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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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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1권 중
漢 順帝 漢安 원년(142)~漢 桓帝 延熹 원년(158)
壬午年(142)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1권 중
한 순제漢 順帝 한안漢安 원년(142)~한 환제漢 桓帝 연희延熹 원년(158)
임오년壬午年(142)
漢安元年이라 秋八月 吾斯等 復反하다
나라 효순황제 한안孝順皇帝 漢安 원년이다. 가을 8월에 〈남흉노南匈奴오사吾斯 등이 다시 배반하였다.
◑遣八使하여 分行州郡하다
】 여덟 명의 사자를 보내 주군州郡을 나누어 순행하게 하였다.
遣杜喬, 周擧, 周栩, 馮羨, 欒巴, 張綱, 郭遵, 劉班하여 分行州郡注+行, 去聲.하여 表賢良하고 顯忠勤하며
두교杜喬, 주거周擧, 주허周栩(주후), 풍선馮羨(풍연), 난파欒巴, 장강張綱, 곽준郭遵유반劉班을 보내 주군州郡을 나누어 순행하여注+(순행하다)은 거성去聲이다. 덕행과 재능이 있는 자를 표창하고 충성스럽고 부지런한 자를 현양顯揚하며,
其貪汙有罪者 刺史, 二千石 驛馬上之하고 墨綬以下 便輒收擧注+刺史․二千石, 大吏, 驛馬上奏其罪, 取旨黜免. 驛馬, 欲速達京闕也. 墨綬, 縣令長也, 令長以下, 便收案擧劾其罪.하라하다
탐욕스러워 를 지은 자들 중에 자사刺史이천석二千石역마驛馬로 올려 보고하고 묵수墨綬인 〈〉 이하는 곧바로 체포하여 탄핵하라 하였다.注+자사刺史이천석二千石은 큰 관리이니, 역마驛馬로 그 죄를 상주上奏하여 황제의 뜻에 따라 내치거나 면직하게 한 것이다. 역마驛馬는 속히 경궐京闕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다. 묵수墨綬현령縣令현장縣長이니, 현령과 현장 이하는 곧바로 체포하고 조사하여 그 죄를 들어 탄핵하게 한 것이다.
喬等 受命之部할새 張綱 獨埋其車輪於雒陽都亭하고 曰 豺狼 當道하니 安問狐狸注+漢, 郡․國․縣․道皆有都亭.리오하고
두교 등이 명령을 받고 에 갈 적에 장강은 홀로 자기의 말하기를 “시랑豺狼이 길을 막고 있으니, 어찌 여우와 살쾡이를 묻겠는가.”注+나라는 에 모두 도정都亭이 있었다. 하고는,
遂劾奏大將軍冀, 河南尹不疑無君之心十五事하니 京師震悚하니라
마침내 대장군 양기大將軍 梁冀하남윤 양불의河南尹 梁不疑가 마음속으로 군주를 무시하는 열다섯 가지의 일을 탄핵하여 아뢰니, 경사京師가 진동하고 두려워하였다.
帝雖知綱言直이나 不能用也하고 他使所劾 亦多冀及宦者親黨이라
황제는 비록 장강의 말이 정직하다는 것을 알았으나 쓰지 못하였고, 다른 사자들이 탄핵한 바도 양기와 환관들의 친당親黨이 많았다.
事皆寢遏注+寢者, 已御其奏, 寢而不行. 遏者, 其奏未達, 遏而不上.하니 侍御史种暠 疾之하여 復行案擧注+种, 音沖. 暠, 古切.하니 乃更考正其罪注+通鑑 “帝乃更下八使奏章, 令考正其罪.”하다
그리하여 일이 모두 중지되거나 사전에 막히자注+은 이미 황제에게 주장奏章을 올렸으나 중지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고, 은 상주한 것이 도달하기 전에 막고 올리지 않은 것이다., 시어사 충고侍御史 种暠(충고)가 이를 미워하여 다시 문제를 들어 탄핵하니注+이다. 고로古老이다., 마침내 그 죄를 재조사하여 바로잡았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황제가 마침내 다시 여덟 명의 사자의 주장奏章을 회부하여 그 죄를 조사하여 바로잡게 했다.” 하였다.
以李固爲將作大匠하다
이고李固장작대장將作大匠으로 삼았다.
杜喬奏李固政爲天下第一이라 有是命하다
두교杜喬이고李固의 정사가 천하天下의 제일이라고 아뢰었으므로 이러한 이 있었다.
以張綱爲廣陵太守하다
장강張綱광릉태수廣陵太守로 삼았다.
梁冀恨張綱하여 思有以中傷之러니 廣陵賊張嬰 寇亂揚, 徐間하여 積十餘年이라 乃以綱爲廣陵太守하다
양기梁冀장강張綱이 〈자신을 탄핵한 것에〉 원한을 품고서 그를 중상中傷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광릉廣陵의 도적인 장영張嬰양주揚州서주徐州 사이를 도둑질하며 어지럽힌 지가 10여 년이 되니, 이에 장강을 광릉태수廣陵太守로 삼았다.
單車 徑詣嬰壘門한대 大驚하여 走閉壘어늘
장강이 한 대의 수레로 곧바로 장영의 군문軍門에 이르자, 장영이 크게 놀라서 달아나며 군문을 닫았다.
於門外 罷遣吏兵하고 留十餘人하고 以書喩嬰하여 請與相見하니 乃出拜謁이라
장강이 문밖에서 관리와 병사를 해산하여 보내고 10여 명을 남겨둔 다음, 편지로 장영을 타일러서 만나볼 것을 청하니, 장영이 마침내 나와 배알하였다.
延置上坐하고 譬之曰 前後二千石 多肆貪暴 致公等懷憤相聚하니 二千石 信有罪矣
장강은 그를 맞이하여 상좌上坐에 앉히고는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전후前後이천석二千石이 대부분 탐욕스럽고 포악한 짓을 자행하였으므로 등이 분노하는 마음을 품고 서로 모이게 되었으니, 참으로 이천석二千石에게 죄가 있다.
이나 公所爲者 又非義也 主上 仁聖하사 欲以文德服叛이라 遣太守來하시니 今誠轉禍爲福之時也
그러나 공이 한 행위도 의로운 것이 아니다. 주상主上께서 인자하고 성스러우셔서 배반한 자들을 문덕文德으로 복종시키고자 하셨으므로 이 태수太守를 보내셨으니, 지금이야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이다.
若聞義不服이면 天子震怒하사 荊, 揚, 兗, 豫大兵 雲合하여 身首橫分하고 血嗣俱絶하리니 二者利害 公其深計之注+嗣絶則無血食之祀矣. 或曰 “父子氣血相傳, 故曰血嗣.”하라
만약 의로운 말을 듣고도 복종하지 않으면 천자天子께서 진노하셔서 형주荊州양주揚州, 연주兗州예주豫州의 큰 병력이 구름처럼 모여 와서 몸과 머리가 나뉘고 혈사血嗣가 모두 끊길 것이니, 두 가지의 이해득실利害得失은 부디 깊이 헤아리라.”注+후사가 끊어지면 혈식血食하는 제사가 없게 된다. 혹자가 말하기를 “부자父子기혈氣血이 서로 전하므로, 혈사血嗣라고 한다.” 하였다.
하고 泣下曰 荒裔愚民 不堪侵枉하여 相聚偸生하니 若魚遊釜中이라
장영이 이 말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먼 변방의 어리석은 백성이 침탈을 당하는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여 서로 모여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마치 물고기가 가마솥 안에 노는 것과 같습니다.
知其不可久 且以喘息須臾間耳注+喘, 疾息也. 須臾, 不久貌. 猶苟延殘喘, 少延視息之義. 今聞明府之言하니 乃嬰等更生之辰也라하고 乃辭還營하다
오래갈 수 없음을 알지만 우선 잠시 동안이라도 숨을 붙일 뿐입니다.注+은 숨을 빨리 쉼이고, “수유須臾”는 오래지 않은 모양이다. 〈“천식수유간喘息須臾間”은〉 구차히 남은 목숨을 연장하는 것과 같으니, 겨우 버티고 있는 숨을 조금 연장한다는 뜻이다. 지금 밝으신 태수太守의 말씀을 들으니, 바로 저 장영 등이 다시 살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고는 마침내 인사하고 군영으로 돌아갔다.
明日 將所部萬餘人하고 與妻子面縛歸降注+面縛, 縛手於背而面向前也.이어늘 單車入壘하여 置酒爲樂注+樂, 音洛.하고
】 다음 날 장영張嬰은 자기 휘하의 만여 명을 거느리고 처자식과 함께 손을 뒤로 묶고 얼굴을 든 채 귀순하여 항복하였다.注+면박面縛”은 손은 등 뒤로 묶고 얼굴은 앞을 향한 것이다. 장강張綱은 한 대의 수레로 장영의 군영에 들어가서 술자리를 베풀어 즐기고注+(즐기다)은 이다.,
散遣部衆하여 任從所之하고 親爲卜居宅, 相田疇注+爲, 去聲, 下爲之․乃爲幷同. 相, 視也. 田幷畔曰疇.하고 子弟欲爲吏者 皆引召之하니 人情悅服하여 南州晏然이라
장영 휘하의 무리들을 흩어 보내면서 가고 싶은 대로 가게 하고, 그들을 위해 친히 거주할 집을 마련해주고 전지田地를 살펴주었으며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 “위지爲之”와 “내위乃爲”의 도 모두 같다. 은 살펴봄이다. 밭에 밭두둑을 함께한 것을 라 한다., 자제子弟 중에 관리가 되고자 하는 자들을 모두 불러들이니, 인정人情이 기뻐하고 복종하여 남쪽 고을이 편안하였다.
論功當封이러니 梁冀遏之하다 在郡一歲하니 嬰等五百餘人 爲之制服하고 行喪 送到犍爲하여 負土成墳注+綱, 本犍爲武陽人.하다
조정에서 을 논하여 막 봉하려 하였는데, 양기梁冀가 저지하였다. 장강은 에 재직한 지 1년 만에 하였는데, 장영 등 500여 명이 그를 위하여 상복을 입고, 상여를 운반할 적에 건위군犍爲郡까지 따라와 전송하고서 흙을 져다가 무덤을 만들었다.注+장강張綱은 본래 건위군 무양犍爲郡 武陽 사람이다.
二千石長吏有能政者 有雒陽令任峻 冀州刺史蘇章 膠東相吳祐하니
】 이때에 이천석二千石장리長吏 중에 정사에 능한 자로는 낙양령 임준雒陽令 任峻기주자사 소장冀州刺史 蘇章교동상 오우膠東相 吳祐가 있었다.
雒陽 自王渙之後 皆不稱職이로되 能選用文武하여 各盡其用하고 發姦不旋踵하니 民間 不畏吏
낙양雒陽왕환王渙의 〈선정善政이 있은〉 뒤로부터 모두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는데, 임준이 능히 문무관文武官을 선발하여 등용해서 각각 그 쓰임을 다하였고, 발꿈치를 되돌릴 틈이 없이 즉시 간악한 관리를 적발하니, 백성들이 관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其威禁 猛於渙이나 而文理政敎 不如也러라
그 위엄과 금령禁令은 왕환보다 더하였으나, 으로 다스리고 정사政事로 가르침은 왕환만 못하였다.
有故人爲淸河太守러니 行部하여 欲案其姦臧할새 乃爲設酒甚歡하니
소장蘇章에게는 청하태수淸河太守로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소장이 를 순행하여 친구의 부정한 장물죄를 조사하고자 할 적에 그를 위해 술자리를 베풀고서 매우 즐거워하였다.
太守喜曰 人皆有一天이어늘 我獨有二天注+謂章必能覆蓋其惡也.이로다 章曰 今夕 蘇孺文 與故人飮者 私恩也
태수太守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한 하늘이 있는데 나만 홀로 두 하늘이 있다.”注+〈“아독유이천我獨有二天”은〉 소장蘇章이 반드시 자신의 죄악을 덮어줄 것임을 말한 것이다. 하자, 소장이 말하기를 “오늘 저녁 나 소유문蘇孺文이 옛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은 사사로운 은혜요,
明日 冀州刺史案事者 公法也注+孺文, 章字.라하고 遂擧正其罪하니 州境 肅然이러라
내일 기주자사冀州刺史가 일을 조사하는 것은 공법公法이다.”注+유문孺文소장蘇章이다. 하고는 마침내 그의 죄를 들어 바로잡으니, 의 경내가 숙연肅然하였다.
後以摧折權豪 坐免하니 天下日敝하여 民多愁苦 論者日夜稱章호되 朝廷 不能復用也러라
뒤에 소장이 권세가 있는 호강豪强들을 공격한 일에 연루되어 파면되었는데, 이때 천하가 날로 피폐하여 백성들이 시름과 고통이 많아서 논하는 자가 밤낮으로 소장을 칭찬하였으나, 조정은 그를 다시 등용하지 못하였다.
政崇仁簡하니 民不忍欺 嗇夫孫性 私賦民錢하여 市衣以進其父注+縣置嗇夫一人, 賦斂也.한대
오우吳祐는 인자하고 소탈한 정사를 숭상하니, 백성들이 차마 속이지 못하였다. 색부嗇夫손성孫性이 은밀히 백성들에게 돈을 거두어 옷을 사서 아버지에게 올렸는데注+에는 색부嗇夫 한 사람을 두어 세금을 거두게 하였다.,
父得而怒曰 有君如是어늘 何忍欺之오하고 促歸伏罪하니 慙懼自首하고 具談父言注+通鑑 “持衣自首.”이라
아버지가 옷을 받고 노하여 말하기를 “이와 같이 훌륭한 (상사)이 있는데, 어찌 차마 속이겠는가.” 하고는 빨리 돌아가 죄를 자백하게 하였다. 손성이 부끄럽고 두려워하여 자수하고는 오우에게 아버지의 말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옷을 가지고 자수自首했다.” 하였다.
祐曰 掾以親故 受汙穢之名하니 所謂觀過知仁矣로다하고 使歸謝其父하고 還以衣遺之하다
오우가 말하기를 “아전이 어버이 때문에 오욕汚辱의 이름을 얻었으니, 이른바 하고 손성으로 하여금 돌아가 아버지에게 사죄하게 하고, 다시 옷을 보내주었다.
罕羌이어늘 罷張喬軍屯하다
역주
역주1 縣令과 縣長 : 모두 縣의 행정장관을 이르는 말로, 인구 萬戶 이상에서는 縣令,萬戶 이하에서는 縣長이라고 하였다.
역주2 수레바퀴를……묻으면서 : 都亭은 여행하는 자들이 유숙하는 客舍이다. 수레바퀴를 묻는다는 것은 수레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이동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孫子≫ 〈九地〉의 ‘埋輪’에 대한 曹操의 註에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을 보이는 것이다.[示不動也]”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낙양을 떠나 州郡으로 가지 않고 낙양에서 權貴들을 조사하여 탄핵하겠다는 것이다. 都京은 도회지에 있는 傳舍이다.
역주3 (者)[老] : 저본에는 ‘者’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老’로 바로잡았다.
역주4 : 蠻夷를 주관하는 縣을 道라 한다.(≪後漢書≫ 〈百官志〉)
역주5 : 反切音을 표시한 것이다. ‘反(번)’은 뒤집는다(되치다)는 뜻으로 번역을 의미하고, ‘切’은 자른다는 의미이다. 앞 글자의 初聲을 따고 뒷글자의 中聲과 終聲을 따서 읽는다.
역주6 허물을……것이다 : 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仁한지 不仁한지를 안다는 뜻으로, ≪論語≫ 〈里仁〉에 보이는 孔子의 말씀이다. 孫性이 백성들에게 불법으로 돈을 거두어 부친에게 옷을 마련해 드렸는바, 불법으로 돈을 거둔 것은 잘못이지만 孝心이 있었으므로 마음이 仁함을 안다 한 것이다.
역주7 겨울에……파하였다 : 漢 順帝 永和 5년(140) 隴西의 羌族이 반란을 일으켜 三輔 지방까지 침략하자 永和 6년(141)에 車騎將軍 張喬를 三輔 지방에 주둔시켰다.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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