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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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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未年(B.C. 122)
기미년(B.C. 122)
元狩元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원수元狩 원년이다.
冬十月 祠五畤할새 獲一角獸하여 以燎하고 始以하다
겨울 10월에 에 제사 지낼 적에 뿔이 하나인 짐승을 잡고는 나무섶 위에 희생을 올려놓고 나무섶을 태워 하늘에 제사하고, 처음으로 하늘이 내린 상서로운 물건으로 기원紀元을 하였다.
行幸雍하여 祠五畤러니 獲獸하니 一角而足有五蹄어늘
[目] 황제가 지역에 행차하여 오치五畤에 제사할 적에 한 짐승을 잡았는데, 뿔은 하나이고 발에는 다섯 개의 발굽이 있었다.
有司言 陛下 肅祇郊祀하신대 上帝報享하사 錫一角獸하시니 蓋麟云注+曰蓋云者, 意其爲麟, 而未知其果爲麟也.이라하니
유사有司가 아뢰기를 “폐하께서 교사郊祀를 엄숙하고 공경히 지내시자, 상제上帝가 제향에 보답하여 뿔이 하나인 짐승을 내려주셨으니, 아마도 기린인 듯합니다.”注+개운蓋云”이라고 말한 것은 기린이라고 생각되나 과연 기린인지를 알지 못하여 (아마도)라고 말한 것이다. 하였다.
於是 以薦五畤하고 畤加一牛以燎注+燎, 力召切, 燔柴祭天也.하다
이에 이 짐승을 오치五畤에 올리고 마다 한 마리의 소를 더하여 나무섶을 태워 제사하였다.注+(태우다)는 역소力召이니, 나무섶 〈위에 희생을 올려놓고〉 불태워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이다.
有司又言 元 宜以天瑞命注+命, 名也. 謂改元, 宜用天之祥瑞爲名.이니이다
유사有司가 또 아뢰기를 “원년은 마땅히 하늘의 상서로운 물건으로써 명명해야 합니다.注+은 명명한다는 뜻이니, 〈“ 의이천서명宜以天瑞命”은〉 원년元年을 고침에는 마땅히 하늘이 내린 상서祥瑞로운 물건을 사용하여 이름해야 함을 이른다.
一元曰建이라하고 二元 以長星曰光이라하니 今元 以郊得一角獸曰狩云이라하다
첫 번째 원년을 건원建元이라 하였고 두 번째 원년은 장성長星 때문에 원광元光이라 하였으니, 지금의 기원은 교제郊祭에 뿔이 하나인 짐승을 얻었으므로 원수元狩라 해야 합니다.” 하였다.
[綱]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형산왕衡山王 유사劉賜가 반란을 모의하다가 자살하였다.
淮南王安 與賓客左吳等으로 日夜爲反謀할새 召中郞伍被하여 與謀反事하니
[目]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빈객賓客좌오左吳 등과 밤낮으로 반란을 일으킬 것을 모의하였는데, 중랑中郞 오피伍被를 불러서 함께 모반하는 일을 상의하였다.
被始以爲不可러니 固問之한대 被曰
오피가 처음에는 불가하다 하였으나 유안이 재삼 묻자, 오피가 대답하기를
今諸侯無異心하고 百姓無怨氣하니 可僞爲詔하여 徙郡國豪傑於朔方하고
“지금 제후들이 딴마음을 품지 않고 백성들이 천자를 원망하는 기색이 없으니, 거짓으로 조령詔令을 만들어서 ‘군국郡國호걸豪傑들을 삭방朔方으로 옮긴다.’ 하고,
又僞爲詔獄하여 盡逮諸侯太子, 幸臣하여 使民怨, 諸侯懼注+漢時, 左右都司空ㆍ上林中都官, 皆有詔獄, 蓋奉詔以鞠囚, 因以爲名. 漢書伍被傳幸字上, 有及字.하고
또 거짓으로 조옥詔獄을 만들어서 ‘제후諸侯태자太子와 여러 행신幸臣들을 모두 체포한다.’라고 하여, 백성들이 원망하고 제후들이 두려워하게 하며,注+나라 때에 좌우左右 도사공都司空상림원上林苑 중도관中都官에 모두 조옥詔獄이 있었으니, 조령詔令을 받들어 죄수를 국문하였기 때문에 인하여 조옥詔獄이라 이름한 것이다. 《한서漢書》 〈오피전伍被傳〉에는 자 위에 자가 있다.
卽使辯士 隨而說之하면 儻有徼幸什得一乎인저
즉시 변사辯士로 하여금 뒤따라 제후들을 설득하게 하면, 행여 열에 하나 성공을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又欲使人僞得罪而西하여 事大將軍이라가 一日發兵이어든 卽刺殺大將軍注+西, 謂如京師也. 發兵, 謂王發兵反.하고
유안이 또다시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으로 죄를 얻어 서쪽(장안長安)으로 가서 대장군大將軍(위청衛靑)을 섬기다가, 어느 날 회남왕淮南王이 군대를 일으키면 즉시 대장군을 찔러 죽이게 하려 하였고,注+西경사京師(장안長安)로 감을 이른다. “발병發兵”은 회남왕淮南王이 군대를 출동하여 모반함을 이른다.
且曰 漢廷大臣 獨汲黯 好直諫하고 守節死義하여 難惑以非어니와 至如說丞相弘等하야는 如發蒙振落耳注+發蒙, 謂物所蒙覆, 發而去之. 振落, 謂木葉將落, 振而墜之. 皆言其易也.라하니라
또 말하기를 “나라 조정의 대신大臣 중에 오직 급암汲黯만이 직간直諫을 좋아하고 절개를 지켜 의리에 죽어서 비리非理로 유혹하기 어렵지만 승상丞相 공손홍公孫弘 등을 설득함에 있어서는 물건을 덮고 있는 것을 열어 제거하고 떨어지려는 나뭇잎을 흔들어 떨어뜨리는 것과 같이 쉽다.”注+발몽發蒙”은 물건을 덮고 있는 것을 열어 제거함을 이르고, “진락振落”은 나뭇잎이 장차 떨어지려 할 적에 흔들어 떨어뜨리는 것이니, 모두 그 쉬움을 말한다. 하였다.
太子謀殺漢使라가 事覺하여 廷尉逮捕한대 欲發兵호되 猶豫未決이러니
[目] 마침 회남왕淮南王태자太子나라의 사자使者를 죽이려고 도모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정위廷尉가 그를 체포하자, 유안劉安이 군대를 동원하고자 하였으나 유예猶豫하여 결단하지 못하였다.
被自詣吏하여 告與安謀如此어늘 使宗正으로 以符節治安한대
오피伍被가 스스로 관리에게 찾아가서 ‘유안과 함께 이와 같이 반란할 계책을 세웠다.’라고 고발하였으므로, 종정宗正으로 하여금 부절符節을 가지고 가서 유안의 죄를 다스리게 하였다.
未至 自剄하고 王后, 太子 伏誅하고 諸所與謀反者 皆族하다
종정이 도착하기 전에 유안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고, 왕후王后태자太子복주伏誅되었으며, 함께 반역을 획책한 자들은 모두 멸족되었다.
捕得陳喜於衡山王子孝家하니 孝聞律 先自告하면 除其罪하고 卽先自告所與謀反者枚赫, 陳喜等이어늘
형산왕衡山王의 아들 유효劉孝의 집에서 진희陳喜를 체포하고자 하니, 유효는 ‘법률에 먼저 자수하면 죄를 면제받는다.’는 말을 듣고, 즉시 먼저 함께 반역을 획책하였던 매혁枚赫진희陳喜 등을 스스로 고발하였다.
公卿 請逮捕賜治한대 自剄死하고 王后, 太子及孝 皆棄市하니 凡二獄所連引列侯, 二千石, 豪傑等死者 數萬人이라
공경公卿들이 형산왕衡山王 유사劉賜를 체포하여 치죄治罪할 것을 청하자, 유사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고, 왕후王后태자太子유효劉孝는 모두 기시형棄市刑을 당하니, 무릇 두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죽은 열후列侯이천석二千石, 호걸豪傑 등이 수만 명이었다.
侍中莊助 素與安結交하여 受其賂遺러니 薄其罪한대 張湯以爲助 腹心之臣으로 與諸侯交私하니 罪不可赦라하여 遂棄市하다
시중侍中 장조莊助는 평소 유안과 친분을 맺어 그의 선물을 받았었는데, 이 그의 죄를 가볍게 처리하자, 장탕張湯이 아뢰기를 “장조는 복심腹心의 신하로서 제후들과 사사로이 교통하였으니,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여, 마침내 기시형棄市刑에 처하였다.
夏四月하다
[綱] 여름 4월에 사면赦免하였다.
◑ 立子據하여 爲皇太子하다
[綱] 아들 유거劉據황태자皇太子로 세웠다.
◑ 五月晦 日食하다
[綱] 5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 遣博望侯張騫하여 使西域하여 하다
[綱] 박망후博望侯 장건張騫서역西域에 사신으로 보내어 전국滇國과 처음 교통하였고 다시 서남이西南夷를 경략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張騫 自月氏還하여 具爲天子하여 言西域諸國風俗호되
[目] 이전에 장건張騫월씨국月氏國(월지국)에서 돌아와 천자天子를 위하여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 풍속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말하였다.
大宛 在漢正西하니 可萬里니이다
대완大宛나라의 정서正西쪽에 있으니, 장안長安과의 거리가 만 리쯤 됩니다.
其俗 土著耕田이요 多善馬하며 有城郭室屋注+土著, 言著土地而有常居, 不隨畜牧移徙.하고 其東北則烏孫이요 東則于窴注+烏孫, 於西域諸戎, 其形最異, 靑眼赤鬚, 狀類獼猴. 窴, 田‧殿二音, 通作闐.이니이다
이들의 풍속은 토착하여 농사를 짓고 좋은 말이 많으며 성곽과 가옥이 있고,注+토착土著”은 일정한 지역에 붙어살면서 일정한 거처가 있어서 가축을 따라 방목하며 옮겨 다니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그 동북쪽엔 오손烏孫이 있고 동쪽엔 우전于窴이 있습니다.注+오손烏孫서역西域의 여러 융족戎族 중에 생김새가 가장 특이하여 푸른 눈에 붉은 수염이 있어서 모습이 원숭이와 비슷하다. 殿 두 가지 음이니, 과 통한다.
于窴之西 則水皆西流하여 注西海하고 其東 水東流하여 注鹽澤注+鹽澤, 去玉門ㆍ陽關三百餘里, 廣袤三四百里. 括地志 “蒲昌海, 一名泑澤, 亦名鹽澤, 亦名蒲日海, 亦名穿蘭, 亦名臨海.”하니 鹽澤 潛行地下하고 其南則河源出焉注+河出崑崙, 潛行地下, 至蔥嶺山ㆍ于窴國, 復分流歧出, 合而東注泑澤, 已而, 復行積石, 爲中國河.하니 鹽澤 去長安可五千里니이다
우전의 서쪽은 물이 모두 서쪽으로 흘러 서해西海로 들어가고, 그 동쪽은 물이 동쪽으로 흘러 염택鹽澤으로 들어가니,注+염택鹽澤옥문관玉門關양관陽關에서 3백여 리 떨어져 있는데, 넓이가 3, 4백 리이다. 에 “포창해蒲昌海는 일명 유택泑澤(요택)이니, 또한 염택鹽澤이라 하기도 하고, 포일해蒲日海라 하기도 하고, 천란穿蘭이라 하기도 하고, 임해臨海라 하기도 한다.” 하였다. 염택은 물이 땅 속으로 흐르고 그 남쪽은 황하黃河의 근원이 나오는데,注+황하黃河곤륜산崑崙山에서 발원하여 땅속으로 흘러서 총령산蔥嶺山(파미르 고원)과 우전국于窴國에 이르러 다시 나뉘어 두 갈래로 흘러나오다가 합류하여 동쪽으로 유택泑澤으로 들어가고, 이윽고 다시 적석積石으로 흘러서 중국中國황하黃河가 된다. 염택은 장안과의 거리가 5천 리쯤 됩니다.
匈奴右方 居鹽澤以東하여 至隴西長城하고 南接羌하여鬲漢道焉注+匈奴分其國爲左右, 諸左王將居東方, 直上谷以東, 接濊貊朝鮮. 右王將居西方, 直上郡以西, 接氐羌, 故謂之左右方, 亦謂之左右地. 長城, 卽秦所築長城也. 鬲, 與隔通, 障也.이요 烏孫, 康居, 奄蔡, 大月氏 皆行國이니 隨畜牧하여 與匈奴同俗注+奄蔡, 如字. 奄蔡國, 在康居西北二千里. 行國, 不土著也.이요 大夏 在大宛西南하여 與大宛同俗하니이다
흉노匈奴의 오른쪽 지방은 염택 동쪽에 있어서 농서隴西장성長城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과 인접하여 나라와 길이 막혀 있으며,注+장성長城은 바로 나라에서 쌓은 장성長城이다. 과 통하니, 막힘이다. 오손烏孫강거康居, 엄채奄蔡대월지大月氏는 모두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의 나라이니, 가축을 따라 방목하여 흉노와 풍속이 같고,注+엄채奄蔡는 본음대로 읽는다. 엄채국은 강거康居의 서북쪽 2천 리 지점에 있다. “행국行國”은 토착하여 살지 않는 나라이다. 대하大夏는 대완의 서남쪽에 있어서 대완과 풍속이 같습니다.
在大夏時 見邛竹杖, 蜀布하고 問安得此注+邛都邛山, 出此竹, 因名邛竹, 節高中實, 可作杖. 蜀布, 謂土蘆布也.오한대 曰 市之身毒이라하니
[目] 대하大夏에 있을 적에 공죽장邛竹杖(공죽으로 만든 지팡이)과 지방에서 생산된 삼베를 보고 ‘어디에서 이 물건을 얻었느냐?’注+공도邛都공산邛山에 이 대나무가 생산되므로, 인하여 “공죽邛竹”이라 이름하였으니, 마디가 길고 속이 꽉 차서 지팡이를 만들 만하다. “촉포蜀布( 지방에서 생산된 삼베)”는 토로포土蘆布를 이른다. 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에서 사왔다.’ 하였습니다.
身毒 在大夏東南호되 可數千里 其俗土著하여 與大夏同注+身, 音乾, 毒, 音篤, 身毒, 卽天也, 所謂浮屠胡. 地方三萬里, 去京師九千六百里.하니이다
건독은 대하大夏의 동남쪽에 있는데 거리가 수천 리쯤 되고, 그 풍속은 토착하여 거주하는 것이 대하와 같습니다.注+은 음이 이고 은 음이 이니, 건독身毒은 바로 천축天竺(인도印度)이니, 이른바 부도浮屠(석가모니)의 오랑캐라는 것이다. 땅의 넓이가 3만 리이니, 경사京師(장안長安)에서 9,600리 떨어져 있다.
度大夏 去漢萬二千里 居漢西南注+度, 徒洛切.하고 今身毒 又居大夏東南數千里하여 有蜀物하니 此其去蜀不遠矣
헤아려보건대 대하는 나라와 12,000리쯤 떨어져 있는데 나라의 서남쪽에 있고,注+(헤아리다)은 도락徒洛이다. 지금 건독은 또 대하의 동남쪽 수천 리 지점에 있는데 지방의 물건이 있으니, 이는 촉 지방과의 거리가 멀지 않은 것입니다.
今使大夏 從羌中이면하고 少北이면 則爲匈奴所得注+使, 疏吏切, 下同. 少北, 謂行稍近北也.이니 從蜀이면 宜徑이요 又無寇注+宜, 當也. 徑, 直也. 從蜀, 向大夏, 其道當直.하리이다
지금 대하에 사신이 갈 적에 강중羌中을 따라가면 길이 험하고, 약간 북쪽으로 가면 흉노匈奴에게 약탈당할 우려가 있으니,注+使(사신 가다)는 소리疏吏이니, 아래도 같다. “소북少北”은 길을 갈 적에 약간 북쪽에 가깝게 함을 이른다. 지방을 따라가면 마땅히 지름길이고 또 흉노의 약탈이 없을 것입니다.”注+는 마땅하다는 뜻이고 은 곧다는 뜻이니, 지방을 따라서 대하大夏로 향하면 그 길이 마땅히 곧다는(직선) 것이다.
天子旣聞諸國多奇物而兵弱하고 貴漢財物하니 誠得而以義屬之 則廣地萬里
[目] 천자天子서역西域의 여러 나라에 기이한 물건이 많고 군대가 약하며 나라의 재물을 귀하게 여기니, 진실로 이곳을 얻어 의리義理로써 복속시키면 영토를 만 리나 넓힐 수 있고,
重九譯하여 致殊俗이면 威德徧於四海注+以義屬之, 謂不以兵革. 重, 直龍切, 複也. 遠方之人, 言語不同, 更歷九譯, 乃能通於中國.라하니 欣然以騫言爲然하여
아홉 번 통역을 거듭하여 풍속이 다른 오랑캐 지방을 오게 하면 위엄과 사해四海에 두루 펴진다.’注+이의속지以義屬之(의리로써 복속시킨다.)’는 병기와 갑옷을 동원하지 않음을 이른다. 직룡直龍이니, 거듭한다는 뜻이다. 먼 지방 사람들은 언어言語가 똑같지 않아서 아홉 번 통역을 거쳐야 비로소 중국과 통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듣고는 기뻐하며 장건張騫의 말을 옳게 여겼다.
乃令騫으로 因蜀犍爲하여 發間使하여 四道竝出하여 求身毒國注+四道竝出, 謂出駹, 出冉, 出, 出邛‧僰.하니
그리하여 마침내 장건으로 하여금 지방의 건위군犍爲郡을 통하여 간사間使(밀사密使)를 보내서 네 길로 함께 나가 건독국身毒國을 찾게 하였다.注+사도병출四道竝出(네 길로 함께 나가다.)”은 으로 나가고, 으로 나가고, 로 나가고, 으로 나감을 이른다.
各行一二千里 其北 閉氐, 筰하고 閉嶲, 昆明注+言漢使見閉於夷也. 氐與筰, 二種也. 嶲, 音髓, 嶲ㆍ昆明, 亦皆夷種名也.하여 殺略漢使하여 終莫得通이러니
각각 1, 2천 리를 갔으나, 북쪽은 이 막고 남쪽은 곤명昆明注+나라 사신이 오랑캐에게 막힘을 말한 것이다. 은 두 오랑캐 종족이다. 는 음이 이니, 곤명昆明 또한 모두 오랑캐 종족의 이름이다. 막아서, 나라 사자使者를 죽이고 노략질하여 끝내 통할 수가 없었다.
於是 始通滇國하니 乃復事西南夷注+滇, 音顚, 西夷國名. 本楚莊王弟莊滇, 爲國於此, 在昆明西, 可千餘里, 亦名滇越. 事, 謂經略通之, 專以爲事也. 元朔三年, 嘗罷西夷, 故曰復事.하다
그런데 이때 처음으로 전국滇國과 통하니, 이에 다시 서남이西南夷를 경략하는 일에 종사하였다.注+은 음이 이니, 서이西夷의 나라 이름이다. 본래 나라 장왕莊王의 아우 장전莊滇이 이곳에 나라를 세우니, 곤명昆明의 서쪽에 있으며 지역이 천여 리쯤 되는데, 또한 이름을 전월滇越이라 하였다. 경략經略하여 통하는 일에 오로지 종사함을 이른다. 원삭元朔 3년(B.C. 126)에 일찍이 서쪽 오랑캐와 통하는 일을 파한 적이 있으므로, ‘다시 종사했다.’고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五畤 : 五帝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五帝는 五行의 精氣이다. 秦나라에서 白帝, 赤帝, 黃帝, 靑帝의 畤(제사 터)를 雍 땅에 세웠는데, 高帝가 다시 黑帝畤를 세웠다. 그러므로 雍 땅에 五畤가 있게 된 것이다. 漢 文帝 15년(B.C. 165)에 五畤에 처음 郊祭를 지냈다.
역주2 天瑞紀元 : “군주가 즉위하면서 元年이라고 쓰는 것을 《春秋》에 여러 儒者들이 자세히 논하였으나, 建號하고 紀元하는 일은 〈논한 것이〉 있지 않았다. 新垣平이 해(太陽)를 살펴보니 두 번 中天한다는 말로 文帝를 속여서 이에 처음으로 後元年이라는 칭호를 두었고, 景帝가 이것을 인습하여 7년 만에 中元年으로 고치고 또 6년 만에 後元年으로 고쳤으며, 武帝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建元의 연호를 두어서 古人이 즉위한 해로 紀元하는 뜻을 크게 잃었다. 이윽고 長星이 하늘 끝까지 뻗쳐 있어 災異가 매우 드러났는데, 도리어 元光으로 연호의 이름을 삼았고, 이때에 이르러는 겨우 한 마리의 짐승을 얻고는 또한 인하여 연호를 고쳤으니, 이후로 연호를 고친 것이 紛紛하여 모두 다 열거할 수가 없다. 《資治通鑑綱目》에 쓰기를 ‘처음으로 하늘이 내린 상서로운 물건으로 紀元을 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찬미한 것이 아니요, 바로 그 잘못을 비판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찮은 짐승 한 마리가 어찌 하늘의 상서가 되겠는가.[人君卽位書元 春秋諸儒論之詳矣 未有建號紀元之事也 自新垣平以候日再中 欺文帝 於是始有後元之稱 景帝因之 七年而改中元 又六年而改後元 至武帝 遂有建元之號 甚失古人卽位紀元之意 旣而長星竟天 災異甚著 乃反以元光爲名 至是僅獲一獸 亦因之而改號 自後紛紛不可勝擧 書曰 始以天瑞紀元 非美之也 正所以譏其失爾 不然 一獸微物 豈天瑞乎]” 《發明》
역주3 淮南王安……謀反自殺 : “두 王(淮南王ㆍ衡山王)은 모두 글을 내려 조회를 면제받은 자들이다. 앞서는 ‘궤장을 하사하고 조회하지 말라고 하였다.[賜毋朝]’ 하고, ‘글을 내려 조회 오지 않아도 된다.[賜不朝]’고 썼고, 여기에서는 ‘모반했다.[謀反]’고 썼으니, 그렇다면 그 잘못이 황제에게 있는 것이다.[二王皆賜免朝者也 前書賜毋朝 賜不朝 此書謀反 然則咎有所在矣]” 《書法》
역주4 始通滇國 復事西南夷 : “始는 무엇인가? ‘겨우(이때 처음)’라는 말이다. 앞서는 ‘西夷를 파했다.’고 썼는데, 이때 ‘다시 종사하였다.’라고 썼으니, ‘다시’는 무엇인가? 허물을 다시 저지른다는 말이다. 秦나라 二世皇帝가 백성들의 원망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阿房宮을 지었다.’고 썼고, 漢나라 武帝가 백성들의 수고로움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西南夷를 경략하는 일에 종사하였다.’고 쓴 것이다.[始者 何 僅辭也 前書罷西夷矣 於是書復事 復者何 貳過之辭也 二世不恤民怨 故書復作阿房宮 漢武不恤民勞 故書復事西南夷]” 《書法》
역주5 括地志 : 唐나라의 濮王 李泰 등이 편찬한 것인데, 《新唐書》 〈藝文志〉에 ‘《括地志》 550권 및 《序略》 5권’이라고 되어 있으나 모두 散佚되었고, 현행본은 淸나라의 孫星衍이 여러 책에 인용된 逸文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역주6 匈奴가……것이다 : 북방의 유목국가는 자신의 통치영역을 좌우로 나누어 다스리는데, 이를 역사학에서는 좌우분통체제라고 한다. 匈奴의 관직은 左賢王, 右賢王, 左谷蠡王, 右谷蠡王, 左大將, 右大將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左는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았을 때 左方으로 동쪽 지방을 가리키며 右는 右方으로 서쪽 지방을 가리킨다. 흉노의 동쪽 지방은 좌현왕이 중심이 되어 다스리고 서쪽 지방은 우현왕이 중심이 되어 다스린다. 이들은 대부분 흉노의 지배씨족인 攣鞮氏이다.
역주7 身毒(건독) : 《漢書》에는 天篤, 《後漢書》에는 天竺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인도를 지칭하는 고대 이란어인 Hinduka의 음사로 추정된다. 《史記 外國傳 譯註》
역주8 (笁)[竺] : 저본에는 ‘笁’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竺’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徒)[徙] : 저본에는 ‘徒’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徙’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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