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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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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巳年(B.C. 316)
五年이라
伐蜀取之하다
巴蜀 相攻하야 俱告急於秦이어늘
秦惠王 欲伐蜀注+惠王, 卽惠文王.호대 韓又來侵이러니
司馬錯 請伐蜀注+錯, 音措, 名也.한대 張儀曰 不如伐韓이니이다 王曰 請聞其說하노라
儀曰 親魏善楚하고 下兵三川하야 攻新城宜陽하야 以臨二周之郊하고 據九鼎按圖籍하야 挾天子以令天下이면 天下莫敢不聽이리니 王業也注+伊水‧洛水‧河水爲三川. 秦後置三川郡, 漢改爲河南郡. 班志 “新城縣屬河南郡.” 二周, 卽東西周也. 夏禹貢金九牧, 鑄九鼎, 以象九州之物, 乃三代傳國寶也. 圖籍, 地理圖及戶口版籍也.
臣聞爭名者 於朝하고 爭利者 於市라하니
今三川周室 天下之朝市也어늘
而王 不爭焉하시고 顧爭於戎翟하니 去王業遠矣로소이다
曰 不然하다
臣聞之호니 欲富國者 務廣其地하고 欲彊兵者 務富其民하고 欲王者 務博其德이라하니 三資者備而王隨之矣
今王 地小民貧이라 故臣願先從事於注+易, 去聲.하노니
夫蜀 西僻之國而戎翟之長也 有桀紂之亂하니 以秦攻之譬如使豺狼逐群羊注+豺, 狼屬.이라
得其地足以廣國이요 取其財足以富民이요 繕兵不傷衆而彼已服焉注+繕, 治也.이니
拔一國而天下不以爲暴 利盡西海而天下不以爲貪注+西海, 謂蜀川也. 海者, 珍藏所聚生, 猶謂秦中爲陸海然也. 其實西亦有海, 所以云西海.이요 而又有禁暴止亂之名하니 是我一擧而名實附也注+名, 謂博其德. 實, 謂得土地財寶也.
今攻韓劫天子 惡名也而攻天下之所不欲이면 又未必利也이니 不如伐蜀注+完, 全也, 言以兵伐蜀, 十全必取也.이니이다
從之하야 起兵伐蜀하야 十月 取之하니
以益彊富厚하야 輕諸侯하더라
燕君噲以國으로 其相子之하다
燕王 噲가 燕나라를 정승 子之에게 주어 兵禍를 초래하다燕王 噲가 燕나라를 정승 子之에게 주어 兵禍를 초래하다
燕相子之與蘇秦之弟代昏하야 欲得燕權이러니
蘇代使齊而歸어늘 燕王 問曰 齊王 其霸乎 對曰 不能이러이다
王曰 何故 對曰 不信其臣이러이다
於是 燕王 專任子之러니
鹿毛壽謂燕王曰注+鹿, 姓, 毛壽, 名.人謂堯賢者 以其能讓天下也
今王 以國讓子之시면 王與堯同名也니이다 燕王 因屬國於子之한대
或曰 禹薦益而以啓人爲吏注+人, 猶臣也, 謂以啓之臣爲益吏.러니 及老 傳天下於益
而啓與其黨攻益奪之하니 天下謂禹名傳天下於益而實令啓自取之라하니
今王 言屬國於子之而吏無非太子人者 是名屬子之而實太子用事也로소이다 因收印綬하고 自三百石吏已上而效之子之注+綬, 音壽, 組綬也. 漢承秦制, 乘與璽綬, 諸王以下, 印以金‧銀‧銅爲差, 綬以赤‧紫‧靑‧黑‧黃爲差. 三百石吏, 銅印黑綬, 或黃綬. 效, 呈也, 以印呈與子之.하니
子之南面行王事而噲老不聽政하야 顧爲臣注+言噲以老自休, 反爲子之之臣也.이러라


을사년(B.C. 316)
[綱]나라 신정왕愼靚王 5년이다.
나라가 나라를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았다.
[目]나라와 나라가 서로 공격하여 모두 급한 상황을 나라에 알렸다.
나라 혜왕惠王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注+혜왕惠王은 바로 혜문왕惠文王이다.나라가 또 침략하여 왔다.
사마조司馬錯나라를 정벌하자고 청하자注+은 음이 이니 이름이다., 장의張儀가 말하기를 “나라를 정벌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라고 하니, 이 이르기를 “청컨대 그 이유를 듣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장의가 말하기를 “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나라와 잘 지내면서 병사를 삼천三川으로 내려보내 신성新城의양宜陽을 공격해서 두 나라의 교외郊外까지 이르고 구정九鼎을 점거하고 지도地圖호적戶籍을 살펴서 천자天子를 끼고 천하天下를 호령하면 천하天下에 감히 듣지 않는 나라가 없을 것이니 이는 왕업王業입니다.注+이수伊水낙수洛水하수河水삼천三川이다. 나라가 나중에 삼천군三川郡을 두었는데, 나라가 하남군河南郡으로 고쳤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신성현新城縣하남군河南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이주二周는 곧 동주東周서주西周이다. 나라 임금이 구목九牧에서 을 바치게 하여 구정九鼎을 만들어 구주九州의 상징물로 하였는데 마침내 삼대三代가 전하는 국보國寶가 되었다. 도적圖籍지리도地理圖호구판적戶口版籍이다.
신은 들으니 이름을 다투는 자는 조정에 있고, 이익을 다투는 자는 저자에 있다고 합니다.
지금 삼천三川주실周室천하天下의 조정과 저자입니다.
께서 이를 다투지 않으시고 도리어 융적戎翟과 다투게 되니 왕업王業에서 멀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사마조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신은 들으니 나라를 부유하게 하려는 자는 그 땅을 넓히는 데 힘쓰고, 군대를 강하게 하려는 자는 그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데 힘쓰며, 왕이 되려고 하는 자는 그 덕을 넓히는 데 힘쓴다고 하니, 이 세 가지 바탕이 갖추어지면 왕업은 따라올 것입니다.
지금 이 땅은 작고 백성은 가난하므로 신은 먼저 쉬운 일에서부터 종사하기를 원합니다.注+(쉽다)는 거성去聲이다.
나라는 서쪽에 치우친 나라로 융적戎翟의 우두머리인데 의 시대와 같은 혼란함이 있으니, 나라가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승냥이와 이리로 하여금 양 떼를 쫓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注+는 이리의 종류이다.
그 땅을 얻으면 나라를 넓힐 수 있고 그 재물을 취하면 백성들을 부유하게 할 수 있으며 병사를 잘 다스리면 많은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고 나라가 복속될 것입니다.注+은 다스림이다.
나라 하나를 함락시켰는데도 천하가 포악하다고 여기지 않고, 이익이 서해西海를 다하여도 천하가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으며注+서해西海촉천蜀川을 말한다. 바다는 진귀한 물품이 모여 생기는 곳으로 나라 안에 육해陸海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 실상은 서쪽에 또한 바다가 있어서 서해西海라고 한 것이다., 또 포악을 금지하고 혼란을 그치게 하였다는 명성이 있게 되니, 이는 우리가 한 번 움직임에 명분과 실리가 따라오는 것입니다.注+은 그 을 넓히는 것을 이르고, 토지土地재보財寶를 얻음을 이른다.
지금 나라를 공격하여 천자天子를 겁주는 것은 명성을 나쁘게 하는 것이고, 천하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공격하면 또 반드시 이롭지 않을 것이니, 나라를 정벌하여 온전히 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注+은 온전함이니, 군대로 을 정벌하여 완전하게 빼앗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이 이 말을 따라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정벌하여 10월에 빼앗았다.
나라가 더욱 강하고 부유하게 되어 제후諸侯들을 경시하였다.
[綱]나라 임금 가 나라를 정승 자지子之에게 선양하였다.
[目]나라 정승 자지子之소진蘇秦의 동생 소대蘇代와 혼인을 맺어 나라의 권력을 얻고자 하였다.
소대가 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자, 나라 왕이 묻기를 “나라 왕이 패자霸者가 되겠는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무슨 까닭인가?”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그 신하를 믿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나라 왕이 오로지 자지에게만 맡겼다.
녹모수鹿毛壽나라 왕에게 이르기를注+鹿이고 모수毛壽이다. “사람들이 임금을 어질다고 말하는 것은 천하를 사양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왕께서 나라를 자지에게 사양하시면 이는 왕께서 요임금과 이름을 같이 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나라 왕이 인하여 나라를 자지에게 맡겼다.
혹자가 말하기를 “임금은 을 천거하고 의 사람들로 관리를 삼았는데注+은 신하와 같으니, 의 신하를 의 관리로 삼았음을 말한다., 늙어서 천하天下를 익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계가 그의 무리들과 함께 익을 공격하여 빼앗으니, 세상에서는 우임금이 명목상으로는 익에게 천하를 전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계로 하여금 스스로 빼앗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왕께서 나라를 자지에게 맡겼다고 말하였으나 관리는 태자太子의 사람이 아닌 사람이 없으니, 이는 명목상으로는 자지에게 맡겼으나 실질적으로는 태자가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인하여 인수印綬를 거두고 삼백석리三百石吏부터 이상은 인수印綬를 자지에게 바치라고 하였다.注+는 음이 이니 조수組綬이다. 나라는 나라의 제도를 이어받았는데, 승여乘與새수璽綬제왕諸王 이하에게 , , 으로 차별하고 , , , , 으로 차별하였다. 삼백석리三百石吏동인銅印흑수黑綬인데 혹 황수黃綬로 하였다. 는 바치는 것이니, 자지子之에게 바치는 것이다.
자지가 남면南面하여 왕의 일을 행하고 는 늙어서 정사를 듣지 않아 도리어 신하가 되었다.注+가 늙어서 스스로 쉬면서 도리어 자지子之의 신하가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 이
역주2 : 《資治通鑑綱目》 凡例에 타인에게 나라를 주는 경우 讓이라 하였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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