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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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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丑年(137)
二年이라 以李進爲武陵太守하여 討平之하다
簡選良吏하고 撫循蠻夷하니 郡境 遂安하다
夏四月 地震하다
◑象林蠻하다
象林蠻區憐等 攻縣寺하여 殺長吏注+象林, 縣名, 屬日南郡. 區憐, 蠻姓名也.어늘 交趾刺史樊演 發交趾九眞兵萬餘人하여 救之러니
兵士憚遠役하여 反攻其府하니 府雖擊破反者 而蠻勢轉盛하다
冬十月 帝如長安하여 徵處士法眞호되 不至하다
扶風法眞 博通內外學하고 隱居不仕注+眞, 雄之子也. 東都諸儒, 以七緯爲內學, 六經爲外學.어늘 帝欲致之하여 四徵不屈하다
友人郭正 稱之曰 眞 名可得聞호되 身難得見이라 逃名而名我隨하고 避名而名我追하니 可謂百世之師者矣로다
地震하다
太尉王龔 以中常侍張昉等 專弄國權이라하여 欲奏誅之注+昉, 分兩切.러니 宗親 有以楊震事諫之者어늘 乃止하다
十二月 還宮하다


정축년丁丑年(137)
나라 효순황제 영화孝順皇帝 永和 2년이다. 봄에 이진李進무릉태수武陵太守로 삼아 만족蠻族을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이진李進이 훌륭한 관리(영장令長)를 잘 선발하고 만이蠻夷들을 어루만지니, 무릉군武陵郡의 경계가 마침내 편안해졌다.
】 여름 4월에 지진地震이 있었다.
상림象林만족蠻族이 배반하였다.
상림象林만족蠻族구련區憐 등이 현사縣寺(관사官舍)를 공격하여 장리長吏(영장令長)를 살해하자注+상림象林의 이름이니, 일남군日南郡하였다. 구련區憐만족蠻族성명姓名이다., 교지자사 번연交趾刺史 樊演교지交趾구진九眞의 병사 만여 명을 징발하여 〈상림象林을〉 구원하게 하였는데,
병사兵士들은 먼 지역으로 부역 나가기를 꺼려하여 도리어 그 군부郡府를 공격하였다. 군부郡府에서는 비록 배반한 자들을 격파하였으나, 만족蠻族의 형세는 더욱 하였다.
】 겨울 10월에 황제가 장안長安에 가서 처사 법진處士 法眞을 불렀으나, 오지 않았다.
부풍扶風 사람 법진法眞내학內學외학外學을 널리 통달하고 은거隱居하여 벼슬하지 않았는데注+법진法眞법웅法雄의 아들이다. , 황제가 그를 초치하고자 하여 네 번 불렀으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친구인 곽정郭正이 그를 칭찬하기를 “법진은 이름은 들을 수 있어도 모습은 보기 어렵다. 명성에서 도망하려 하는데도 명성이 자신을 따르고 명성을 피하려 하는데도 명성이 자신을 좇으니, 백세百世의 스승이라고 이를 만한 자이다.” 하였다.
지진地震이 있었다.
태위 왕공太尉 王龔중상시 장방中常侍 張昉 등이 국가의 권력을 독점하고 농단한다 하여 황제에게 아뢰어 죽이고자 하였는데注+분량分兩이다., 종친宗親 중에 하는 자가 있으므로 왕공이 마침내 중지하였다.
】 12월에 황제가 환궁還宮하였다.


역주
역주1 東都의……하였다 : 七緯는 407쪽 訓義 ①에서, 六經은 402쪽 역주 110)에서 자세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2 楊震의 일 : 楊震은 延光 2년(123)에 太尉가 되어 安帝를 보필한 신하이다. 안제가 太子로 있을 때 鄧太后의 마음에 들지 않자 차기 황제로 즉위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乳母인 王聖과 中官 樊豐 등의 도움으로 황제에 오를 수 있었다. 안제가 즉위한 후 번풍 등은 국정을 좌우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는데, 안제가 이를 제어하지 않자 양진이 번풍 등의 惡行을 자주 諫하였다. 그러나 안제는 간언을 듣지 않았고, 결국 延光 3년(124) 번풍 등의 참소로 양진은 태위의 印綬를 빼앗기고 자살하였다. 이후 안제의 뒤를 이은 北鄕侯의 병이 위독한 틈을 타 孫程 등이 반란을 일으켜서 順帝가 즉위하였고, 양진은 당시 참소를 받아 자살하였던 억울함과 간언하였던 충직함을 인정받아 延光 4년(125)에 詔令을 내려 改葬하고 中牢로써 제사하였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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