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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7)

자치통감강목(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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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9권 상
漢 光武帝 建武 3년(A.D.27)~漢 光武帝 建武 10년(A.D.34)
丁亥年(A.D.27)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9권 상
한 광무제漢 光武帝 건무建武 3년(A.D.27)~한 광무제漢 光武帝 건무建武 10년(A.D.34)
정해년丁亥年(A.D.27)
≪資治通鑑綱目≫ 제9권은 丁亥年 漢나라 光武帝 建武 3년(A.D.27)부터 시작해서 乙亥年 漢나라 明帝 永平 18년(A.D.75)까지이니, 모두 49년이다.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9권은 정해년 한丁亥年 漢나라 광무제 건무光武帝 建武 3년(A.D.27)부터 시작해서 을해년 한乙亥年 漢나라 명제 영평明帝 永平 18년(A.D.75)까지이니, 모두 49년이다.
三年이라 春正月 以馮異爲征西大將軍하다
나라 세조 광무황제世祖 光武皇帝 건무建武 3년이다. 봄 정월에 풍이馮異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으로 삼았다.
◑鄧禹, 馮異與赤眉戰하여 敗績하다
등우鄧禹풍이馮異적미赤眉와 싸워서 크게 패하였다.
鄧禹慙於受任無功하여 數以飢卒 徼赤眉戰이나 輒不利注+徼, 或作邀, 通作要, 伊消切, 遮也. 下要其東同.
등우鄧禹가 임무를 받고 이 없음을 부끄러워하여 자주 굶주린 병졸을 거느리고 적미赤眉를 맞이하여 싸웠으나, 번번이 승리하지 못하였다.注+로 쓰는데 와 통용되니, 이소伊消로 가로막음이다. 아래의 “요기동要其東”도 이와 같다.
乃率車騎將軍鄧弘等하여 自河北度至湖하여 要馮異共攻赤眉注+地理志 “河北縣, 屬河東郡.” 要, 平聲, 邀而約之之義.한대
이에 거기장군 등홍車騎將軍 鄧弘 등을 거느리고 하북河北에서 하수河水를 건너 호읍湖邑에 이르러서 풍이馮異에게 함께 적미를 공격할 것을 요구하였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하북현河北縣하동군河東郡에 속했다.” 하였다. 평성平聲이니, 맞이하여 약속한다는 뜻이다.
異曰 赤眉衆尙多하니 可以恩信傾誘 難卒用兵破也注+傾, 覆. 誘, 導也. 卒, 讀曰猝. 今使諸將屯澠池하여 要其東하고 而異擊其西하면 一擧取之리니
풍이가 말하기를 “적미는 병력이 여전히 많으니, 은혜와 신의로써 회유할 수는 있으나 갑자기 병력을 사용하여 깨뜨리기는 어렵습니다.注+은 무너뜨림이고 는 유도함이다. (갑자기)은 로 읽는다. 께서 지금 여러 장수를 면지澠池(면지)에 주둔시켜 그 동쪽을 막게 하고 제가 그 서쪽을 공격하면 일거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니,
此萬成計也注+十事九成, 猶有一不中, 萬事萬成, 言算無遺計也.니라 禹, 弘 不從하다 遂大戰移日하여 軍潰러니 異與禹合兵救之하니 赤眉小却이라
이것이 만 번 성공할 계책입니다.”注+〈“만성계萬成計”는〉 열 가지 일에 아홉 가지를 이루더라도 한 가지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 가지 일에 만 가지를 이룬 것이니, 계산에 남은 계책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으나, 등우와 등홍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등홍이 한동안 크게 싸우다가 군대가 궤멸하였는데, 풍이가 등우와 함께 병력을 합하여 구원하니, 적미가 조금 퇴각하였다.
異以士卒飢倦하니 可且休라호되 禹不聽하고 復戰이라가 大爲所敗하여 禹以二十四騎 脫歸宜陽하다
풍이는 사졸士卒들이 굶주리고 지쳐 있으니 우선은 휴식시켜야 한다고 하였으나, 등우는 듣지 않고 다시 싸우다가 크게 패하여 24명의 기병을 데리고 몸만 빠져나와 의양宜陽으로 돌아왔다.
異棄軍走하여 與麾下數人歸營하여 復收散卒하여 堅壁自守하다
풍이는 군대를 버리고 도망하여 휘하麾下의 몇 사람과 함께 진영으로 돌아와 흩어진 병졸들을 다시 수습해서 성벽을 견고히 하고서 스스로 지켰다.
延平陳氏曰注+陳氏, 名瓘, 宋人. 有約論十七卷, 起戰國, 至後漢安帝. 鄧禹以栒邑付之愔歆 其失 在不知人而已어니와
今慙受任無功하여 不量可否하고 用飢卒取敗 可謂不知命矣
이제 임무를 받고 공이 없음을 부끄러워하여 가부可否를 헤아리지 않고 굶주린 병졸을 거느리고 싸우다가 패배를 자초한 것은 천명天命을 알지 못한다고 이를 만하다.
若馮異 不守所見하고 曲從二鄧하여 幾不自脫하니 雖終能成功이나 不爲無罪也니라
풍이馮異로 말하면 자기 소견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소견을 굽혀 두 등씨鄧氏(등우鄧禹등홍鄧弘)를 따라서 거의 스스로 화를 벗어나지 못할 뻔하였으니, 비록 끝내 능히 공을 이루었으나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立四親廟於洛陽하다
사친四親의 사당을 낙양洛陽에 세웠다.
祀父南頓君以上으로 至舂陵節侯注+禮, 天子立親廟四, 今依以立舂陵節侯․鬱林太守․鉅鹿都尉․南頓令廟.하다
】 황제의 아버지인 남돈군南頓君 위로 용릉절후舂陵節侯까지를 제사하였다.注+천자天子친묘親廟 넷을 세우니, 이제 이에 따라 용릉절후舂陵節侯(유매劉買)와 울림태수鬱林太守(유외劉外), 거록도위鉅鹿都尉(유회劉回), 남돈령南頓令(유흠劉欽)의 사당을 세운 것이다.
鄧禹上大司徒印綬어늘 以爲右將軍하다
등우鄧禹대사도大司徒인수印綬를 올리자, 그를 우장군右將軍으로 삼았다.
馮異與赤眉 約期會戰할새 使壯士變服하여 與赤眉同하고 伏於道側하다
풍이馮異적미赤眉와 기일을 약속하고 회전會戰할 적에 장사壯士들로 하여금 적미와 똑같게 옷을 바꿔 입고서 길가에 매복하게 하였다.
旦日 赤眉使萬人으로 攻異前部한대 異少出兵以救之러니 賊見勢弱하고 遂悉衆攻異어늘
해가 뜨자 적미가 만 명을 보내 풍이의 선봉부대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풍이가 약간의 병력만 내어 구원하니, 적들은 풍이의 군세가 약한 것을 보고는 병력을 총동원하여 풍이를 공격하였다.
異乃縱兵大戰하다 日昃 賊氣衰 伏兵卒起하여 衣服相亂하니
풍이가 이에 군대를 풀어놓아 크게 싸우니, 해가 기울 적에 적의 사기가 쇠진하였다. 이때 복병이 갑자기 일어나서 의복衣服이 서로 혼란하니,
赤眉不復識別하여 衆遂驚潰注+卒, 讀曰猝. 識, 音志. 別, 筆列切. 追擊하여 大破之於崤底하고 降男女八萬人注+集覽 “崤, 山名, 今陝縣東二崤是也. 底, 下也.”하다
적미는 피아彼我를 구별하지 못하여 마침내 놀라 궤멸하였다.注+(갑자기)은 로 읽는다. (표지하다)는 음이 이다. (나누다)은 필렬筆列이다. 풍이는 이들을 추격하여 효산崤山 밑에서 대파하고 남녀 8만 명에게 항복을 받았다.注+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는 산의 이름이니, 지금 섬현陝縣 동쪽에 있는 두 효산崤山이 이것이다. 는 아래이다.” 하였다.
帝降璽書勞異曰 始雖垂翅回谿 終能奮翼澠池하니 可謂失之東隅 收之桑榆注+翅, 施智切, 翼也. 回谿, 在澠池之北. 垂翅․奮翼, 以鳥爲喩也. 異前與赤眉戰於回谿, 敗績. 隅, 陬也. 東隅, 日出處也. 桑楡, 謂晩也. 淮南子曰 “西日垂景, 在樹端, 謂之桑楡.”로다
황제가 친서親書(새서璽書)를 내려 풍이를 위로하기를 “처음에는 비록 회계回谿에서 날개를 떨구었으나 끝내는 면지澠池에서 날개를 펼쳤으니, 고 이를 만하다.”注+시지施智이니 날개이다. 회계回谿면지澠池의 북쪽에 있다. “수시垂翅”와 “분익奮翼”은 새를 가지고 비유한 것이다. 풍이馮異가 전에 회계回谿에서 적미赤眉와 싸워서 크게 패하였다. 는 모퉁이이니, 동우東隅는 해가 뜨는 곳이다. 상유桑楡는 저녁 무렵을 이르니, ≪회남자淮南子≫에 “서쪽으로 해가 질 적에 그림자가 나무 끝에 드리워져 있는 것을 상유桑楡라 한다.” 하였다. 하였다.
赤眉餘衆 東向宜陽이어늘 帝親勒六軍하고 嚴陳以待之注+陳, 讀曰陣.러니
적미赤眉의 남은 무리가 동쪽으로 의양宜陽을 향해 오자, 황제가 친히 육군六軍을 무장하고 진영을 엄히 정돈하고서 적을 기다렸다.注+(진을 치다)은 으로 읽는다.
赤眉忽遇大軍하고 驚震하여 乃遣劉恭乞降曰 盆子將百萬衆하고 降陛下하리니 何以待之잇고 帝曰 待汝以不死耳니라
적미는 갑자기 광무제光武帝의 대군을 만나고는, 놀라서 유공劉恭을 보내 항복을 청하며 말하기를 “유분자劉盆子가 백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폐하께 항복할 것이니, 어떻게 대우하시겠습니까?” 하였다. 황제는 “너희를 죽이지 않음으로 대할 뿐이다.” 하였다.
丙午 盆子及丞相徐宣以下肉袒降하고 上所得傳國璽綬注+傳國璽, 王莽簒逆, 就元后取之, 莽敗, 王憲得之, 李松入長安, 斬憲, 取之, 送上更始, 更始奉赤眉.하다 赤眉衆 尙十餘萬人이라 帝令縣廚皆賜食注+縣, 宜陽縣也, 縣有廚官.하다
병오일丙午日에 유분자와 승상 서선丞相 徐宣 이하가 웃통을 벗고 항복하고는 얻었던 전국새傳國璽와 인끈을 올렸다.注+전국새傳國璽왕망王莽찬역簒逆했을 적에 원후元后에게서 빼앗았었는데, 왕망이 패망함에 왕헌王憲이 이것을 얻었고, 이송李松장안長安으로 쳐들어가 왕헌을 참수하고 취해서 경시更始에게 올려 보냈는데, 경시가 적미赤眉에게 바쳤다. 적미의 병력이 아직도 십여만 명이었는데, 황제는 의양현宜陽縣의 음식을 만드는 관원에게 명하여 이들 모두에게 음식을 하사하게 하였다.注+의양현宜陽縣이니, 에 음식을 만드는 관원[주관廚官]이 있다.
明旦 大陳兵馬하고 臨雒水하여 令盆子君臣으로 列而觀之注+雒, 本作洛, 漢火行忌水, 故帝去水, 加隹爲雒字.하다
】 〈황제는〉 다음 날 아침 병력과 말을 크게 진열하고 낙수雒水(낙수)에 임하여 유분자劉盆子와 그의 신하로 하여금 나열하여 이것을 보게 하였다.注+은 본래 으로 되어 있으니, 나라는 화행火行이어서 물을 꺼리므로 황제가 자의 물 수 변을 제거하고 를 더하여 자로 만든 것이다.
帝謂樊崇等曰 得無悔降乎 今遣卿歸營勒兵하여 鳴鼓相攻하여 決其勝負하리니 不欲彊相服也注+彊, 其兩切.하노라
황제가 번숭樊崇 등에게 이르기를 “항복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이 이제 들을 진영으로 돌려보내 군대를 무장하게 하여 북을 울리며 서로 공격해서 승부를 결단할 것이니, 억지로 복종시키고자 하지 않노라.”注+(억지로)은 기량其兩이다. 하니,
徐宣等 叩頭曰 臣等 出長安東都門 君臣計議하여 歸命聖德이라
서선徐宣 등이 머리를 조아리며 “ 등이 장안長安동도문東都門을 나올 적에 군주와 신하가 계책을 의논하여 성상聖上에 목숨을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今日得降하니 猶去虎口하고 歸慈母하여 誠懽誠喜하여 無所恨也니이다
오늘날 항복하게 되니, 사나운 범의 아가리를 벗어나 자모慈母에게 돌아온 것과 같아서 진실로 기뻐서 원망하는 바가 없습니다.” 하였다.
帝曰 卿 所謂鐵中錚錚이요 傭中佼佼者也注+錚, 初耕切, 金聲也. 鐵中錚錚, 謂鐵之微有剛利者. 佼, 古巧切, 好貌. 傭中佼佼, 言凡庸之人, 稍爲勝者. 一說 “佼, 疑與狡通, 謂如傭作人中之狡猾者.”로다하고 賜樊崇等洛陽田宅하다
황제는 “은 이른바 쇠 가운데 쟁쟁히 울리는 것이요 용렬한 사람 가운데 조금 나은 자이다.”注+초경初耕로 쇳소리이니, “철중쟁쟁鐵中錚錚”은 쇠 중에 약간 강하고 예리한 것을 이른다. 고교古巧로 아름다운 모양이니, “용중교교傭中佼佼”는 보통 사람 중에 조금 나은 자를 말한 것이다. 일설에 “와 통할 듯하니, 예컨대 머슴살이하는 사람 중에 교활한 자를 이른다.” 하였다. 하고는, 번숭 등에게 낙양洛陽의 토지와 집을 하사하였다.
帝憐盆子하여 以爲趙王郞中注+廣陽王良, 帝叔父也, 徙封趙王. 王國置郞中, 掌宿衛執戟.하다
황제는 유분자를 가엾게 여겨 그를 조왕趙王낭중郞中으로 삼았다.注+광양왕 유량廣陽王 劉良은 황제의 숙부인데, 옮겨 조왕趙王에 봉하였다. 왕의 나라에 낭중郞中을 설치하였는데, 궁중에서 숙위宿衛하고 시위侍衛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二月 劉永 立董憲爲海西王하고 張步爲齊王한대 步執伏隆殺之注+海西縣, 屬琅邪郡.하다
】 2월에 유영劉永동헌董憲을 세워 해서왕海西王으로 삼고 장보張步제왕齊王으로 삼자, 장보가 복륭伏隆을 잡아 죽였다.注+해서현海西縣낭야군琅邪郡에 속하였다.
劉永 聞伏隆至劇하고 亦遣使立張步爲齊王注+地理志 “劇縣, 屬北海郡.” 時張步都此.하니 步貪王爵하여 猶豫未決이라
유영劉永은 〈황제의 사자使者인〉 복륭伏隆극현劇縣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사자를 보내 장보張步를 세워 제왕齊王으로 삼았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극현劇縣북해군北海郡에 속했다.” 하였으니, 이때 장보張步가 이곳에 도읍하였다. 장보가 왕의 작위를 탐하여 주저하고 결정하지 못하자,
曉譬曰 高祖與天下約호되 非劉氏 不王이라하니 今可得十萬戶侯耳니라
복륭이 타이르기를 “고조高祖께서 천하天下에 약속하기를 유씨劉氏가 아니면 왕이 되지 못한다 하였으니注+이주二州청주靑州서주徐州이다., 지금 10만 가 될 수 있을 뿐이다.” 하였다.
步欲留隆하여 與共守二州注+二州, 靑州․徐州也.어늘 不聽하고 求得反命하니 步遂執隆而受永封하다
장보는 복륭을 남겨두어 함께 두 를 지키고자 하였으나, 복륭이 듣지 않고 돌아가 복명할 것을 요구하니, 장보는 마침내 복륭을 구류하고 유영이 봉해준 제왕齊王의 작위를 받았다.
遣間使上書曰 臣隆 奉使無狀하여 受執凶逆하니
복륭은 간사間使(틈을 타 은밀히 출동하는 사자)를 보내 황제에게 글을 올리기를 “ 복륭은 사명을 제대로 받들지 못해서 흉한 역적에게 사로잡혔습니다.
雖在困阨이나 授命不顧注+奉使無狀, 言罪大也.니이다 願以時進兵하여 無以臣隆爲念하소서
비록 곤액困阨에 빠졌으나 목숨을 바치고 돌아보지 않으니注+봉사무상奉使無狀”은 죄가 큼을 말한 것이다., 원컨대 복륭을 염려하지 마시고 제때에 진군하소서.” 하였다.
帝得隆奏하고 召其父湛하여 流涕示之하고 曰 恨不且許而遽求還也로라 其後 步遂殺之하니라
황제는 복륭의 아뢰는 글을 받고 그의 아비인 복담伏湛(복담)을 불러서 눈물을 흘리고 이 글을 보여주며 말하기를 “우선 허락하여 급히 돌아오게 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하였다. 그 뒤에 장보가 과연 복륭을 죽였다.
延平陳氏曰 伏隆之求還 足以成命矣注+成命, 成君之命也. 死而無憾하니 安用且許之乎 光武之言 所以慰其父耳니라
연평진씨延平陳氏(진관陳瓘)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복륭伏隆이 돌아가 복명하기를 구한 것은 군주의 명령을 충분히 이룬 것이다.注+성명成命”은 군주의 명을 이룸이다. 죽으면서도 유감이 없었으니, 어찌 우선 허락할 필요가 있겠는가. 광무제光武帝의 말은 다만 그 아비를 위로하려는 것일 뿐이다.”
三月 以伏湛爲大司徒하다
】 3월에 복담伏湛대사도大司徒로 삼았다.
◑涿郡太守張豐하고 彭寵 自稱燕王하다
탁군태수 장풍涿郡太守 張豐이 배반하고, 팽총彭寵연왕燕王을 자칭하였다.
豐反 與彭寵連兵하니 朱浮以帝不自征彭寵이라하여 上疏求救한대
장풍張豐이 배반할 적에 팽총彭寵과 병력을 연합하니, 주부朱浮는 황제가 직접 팽총을 정벌하지 않는다 하여 글을 올려 구원을 청하였으나,
詔報曰 度此反虜勢無久全하여 其中 必有內相斬者 今軍資未充故 須後麥耳注+須, 待也.로라
조서詔書로 답하기를 “헤아려보건대, 이 배반한 오랑캐는 오랫동안 온전할 형세가 없어서 그 가운데 반드시 안에서 서로 목을 베어 죽이는 자가 있을 것이다. 지금 군수물자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보리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注+는 기다림이다. 하였다.
浮城中糧盡하여 人相食이러니 會耿況 遣騎來救한대 浮乃得脫身走하니 薊城 遂降於彭寵이라 自稱燕王하다
주부의 성안에 식량이 다하여 사람이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었는데, 마침 경황耿況이 기병을 보내서 구원하자, 주부가 마침내 자신의 몸만 빼어 달아나니, 계성薊城(계성)이 마침내 팽총에게 항복하였다. 팽총은 스스로 연왕燕王이라고 칭하였다.
帝自將征鄧奉하다 夏四月이어늘 斬之하다
】 황제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등봉鄧奉을 정벌하였다. 여름 4월에 등봉이 항복하자, 그를 참수하였다.
帝追奉至小長安하여 與戰하여 大破之注+小長安, 聚落名.하니 肉袒하여 因朱祜降注+通鑑 “上年十一月, 朱祜討鄧奉, 軍敗, 爲奉所獲.”이라
】 황제가 등봉鄧奉을 추격하여 소장안小長安에 이르러 그와 싸워서 대파하니注+소장안小長安은 부락의 이름이다., 등봉이 웃통을 벗고 주호朱祜를 통하여 항복하였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지난해 11월에 주호朱祜등봉鄧奉을 토벌하다가 군대가 패하여 등봉에게 사로잡혔다.” 하였다.
帝憐奉舊功臣이요 且釁起吳漢이라하여 欲全宥之注+釁, 爭端也.러니 岑彭, 耿弇 諫曰 鄧奉 背恩反逆하여 暴師經年하며
황제는 등봉이 옛 공신功臣임을 가엾게 여기고 또 틈이 벌어진 것이 오한吳漢 때문이라 하여 그를 용서하여 목숨을 보전해주고자 하였다.注+은 분쟁의 단서이다. 그러나 잠팽岑彭경감耿弇이 간하기를 “등봉은 은혜를 저버리고 반역하여 군대를 동원해서 비바람을 맞으며 싸운 것이 한 해가 지났으며,
陛下旣至 不知悔善하고 而親在行陣하여 兵敗乃降注+悔善, 謂悔過而向善也.하니 若不誅奉이면 無以懲惡이니이다 於是 斬之하고 復朱祜位하다
폐하께서 오셨는데도 잘못을 뉘우치고 을 따를 줄을 모르고 직접 행진行陣에 있으면서 군대가 패하고서야 항복하였으니注+회선悔善”은 잘못을 뉘우치고 으로 향함을 이른다., 만약 등봉을 주살하지 않으면 악한 자들을 징벌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그를 참수하고 주호의 지위를 회복시켜주었다.
馮異 擊延岑하여 破之한대 走南陽하니 關中하다
풍이馮異연잠延岑을 격파하자 연잠이 남양南陽으로 달아나니, 관중關中이 평정되었다.
延岑 旣破赤眉 卽拜置牧守하여 欲據關中하니 關中 衆寇猶盛하여 各稱將軍하여 據地擁兵하여
연잠延岑적미赤眉를 격파하고는 즉시 주목州牧군수郡守를 제수하여 관중關中을 점거하고자 하였는데, 이때에 관중에는 도적 떼가 여전히 성하여 저마다 장군將軍을 칭하면서 땅을 점거하고 병력을 소유하여,
多者 萬餘人이요 少者 數千人이라 馮異屯軍上林苑中이러니 延岑 引寇張邯, 任良하여 共攻異注+邯據長安, 良據鄠. 通鑑, 無寇字.어늘
많게는 만여 명, 적게는 수천 명에 이르렀다. 풍이馮異가 군대를 상림원上林苑 안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연잠延岑이 도적인 장함張邯임량任良을 데리고 와서 함께 풍이를 공격하였다.注+장함張邯장안長安을 점거하고 임량任良호현鄠縣(호현)을 점거하고 있었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자가 없다.
異擊大破之하니 諸營保附岑者 皆來降이라 遂自武關走南陽하다
풍이가 이들을 공격해서 대파하니, 연잠을 따르던 여러 영보營堡들이 모두 와서 항복하였다. 연잠이 이에 무관武關에서 남양南陽으로 달아났다.
百姓飢餓하고 道路斷隔하여 委輸不至하니 馮異軍士 悉以果實爲糧이라
】 이때에 백성들은 기근에 허덕이고 도로가 단절되어 군수물자가 제대로 이르지 못하니, 풍이馮異의 군사들이 모두 과일로 양식을 대신하고 있었다.
詔拜趙匡爲右扶風하여 將兵助異하고 竝送縑穀하니 異兵穀甚盛이라
조령詔令을 내려 조광趙匡우부풍右扶風으로 제수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풍이를 돕게 하고 비단과 곡식도 아울러 보내주니, 풍이의 군대에 식량이 매우 많아졌다.
乃稍誅擊豪傑不從令者하고 褒賞降附有功勞者하며 悉遣諸營渠帥하여 詣京師하고
이에 풍이는 호걸 중에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차츰 공격하여 죽이고, 항복하고 귀의한 자들 중에 공이 있는 자들을 포상하였으며, 여러 진영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경사京師로 보내고
散其衆하여 歸本業하니 威行關中이라 餘寇悉平하다
그 무리를 해산하여 본업本業에 돌아가게 하니, 위엄이 관중關中에 행해져서 남은 도둑이 모두 평정되었다.
吳漢 圍劉永將蘇茂於廣樂하여 大破之하다
오한吳漢광락廣樂에서 유영劉永의 장수 소무蘇茂를 포위하여 대파하였다.
率驃騎大將軍杜茂等七將軍하여 圍蘇茂於廣樂注+賢曰 “廣樂地闕, 今宋州虞城縣, 有長樂故城, 蓋避隋煬帝諱改.”이러니 周建 招集得十餘萬人하여 救之注+建, 劉永將也.
오한吳漢표기대장군 두무驃騎大將軍 杜茂 등 7명의 장군을 거느리고서 광락廣樂에서 소무蘇茂를 포위하였는데注+이현李賢이 말하기를 “광락廣樂은 지명에 나와 있지 않으니, 지금의 송주 우성현宋州 虞城縣장락長樂고성故城이 있는바, 하였다., 주건周建이 10여만 명의 병력을 소집하여 소무를 구원하였다.注+주건周建유영劉永의 장수이다.
迎與之戰이라가 不利하고 墮馬傷膝하여 還營하니 建等 遂連兵入城이라
오한이 그를 맞아 싸우다가 승리하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져 무릎을 다친 채 진영으로 돌아오니, 주건 등이 병력을 연합하여 으로 쳐들어왔다.
諸將 謂漢曰 大敵在前이어늘 而公傷臥하시니 衆心懼矣니이다
장수들이 오한에게 이르기를 “큰 적이 앞에 있는데 께서 부상을 당하여 누워 계시니, 여러 병사들이 내심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자,
乃勃然裹創而起하여 椎牛饗士하여 慰勉之하니 士氣自倍
오한은 상처를 싸매고 벌떡 일어나서 소를 잡아 병사들에게 연향을 베풀어 위로하고 권면하니, 사기가 절로 배가되었다.
旦日 蘇茂, 周建 出兵圍漢이어늘 奮擊大破之하니 茂走還湖陵하다
아침나절에 소무와 주건이 병력을 내어 오한을 포위하자, 오한이 맹공을 가하여 대파하니, 소무가 달아나 호릉湖陵으로 돌아갔다.
睢陽人 反城하여 迎劉永하니 蓋延 引兵圍之하다
수양睢陽(수양) 사람이 반란하여 을 바치고 유영劉永을 맞이하니, 갑연蓋延(갑연)이 병력을 이끌고 가서 포위하였다.
◑五月 帝還宮하다 是月晦 日食하다
】 5월에 황제가 환궁하였다. 이달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六月 大將軍耿弇 擊延岑走之하니 其將鄧仲況 以陰降하다
】 6월에 대장군 경엄大將軍 耿弇연잠延岑을 공격하여 패주시키니, 그 장수 등중황鄧仲況을 가지고 항복하였다.
仲況 據陰縣할새 而劉歆孫龔 爲其謀主注+陰縣, 屬南陽郡. 前侍中扶風蘇竟 以書說之注+前此, 帝嘗用竟爲侍中. 說, 輸芮切.하니
등중황鄧仲況음현陰縣을 점거하고 있을 적에 유흠劉歆의 손자 유공劉龔(유공)이 그의 모주謀主가 되었다.注+음현陰縣남양군南陽郡에 속하였다. 전 시중前 侍中부풍扶風 사람 소경蘇竟이 편지를 보내 그를 설득하니注+이전에 황제가 일찍이 소경蘇竟시중侍中으로 등용하였었다. (유세하다)는 수예輸芮이다.,
仲況 與龔降이로되 終不伐其功하고 隱身樂道하여 壽終於家하니라
등중황은 유공과 함께 항복하였으나, 소경은 끝내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고 몸을 숨기고 를 즐거워하여 천수를 누리고 집에서 죽었다.
秋七月 遣岑彭하여 擊秦豐於鄧하여 破之하고 進圍黎丘하며 別遣兵徇江東하니 揚州平注+地理志 “鄧縣, 屬南陽郡.”하다
】 가을 7월에 잠팽岑彭을 보내 에서 진풍秦豐을 격파하고 나아가 여구黎丘를 포위하였으며, 별도로 병력을 보내 강동江東을 순행하니, 양주揚州가 평정되었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등현鄧縣남양군南陽郡에 속했다.” 하였다.
◑睢陽人 斬劉永以降한대 諸將 立其子紆하여 復稱梁王하다
수양睢陽 사람이 유영劉永을 참수하고 황제에게 항복하자, 유영의 장수들이 그의 아들 유우劉紆(유우)를 세워 다시 양왕梁王이라 칭하였다.
蓋延 圍睢陽百日 劉永, 蘇茂, 周建 突出하여 將走酇注+此, 沛郡之酇縣也.이러니 蓋延 追擊之急하니
갑연蓋延수양성睢陽城을 포위한 지 100일에 유영劉永, 소무蘇茂, 주건周建 밖으로 뛰쳐나와 찬현酇縣으로 달아나려 하였는데注+여기서 패군沛郡찬현酇縣이다., 갑연이 맹렬히 추격하니,
永將慶吾 斬永首降注+慶, 姓也.이라 蘇茂, 周建 共立永子紆하여 爲梁王注+通鑑, 周建下, 有犇垂惠三字. 紆, 音迂.하다
유영의 장수 경오慶吾가 유영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注+이다. 소무, 주건이 함께 유영의 아들 유우劉紆를 세워서 양왕梁王이라 칭하였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주건周建의 아래에 “분수혜犇垂惠(수혜垂惠로 달아나다.)” 세 글자가 더 있다. 는 음이 이다.
冬十月 帝如舂陵하여 祠園廟注+舂陵節侯以下四世園廟也.하다
】 겨울 10월에 황제가 용릉舂陵에 가서 원묘園廟에 제사하였다.注+용릉절후舂陵節侯 이하 4원묘園廟이다.
◑十一月 還宮하다
】 11월에 〈황제가〉 환궁하였다.
◑李憲 稱帝하다
이헌李憲이 황제를 칭하였다.
置百官하고 擁九城하니 十餘萬注+廬江十二城, 憲所得者九城耳.이러라
】 〈이헌李憲이〉 백관百官을 설치하고 아홉 을 보유하니, 병력이 10여만이었다.注+여강廬江의 12개의 중에 이헌李憲이 얻은 것이 9개였다.
遣太中大夫來歙하여 使隗囂하다
태중대부 내흡太中大夫 來歙(내흡)을 외효隗囂(외효)에게 사신으로 보내었다.
帝謂太中大夫來歙曰注+來歙, 姓名, 帝之姑子也. 歙, 音吸. 今西州未附하고 子陽稱帝 道里阻遠하며 諸將 方務關東하니
】 황제가 태중대부 내흡太中大夫 來歙에게 이르기를注+내흡來歙은 사람의 성명姓名이니, 황제의 고모의 아들이다. 은 음이 이다. “지금 서주西州(외효隗囂)가 따르지 않고 자양子陽(공손술公孫述)이 황제를 칭하고 있는데, 도로가 험하고 거리가 멀며 장수들은 한창 관동關東에 힘을 쓰고 있으니,
思西州方略 未知所在 奈何注+西州, 謂隗囂也. 子陽, 公孫述字. 歙曰 臣嘗與隗囂 相遇長安하니 其人始起 以漢爲名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서주西州에 대한 방략方略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어찌해야 하는가?”注+서주西州외효隗囂를 이른다. 자양子陽공손술公孫述의 자이다. 하니, 내흡이 대답하기를 “이 일찍이 장안長安에서 외효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처음 기병할 적에 나라의 중흥을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臣願得奉威命하여 開以丹靑之信注+揚子曰 “聖人之言, 炳若丹靑.”이면 囂必束手自歸하리니 則述自亡之勢 不足圖也니이다
은 원컨대 위엄 있는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서 단청丹靑과 같은 약속으로써 열어 보여주고자 하오니注+양자揚子(양웅揚雄)가 “성인聖人의 말씀이 단청丹靑처럼 찬란하다.” 하였다., 이렇게 하면 외효가 반드시 손을 묶고 스스로 귀의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공손술이 스스로 망하는 형세이니, 굳이 도모할 것이 못 됩니다.” 하였다.
帝然之하여 始令歙使於囂하다 囂旣有功於漢하고 又受鄧禹爵署하니 其腹心議者多勸通使京師
황제는 그의 말을 따라 비로소 내흡을 외효에게 사신으로 보내었다. 외효는 나라에 공이 있고 또 등우鄧禹가 내려준 관직을 받았으므로, 그의 심복 중에 의논하는 자들이 대부분 경사京師(낙양雒陽)로 사신을 보낼 것을 권하였다.
囂乃奉奏詣闕이어늘 帝報以殊禮하여 言稱字하여 用敵國之儀하고 所以慰藉之甚厚注+囂, 字季孟. 言稱字, 謂每言語之間, 不稱其名也. 慰, 安也. 藉, 慈夜切, 薦也. 慰以安於身上, 藉以安於身下.하니라
외효가 이에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받들어 대궐로 나오니, 황제는 특별한 예로 보답하여 말할 적에 그의 를 칭해서 대등한 나라[적국敵國]의 의식을 따르는 등 위자慰藉한 것이 매우 두터웠다.注+외효隗囂는 자가 계맹季孟이니, “언칭자言稱字”는 매번 말하는 사이에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음을 이른다. 는 편안하게 해 줌이고 자야慈夜로 깔아줌이니, 〈“위자慰藉”는〉 위로하여 몸의 위를 편안히 해주고 거적을 깔아주어 몸의 아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역주
역주1 陳氏는……기록이다 : 陳瓘(1057~1124)은 자가 瑩中, 호가 了翁으로 南劍州 沙縣 사람이다. 대표적인 저술로 ≪冷齋夜話≫ 10권, ≪百家詩話≫ 등이 있다. ≪約論≫ 역시 그의 저술로, 宋나라 陳振孫의 ≪直齋書録解題≫ 卷17 〈別集類〉 約論十七卷 조에 “진관이 지었다. 戰國時代부터 後漢 安帝까지의 기록이니, 이는 ≪資治通鑑≫을 읽고 일을 따라 발명한 바가 있는 것이다.[陳瓘撰 起戰國 至後漢安帝 蓋讀通鑑 隨事有所發明者也]”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2 鄧禹가……것 : 馮愔과 宗歆은 모두 鄧禹의 副將이다. 赤眉軍이 函谷關으로 진격할 적에 光武帝는 등우를 前將軍에 제수하여 함곡관으로 보내면서 偏將과 裨將 이하로 함께할 만한 자들을 직접 선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에 등우는 ,풍음을 積弩將軍, 종흠을 車騎將軍으로 삼아 전쟁에 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윽고 光武帝가 황제로 즉위하여 등우를 大司徒로 삼았는데, 아직 關中 지역이 다 평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등우가 장기간 출병하지 않자, 황제가 칙서를 내려 독촉하였다. 이때 등우는 풍음과 종흠에게 栒邑을 지키도록 명하였는데, 두 사람이 권력을 쟁탈하기 위하여 서로 공격한 나머지 풍음이 종흠을 살해하고 등우까지 공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풍음이 護軍 黃防에게 붙잡힘으로써 반란은 평정되고 풍음은 낙양으로 압송되었는데, 광무제는 그의 죄를 사면해주고 죽이지 않았다. ≪後漢書 卷46 鄧禹列傳≫
역주3 馮異가……얻었다 : 본서 396쪽 지도10 ‘赤眉兵 패망 이후의 현황’ 참조.
역주4 得傳國璽綬 : “傳國璽와 인끈을 쓴 것은 어째서인가. 國寶를 소중히 여긴 것이니, 傳國璽를 쓴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資治通鑑綱目≫에 모든 國寶(國璽)를 반드시 썼으니, 子嬰이 옥새와 符節을 받들어 올리고 항복했을 때 썼고, 傳國璽와 인끈을 얻었을 때 썼고(이해이다.), 張寔이 옥새를 얻어 바쳤을 때 썼고, 謝尙이 傳國璽를 얻어 바쳤을 때 썼고, 도둑이 梁나라의 傳國璽를 도둑질하여 北齊에 주었을 때 썼고, 上皇(唐 玄宗)이 사신을 보내 冊寶를 받들고서 靈武에 갔을 때 썼고, 冊寶가 成都로부터 왔을 때 썼고, 唐나라가 사신을 보내 冊寶를 받들어 後梁에 가게 했을 때 썼고(唐 昭宣帝 4년이다.), 後晉이 傳國寶를 얻었을 때 썼고, 後晉이 受命寶를 만들었을 때 썼고, 後周가 두 國寶를 다시 만들었을 때 썼다.[書傳國璽綬 何 重國寶也 書傳國璽始此 綱目 凡國寶必書 子嬰奉璽符節以降則書 得傅國璽綬則書(是年) 張寔得璽獻之則書 謝尙得傳國璽獻之則書 盜竊梁傳國璽 歸之於齊則書 上皇遣使奉冊寶如靈武則書 冊寶至自成都則書 唐遣使奉冊寶 如梁則書(昭宣帝四年) 晉得傳國寶則書 晉作受命寶則書 周更作二寶則書]다” ≪書法≫
역주5 東隅에서는……거두었다 : 처음에는 실수하였지만 나중에는 그 실수를 만회함을 의미한다. 東隅는 동쪽 모퉁이로 해가 뜨는 곳을 가리키고, 桑楡는 뽕나무와 느릅나무로 이 나무들 끝으로 서쪽 해가 스쳐간다고 하여 해가 지는 곳을 가리키는바, 일의 처음과 끝이나 인생의 초년과 말년을 상징한다.
역주6 아마도……듯하다 : 隋 煬帝의 이름이 楊廣이므로 廣을 諱하여 長廣을 長樂으로 개칭한 것이다.

자치통감강목(7) 책은 2019.10.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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