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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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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B.C. 257)
五十八年이라
燕孝王元年注+孝王, 武成王子.이라
殺白起하다
王齕 戰不利어늘 武安君曰 不聽吾計러니 今何如矣 聞之하고하야 彊起之한대
武安君 稱病篤이어늘 乃免爲士伍하야 遷之陰密이러니
行至杜郵注+律有罪失官爵稱士伍. 謂奪其爵. 使從士卒之伍也. 班志 “陰密縣屬安定郡.” 水經注 “渭水故渠逕安陵南, 渠側有杜郵亭.”하얀 應侯曰 起之遷 意尙怏怏하야 有餘言注+怏, 倚兩切. 怏怏, 志不滿也.이라하야늘 乃使賜之劒한대
武安君 遂自殺하니 秦人 憐之러라
應侯乃任鄭安平하야 使將擊趙하다
魏公子無忌大破秦軍邯鄲下하다
信陵君 大破秦軍於邯鄲下한대 王齕 解圍走하고 鄭安平 以二萬人으로 降趙하다
信陵君 不敢歸魏하야 使將으로 將其軍以還하다
趙王 欲以五城으로 封公子한대 公子聞之하고 有自功之色이어늘
有說公子曰 物有不可忘하고 有不可不忘하니
人有德於公子어든 公子不可忘也어니와 公子有德於人이어든 願公子 忘之也하라
且矯令奪兵하야 以救趙하니 於趙則有功矣어니와 於魏則未爲忠臣也어늘
公子乃自驕而功之하니 竊爲公子不取也하노라 於是 公子立自責하야 若無所容이러라
趙王 自迎하야 執主人之禮하야 引公子就西階한대
公子側行辭讓하야 從東階上注+禮 “主人就東階, 客就西階, 客若降等, 則就主人之階.”하야 自言辠過以負於魏하고 無功於趙注+辠, 古罪字. 秦始皇以其似皇字, 故改爲罪. 負, 音佩, 又如字, 孤負也.하니
趙王 與公子飮하야 至暮로대 以公子退讓이라 竟不忍言獻五城注+不忍, 猶言不敢也. 恐無忌以大義相責, 故不敢言獻城.하니라
平原君 欲封魯仲連이어늘 仲連 亦不受한대
乃以千金爲壽어늘 笑曰 所貴爲天下之士者 爲人排患難解紛亂而無取也注+爲, 去聲.
卽有取者 商賈之事 連不忍爲也注+轉貨販易者爲商, 坐市販賣者爲賈.라하고 遂辭去하야 終身不復見하다
秦太子之子異人 自趙逃歸하다
秦太子妃曰華陽夫人이니 無子注+華陽夫人, 蓋食湯沐邑於華陽, 因以爲號.하고 夏姬 生子異人하야 質於趙러니
數伐趙한대 不禮之하니 困不得意러니
陽翟大賈呂不韋 適邯鄲見之하고 曰 此 奇貨
可居注+以異人方財貨也. 居, 蓄積也.라하고
乃說之曰 秦王 老矣 太子愛華陽夫人而無子하고
子之兄弟二十餘人 子居中하야 不甚見幸하니 太子卽位라도 子不得爭爲嗣矣리라
異人曰 奈何
不韋曰 能立適嗣者 獨華陽夫人耳
不韋雖貧이나 請以千金으로 爲子西游하야 立子爲嗣호리라 異人曰 必如君策인대 秦國 與子共之호리라
不韋乃與五百金하야 令結賓客하고 復以五百金으로 買奇物玩好注+玩, 翫同.하야 自奉而西하야 見夫人姊而以獻於夫人하고
因譽異人之賢호대 賓客 遍天下하고 日夜 泣思太子及夫人曰 異人也 以夫人爲天이라한대
夫人어늘 不韋因使其姊 說曰 夫人 愛而無子하니
不以繁華時 蚤自結於諸子中賢孝者하야 擧以爲適이라가 卽色衰愛弛하면 雖欲開一言인들 尙可得乎
今異人호대 而自知中子 不得爲適注+中, 讀曰仲.하나니
誠以此時拔之 異人 無國而有國이요 夫人 無子而有子也
則終身有寵於秦矣리라한대
夫人 以爲然하야 乘間言之注+間, 去聲. 謂乘其間隙之時.하니 太子與夫人으로 又刻玉符하야 約以爲嗣하고 因請不韋傅之하다
不韋娶邯鄲姬絶美者與居하야 知其有娠注+娶, 當作取. 絶, 奇冠也, 相去遼遠也. 懷胎爲娠.이러니
異人 見而請之한대 不韋佯怒라가 旣而獻之하야
期年而生子政注+期, 十二月也.하니 異人 遂以爲夫人하다
邯鄲之圍 趙人 欲殺之어늘 不韋賂守者得脫하야
亡赴秦軍하야 遂歸하다
異人 楚服而見夫人注+不韋, 以王后楚人, 故使異人服楚製而說之. 見, 形甸切.한대 夫人曰 吾 楚人也
當自子之라하야 更名曰楚注+子, 嗣也. 我當自養之爲嗣也.라하다


갑진년(B.C. 257)
[綱]나라 난왕赧王 58년이다.
[目]나라 효왕孝王 원년이다.注+효왕孝王무성왕武成王의 아들이다.
[綱]나라가 백기白起를 죽였다.
[目]왕흘王齕이 전쟁에서 불리하였는데, 무안군武安君이 말하기를 “왕이 나의 계책을 듣지 않더니 지금 어떠한가?” 하니, 왕이 그 말을 듣고 진노하여 그를 억지로 기용하였다.
무안군이 병이 더쳤다고 핑계를 대자, 마침내 파면하여 사졸에 편입시키고는 음밀陰密로 유배를 보냈다.
무안군이 두우杜郵에 이르렀을 때에注+① 법률에 의하면, 죄가 있어 관작을 잃게 되는 것을 사오士伍라고 칭하니, 작위를 빼앗고 그로 하여금 사졸의 대오를 따르게 하는 것을 이른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음밀현陰密縣안정군安定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수경주水經注》에 “위수渭水의 옛 수로水路안릉安陵 남쪽을 지나는데, 수로 가에 두우정杜郵亭이 있다.”고 하였다.응후應侯가 아뢰기를 “백기가 유배를 가면서 마음에 아직도 불만이 가득하여 원망하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注+의량倚兩이다. 앙앙怏怏은 뜻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하니, 왕이 이에 검을 내려주도록 하였다.
무안군이 마침내 자살을 하니, 나라 사람들이 불쌍히 여겼다.
응후가 이에 정안평鄭安平을 천거하여 그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武安君 白起가 원한을 품고 杜郵에서 자살하다武安君 白起가 원한을 품고 杜郵에서 자살하다
[綱]나라 공자公子 무기無忌나라 군대를 한단邯鄲 아래에서 크게 무찔렀다.
[目]신릉군信陵君나라 군대를 한단邯鄲 아래에서 무찌르자, 왕흘王齕은 포위를 풀고 달아나고 정안평鄭安平은 2만의 군사를 이끌고 나라에 항복하였다.
신릉군은 감히 나라로 돌아갈 수 없어서 장수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로 돌아가게 하였다.
나라 왕이 다섯 성으로 공자公子를 봉하려고 하였는데, 공자가 이 소식을 듣고 스스로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기색이 있었다.
어떤 빈객이 공자에게 말하기를 “사물에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고, 잊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께 덕을 베풀었으면 공자께서는 잊어서는 안 되고, 공子께서 남에게 덕을 베풀었으면 공자께서는 잊기 바랍니다.
그리고 왕의 명령을 속이고 군사를 탈취하여 나라를 구하였으니, 나라에게는 공이 있습니다만, 나라에는 충신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공자께서 스스로 오만하게 공이라고 여기시니, 저는 공자가 취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이에 공자가 바로 자책하여 마치 용납될 곳이 없는 것처럼 부끄러워하였다.
[目]나라 왕이 스스로 공자公子를 맞이하고 주인의 예를 행하여 공자를 인도하여 서쪽 계단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공자가 옆으로 비켜서 걸어 사양하고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스스로 말하기를注+① 《예기禮記》 〈곡례曲禮 〉에 “주인은 동쪽 계단으로 나아가고 객은 서쪽 계단으로 나아가는데, 객의 신분이 낮으면 주인의 계단으로 나아간다.”라고 하였다. “죄과를 범하여 나라를 저버렸고 나라에도 공이 없다.”注+고자古字이다. 시황始皇이 그 글자가 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로 바꾸었다. 는 음이 이고, 또 본음대로 읽으니, 저버린다는 뜻이다. 하였다.
나라 왕이 공자와 함께 해가 질 때까지 술을 마셨는데, 공자의 겸손함 때문에 끝내 차마 다섯 성을 주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注+불인不忍불감不敢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무기無忌대의大義로써 따질까 봐 두려웠으므로 감히 성을 주겠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다.
평원군平原君노중련魯仲連을 봉하고자 하였는데, 노중련도 받지 않았다.
이에 천금을 가지고 축수를 하니, 노중련이 웃으며 말하기를 “천하의 선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남을 위해 환난을 제거하고 분란을 해결하되 보상을 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만일 취하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장사치의 일이니, 저는 차마 할 수 없습니다.”注+② 물건을 운반하여 교역하는 것이 이고, 시장에 앉아 판매하는 것이 이다. 하고는 평원군과 작별하고 떠나가서 평생토록 다시 만나지 않았다.
[綱]나라 태자太子의 아들 이인異人나라에서 도망쳐 돌아왔다.
[目]나라 태자비太子妃화양부인華陽夫人이니 아들이 없었고注+화양부인華陽夫人은 아마도 화양華陽을 두었으므로 인하여 호로 삼은 듯하다., 하희夏姬가 아들 이인異人을 낳아 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나라가 자주 나라를 정벌하였으므로 나라가 이인을 예우하지 않으니, 곤궁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양적陽翟의 큰 상인인 여불위呂不韋한단邯鄲에 갔다가 그를 보고 말하기를 “이는 진귀한 보화이다.
쌓아둘 만하다.”注+이인異人을 재화에 견준 것이다. 는 쌓는다는 뜻이다. 하였다.
그리고는 설득하기를 “나라 왕은 연로하였고, 태자가 화양부인을 사랑하나 자식이 없으며,
그대의 형제 20여 명 가운데 그대가 중간에 있어 그다지 총애를 받지 못하니, 태자가 즉위하더라도 그대가 후사가 되기를 다툴 수 없을 것이다.” 하니,
이인이 “어떻게 해야겠소?”라고 물었다.
여불위가 말하기를 “능히 후계자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 화양부인뿐이다.
내가 비록 가난하나 천금을 가지고 그대를 위해 서쪽에 가서 그대를 세워 후계자로 삼게 하리라.” 하니, 이인이 말하기를 “반드시 그대의 계책대로 된다면 나라를 그대와 더불어 공유하리라.” 하였다.
[目]여불위呂不韋가 이에 500금을 이인異人에게 주어 빈객과 사귀게 하고, 다시 500금으로 기이한 보물과 좋은 노리개를 사서注+과 같다. 스스로 받들고 서쪽으로 가서 부인의 언니를 만나 그를 통해 부인에게 바쳤다.
이를 계기로 이인이 어질고, 그의 빈객이 천하에 두루 있으며, 밤낮으로 울면서 태자와 부인을 사모하여 “이인은 부인을 하늘로 여긴다.”라고 말한다고 하였다.
부인이 기뻐하자, 여불위가 이에 부인의 언니로 하여금 설득하게 하기를 “부인이 사랑을 받고 있으나 아들이 없습니다.
꽃다운 때에 일찌감치 스스로 여러 공자公子들 중에 어질고 효성스러운 자와 모자의 관계를 맺어 그를 들어 후사로 삼지 않고 있다가, 만일 외모가 쇠하고 사랑이 식게 되면 비록 한마디 말을 하고자 한들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이인이 어질지만, 자신이 가운데 아들이라서 후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注+(중간)은 으로 읽는다.
진실로 이러한 때에 그를 발탁한다면, 이는 이인에게는 없던 나라가 생기는 것이고, 부인에게는 없던 자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평생토록 나라에서 총애를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부인이 옳다고 여기고 기회를 봐서 태자에게 말하니注+(틈)은 거성去聲이다. 틈나는 시간을 이용함을 말한 것이다., 태자가 부인과 함께 다시 옥부玉符를 새겨서 후사로 삼을 것을 약속하고, 인하여 여불위에게 그를 가르치도록 부탁하였다.
[目]여불위呂不韋한단邯鄲의 절세 미녀를 맞이하여 살다가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았다.注+가 되어야 한다. 은 기이하고 출중하다는 뜻이고, 서로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임신한 것을 이라고 한다.
이인異人이 그녀를 보고서 자신에게 달라고 청하였는데, 여불위가 성을 내는 척하다가 얼마 뒤에 그녀를 바쳤다.
만 일 년 만에 아들 을 낳으니注+는 12개월이다., 이인이 마침내 그녀를 부인으로 삼았다.
한단이 포위되었을 때에 나라 사람들이 이인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여불위가 수위에게 뇌물을 주어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인이 나라 군중으로 도망쳐서 마침내 나라로 돌아왔다.
이인이 나라 옷을 입고 부인을 뵙자注+여불위呂不韋왕후王后나라 사람이므로 이인異人으로 하여금 나라 복장을 입게 하여 왕후를 기쁘게 한 것이다. (뵈다)은 형전形甸이다., 부인이 말하기를 “나는 나라 사람이다.
마땅히 내가 너를 키워 후사로 삼으리라.” 하고는 이름을 바꾸어 注+는 후사이다. 내가 마땅히 스스로 키워 후사로 삼겠다는 것이다.라고 불렀다.


역주
역주1 湯沐邑 : 임금이나 皇后, 公主 등이 賦稅를 거두어 경비에 조달하던 邑이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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