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甲午年(154)
二年이라 春二月 하다
◑地震하다
◑夏하다
◑東海朐山注+胊, 音劬. 賢曰 “胊山, 在今海州胊山縣南.”하다
◑秋九月朔 日食하다
◑冬十一月 注+東漢, 開上林苑於陽西.하다
◑泰山琅邪盜起하다


갑오년甲午年(154)
나라 효환황제 영흥孝桓皇帝 永興 2년이다. 봄 2월에 자사刺史이천석二千石이 부모의 삼년상三年喪을 행하는 것을 다시 허락하였다.
】 지진이 있었다.
】 여름에 황충蝗蟲의 재해가 있었다.
동해東海구산朐山(구산)이 무너졌다.注+이다. 이현李賢이 말하기를 “구산胊山은 지금의 해주 구산현海州 胊山縣 남쪽에 있다.” 하였다.
유모乳母마혜馬惠의 아들 하여 열후列侯로 삼았다.
】 가을 9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 겨울 11에 황제가 상림원上林苑에서 을 하고서 마침내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다.注+동한東漢상림원上林苑낙양雒陽 서쪽에 개설하였다.
태산泰山낭야琅邪(낭야)에 도적 떼가 일어났다.


역주
역주1 復聽刺史二千石行三年喪 : “安帝 建光 元年(121)에 ‘다시 大臣이 三年喪을 행하는 것을 금하였다.’라고 한 뒤로부터 이때에 이르기까지 34년이 되었다. 삼년상을 행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다시 썼으나 刺史와 二千石에서 그쳤으니, 애석하다.[自安帝建(安)[光]元年 書復斷大臣行三年喪 至是三十有四年矣 復書聽行 而止於刺史二千石 惜哉]다” ≪書法≫
역주2 封乳母馬惠子初 爲列侯 : “乳母를 君으로 봉한 것이 王聖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 아들을 侯로 삼지는 않았는데 馬惠의 아들을 侯로 삼았으니, 桓帝가 爵位를 수여함에 너무 절제가 없는 것이다. 특별히 ‘乳母의 아들’이라고 쓴 것은 깊이 비난한 것이다.[乳母封君 自王聖始 未侯其子也 馬惠子侯 桓爵之濫甚矣 特書乳母子 深譏之]다” ≪書法≫
역주3 校獵 : 나무를 꿰어 서로 연결시켜서 짐승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사냥함을 이른다.
역주4 帝校獵上林苑 遂至函谷關 : “‘마침내 〈함곡관에〉 이르렀다.’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멀기 때문이다. 무릇 사냥을 쓴 것은 비난한 것인데, 桓帝는 당시가 어떤 시기였는데 놀고 사냥하면서 스스로 방자하고 또 마침내 〈함곡관에까지 가는〉 일이 있었으니, 이를 쓴 것은 깊이 비난한 것이다. 이로부터 2번 校獵을 썼는데, 廣成苑의 사냥에도 2번 ‘遂’라고 썼다.(延熹 元年(158)과 6년(163))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사냥을 쓴 13번 중에 환제가 3번을 차지하는데 모두 마침내 〈다른 곳에까지〉 가는 일이 있었으니, 환제 또한 절제를 알지 못함이 심하였다.[書遂至 何 遠也 凡書獵 譏也 桓爲何時 遊田自恣 且有遂事 書甚譏之 自是再書校獵 廣成亦再書遂(延熹元年六年) 終綱目 書獵十三 桓居其三 而皆有遂事 桓亦不知節甚矣]다” ≪書法≫
역주5 (維)[雒] : 저본에는 ‘維’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雒’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