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綱】 여름 6월에 왕망王莽이 제후諸侯들에게 모토茅土(띠풀과 흙)를 명당明堂에서 다시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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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왕망王莽은 빈말을 좋아하고 옛 법을 흠모하여 사람들에게 작위를 많이 봉해주었다. 그러나 성품이 실로 인색하여 아직 지리地理(행정구역)를 확정하지 못했다고 핑계하고는, 우선 정모菁茅(정모)와 네 가지 색깔의 흙을 먼저 나눠주어 봉한 자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해주었다.注+부賦는 나눠줌이다. 정菁은 음이 정精이니, 정모菁茅는 좋은 띠풀이다. 흙의 색깔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서 네 가지라고 말한 것은 중앙의 색깔인 황토로는 봉하지 않기 때문이다. ≪춘추대전春秋大傳≫에 “천자天子의 나라에 태사泰社가 있는데, 동방東方은 청색靑色이고 남방南方은 적색赤色이고 서방西方은 백색白色이고 북방北方은 흑색黑色이고 상방上方은 황색黃色이다. 그러므로 장차 동방東方의 땅에 봉할 자는 청색靑色의 흙을 취하고 남방南方에 봉할 자는 적색赤色의 흙을 취하고 서방西方에 봉할 자는 백색白色의 흙을 취하고 북방北方에 봉할 자는 흑색黑色의 흙을 취하니, 각각 그 지역 방위의 흙을 취하여 흰 띠풀로 싸서 봉하여 사社를 만든다.”라고 하였다.
과 구리를 합하여 만들었는데 북두성北斗星과 비슷하게 생겼으며,注+다섯 가지 색깔의 약석藥石(약재로 쓰는 돌)과 구리를 합하여 만들었으니, 길이가 2척尺 5촌寸이었다. 이것으로 여러 군대를 눌러 이기고자 하였다. 사명司命이 이것을 짊어지고서, 왕망王莽이 나가면 앞에 있고 들어오면 곁에 있었다.
과 육관六筦(육관)을 감독하게 할 적에, 모두 부유한 상인商人들로 임명하여 파발마를 타고 이익을 추구해서 천하에 끊임없이 오가게 하니, 이들이 천하를 오가며 군현郡縣과 내통하고 간악한 짓을 자행하여 백성들이 더욱 폐해를 입었다.注+명사命士는 희화羲和의 속관이니, 예전에 희화羲和인 노광魯匡이 이익을 말하였으므로 희화羲和에게 명하여 명사命士를 두어 육관六筦을 관장하게 한 것이다. 육관六筦은 소금이 첫 번째이고, 술이 두 번째이고, 철물이 세 번째이고, 명산대택名山大澤이 네 번째이고, 오균五均의 대여해줌이 다섯 번째이고, 철전鐵錢과 화포貨布를 동銅으로 주조함이 여섯 번째이니, 모두 현관縣官(관부)으로 하여금 주관하게 하여 그 이익을 세금으로 징수하였다.
왕망이 다시 조령詔令을 내려 육관六筦을 거듭 밝혀 죄과罪科와 금령禁令을 만들어 범한 자는 죄가 사형에 이르게 하니,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의 “위평爲平”의 위爲도 같다.
백성들이 걸핏하면 금령禁令에 저촉되어 밭을 갈고 누에를 칠 수가 없었고, 부역이 번거롭고 심하였으며 가뭄과 황충의 피해가 서로 이어졌고 옥송獄訟을 결단하지 못하였다.
관리들이 왕망의 금령禁令을 빙자하고 이용하여 백성들을 각박하게 대하니, 부유한 자는 스스로 재물을 보전하지 못하고 가난한 자는 스스로 목숨을 보존할 수가 없었다.注+방旁은 보랑步浪의 절切이니 의지함이다. 관리들이 왕망王莽의 금지하는 법제法制를 빙자하고 이용하여 각박하게 한 것이다.
이에 함께 일어나 도적이 되어서 산과 늪을 의지하고 저항하였는데, 관리가 사로잡지 못하고 이러한 사실을 은폐해서 점점 만연하여 날로 많아졌다.注+“침음浸淫”은 물을 가지고 비유했으니, 점점 젖어들어 결국 넘치게 됨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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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임회臨淮의 과전의瓜田儀 등은 회계會稽의 장주長州를 의지하여 버티고,注+임회臨淮는 군郡의 이름이니, 서주徐州의 성城이 남쪽으로 회수淮水에 임하였다. 과전瓜田은 성姓이고 의儀는 이름이다. 주州는 본래 주洲로 되어 있으니, 진秦나라가 회계군會稽郡을 설치하였는데 장주현長洲縣이 여기에 예속되었다.낭야琅邪의 여모呂母는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해곡현海曲縣의 현재縣宰(현령縣令)를 살해하고 해중海中의 섬으로 들어가 도둑이 되니, 그의 무리가 점점 많아져서 1만 명에 이르렀다.注+≪한서漢書≫ 〈왕망전王莽傳〉에는 여모呂母의 위에 ‘여자女子’ 두 글자가 더 있다. “처음에 여모呂母의 아들이 현리縣吏로 있었는데, 현재縣宰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이에 여모가 가산家産을 털어 술을 사고 병기兵器와 쇠뇌를 사서 빈궁한 소년들을 은밀히 후대하여 1백여 명을 얻고는, 마침내 이들을 거느리고 해곡현海曲縣을 공격하여 그 현재縣宰를 살해하여 아들의 묘墓에 제사했다.” 하였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해곡현海曲縣은 낭야군琅邪郡에 속했다.” 하였다.
형주荊州에 기근이 들자, 백성들이 들과 늪으로 들어가서 부자鳬茨(부자)를 캐어 먹으며 번갈아 서로를 침탈하였는데注+자茨는 본래 자茈로 되어 있으니, 음이 자慈이다. 부자鳧茨는 싹이
와 비슷하면서도 가늘고, 뿌리가 손가락의 끝부분과 같은데 색깔이 검고 먹을 수 있으니, 지대가 낮은 논에서 자란다.,
신시新市 사람 왕광王匡과 왕봉王鳳이 쟁송爭訟을 공평하게 다스려주니, 마침내 왕광과 왕봉을 우두머리로 추대하여 무리가 수백 명이었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신시현新市縣은 강하군江夏郡에 속했다.” 하였다. 쟁諍(다투다)은 쟁爭과 같다.
마무馬武와 왕상王常, 성단成丹 등 여러 망명한 자들도 모두 따라가서 녹림綠林의 산중에 숨으니, 몇 달 사이에 7, 8천 명에 이르렀다.注+≪후한서後漢書≫ 〈군국지郡國志〉에 “신시후국新市侯國에 녹림산綠林山이 있다.” 하였다. 또 남군南郡과 강하江夏에도 도둑의 무리가 모두 1만 명에 이르렀다.注+≪후한서後漢書≫ 〈군국지郡國志〉에 “강하군江夏郡은 형주荊州에 속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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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왕망王莽이 사자使者를 보내 이들을 사면하였는데, 사자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도둑들이 해산하였다가 다시 모이기에 그 이유를 물으니, 모두 대답하기를 ‘법금法禁이 번거롭고 까다로움을 근심하여 손을 들 수도 없고, 힘써 일하여 얻은 소득으로는 세금 바치기에도 부족하며,
문을 닫고 스스로 지키더라도 또 〈연대하여 보증을 선〉 이웃들이 은밀히 돈을 주조하고 동銅을 보관한 죄에 연좌되어서 간악한 관리들이 이로 인해 백성들을 괴롭힙니다.’라고 하니, 백성들이 곤궁하여 모두 일어나 도둑이 된 것입니다.” 하니, 왕망이 크게 노하여 사자를 면직시켰다.
그러나 혹자가 “백성들이 교만하고 교활하니,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라고 말하거나, “시운時運이 마침 그러하니, 저 도둑들은 장차 멸망할 날이 오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왕망이 기뻐하여 번번이 관직을 승진시켰다.注+열說(기뻐하다)은 열悅로 읽는다.
역주
역주1鑄威斗 :
“秦나라가 金人을 鑄造하였을 적에 쓰지 않았는데, 여기에서 이것을 쓴 것은 어째서인가. 어리석음을 기롱한 것이다. 王莽이 威斗를 주조하여 이것으로써 여러 義兵들을 눌러 이기고자 하였으니, 이것을 어리석다고 여겼으므로 쓴 것이다.[秦鑄金人 不書 此其書 何 譏愚也 莽鑄威斗 欲以厭勝衆兵 以是爲愚也 故書]다” ≪書法≫
역주2다섯 가지 돌[五石] :
붉은 丹砂와 누른 雄黃, 흰 白礬과 푸른 曾靑, 검은 慈石(磁石) 등 다섯 가지 石材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