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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5)

자치통감강목(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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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年이라
秦建元十七年이라
春正月 하다
帝初奉佛法하여 立精舍於殿内하고 引諸沙門居之注+① 精舍, 佛寺也, 蓋以專精講習所業爲義. 今儒․釋肄業之地, 通曰精舍.어늘 左丞王雅諫호되 不從注+② 雅, 肅之曾孫也.이러라
二月 東夷西域六十二國 朝貢于秦하다
◑ 夏六月朔 日食하다
◑ 冬十一月 秦寇竟陵이어늘 桓沖 擊破之하여 遂拔管城하고 獲其將閻振吳仲注+① 管城, 當在滶水北.하다
◑ 江東 大饑하다


【綱】 晉나라(東晉) 烈宗 孝武皇帝 太元 6년이다.
【目】 秦나라(前秦) 符堅 建元 17년이다.
【綱】 봄 정월에 〈晉나라(東晉)가〉 부처의 精舍를 內殿에 세웠다.
【目】 황제(晉 孝武帝)가 처음으로 佛法을 신봉하여 精舍를 궁전 안에 세우고 여러 沙門(승려)을 끌어와 거처하게 하자,注+① 精舍는 佛寺이니, 자기가 학업하는 바를 專心하여 講習하는 것으로 뜻을 삼은 것이다. 지금 儒家와 釋家의 학업을 익히는 곳을 통틀어 精舍라 한다. 左丞 王雅가 간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注+② 王雅는 王肅의 曾孫이다.
【綱】 2월에 東夷와 西域 62개국이 秦나라(前秦)에 조공을 바쳤다.
【綱】 여름 6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綱】 겨울 11월에 秦나라(前秦)가 竟陵을 침략하였는데, 晉나라의 桓沖이 격파하고서 마침내 管城을 함락하고 이곳을 지키던 장수 閻振과 吳仲을 사로잡았다.注+① 管城은 마땅히 滶水의 북쪽에 있었을 것이다.
【綱】 江東 지방에 큰 기근이 들었다.


역주
역주1 立佛精舍於内殿 : “불교가 漢나라 明帝 때 중국에 들어온 뒤로부터(漢나라 永平 8년(65)이다.) 佛舍를 세웠다고 쓴 적이 있지 않았으니, 불사를 세웠다고 쓴 것은 오랑캐의 가르침을 숭상함을 비난한 것이다. 内殿에 세움은 더욱 올바른 장소가 아니다. 이 때문에 孝武帝가 精舍를 세울 적에 内殿에 세웠다고 썼고(이해(381)이다.) 肅宗이 도량을 설치할 적에 三殿에 설치하였다고 썼고(唐나라 上元 2년(761)이다.) 武宗이 望僊臺를 세울 적에 禁中에 세웠다고 썼으니,(唐나라 會昌 3년(843)이다.) 모두 비판한 것 중에 비판한 것이다.[佛自明帝時入中國(漢永平八年) 未有書立佛舍者 書立佛舍 譏尙夷敎也 於内殿 益非所矣 是故孝武之立精舍 以於内殿書(是年) 肅宗之置道場 以於三殿書(唐上元二年) 武宗之立望僊臺 以於禁中書(唐會昌三年) 皆譏之譏也]” ≪書法≫“부처는 西域의 神이니, 神의 있고 없음을 논할 것이 없고 우선 그 본래의 법을 가지고 말하면 淸虛하고 寂滅한 것이다. 지금 内殿이 어떤 곳인데, 마침내 내전 안에 精舍를 세운단 말인가. 더구나 또 沙門의 무리들을 뒤섞어 끌어다가 거처하게 한단 말인가. 直筆로 썼으니, 그 잘못이 저절로 드러난다.[佛 西域之神也 不論有無 姑就其本法言之 淸虛寂滅者也 今内殿 何地 乃立精舍於中 況又雜引沙門軰 居之哉 直筆書之 其失自見]” ≪發明≫

자치통감강목(15) 책은 2022.12.07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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