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魏侍中斛斯椿
이 與南陽王寳炬將軍元毗王思政
으로 密勸魏主圖髙歡
할새 增置都督部曲
이 各數百員
注+① 寶炬, 元愉之子. 毗, 遵之玄孫也.이러라
以關中大行臺賀拔岳이 擁重兵이라하여 密與相結하고 出其弟勝하여 爲荆州刺史하여 欲以敵歡하니 歡이 不悅이러라
初에 侍中司空髙乾이 遭父喪하여 解侍中이러니 魏主가 既貳於歡이라 冀乾爲己用하여 嘗與共立盟約이러니 乾이 不之知하여 對曰 臣이 以身許國이어니 何敢有貳리오하다
及是하여 乾乃謂所親曰 上不親勲賢하고 而招集群小하며 數遣人往來關中하고 又令賀拔兄弟로 相近하니 禍難將作하여 必及於我리라하고 乃密啓歡한대
歡이 召乾詣并州어늘 乾이 因勸歡受魏禪하니 歡이 掩其口曰 勿妄言하라 今令司空復爲侍中門下事하여 一以相委라하다
屢啓請之하되 魏主不許어늘 乾이 知變將起하고 求爲徐州한대 從之하다
目
初에 賀拔岳이 遣行臺郎馮景하여 詣晉陽한대 髙歡이 與景歃盟하여 約與岳爲兄弟어늘 景이 還言於岳曰 歡이 姦詐有餘하니 不可信也라하다 府司馬宇文泰가 請使晉陽하여 以觀歡之爲人이러니
歡이 奇其狀貌曰 此兒視瞻이 非常이라하여 將留之나 泰가 固求復命이어늘 歡既遣하고 而悔之하여 發驛急追至關이나 不及而返이러라
泰가 至하여 謂岳曰 歡이 所以未簒者는 正憚公兄弟耳니 侯莫陳悅之徒는 非所忌也라 公但潜爲之備하면 圖歡이 不難이리라
今費也頭控弦之騎
가 不下一萬
이요 夏州刺史斛拔彌俄突勝兵
이 三千餘
요 靈州刺史曹泥
와 河西流民紇豆陵伊利
가 各擁部衆
하여 未有所屬
注+① 新唐世系表云 “費也頭氏, 臣屬鮮卑, 從其主, 稱宇文氏.”하니
若移軍近隴
하여 扼其要害
注+② 隴, 坂也.하여 震之以威
하고 懷之以惠
하며 收其士馬
하여 以資吾軍
하고 西輯氐羌
하고 北撫沙塞
하며 還軍長安
하여 匡輔魏室
하면 此桓文之功也
注+③ 沙塞, 靈夏塞外, 北臨沙莫.라하니
岳
이 大悅
하여 復遣詣洛陽請事
하여 密陳其状
한대 魏主
가 喜
하여 以岳爲都督二十州軍事雍州刺史
注+④ 二十州, 雍․華․東華․岐․南岐․豳․原․河․渭․涇․夏․東夏․秦․南秦․梁․南梁․東梁․巴․益․東益也.하다
岳
이 遂引兵
하여 西屯平涼
注+⑤ 所謂近隴也.하니 彌俄突伊利及費也頭万俟受洛干
과 鐡勒斛律沙門等
이 皆附於岳
하되 唯曹泥附歡
注+⑥ 万俟洛, 字受洛干, 万俟普之子也. 鐵勒卽敕勒也.이러라
岳이 以夏州被邊要重이라하여 欲求良刺史어늘 衆이 擧宇文泰한대 岳이 曰 左丞은 吾左右手어니 何可廢也리오하고 沈吟累日이라가 卒表用之하다
目
【目】 爾朱兆가 秀容에 이르러 군사를 나눠 요새들을 지켰다. 高歡이 이주조를 토벌해야 한다고 외치며 군사를 출격시켰다가 멈추기를 네 차례나 하였다. 이주조의 마음이 나태해지자, 고환이 새해 무렵 연회를 베풀 것이라 추측하고 竇泰에게 정예 기병을 이끌고 가게 하였는데 하루 밤낮 사이에 3백 리를 갔다.
고환이 대군을 이끌고 뒤따라오자 이주조의 군사들이 깜짝 놀라 달아났고 두태가 추격해 격파하자 이주조가 산속에서 목매달아 죽었다. 慕容紹宗이 항복하자 고환이 후대했다.
이에 앞서 이주조의 부하들이 모두 남몰래 고환에게 항복 의사를 전했지만 張亮만은 참여하지 않았었는데, 이때가 돼서 고환이 장량을 參軍으로 삼았다.
目
【目】 北魏의 侍中 斛斯椿이 南陽王 元寳炬, 將軍 元毘, 王思政과 함께 魏主(元脩)에게 高歡을 제거할 것을 은밀히 권유할 적에 〈궁정에〉 都督의 部曲을 설치하니 각 인원이 수백 명이었다.
注+① 元寶炬는 元愉의 아들이다. 元毗는 元遵의 현손이다.
關中大行臺 賀拔岳이 重兵을 거느리고 있다 하여 은밀하게 그와 연결하고, 그의 아우 賀拔勝을 荊州刺史로 내보내 고환과 대적하게 하려 하니, 고환이 달갑게 여지지 않았다.
예전에 侍中 司空 高乾이 부친상을 당해 侍中의 자리를 내놓고 있었다. 魏主가 이미 고환을 의심하고 있던 터라 고건이 자신에게 쓰이기를 기대하여 일찍이 함께 맹약을 한 적이 있었는데 고건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답하기를, “신이 몸을 국가에 바쳤는데 어찌 감히 두 마음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었다.
이때가 돼서 고건이 가까운 사람에게 이르기를, “皇上은 功이 있는 현신을 가까이하지 않고 소인배들을 불러들이며, 곧잘 關中에 사람을 보내 왕래하고 또 賀拔 형제를 서로 가깝게 하니 재앙이 장차 일어나 반드시 내게 미칠 것이다.”라고 하고 조용히 이를 고환에게 보고했다.
고환이 고건을 并州로 부를 때 고건이 고환에게 魏主에게 帝位를 선양받으라 하니 고환이 그의 입을 가리며, “함부로 말하지 말라. 지금 司空(귀하)을 다시 侍中과 門下省의 일을 모두 맡기겠다.”라고 했다.
고환이 여러 차례 고건의 복직을 요청했음에도 魏主가 따르지 않자, 고건은 변고가 장차 일어날 것을 예감하고 徐州刺史를 요청하자 魏主가 따랐다.
目
【目】 예전에 賀拔岳이 行臺郎 馮景을 晉陽으로 보내자 高歡이 풍경과 피를 나눠 마시고 盟約을 하여 하발악과 형제가 되기로 약속했다. 풍경이 돌아와 하발악에게 말하기를, “고환이 奸計와 邪惡이 많으니 믿을 수 없다.”라고 하니, 府司馬 宇文泰가 진양으로 가서 고환의 사람 됨됨이를 관찰하겠다고 요청하였다.
고환이 〈우문태를 보고서〉 그의 모습을 기특하게 여기며 말하기를, “이 친구의 모습이 평범하지 않다.”라고 하여 머물게 하고 싶었으나 우문태가 굳이 복귀하여 使命의 결과를 보고하겠다고 하거늘 고환이 보내고 나서 이내 후회하여 驛馬를 발동해 급히 關門까지 뒤쫓아갔으나 따라잡지 못하고 돌아왔다.
우문태가 와서 하발악에게 이르기를, “고환이 帝位를 찬탈하지 못한 것은 공의 형제를 두려워해서이니 侯莫陳悅 따위는 신경 쓸 바가 아닙니다. 公이 조용히 대비하면 고환을 도모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費也頭에게 활을 쏠 수 있는 기마병이 일만 명을 넘고 夏州刺史 斛拔彌俄突의 우수한 병사가 3천 명 남짓이고, 靈州刺史 曹泥와 河西 유민 紇豆陵伊利가 저마다 부하 무리들을 이끌면서 귀속된 곳이 없으니
注+① ≪新唐書≫ 〈世系表〉에 의하면, “費也頭氏가 鮮卑에 신하로서 복속하였기 때문에 그 주인을 추종하여 宇文氏라 칭한 것이다.”라고 했다.
만일 隴 땅 부근으로 군사를 옮겨 요새를 차지해
注+② 隴은 언덕이다. 위엄을 떨치고 사랑으로 품어주며, 병마를 수습하여 우리 군의 규모를 확대하고 서쪽으로 氐族과 羌族을 모으고 북쪽으로 사막 변방 지역을 어루만지며 長安으로 회군하여 北魏 황실을 보좌한다면 이는
과 같은 공로일 것입니다.”라고 하니,
注+③ ‘沙塞’는 靈夏의 변방 밖으로, 북쪽에 사막이 가까이 있다.
하발악이 크게 기뻐하여 우문태를 다시 洛陽으로 보내 〈魏主(元脩)에게〉 일을 청해서 고환의 정상에 대해 은밀히 보고하자, 魏主가 기뻐하며 하발악을 都督二十州軍事 雍州刺史로 삼았다.
注+④ 20州는 雍ㆍ華ㆍ東華ㆍ岐ㆍ南岐ㆍ豳ㆍ原ㆍ河ㆍ渭ㆍ涇ㆍ夏ㆍ東夏ㆍ秦ㆍ南秦ㆍ梁ㆍ南梁ㆍ東梁ㆍ巴ㆍ益ㆍ東益이다.
하발악이 마침내 병사를 이끌고 나가 서쪽 平凉에 주둔하니
注+⑤ 〈平涼은〉 이른바 近隴(隴右와 가까운 곳)이란 곳이다. 곡발미아돌, 흘두릉이리, 비야두의 万俟受洛干, 鐡勒의 斛律沙門 등이 모두 하발악에 귀의했지만, 조니만 고환에게 귀의했다.
注+⑥ 万俟洛은 字가 受洛干이며 万俟普의 아들이다. 鐵勒은 바로 敕勒이다.
하발악은 夏州가 변방의 중요 지점이라 여겨 좋은 刺史를 찾으려 할 때 사람들이 우문태를 추천하자, 하발악이 말하기를, “左丞(우문태)은 나의 좌우 손과 같은데 어떻게 떠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여러 날을 깊이 생각하다가 결국 表文을 올려 그를 夏州刺史로 임용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