古者 先振兵釋旅然後封禪注+振, 整也. 釋, 解散也. 旅, 衆也. 出曰治兵, 始治其事, 入曰振旅, 治兵禮畢, 整衆而還. 振兵釋旅, 示天下不復用也.이라하여 詔曰
[目] 은 또 옛날에 먼저 군대를 정돈하고 군대를 해산한 뒤에 봉선封禪을 했다 하여,注+은 정돈함이고, 은 해산함이고, 는 군대이다. 군대를 출동하는 것을 치병治兵이라 하니 처음 군대의 일을 다스리는 것이요, 들어오는 것을 진려振旅라 하니 군대를 다스리는 가 끝난 다음 군대를 정돈하여 돌아오는 것이다. “진병석려振兵釋旅(군대를 정돈하고 군대를 해산했다.)”는 천하에 다시 무력을 쓰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조령詔令을 내리기를
南越, 東甌 咸伏其辜호되 西蠻, 北夷 頗未輯睦注+輯, 與集同, 和也.하니 朕將巡邊垂하여 躬秉武節하여 親帥師焉注+巡, 行視也. 垂, 遠邊也. 秉, 持也.이라하고
남월南越동구東甌가 모두 자신의 죄에 굴복하였으나 서만西蠻북이北夷가 아직도 화목하지 못하니,注+과 같으니, 하다는 뜻이다.은 장차 변방 지역을 순행해서 몸소 을 잡고 친히 군대를 통솔하겠다.”注+은 순행하며 살펴봄이고, 는 먼 변방이다. 은 잡다는 뜻이다. 하고는
乃行하여 自雲陽으로 歷五原하고 出長城하여 北登單于臺注+五原, 卽秦九原郡, 帝更名. 宋白曰 “五原郡, 有原五所, 故名. 謂龍游原‧乞地千原‧靑嶺原‧岢嵐眞原‧橫槽原也.” 杜佑曰 “單于臺, 在雲州雲中縣西北百餘里.”하고 至朔方하여 臨北河하니
마침내 길을 떠나 운양雲陽으로부터 오원五原을 지나고 장성長城을 나가 북쪽으로 선우대單于臺에 올랐으며,注+오원五原은 바로 나라의 구원군九原郡이니, 황제(무제武帝)가 이름을 오원五原으로 바꾸었다. 이 말하기를 “오원군五原郡이라는 지명이 다섯 곳이 있어서 이름한 것이니, 용유원龍游原걸지천원乞地千原청령원靑嶺原가람진원岢嵐眞原횡조원橫槽原을 이른다.” 하였으며, 는 “선우대單于臺운주雲州 운중현雲中縣 서북쪽 백여 리 지점에 있다.” 하였다.삭방朔方에 이르러 북하北河에 임하니,
勒兵 十八萬騎 旌旗徑千餘里러라
무장武裝한 병력은 기병騎兵이 18만 명이고 깃발이 천여 리에 뻗쳐 있었다.
遣郭吉하여 告單于曰 南越王頭 已縣於漢北闕注+北闕, 卽玄武闕. 未央殿雖南嚮, 而上書奏事謁見之徒, 皆詣北闕, 公車司馬 亦在北焉, 是則以北闕爲正門.하니 今單于能戰이면 天子自將待邊이요 不能이어든 卽南面而臣於漢注+將, 卽亮切.하라 單于怒留吉하니
곽길郭吉을 보내어 선우單于에게 통고하기를 “남월왕南越王의 머리를 이미 나라의 북궐北闕에 매달아놓았으니,注+북궐北闕은 바로 현무궐玄武闕이다. 미앙궁전未央宮殿이 비록 남향을 하고 있으나, 글을 올리고 일을 아뢰고 알현하는 무리는 모두 북궐北闕에 나아갔고 공거사마公車司馬 또한 북쪽에 있었으니, 이는 북궐北闕을 정문으로 삼은 것이다. 이제 선우가 능히 싸울 수 있으면 천자天子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나와 변방에서 기다릴 것이요, 싸우지 못하겠으면 즉시 남면南面하고 나라에 신하 노릇을 하라.”注+(거느리다)은 즉량卽亮이다. 하니, 선우가 노하여 곽길을 억류하였다.
乃還할새 祭黃帝冢而釋兵注+地理志 “上郡陽周縣橋山南, 黃帝冢在焉.”하다
은 마침내 돌아오면서 황제黃帝의 무덤에 제사하고 군대를 해산하였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상군上郡 양주현陽周縣 교산橋山의 남쪽에 황제黃帝의 무덤이 있다.” 하였다.
貶卜式하여 爲太子太傅하고 以兒寬爲御史大夫하다
[綱] 복식卜式질록秩祿을 낮추어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삼고, 아관兒寬(예관)을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
以式不習文章이라 貶秩而以寬代之하다
[目] 복식卜式문장文章을 익히지 않았다 하여 질록을 낮추고, 아관兒寬으로 대신하였다.
東越 殺王餘善以降이어늘 徙其民江淮間하다
[綱] 동월東越 낙여선駱餘善을 죽이고 항복하자 이 지역 백성들을 사이로 이주시켰다.
漢兵 入東越境한대 繇王居股 殺餘善하고 以其衆降注+居股, 丑之子也.이어늘
[目] 나라 군대가 동월東越의 국경으로 쳐들어가니, 요왕繇王 낙거고駱居股 낙여선駱餘善을 죽이고는 그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하였다.注+낙거고駱居股낙축駱丑(낙추)의 아들이다.
上以閩地險阻하고 數反覆하니 終爲後世患이라하여 乃詔諸將하여 悉徙其民於江淮之間하고 遂虛其地注+虛, 如字. 或讀曰墟.하다
(동월東越) 땅이 험하여 막혀 있고 이 지역 사람들이 〈귀순과 배반을〉 자주 번복하니, 끝내 후세의 우환이 될 것이라고 여겨 장수들에게 명해서 이 지역의 모든 백성들을 의 사이로 이주시키고, 마침내 이 지역을 비워두었다.注+(비우다)는 본음대로 읽는다. 혹자는 (빈터)로 읽는다.
春正月 帝如緱氏하여 祭中嶽하고 하여 求神僊하다
[綱] 봄 정월에 황제가 구지緱氏(구지)에 가서 중악中嶽에 제사하고는, 동쪽으로 해상海上을 순행하면서 신선을 구하였다.
夏四月 封泰山하고 禪肅然하고 復東北至碣石而還하여 五月 至甘泉하다
여름 4월에 태산泰山하고 숙연산肅然山하고 다시 동북쪽으로 갈석碣石에 이르렀다가 돌아와 5월에 감천궁甘泉宮에 이르렀다.
正月 幸緱氏하여 禮祭中嶽할새 從官 在山下聞하니 若有言萬歲者三注+中嶽, 崧高山也, 在潁川陽城縣. 萬歲, 神稱之也.이러라
[目] 정월에 구지緱氏에 행차하여 중악中嶽에 제사 지냈는데, 수행하는 관원들이 산 아래에서 들으니 마치 만세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세 번 들렸다.注+중악中嶽숭고산崧高山이니, 영천潁川양성현陽城縣에 있다. 만세萬歲이 부른 것이다.
遂東巡海上하여 祠八神注+八神註, 見秦始皇二十八年.하고 益發船하여 求蓬萊하고 及與方士傳車 及間使求神仙 皆以千數注+傳, 張戀切. 間, 微也, 謂隨間隙而行也.러라
은 마침내 동쪽으로 해상海上을 순행하면서 여덟 에게 제사하고注+팔신八神에 대한 나라 시황始皇 28년(B.C. 219)의 에 보인다. 배를 더 징발하여 봉래산蓬萊山을 찾게 하였으며, 또 전거傳車(파발마가 끄는 수레)를 탄 방사方士신선神仙을 찾아 나선 간사間使가 모두 천 명으로 헤아려졌다.注+(전달하다)은 장련張戀이다. 은미隱微함이니, 틈을 따라 은밀히 출행出行함을 이른다.
四月하여 至奉高注+奉高, 縣名, 泰山郡治所.하여 封泰山下東方호되 如郊祠泰一之禮注+封者, 壇廣十二丈, 高二丈, 階三等, 封於其上, 示增高也. 封廣丈二尺, 高九尺. 泰山下東方, 謂泰山下之東方也.러니 封下 有玉牒書하니 書秘注+玉牒, 長尺三寸, 廣厚各五寸, 藏於山上, 以方石三枚, 爲再累, 緘以金繩, 封以石泥, 印以.러라
[目] 4월에 황제가 돌아와 봉고현奉高縣에 이르러注+봉고奉高의 이름이니, 태산군泰山郡치소治所이다.태산泰山 아래 동쪽을 하되, 교제郊祭태일泰一(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는 와 똑같이 하였는데,注+의 너비가 12이고 높이가 2이고 계단이 세 층계이니, 그 위에 봉토封土함은 더욱 높임을 보이는 것이다. 봉토의 너비는 1 2이고 높이는 9이다. “태산하동방泰山下東方”은 태산泰山 아래의 동쪽 방위를 이른다.한 아래에 옥첩玉牒의 글이 있었으니, 이 글은 비서秘書였다.注+옥첩玉牒은 길이가 1 3이고 너비와 두께가 각각 5이니, 산 위에 보관하되, 네모진 돌 세 개를 두 번 포개어서 쇠줄로 묶어 로 봉함하고 ‘수명지새受命之璽’를 찍었다.
禮畢 天子獨上泰山하여 亦有封하고 明日 下陰道하여 禪泰山下阯東北肅然山호되 如祭后土禮注+山之基足曰阯. 肅然山, 在梁父縣.하고 江淮間茅三脊으로 爲神藉注+茅三脊, 茅草有三脊也, 所謂靈茅也. 藉, 才夜切, 薦也, 以藉地也.러니 祠夜 若有光하고 晝有白雲 出封中注+封用五色土, 益雜封之, 白雲出其中, 此瑞也.하니라
가 끝나자 천자天子가 홀로 태산泰山에 올라가 또한 함이 있었고, 다음 날 음도陰道(북쪽 길)로 내려와 태산泰山 아래의 산기슭인 동북쪽 숙연산肅然山하되 후토신后土神에게 제사 지내는 와 똑같이 하고,注+의 아래 기슭을 라 한다. 숙연산肅然山양보현梁父縣에 있다. 사이에서 생산된 띠풀 중에 세모꼴의 등이 있는 것으로 땅에 깔았는데,注+모삼척茅三脊”은 띠풀 중에 세모꼴의 등이 있는 것이니, 이른바 영모靈茅라는 것이다. 재야才夜이니 깐다는 뜻으로, 띠풀을 땅에 까는 것이다. 제사 지내는 날 밤에 마치 광채가 있는 듯하였고, 낮에는 또 흰 구름이 한 흙 가운데에서 피어오르는 듯하였다.注+봉할 때에는 5의 흙을 사용하여 뒤섞어 봉하는데, 흰 구름이 이 가운데에서 피어났으니, 이는 상서祥瑞이다.
天子還하여 坐明堂하니 群臣 上壽어늘 下詔改元注+臣瓉曰 “郊祀志 ‘初天子封太山, 太山東北阯, 古時有明堂處.’ 則此所坐者也. 明年秋, 乃作明堂耳.”하다
[目] 천자天子가 돌아오면서 명당明堂(옛날 명당의 터)에 앉으니, 여러 신하들이 축수祝壽를 올리자, 조령詔令을 내려 개원改元하였다.注+이 말하였다. “《한서漢書》 〈교사지郊祀志〉에 ‘처음 천자天子태산太山(태산泰山)을 봉하니, 태산의 동북쪽 기슭은 옛날 명당明堂이 있던 곳이다.’ 하였으니, 바로 황제가 이곳에 앉은 것이다. 다음 해 가을에야 비로소 명당明堂을 지었다.”
天子旣已封泰山 無風雨하니 而方士更言蓬萊諸神 若將可得이라
천자天子태산泰山한 뒤에 심한 비바람이 없으니, 방사方士들이 번갈아 봉래산蓬萊山의 여러 신선神仙을 장차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於是 欣然庶幾遇之하여 復東至海上하여 欲自浮海求蓬萊하니 群臣諫호되 莫能止
이에 은 기뻐하여 행여 신선을 만날까 해서 다시 동쪽으로 해상海上에 이르러 직접 바다를 항해하여 봉래산蓬萊山을 찾고자 하니, 여러 신하들이 하였으나 만류할 수 없었다.
東方朔曰
이에 동방삭東方朔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夫僊者 得之自然이니 不必躁求니이다
“신선은 자연스레 만나지는 것이니, 굳이 조급하게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若其有道인댄 不憂不得이요 若其無道인댄 雖至蓬萊見仙人이라도 亦無益也니이다
만약 만날 수 있는 방도가 있다면 만나지 못함을 근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요, 만약 방도가 없다면 비록 봉래산에 가서 신선을 만나려 하시더라도 또한 무익할 것입니다.
願陛下第還宮하사 靜處以須之하시면 仙人 將自至하리이다
신은 폐하께서 다만 환궁하여 고요히 거처하면서 기다리시기를 원하오니, 이렇게 하시면 신선이 장차 스스로 찾아올 것입니다.”
乃還注+第, 但也. 須, 待也.하니
이 이에 돌아왔다.注+는 다만이요, 는 기다림이다.
是行 凡周行 萬八千里云이러라
이번 걸음에 두루 순행한 것이 모두 18,000리였다.
[綱] 상홍양桑弘羊에게 좌서장左庶長의 관작을 하사하였다.
先是 桑弘羊 爲治粟都尉하고 領大農하여 盡斡天下鹽鐵注+斡, 音管, 專主之也.하다
[目] 이보다 앞서 상홍양桑弘羊치속도위治粟都尉가 되고 대사농大司農을 겸해서 천하의 소금과 을 모두 주관하였다.注+은 음이 이니, 전적으로 주관함이다.
乃置大農部丞數十人하여 分主郡國하여 令遠方各以其物 如異時商賈所轉販者爲賦하여 而相灌輸하고 置平準于京師하여 都受天下委輸하여 貴卽賣之하고 賤卽買之하여 欲使富商大賈 無所牟大利하고 而萬物不得騰踊注+灌輸, 卽均輸也, 謂以土地之所有者, 轉遷於所無之地, 彼此互相灌注, 互相輸送, 故曰灌輸. 平準, 官名, 屬大農, 有令丞. 準者, 所以持平之器也, 故因以名焉. 委輸, 謂輸委積者也. 均輸, 在郡國, 各轉輸於京師者也. 平準, 在京師, 摠受天下之轉輸者也. 牟, 取也.이러니
이에 대사농의 부승部丞 수십 명을 두어 군국郡國을 나누어 주관하게 해서, 먼 지방으로 하여금 각각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가지고 예전에 상인들이 돌아다니며 판매하던 것처럼 세금을 내고 서로 유통하게 하였고, 평준관平準官경사京師에 설치하여 천하에서 실어오는 물건들을 모두 받아두고서, 값이 비싸지면 즉시 팔고 값이 싸지면 즉시 사서 부유한 장사꾼과 큰 장사꾼들로 하여금 큰 이익을 취하지 못하게 하고, 여러 물건이 갑자기 값이 뛰지 못하게 하였다.注+관수灌輸”는 바로 균수均輸이니, 그 지방에 생산되는 물건을 없는 곳으로 옮겨다가 팔아서 피차가 서로 물건을 대주고 수송하므로 관수灌輸(유통)라 이름한 것이다. 평준平準은 관직의 명칭으로 대사농에 소속되었으니, 이 있었다. 이므로 인하여 관명官名을 삼은 것이다. “위수委輸”는 쌓아놓은 물건을 수송함을 이른다. 균수관均輸官군국郡國에 있으면서 각각 경사京師(서울)로 수송해가는 자이고, 평준관平準官경사京師에 있으면서 천하에서 수송해오는 물건을 모두 받는 자이다. 는 취한다는 뜻이다.
至是하여 巡狩所過 賞賜用帛 百餘萬匹이요 錢金以巨萬計로되 皆取足大農하다
이때에 이르러, 황제가 순수巡狩하면서 지나가는 곳에서 상사賞賜로 사용한 비단이 백여만 이었고 금전(화폐)이 거만鉅萬으로 계산되었는데, 모두 대사농에서 취하여 충족하였다.
弘羊 又請令吏得入粟補官及罪人贖罪하니 民不益賦로되 而天下用饒
상홍양은 또 관리들로 하여금 관청에 곡식을 바쳐 관직에 보임되고 죄인들이 곡식을 바쳐 속죄할 것을 청하여 시행하니, 백성들이 세금을 더 내지 않았는데도 천하의 재정이 풍족하였다.
於是 賜弘羊爵左庶長하다
이에 상홍양에게 좌서장左庶長의 관작을 하사하였다.
是時 小旱이어늘 令官求雨한대 卜式 言曰
[目] 이때 날씨가 약간 가물자, 은 관원들로 하여금 비가 내리게 할 방도를 찾게 하니, 복식卜式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縣官 當食租衣稅而已注+衣, 去聲.어늘 今弘羊 令吏坐市列肆하고 販物求利하니 烹弘羊이라야 天乃雨注+坐市列肆, 謂吏坐市肆行列之中.하리이다
현관縣官(황제와 관리)은 마땅히 백성들이 바치는 조세를 받아서 먹고 입을 뿐인데,注+(옷을 입다)는 거성去聲이다. 지금 상홍양桑弘羊은 관리들로 하여금 시장에 열을 지은 점포에 앉아서 물건을 팔아 이익을 추구하게 하니, 상홍양을 삶아 죽여야 하늘이 비로소 비를 내려줄 것입니다.”注+좌시렬사坐市列肆”는 관리가 시장에 열을 지은 점포에 앉아서 물건을 팖을 이른다.
有星孛于東井하고 又孛于三台注+東井八星, 主水衡事, 法令所取平也. 王者用法平, 則井星明而端列. 三台, 六星, 西近文昌二星曰上台, 爲司命. 次二星曰中台, 爲司中. 東二星曰下台, 爲司祿, 所以昭德塞違也.하다
[綱] 가을에 패성孛星동정東井에 나타났고, 또 삼태성三台星에 나타났다.注+동정東井의 여덟 별은 수형水衡의 일을 주관하니, 법령法令공평公平함을 취한 것이다. 왕자王者가 법을 적용함이 공평하면 정성井星이 밝고 단정하게 벌려 있다. 삼태三台는 여섯 개의 별인데,
望氣王朔호되 候獨見塡星 出如瓜러니 食頃復入注+塡, 音鎭, 德星也.이라하니 有司皆曰 陛下建漢家封禪하시니 天其報德星云注+天官書 “景星者, 德星也. 其狀無常, 出於有道之國.”이라하니라
[目] 하는 왕삭王朔이 말하기를 “살펴봄에 홀로 전성塡星이 오이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한 식경이 지난 뒤에 다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注+은 음이 이니, 덕성德星이다. 라고 하자, 유사有司들이 모두 말하기를 “폐하께서 나라의 봉선封禪하는 의식을 처음 만드시니, 하늘이 그 보답으로 덕성德星을 나타낸 것입니다.”注+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 “경성景星덕성德星이니, 일정한 모습이 없고 가 있는 나라에 나타난다.” 하였다. 하였다.
역주
역주1 武節 : 고대에 장수들이 군대를 통솔할 때 사용하던 符節이다.
역주2 宋白 : 宋나라 大名 사람으로 字는 太素인데 문장을 잘하고 박학하였으며 벼슬이 吏部尙書에 이르렀다. 雍熙 연간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李昉과 함께 여러 文士들을 모아 《文苑英華》 천여 권을 지었으며 《東都事略》 등의 저서가 있다.
역주3 杜佑 : 唐나라 萬年 사람으로 字는 君卿인데 憲宗 때에 太保로 致仕하여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劉秩의 《政典》이 소략하다 하여 《通典》 200편을 지었는바 후대 掌故의 寶典으로 여겨진다.
역주4 遂東巡海上 : “《資治通鑑綱目》에 황제의 巡行을 쓴 것이 29번인데, 秦나라 始皇과 漢나라 武帝, 隋나라 煬帝 세 군주보다 많은 사람이 없고, 또한 세 군주보다 자세히 쓴 것이 없다. 그런데 초봄부터 5월까지 두루 순행하여 돌아온 거리가 18,000리에 이른 것은 또 秦나라 始皇과 隋나라 煬帝에게는 있지 않은 것이었다.[綱目書巡二十九 莫多於秦皇漢武隋煬三君 亦莫詳於三君 若夫自春首至五月 周回萬八千里 則又秦隋之所未有也]” 《書法》
역주5 石泥 : 돌가루를 진흙과 혼합한 것으로 古代에 封禪하면서 封禪書를 봉함할 적에 사용한 진흙이다.
역주6 受命之璽 : 처음 天命을 받아 天子가 되었다는 황제의 옥새이다.
역주7 臣瓉 : 《漢書》를 註釋한 사람인데, 성씨와 관향은 상세하지 않다. 《類苑》에는 于瓚이라고 하였고, 《水經注》에는 薛瓚이라고 하였고, 《訓纂》에는 傅瓚이라고 하였다.
역주8 賜桑弘羊爵左庶長 : “桑弘羊은 한 장사꾼의 자식일 뿐이었는데, 財利에 대해 말을 잘해서 총애를 받아 관작을 하사받음에 이르렀으니, 어찌 理財를 잘하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桑弘羊이 자기 집안 재물을 가져다가 국가를 도운 것도 아니고, 또 귀신이 수송해 와서 재물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요, 단지 권세를 빌어서 백성들의 재물을 수탈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아, 훌륭하다. 우리 宋나라 조정의 司馬溫公(司馬光)이 神宗께 대답한 말씀에 ‘하늘과 땅이 만든 財貨와 온갖 물건은 다만 이 數가 있을 뿐이어서 백성에게 있지 않으면 관청에 있으니, 비유하면 빗물이 여름에 많이 내리면 가을에는 가무는 것과 같습니다. 세금을 더 늘리지 않고서도 윗사람들의 재정이 풍족한 것은 교묘하게 법을 만들어서 백성들의 이익을 은근히 수탈함에 지나지 않으니, 그 폐해가 세금을 더 올리는 것보다도 심합니다. 이는 바로 상홍양이 武帝를 속인 말이니, 太史가 이것을 史書에 쓴 것은 무제가 현명하지 못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무제 말년에 이르러 도적이 봉기하여 거의 혼란에 이르렀으니, 만약 무제가 하늘이 내린 화를 뉘우치지 않고 昭帝가 법을 바꾸지 않았다면 漢나라가 거의 망할 뻔 했습니다.’ 하였다.
아, 이 말씀은 참으로 만세의 藥石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세금을 더 늘리지 않았다.’는 말을 하여 《資治通鑑》에서는 오히려 그 비슷한 내용을 기재하였는데, 《資治通鑑綱目》의 分註(目)에서는 삭제하고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桑弘羊에게 관작을 하사한 일’을 인해서 사마온공의 말씀을 자세히 기재하여 萬世의 法으로 삼는 것이다.[弘羊一賈人子爾 以言利得幸 至於賜爵 豈非以其善理財歟 然弘羊非能取其家之貲 以助國也 又非能神運鬼輸以生財也 不過假權勢以漁奪民財而已 善乎 我朝司馬公光對神祖之言曰 天地所生財貨百物 止有此數 不在民則在官 譬如雨澤夏澇則秋旱 不加賦而上用足 不過設法陰奪民利 其害甚於加賦 此乃弘羊欺武帝之言 太史書之 以見武帝之不明爾 至其末年 盜賊蠭起 幾至於亂 若武帝不悔禍 昭帝不變法 則漢幾亡 嗚呼 此言眞萬世之藥石也 然不加賦之說 通鑑猶載其彷彿 至綱目分註 則削而不錄矣 故臣因賜爵之事 備載司馬公之言 爲萬世法]” 《發明》
역주9 準은……器具 : 準은 水平器로, 땅의 높고 낮음을 고를 때 사용하는 기구이다.
역주10 서쪽의……막는다 : ‘司命’의 命은 수명으로 司命은 사람의 수명(長壽)을 주관하고, 司中은 宗室을 주관하고, 司祿은 兵(병기와 전쟁)을 주관하여 德이 있는 자를 표창하여 밝혀주고 王命을 어기는 자를 정벌하여 막는다고 한다.
역주11 望氣 : 옛날 方士들이 구름을 보고 길흉을 점치던 방술이다.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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