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堯舜禹湯文武則無欲者也요 自餘賢主는 則能窒欲者也요
屈於物欲하여 不知自反이면 則昏亂危亡之君이요 內多欲而外施仁義면 則五伯假之之徒也라
所謂欲은 或酒, 或色, 或貨利, 或宮室, 或遊畋, 或狗馬, 或博奕이요 或詞藝圖書以爲文하고 或撫劍疾視以爲武하며 或闢土服遠以爲功하고 或耽佛好仙以爲高니 雖汙潔不齊하고 欲有大小나 然皆足以變移志慮하고 荒廢政理니
雖欲勉行仁義나 而行之無本하여 其不足以感人心而正民志矣라
故로 人君은 莫大乎修身이요 而修身은 莫先於寡欲이니 欲誠不行이면 則心虛而善入하고 氣平而理勝하여 動無非理요 事無不善이니 唐虞之治 不越此矣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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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이때에 한漢나라 군대가 마침내 출발하여 아직 큰 고개를 넘어가지 않았는데, 민월왕閩越王 낙영駱郢의 아우 낙여선駱餘善이 왕을 살해하고 사신을 보내 왕의 머리를 왕회王恢에게 받들어 보냈다.
왕회王恢가 편의에 따라 군대를 멈추고 한안국韓安國에게 알려서 사신을 보내 민월왕의 머리를 받들고 말을 치달려 황제에게 아뢰게 하였다.
이에 황제는
조령詔令을 내려 군대를 해산하고
낙무제駱無諸(낙무저)의 손자인
요군繇君 낙축駱丑(낙추)를 세워서
월요왕越繇王으로 삼아 민월의 선대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注+요繇는 음이 요搖이니 읍邑의 이름이다. 추丑는 요군繇君의 이름이다. 낙영駱郢 등은 앞장서서 흉악한 짓을 하였지만 낙축駱丑만은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그를 세워 왕으로 삼은 것이다.
낙여선이 이미 낙영을 죽이자 위엄이 온 나라에 떨치니, 요왕繇王이 통제하지 못하였다.
인하여 낙여선을 세워 동월왕으로 삼아서 요왕繇王과 나란히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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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상上이 장조莊助를 보내 남월南越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니, 남월왕 조호趙胡가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기를 “천자께서 신을 위하여 군대를 일으켜 민월閩越을 토벌하시니, 죽더라도 은덕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하고, 태자太子 조영제趙嬰齊를 보내 입조入朝하여 숙위宿衛하게 하였다.
그리고 장조에게 말하기를 “나라가 최근 침략을 받았으니, 사신께서는 먼저 가십시오.
나는 급히 행장을 꾸려 들어가서 천자를 뵐 것입니다.”
注+“일야장日夜裝”은 급히 행장行裝을 꾸리는 것이다. 하였다.
장조가 남월을 떠나가자, 남월의 대신들이 모두 간하기를 “선왕께서 옛날에 말씀하기를 ‘천자를 섬길 적에는 실례되는 일이 없게 할 뿐이다.’ 하셨습니다.
요컨대 사자가 좋게 하는 말을 기뻐하여 입조하여
천자天子를 뵈어서는 안 되니, 만일 돌아오지 못하신다면 나라가 망할 상황에 빠질 것입니다.”
注+열說은 열悅로 읽으니, 〈“불가이열호어입견不可以說好語入見”은〉 한漢나라 사신이 좋게 하는 말을 기뻐해서 입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한서漢書》 〈남월전南粵傳〉에는 ‘입현入見’ 아래에 또 ‘입현入見’ 두 글자가 있다. 하였다.
이에 조호趙胡는 병을 핑계 대고 끝내 입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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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처음에
급암汲黯이
알자謁者였을 적에 엄함으로 인해
황제皇帝로부터 꺼림을 받았다.
注+암黯은 을감乙減의 절切이다.
동월東越 사람들이 서로 공격하자, 상上이 급암으로 하여금 가서 살펴보게 하였는데, 급암은 가지 않고 돌아와 보고하기를 “월越나라 사람들이 서로 공격하는 것은 본디 그 풍속이 그러하니, 천자의 사신을 욕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였다.
하내河內 지방에서 실화失火로 인해 1천여 가호家戶가 연달아 불타자, 상上이 급암으로 하여금 가서 살펴보게 하였는데, 돌아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집안 사람이 실화하였는데 지붕이 이어져 연달아 불탄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注+비比는 가깝다는 뜻이니, “옥비연소屋比延燒”는 지붕이 서로 가깝기 때문에 연이어 불탄 것을 말한다.
신이 하남河南 지방을 지나갈 적에 가난한 사람들 중에 홍수와 가뭄에 피해를 입은 것이 만여 가호나 되어서 부자간에 서로 잡아먹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편의에 따라 부절符節을 가지고 창고의 곡식을 풀어서 구휼하였습니다.
신은 부절을 돌려드리고, 황제의 제조制詔를 사칭한 죄를 받고자 합니다.”
그러자
상上이
현능賢能하다 여기고 용서해주었다.
注+교矯는 거짓으로 칭탁하는 것이니,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 시행한다고 칭탁하여 말한 것이다. 한漢나라 율律에 “제조制詔를 사칭한 자는 기시죄棄市罪로 논단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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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급암汲黯이 잦은 직간直諫 때문에 내직內職에 있을 수 없어 좌천되어 동해수東海守가 되었다.
급암은 깨끗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해서
군승郡丞과
연사掾史를 선발하여 일을 위임하고 자신은
대체大體만을 맡을 뿐이고 작은 일은 까다롭게 하지 않았다.
注+한漢나라 제도에, 군수郡守의 속관屬官에 승丞이 있고 제조諸曹의 연사掾史가 있었다.
급암이 병이 많아서 1년이 넘게
합내閤內에 누워 있으면서 나오지 못하였는데도,
동해東海가 잘 다스려지자 천자가 그를 불러
주작도위主爵都尉로 삼았다.
注+주작중위主爵中尉는 진秦나라의 관직이니, 열후列侯를 관장하였다. 경제景帝 중中6년(B.C. 144)에 도위都尉로 이름을 고쳤다.
그의 다스림은 무위無爲에 힘쓰고 대체大體를 이끌었고 법조문에 구애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됨이 성품이 거만하여 예우하는 일이 적어서 면전에서 책망하여 남의 잘못을 용납하지 못하였다.
注+거倨는 거서居庶의 절切이니, 거만하다는 뜻이다.
당시 천자가
문학文學이 뛰어난 자를 불러들였는데,
상上이 일찍이 “내가 이리이리 하고자 한다.”
注+“운운云云”은 이리이리 하고자 한다는 말과 같으니, 사관史官이 그 말을 생략한 것이다. 말한 내용은 인의仁義를 베풀고자 한다는 것이다.라고 하니, 급암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 안으로는 욕심(욕망)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仁義를 베풀고자 하시니, 어찌
당唐‧
우虞의 정치를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上이 노하여 조회를 파하고 좌우 신하에게 이르기를 “심하구나.
신하들 중에 어떤 사람이 급암을 책망하니, 급암이 말하기를
注+삭數는 책망하는 것이다. “천자가
공경公卿과
보필輔弼하는 신하를 둔 것이 어찌 그들로 하여금 임금의 뜻을 따라 아첨해서 군주를
불의不義에 빠뜨리려는 것이겠는가.
또 내가 이미 그 지위에 있으니, 비록 자기 몸을 아끼나 어떻게 조정을 욕되게 하겠는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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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급암汲黯이 병이 많아서
상上이 휴가를 준 것이 여러 번이었는데도 병이 낫지 않자,
장조莊助가 다시 급암을 위하여 휴가를 청하였다.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상上이 말하기를 “급암은 어떤 사람인가?” 하니,
장조가 말하기를 “만일 급암이 관직을 맡아 관청에 있으면 남보다 나을 것이 없으나,
어린 군주를 보필하고 이루어놓은 것을 지킴에 있어서는 의지가 깊고 견고하여 다른 사람이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고 내쳐도 떠나가지 않을 것이니,
비록 스스로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이라고 여기는 자라도 그의 마음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注+“심견深堅”은 지조志操가 심원하고 견고해서 뺏을 수 없음을 말한다.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은 옛날의 용사勇士이니 모두 위衛나라 사람이다. 맹분孟賁은 산채로 소의 뿔을 뽑고, 하육夏育은 힘이 천균千鈞의 무게를 들 수 있었다. 하였다.
옛날에 사직社稷의 신하가 있었는데, 급암 같은 사람은 이에 가깝도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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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급암汲黯이 〈무제武帝에게〉 ‘욕심(욕망)이 많다.’고 한 말이 어찌 다만 무제武帝의 병통을 깊이 지적하였을 뿐이겠는가.
무릇 인군人君이 된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가 없다.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왕文王, 무왕武王은 욕심이 없는 자이고, 그 나머지 어진 군주는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겨〉 욕심을 막은 자이다.
물욕物欲에 굴복당하여 스스로 돌이킬 줄 모르면 혼란하여 나라를 위망危亡에 빠뜨리는 군주이고, 속으로는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仁義를 베풀면 인의仁義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욕망을 이룬 오패五霸와 같은 무리이다.
이른바 욕심이라는 것은 혹은 술과 여색, 혹은 화리貨利, 혹은 궁실宮室, 혹은 놀이와 사냥, 혹은 개와 말, 혹은 장기와 바둑이며, 혹은 글쓰기와 도서를 문文이라 여기고, 혹은 검劍을 뽑아 상대방을 노려보는 것을 무武라 여기며, 혹은 국토를 개척하고 먼 외국을 굴복시키는 것을 공功으로 삼고, 혹은 불교佛敎를 숭상하고 신선神仙을 사모함을 고상함으로 삼으니, 비록 더럽고 깨끗함이 똑같지 않고, 욕망에 크고 작음이 있으나 모두 마음과 생각을 바꾸고 정치를 황폐하게 한다.
그리하여 비록 힘써 인의仁義를 행하려고 하더라도 행실에 근본이 없어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백성들의 뜻을 바로잡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군은 몸을 닦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고, 몸을 닦는 것은 욕망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욕심이 진실로 행해지지 않으면 마음이 비어 선善이 들어가고 기氣가 화평하여 이치가 우세해서, 행동마다 이치 아닌 것이 없고 일마다 선善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당唐‧우虞의 정치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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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흉노匈奴가 와서 화친을 청하자 천자가 그 의론을 회부하였는데, 왕회王恢는 연燕 지방 사람이어서 흉노의 일에 익숙하여 말하기를 “흉노는 화친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약속을 어기니, 화친을 허락하지 말고 군대를 일으켜서 그들을 공격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어사대부御史大夫 한안국韓安國은 말하기를 “흉노가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것은 새가 날아다니는 것과 같아서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注+“조거鳥擧”는 흉노匈奴가 가볍고 빠르게 출동함을 말한 것이니, 수초水草를 따라 옮겨가는 것이 새가 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금 수천 리를 가서 그들과 이익을 다투면 인마人馬가 피폐해질 것이니 오랑캐가 온전함을 가지고 우리의 피폐한 군대를 제어한다면 이는 위태로운 방도가 될 것입니다.
신하들의 의론이 대부분 한안국의 의견을 따르자, 이에 상上이 화친을 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