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蓋勳이 爲京兆尹하고 左將軍皇甫嵩이 將兵三萬하여 屯扶風하다
勳이 密與嵩으로 謀討卓이러니 卓이 素怨嵩하여 徵爲城門校尉하여 欲因殺之하다
嵩이 將行에 長史梁衍이 說嵩曰 卓이 寇掠京邑하고 廢立從意하니 今徵將軍에 大則危禍요 小則困辱이라
今卓이 在雒陽하고 天子來西하시니 以將軍之衆으로 迎接至尊하여 奉令討逆하여 袁氏逼其東하고 將軍迫其西하면 此成禽也리라
嵩이 不從而就徵하니 勳이 以衆弱不能獨立이라하여 亦還京師하다
目
孫堅이 起兵하여 殺荆州刺史王叡하고 前至南陽하니 已數萬人이라
殺太守張咨하고 至魯陽하여 與袁術合兵하니 術이 由是로 得據南陽하여 表堅行破虜將軍, 領豫州刺史하다
堅이 與官屬으로 會飲於魯陽城東이러니 董卓歩騎數萬이 卒至하니 堅이 方行酒談笑하고 整頓部曲하여 無得妄動케하다
後騎漸益이어늘 堅이 徐罷坐하고 導引入城하여 乃曰 向堅所以不卽起者는 恐兵相蹈藉하여 諸君이 不得入耳니라
目
【목目】 동탁董卓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서 산동山東 지방을 토벌할 것을 의논하였는데, 상서 정태尙書 鄭泰가 말하기를 “정사는 덕德에 달려 있고 병력의 많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였다.
이에 동탁이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방금 경卿이 말한 것과 같다면 군사는 쓸모없다는 것인가.” 하자, 정태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하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산동山東 지방은 굳이 큰 병력을 동원하여 토벌할 것이 못 된다고 이른 것일 뿐입니다.
명공明公은
서주西州에서 나와서 연소할 적에 장수가 되어 군대의 일에 익숙하지만
원본초袁本初(
원소袁紹)는
공경公卿의 자제로
경사京師에서 생장하였고
注+본초本初는 원소袁紹의 자字이다.,
장맹탁張孟卓(
장막張邈)은
동평군東平郡의
후중厚重한
장자長者로서
당堂에 단정히 앉아 함부로 위험한 곳을 엿보지 않았고
注+맹탁孟卓은 장막張邈의 자字이다. “좌불규당坐不闚堂”은 몸과 목숨을 아낌을 말한 것이다. 당堂이 높으면 그 귀퉁이(처마)가 지면地面과 멀어서 엿봄에 떨어질까 두려우니, 이는 바로 의 뜻이다.,
공공서孔公緒(
공주孔伷)는
청담清談과
고론高論에 능한 자로서 건조한 것은 입김을 불어넣어 생기 있게 하기도 하고, 생기가 있는 것은 숨을 불어서 건조하게 하기도 합니다.
注+공서公緖는 공주孔伷의 자字이다. 〈“허고취생噓枯吹生”은〉 건조한 것에 입김을 불어넣어 생기가 나게 하기도 하고 생기가 나는 것을 불어서 건조하게 하기도 하는 것이니, 이는 담론에 억양하는 바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군사軍事에 관한 재주가 전혀 없으니, 칼 끝에 임하여 적과 승부를 결단하는 것은
공公과 대등한 자가 아닙니다.
注+“임봉결적臨鋒決敵”은 병봉兵鋒(병기의 뾰족하고 예리한 부분)에 임하여 적과 승부를 결단함을 이른다. 더구나 저들은 조정의 관작을 받지 않아
존비尊卑에 차서가 없어서
심지心志와
담력膽力을 합하여
진퇴進退를 함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산동山東 지방은 태평한 지가 오래되어서 백성들이 전쟁에 익숙하지 못하니, 천하가 두려워하는 바는 병주幷州와 양주涼州의 병사와 강족羌族과 호족胡族의 의종義從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명공明公이 이들을 보유하여 조아爪牙로 삼고 있으니,
비유하자면 범과 무소를 몰아서 개와 양에게 달려가게 하고
열풍烈風을 일으켜서 마른 잎을 쓸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가 감히 이를 막겠습니까.
注+시兕(무소)는 서자序姊의 절切이다. 소와 비슷한데 뿔이 하나이고 가죽은 푸른색이며, 몸의 무게는 1,000근이고 뿔의 무게는 100근이다.
아무런 일도 없는데 군대를 징발하여 천하를 놀라게 하고 부역을 근심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서로 모여 나쁜 짓을 하게 하여, 덕德을 버리고 병력의 많음을 믿는 것은 스스로 위엄과 권세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동탁이 이에 기뻐하였다.
目
【목目】 이윽고 동탁董卓은 또 산동 지방의 군대가 강성하다고 해서 천도遷都하여 이들을 피하고자 하였는데, 표문表文을 올려 하남윤 주준河南尹 朱儁을 자기의 부관副官으로 삼았다.
사자使者가 주준을 불러 관직을 임명하자, 주준이 사양하여 받지 않고 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국가가 서쪽(
장안長安)으로 천도하면 반드시 천하 사람들의 바람을 저버려서 산동 지방과 틈이 생기게 될 것이니,
신臣은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注+고孤는 저버림이다.
동탁이
공경公卿들을 크게 모아 이를 의논하였는데,
양표楊彪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관중關中(
장안長安)이
잔파殘破되어
낙양雒陽에 도읍을 정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이제 아무런 까닭 없이
종묘宗廟와
원릉園陵을 버리면 아마도 백성들이 크게 놀라고 동요하여 반드시 죽이 끓는 것처럼 소란하여 난리가 발생할 것입니다.
注+‘미비糜沸’는 죽이 끓는 듯한 것이다. ≪시경詩經≫ 〈대아 탕大雅 蕩〉에 “끓는 물과 같고 끓는 국과 같다.” 하였다.
천하를 동요시키기는 지극히 쉽지만 안정시키기는 매우 어려우니, 부디 명공明公께서는 이 점을 생각하십시오.” 이에 동탁이 낯빛을 바꾸며 말하기를 “공公이 국가의 대계를 저지하고자 하는가.” 하자,
황완黃琬이 말하기를 “이는 국가의 대사입니다. 어찌 양공楊公의 말씀에 생각할 만한 점이 없겠습니까.” 하니 동탁이 대답하지 않고 재이災異가 있음을 구실로 삼아 상주上奏하여 황완과 양표 등을 면직시키고 왕윤王允을 사도司徒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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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개훈蓋勳이 경조윤京兆尹이 되고 좌장군 황보숭左將軍 皇甫嵩이 3만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서 부풍扶風에 주둔하였다.
갑훈이 은밀히 황보숭과 함께 동탁董卓을 토벌할 것을 모의하였는데, 동탁은 평소 황보숭을 원망하여 그를 불러 성문교위城門校尉를 삼고 이를 빌미로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황보숭이 장차 길을 떠나려고 할 적에 장사 양연長史 梁衍이 황보숭을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동탁이 경사京師를 범하여 노략질을 자행하고 제멋대로 황제를 폐위시키고 옹립하였는데, 그가 지금 이제 장군을 부르니, 크게는 위험과 화禍가 있을 것이고 작게는 곤욕을 당할 것입니다.
지금 동탁이 낙양에 있고 천자가 서쪽(장안長安)에 오시니, 장군의 많은 병력으로 지존至尊(천자)을 영접하고 명령을 받들어 역적을 토벌해서 원씨袁氏가 그 동쪽을 압박하고 장군이 그 서쪽을 압박하면 이는 바로 동탁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러나 황보숭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 부름에 나아가니, 갑훈은 병력이 약하기 때문에 독립할 수 없다고 하여 또한 경사京師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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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동탁董卓이 낙양성 안의 부호富豪들을 잡아들여 그들에게 죄악罪惡을 뒤집어씌워 주살하고 그 재물들을 몰수하니, 이에 죽은 자들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남은 백성 수백만 명을 모두 몰아서 장안長安으로 옮길 적에 보병과 기병이 백성을 몰아 핍박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서로 밟히고 깔리며, 굶주리고 노략질을 당하여 백성들의 시신이 길에 가득하였다.
동탁은 스스로
필규원罼圭苑(필규원) 가운데에 주둔해 있으면서 궁궐과 사당과 관부, 거주하는 백성들의 집을 모두 불태우니, 200리 안에는 닭과 개조차도 없었다.
注+“거가居家”는 거주하는 백성들의 집이다.
또 여포呂布로 하여금 황제들의 능과 공경公卿들의 무덤을 파내어 그 속에 있던 진귀한 보물들을 거두어들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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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손견孫堅이 군사를 일으켜 형주자사 왕예荆州刺史 王叡(왕예)를 죽이고 전진하여 남양南陽에 이르니, 병력이 이미 수만 명이었다.
태수 장자太守 張咨를 죽이고 노양魯陽에 이르러 원술袁術과 병력을 연합하니, 원술이 이로 말미암아 남양南陽을 점거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표문表文을 올려 손견을 행파로장군行破虜將軍으로서 예주자사豫州刺史를 겸하게 하였다.
손견이 관속들과 노양성 동쪽에서 모여 술을 마셨는데, 동탁董卓의 보병과 기병 수만 명이 갑자기 몰려오니, 손견은 막 술잔을 돌리며 담소하고 부곡部曲(부대)를 정돈하여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뒤에서 몰려오는 기병이 점점 더 많아지자, 손견이 서서히 술자리를 파하고 사람들을 인도하여 성으로 들어가서 마침내 말하기를 “방금 전 내가 즉시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군사들이 동요해 서로 밟히고 깔려 여러분이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까 염려하였을 뿐이었다.” 하였다.
동탁의 군대는 손견의 부대가 정돈된 것을 보고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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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원소袁紹 등의 제군諸軍이 동탁董卓의 강함을 두려워하여 감히 먼저 진격하는 이가 없자, 조조曹操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의병義兵을 일으켜 포학한 자와 난을 일으킨 자들을 주벌하려 해서 큰 병력이 이미 모였으니, 여러분은 무엇을 의심하는가.
만약 동탁董卓이 황실의 권위에 의지하고 옛 경사京師인 낙양을 점거하여 동쪽으로 향해서 천하에 임하였더라면 비록 무도한 짓을 행하더라도 오히려 큰 근심거리가 될 수 있지만,
지금 궁실을 불태우고 천자를 겁박하여 도읍을 서쪽으로 옮겨서 온 천하 사람들이 이 때문에 크게 놀라 동요하여 누구에게 귀의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니, 이것이 바로 하늘이 동탁을 멸망시키는 시기인 것이다. 한 번 싸우면 곧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
조조가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장차 성고成皐를 점거하려고 하였는데, 형양滎陽에 이르러 동탁의 장수 서영徐榮을 만나 그와 싸우다가 조조의 군대가 패하여 조조가 유시流矢에 맞고 말 또한 창상創傷을 입었다.
종제 조홍從弟 曹洪이 자기가 타던 말을 조조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천하에 저 조홍은 없어도 괜찮지만 군君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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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조조曹操가 마침내 밤중에 달아나 산조酸棗로 돌아오니, 제군諸軍 십여만 명이 날마다 술자리를 베풀고 크게 모여 잔치하고 나아가 동탁董卓을 취할 것을 도모하지 않았다.
조조가 이들을 꾸짖고 인하여 이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계책을 제시하였다.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에 “절위竊爲”의 위爲도 똑같다. “그대들이 나의 계책을 따라서
발해태수 원소勃海太守 袁紹로 하여금
하내河內의 병력을 인솔하여
맹진孟津에 임하게 하고
注+발해勃海는 원소袁紹를 이른다. 원소袁紹가 먼저 왕광王匡과 함께 하내河內에 군대를 주둔하였다.,
산조酸棗에 주둔해 있는 장수들이
성고成皐를 지키고
오창敖倉을 점거하며
환원轘轅(환원)과
태곡大谷(태곡)을 봉쇄하여 그
험요險要한 지역을 완전히
공제控制하고
注+태大는 음音이 태泰이다. ≪괄지지括地志≫에 “태원군 대곡현太原郡 大谷縣에 태곡산大谷山이 있다.” 하였다.,
원장군袁將軍(
원술袁術)으로 하여금
남양南陽의 군대를 거느려
단수현丹水縣과
석현析縣에 주둔하고
무관武關에 들어가서
장안長安의
삼보三輔 지방을 진동하게 하되
注+“원장군袁將軍”은 원술袁術을 이른다. 단수현丹水縣과 석현析縣은 모두 홍농군弘農郡에 속하였다.
모두 보루와 성벽을 높이 쌓고서 적들과 싸우지 말고 의병疑兵을 더욱 만들어 천하의 의로운 군대가 크게 모인 형세를 드러내 보여서 순리順理로 반역하는 자를 주벌하면 즉시 천하를 평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군대가 대의명분으로 출동하였는데 주저하고 의심하며 진격하지 아니하여 천하 사람들을 실망시키니,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부끄러워하는 바이다.”
그러나
장막張邈 등은 조조의 계책을 따르지 못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마침내
하내河內로 돌아와 주둔하였는데
注+〈“조내환둔하내操乃還屯河內”는 조조曹操가〉 원소袁紹를 따라간 것이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
산조酸棗의 식량이 다하여 무리가 흩어지니,
유대劉岱가
교모橋瑁를 죽였다.
目
【목目】 공손탁公孫度가 관사官司에 부임하여 법률로 군郡 안에 있는 유명한 호족과 대성大姓 백여 가家를 주멸誅滅하니, 온 군郡의 사람들이 크게 놀라 매우 두려워하였다.
이에 동쪽으로 고구려高句驪를 정벌하고 서쪽으로 오환烏桓을 공격하고, 요동遼東을 나누어 요서군遼西郡과 중료군中遼郡을 만들어 각각 태수太守를 두고,
바다를 건너 동래東萊의 여러 현縣을 점령하여 영주자사營州刺史를 두었으며, 스스로 서서 요동후 평주목遼東侯 平州牧이 되어 한漢나라의 고조高祖(유방劉邦)와 세조世祖(유수劉秀)의 사당을 세우고,
하여
교외郊外에서
천지天地에 제사를 지내고
의
예禮를 거행하였고
를 타고
와
우기羽騎를 두어 호위하게 하였다.
注+우기羽騎는 우림군羽林軍의 기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