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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0)

자치통감강목(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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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3권 중
漢 獻帝 建安 2년(197)~漢 獻帝 建安 7년(202)
丁丑年(197)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3권 중
한 헌제漢 獻帝 건안建安 2년(197)~한 헌제漢 獻帝 건안建安 7년(202)
정축년丁丑年(197)
夏五月하다
】 여름 5월에 황충蝗蟲의 재해가 있었다.
◑以呂布爲左將軍하니 하다
여포呂布좌장군左將軍으로 삼으니, 여포가 원술袁術의 군대를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袁術 遣使하여 以稱帝告呂布하고 因求迎婦한대 布遣女隨之하니
원술袁術사자使者를 보내서 스스로 황제라고 선포한 일을 여포呂布에게 알리고 이를 통하여 여포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일 것을 요구하니, 여포가 딸을 보내어 원술의 사자를 따라가게 하였다.
陳珪恐徐, 揚合從 爲難未已注+術領揚州, 布領徐州.하여 往說布曰 曹公 奉迎天子하여 輔贊國政하니 將軍 宜與協同策謀하여 共存大計어늘
진규陳珪서주徐州의 여포와 양주揚州의 원술이 서로 연합해서 끊임없이 화난禍難을 만들어낼까 염려하여注+원술袁術양주揚州를 다스리고 있었고, 여포呂布서주徐州를 다스리고 있었다. 여포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조공曹公(조조曹操)이 천자天子를 받들어 맞이하여 국가의 정사를 보좌하니, 장군은 마땅히 그와 더불어 협동하여 계획을 세워서 함께 대계大計를 보존해야 합니다.
今與術結昏이면 必受不義之名하여 將有累卵之危矣리라 布亦怨術初不己受也注+事見初平三年.로되 女已在塗
그런데 지금 원술과 통혼通婚을 하면 틀림없이 의롭지 못하다는 이름을 받아서 장차 누란累卵의 위태로움이 있게 될 것입니다.” 여포 역시 원술이 당초 자기를 받아주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있었으나注+〈“포역원술초불기수布亦怨術初不己受”는〉 자신의 딸이 이미 원술의 사자를 따라서 원술에게 가는 도중에 있었다.
乃追還絶昏하고 械送其使하여 梟首許市注+時帝在許.하다
이에 뒤쫓아가 딸을 다시 데려와서 원술과의 약혼을 깨뜨리고 그 사자에게 형구刑具를 가해 압송하여 허도許都의 저자에서 효수梟首하였다.注+당시에 황제가 허도許都에 있었다.
珪欲使子登으로 詣曹操한대 布固不肯이러니 詔以布爲左將軍하고 操復遺布手書하여 深加慰納하니
진규陳珪가 아들 진등陳登조조曹操에게 보내려고 하였으나, 여포呂布가 한사코 동의하지 않다가 때마침 조령詔令을 내려서 여포를 좌장군左將軍으로 삼고, 조조가 또 여포에게 수서手書를 보내어 깊이 위무하고 받아들이자,
布大喜하여 卽遣登奉章謝恩하고 幷答操書하니 登見操하고 因陳布勇而無謀하여 輕於去就하니 宜早圖之라한대
여포가 크게 기뻐하여 곧바로 진등을 보내어 장주章奏를 올려 사은謝恩하고 아울러 조조의 수서手書에 답하였다. 진등이 조조를 만나보고 이를 통하여 아뢰기를 “여포는 용맹하지만 지모智謀가 없어서 거취去就를 가볍게 결정하니, 마땅히 빨리 도모하셔야 합니다.” 하자,
操卽增珪秩中二千石하고 拜登廣陵太守하여 令陰合部衆爲內應注+漢制, 王國相秩二千石, 增秩中二千石, 則秩視九卿.하다
조조가 곧바로 진규의 중이천석中二千石으로 올려주고 진등을 광릉태수廣陵太守에 임명하여 은밀하게 부중部衆을 규합하여서 내응內應하도록 하였다.注+나라의 제도에 왕국王國은 그 이천석二千石이니,
布因登求徐州牧이나 不得이러니 登還 布怒하여 拔戟斫几曰
】 처음에 여포呂布진등陳登을 통하여 서주목徐州牧의 자리를 요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진등이 돌아오자 여포가 노하여 (갈래창)을 뽑아서 안석을 찍어 쪼개고 말하기를
卿父勸吾協同曹操하여 絶婚公路러니 今吾所求無獲이요 而卿父子顯重하니 但爲卿所賣耳로다
의 아비가 나에게 권하여서 조조曹操에게 협력하여 원공로袁公路(원술袁術)와의 약혼을 깨뜨리게 하였다. 그런데 지금 내가 요구하는 바는 얻지 못하고 의 부자는 현달顯達하여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이는 다만 이 나를 팔아먹은 것일 뿐이다.” 하였다.
登不爲動注+爲, 去聲, 下爲國同.하고 徐對之曰 登 見曹公하고 言養將軍 譬如養虎 當飽其肉이라 不飽則將噬人이라한대
진등이 여기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의 “위국爲國”도 똑같다. 천천히 대답하기를 “저 진등이 조공曹公을 만나보고 ‘장군을 기르는 것은 비유하자면 범을 기르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그 고기를 배부르게 먹여야 합니다. 배부르지 않으면 장차 사람을 물게 됩니다.’라고 말하였더니,
公曰 不如卿言하다 譬如養鷹하니 飢卽爲用이요 飽則颺去라하니 其言如此라하니 布意乃解注+颺, 去聲, 風所飛颺也.하다
조공은 ‘의 말과 같지 않다. 비유하자면 매를 기르는 것과 같으니, 굶주리면 곧바로 쓰임이 되고 배부르면 날아서 떠나간다.’라고 말하였는바, 그 말씀이 이와 같았습니다.” 하니, 여포의 노여워한 뜻이 그제야 비로소 풀렸다.注+(날리다)은 거성去聲이니, 바람이 날리는 것이다.
袁術 遣其大將張勳等하여 與韓暹, 楊奉步騎數萬으로 七道攻布하니
원술袁術이 그 대장 장훈張勳 등을 보내어 한섬韓暹양봉楊奉과 연합하여 수만 명의 보병과 기병을 거느려 일곱 방면의 길로 나누어서 여포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布懼不敵이러니 珪曰 暹, 奉與術 卒合之師耳 謀無素定하니 不能相維注+卒, 讀曰猝. 子登策之 比於連鷄勢不俱棲하니 立可離也注+戰國策 “秦惠王曰 ‘諸侯之不可一, 猶連鷄之不能俱上於棲.’” 註 “連, 謂繩繫之, 棲, 鷄所宿也.”리이다
여포가 두려워하여 대적하지 못하자 진규陳珪가 말하기를 “한섬 및 양봉과 원술은 갑자기 연합한 군대일 뿐이라서 평소 정해놓은 계책이 없으니, 서로 유지하여 나갈 수 없습니다.注+(갑자기)은 로 읽는다. 제 아들 진등이 이를 헤아려 보고서 ‘끈에 묶인 닭들이 함께 홰에 올라갈 수 없는 것’에 견주었으니, 즉시 흩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注+전국책戰國策≫에 하였는데, 이에 대한 포표鮑彪에 “은 끈으로 묶는 것을 이르고, 는 닭이 머무는 곳이다.”라고 풀이하였다. 하였다.
布用珪策하여 與暹, 奉書하여 曰 二將軍親拔大駕하고 而布手殺董卓하여 俱立功名이어늘
여포가 진규의 계책을 따라서 한섬과 양봉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두 장군은 직접 대가大駕(천자天子)를 위난危難에서 구하였고, 나 여포는 손수 동탁董卓을 죽여서 함께 공명功名을 세웠는데,
今奈何與袁術同爲賊乎 不如相與幷力破術하여 爲國除害라하고 且許悉以術軍資與之하니
지금 어찌하여 원술과 함께 나라를 배반한 역적이 되었는가. 서로 힘을 합쳐 원술을 격파하여 나라를 위해 폐해를 제거하는 것만 못하다.” 하고, 또한 원술의 군수물자를 전부 다 이들에게 줄 것을 허락하였다.
暹, 奉 大喜하여 從布進軍이러니 暹, 奉兵 同時叫呼하여 竝到勳營하니 勳等散走하여 殺傷墮水死者殆盡이러라
그러자 한섬과 양봉이 크게 기뻐하여 여포를 따라서 진군하였는데 한섬과 양봉의 군대가 동시에 큰소리로 부르짖으면서 함께 장훈의 군영에 이르니, 장훈 등이 흩어져 달아나 살상을 당하거나 물에 빠져 죽어서 거의 전멸하였다.
泰山賊帥臧霸 破莒하여 得其資實注+前漢莒縣, 屬城陽國, 後漢屬琅邪國.이어늘 布自往求之한대
태산泰山에 있는 도적의 우두머리인 장패臧霸거현莒縣을 격파하여 군수물자를 얻자注+전한前漢 시대에 거현莒縣성양국城陽國에 속하였는데 후한後漢 시대에는 낭야국琅邪國에 속하였다., 여포呂布가 직접 찾아가서 이것을 요구하려고 하였다.
其督將高順 諫曰 將軍威名 遠近所畏 何求不得而自行求賂 萬一不克이면 豈不損邪잇가
이에 독장 고순督將 高順이 간하기를 “장군의 위엄과 명성은 먼 곳 가까운 곳 할 것 없이 모두 다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무엇을 구한들 얻지 못하기에 도리어 직접 가서 재화財貨를 요구한단 말입니까. 만에 하나 성공하지 못하면 어찌 위엄과 명성을 손상시키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布不從이러니 霸等 拒之하니 無獲而還하다 爲人 清白有威嚴하고 少言辭 所將七百餘兵 號令整齊 毎戰必克이러니
그러나 여포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는데, 장패 등이 여포를 막으니, 여포는 소득이 없이 돌아왔다. 고순은 사람됨이 청렴결백하고 위엄이 있으며 말수가 적었고, 그가 거느린 700여 명의 병사들은 호령이 정돈되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겼는데,
布後疏順하고 以魏續有內外之親이라하여 奪其兵以與續이라가 當戰則復令順將호되 順亦終無恨意러라 布性決易하여 所爲無常注+決易, 猶言決意變易, 不復致思也. 一說 “易, 以豉切.”하니
여포는 뒤에 고순을 소원히 대하고 위속魏續내외內外의 친함(인척 관계)이 있다고 하여 고순의 병사들을 빼앗아 위속에게 주었다가 전투를 하게 되면 다시 고순에게 거느리게 하였다. 그러나 고순은 또한 끝내 한스러워하는 마음이 없었다. 여포의 성질이 바꾸는 것을 경솔하게 결단하여 행하는 바가 반복무상反覆無常하니注+결이決易”은 바꾸는 것을 결심할 적에 다시 생각을 지극히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
毎諫曰 將軍擧動 不肯詳思하여 忽有失得이면 動輒言誤하니 誤豈可數乎注+數, 音朔.잇가 布知其忠而不能從이러라
고순이 항상 간하기를 “장군께서 거동하심에 자세히 생각하려고 하지 않으시어 혹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번번이 잘못을 말씀하니, 잘못을 자주 저질러서야 되겠습니까.”注+(자주)은 음이 이다. 하였다. 여포가 고순의 충성을 알았지만 그의 간언을 따르지는 못하였다.
袁術 遣盗하여 殺陳王寵하다
원술袁術자객刺客을 보내어 진왕 유총陳王 劉寵을 살해하였다.
陳王寵 有勇善射注+寵, 明帝子陳敬王羨之曾孫也. 安帝永寧元年, 敬王子崇立, 五年薨, 子承嗣, 承薨, 子寵嗣.러니 黄巾賊起 治兵自守하니 國人畏之하여 不敢離叛하고
】 처음에 진왕 유총陳王 劉寵무용武勇이 있고 활을 잘 쏘았는데注+유총劉寵나라 명제明帝의 아들인 진경왕 유선陳敬王 劉羨의 증손이다. 안제 영녕安帝 永寧 원년元年(120)에 진경왕의 아들 유숭劉崇진왕陳王으로 즉위하였는데, 즉위한 지 5년 만에 하자 아들 유승劉承이 작위를 계승하였고, 유승이 훙하자 아들 유총이 작위를 계승하였다., 황건적黄巾賊의 난이 일어났을 적에 유총이 군대를 다스려 스스로 지키니, 나라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감히 떠나가 배반하지 못하였다.
國相駱俊 素有威恩이라 隣郡人 多歸之하여 有衆十餘萬이러니
진국상 낙준陳國相 駱俊이 평소 위망威望과 은혜가 있어서 이웃 고을의 백성들이 대부분 그에게 귀의하여 10여만 명의 무리를 보유하게 되었다.
袁術求糧이어늘 拒絶之한대 遣客詐殺俊及寵하니 由是破敗하다
원술袁術진국陳國에 군량을 요구하였는데 낙준이 거절하자, 원술이 자객刺客을 보내어 낙준과 유총을 속여서 살해하니, 진국陳國이 이로 말미암아 격파되어 패망하였다.
손책孫策회계태수會稽太守로 삼아서 원술袁術을 토벌하게 하였다.
◑秋九月 曹操擊袁術하여 走破之하다
】 가을 9월에 조조曹操원술袁術을 공격하여 그 군대를 패주시키고 격파하였다.
曹操東征袁術하니 棄軍走하고 留其將橋蕤等하여 拒操어늘 操擊斬之하니 走渡淮하다
조조曹操가 동쪽으로 원술袁術을 정벌하자, 원술이 군대를 버리고 달아나면서 그 장수 교유橋蕤(교유) 등을 남겨두어 조조를 막게 하였는데 조조가 이들을 공격하여 참살하니, 원술이 달아나 회수淮水를 건넜다.
天旱歲荒하여 士民凍餒하니 由是遂衰하다
당시에 날씨가 가물어 흉년이 들어서 사인士人과 백성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리니 원술의 세력이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쇠퇴하게 되었다.
沛國許褚 勇力絶人이러니 聚衆歸操하니 操曰 此 吾樊噲也라하고 卽日 拜都尉하다
패국沛國 사람 허저許褚용력勇力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크게 뛰어났는데 무리를 모아 조조에게 귀의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하고, 바로 그날 도위都尉에 임명하였다.
下故太尉楊彪獄이러니 尋赦出之하다
전 태위前 太尉 양표楊彪를 하옥하였다가 이윽고 사면하여 출옥시켰다.
楊彪與袁術昏姻注+據彪傳, 彪子脩, 袁術之甥. 彪蓋娶於袁氏也.이러니 曹操惡之하여 奏收下獄하고 劾以大逆하니
양표楊彪원술袁術과 인척간이었는데注+후한서後漢書≫ 〈양표열전楊彪列傳〉을 근거해보면, 양표의 아들 양수楊脩원술袁術의 생질이니, 양표는 아마도 원씨袁氏에게 장가든 듯하다. 조조曹操가 이를 미워하여 양표를 체포해 하옥할 것을 주청奏請하고 대역죄大逆罪를 범하였다고 탄핵하였다.
孔融 聞之하고 不及朝服하고 往見操曰 楊公 四世清德하여 海內所瞻注+震ㆍ秉ㆍ賜ㆍ彪四世, 以淸白稱.이라 父子, 兄弟 罪不相及이어든 況以袁氏歸罪楊公乎
그러자 공융孔融이 이 소식을 듣고 미처 조복朝服을 입지도 못한 채 조조를 찾아가 만나보고 말하기를 “양공楊公의 집안은 4대에 거쳐 내려온 청렴하고 고결한 덕행이 있어서 온 천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바입니다.注+〈“양공사세청덕楊公四世清德”은〉 양진楊震양병楊秉양사楊賜양표楊彪 4청백淸白함으로 일컬어진 것이다. 부자간이나 형제간에는 죄가 서로 미치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원씨袁氏 때문에 양공에게 죄를 돌린단 말입니까.” 하자,
操曰 此國家之意注+國家, 謂帝也.니라 融曰 假使成王殺召公이면 周公 可得言不知乎
조조가 말하기를 “이는 국가國家(황제皇帝)의 뜻이다.”注+국가國家는 황제를 이른다. 하였다. 이에 공융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약
操使許令滿寵으로 按彪獄注+許令, 許縣之令長. 滿寵, 姓名.하니 融與荀彧 皆屬寵勿加考掠注+屬, 之欲切. 考掠, 謂搒笞而問也.호되 寵無所報하고 考訊如法하여 數日 求見曰
조조가 허현許縣영장 만총令長 滿寵에게 양표의 옥사를 심리하게 하자注+허령許令”은 허현許縣영장令長이고, 만총滿寵은 사람의 성명이다., 공융과 순욱荀彧이 모두 만총에게 〈심문만 하고〉 고문하지 말도록 부탁하였다.注+(부탁하다)은 지욕之欲이다. “고략考掠”은 볼기를 치면서 신문訊問함을 이른다. 그러나 만총이 대답하지 않고 법대로 고문하고서 며칠이 지난 뒤에 조조를 만나 보기를 청하고 말하기를
楊彪考訊 無他辭語하니 此人 有名海內 若罪不明白이면 必大失民望하리니 竊爲明公惜之하노이다
“양표를 고문하였으나 별다른 공초供招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온 천하에 명망이 있으니, 만약 죄상이 명백하지 않은데 죽이면 틀림없이 백성들이 크게 실망할 것입니다. 삼가 명공明公을 위하여 이 점을 애석하게 여깁니다.” 하자,
操卽日 赦出彪하다 彪見漢室衰微하고 政在曹氏하고 遂稱脚攣하고 積十餘年不行하니 由是 得免於禍注+攣, 力全切, 拘曲也.러라
조조가 바로 그날 양표를 사면하여 출옥시켰다. 양표는 나라 황실皇室이 쇠약해지고 조정의 정사가 조씨曹氏의 손에 달려 있음을 보고, 마침내 다리가 오그라들었다고 일컫고 10여 년 동안 밖으로 나다니지 않으니, 이로 말미암아 화난禍難을 면할 수 있었다.注+력전力全이니, 구곡拘曲(오그라들다, 굽다)이다.
김상金尙의 아들 김위金瑋낭중郞中으로 삼았다.
馬日磾喪 至京師하니 朝廷 議欲加禮러니 孔融曰 日磾以上公之尊으로 秉旄節之使어늘 而曲媚姦臣하여 爲所牽率하니
조정이 의논하여 상례喪禮의 등급을 높이고자 하였는데, 공융孔融이 말하기를 “마일제가 상공上公의 존귀한 신분으로 모절旄節을 잡은 사신의 임무를 담당하였으나 자신의 뜻을 굽혀서 간신 원술姦臣 袁術에게 아첨하여 견제를 받았다.
聖上 哀矜하사 未忍追案이나 不宜加禮니라 朝廷 從之하다 尙喪至 詔百官弔祭하고 拜其子瑋爲郞中하다
성상聖上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차마 추궁하여 조사하지 못하였으나 상례의 등급을 높여서는 안 된다.” 하니, 조정이 이를 따랐다. 황제가 조령을 내려 백관百官에게 조문하여 제사 지내게 하고 그의 아들 김위金瑋낭중郞中에 임명하였다.
유비劉備양봉楊奉을 유인하여 살해하였다.
韓暹, 楊奉 寇掠徐, 揚間이어늘 劉備誘奉斬之하니 暹與郭汜, 胡才 皆爲人所殺하고 李樂 病死하다
한섬韓暹양봉楊奉서주徐州양주揚州의 사이에서 노략질하였는데 유비劉備가 양봉을 유인하여 참살하였고, 한섬은 곽사郭汜, 호재胡才와 함께 모두 사람에게 살해당하였고, 이락李樂은 병으로 죽었다.
역주
역주1 布擊袁術兵 破之 : “袁術이 황제를 칭하였으니, 이는 국가의 도적인데 어찌하여 ‘토벌[討]’을 쓰지 않았는가. ‘토벌’이라고 써서 呂布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여포에 대해서 어찌하여 ‘토벌’이라고 써서 여포를 인정하지 않았는가. 여포는 大義를 아는 자가 아니니, 陳珪가 아니었으면 여포는 또한 도둑의 婚媾(혼인한 관계)였을 것이다.[術稱帝 國賊也 曷爲不書討 不以討予布也 布則曷爲不以討予之 布非知大義者也 微陳珪 則布亦冦婚媾矣]다” ≪書法≫
역주2 이……보인다 : 본서 90쪽에 보인다.
역주3 秩을……것이다 : 漢나라의 제도는 관리들의 등급을 녹봉의 수량으로 기준을 삼았는바, 中二千石은 ‘2,000석에 찬다.’는 뜻으로 한 해에 받는 녹봉이 2,160석이다. ≪漢書≫ 권8 〈宣帝紀〉에 “〈神爵 4년(B.C.58)〉 여름 4월에 潁川太守 黃霸가 치적이 매우 탁월하여 그 秩이 中二千石이 되었다.[夏四月 潁川太守黃霸 以治行尤異 秩中二千石]”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顔師古의 注에 “漢나라의 제도에 秩이 二千石인 자는 한 해에 1,440석을 받으니 실제로는 2,000에 차지 못한다. 그런데 ‘中二千石’이라 이른 것은 한 해에 2,160석을 받으니 成數를 들어서 말하였기 때문에 中二千石이라 한 것이다. ‘中’이라는 것은 참[滿]이다.[漢制 秩二千石者 一歲得一千四百四十石 實不滿二千石也 其云中二千石者 一歲得二千一百六十石 擧成數言之 故曰中二千石 中者 滿也]”라고 설명하였다. 漢나라 때 九卿의 秩은 모두 中二千石이었기 때문에 이를 가지고 구경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역주4 秦나라……같다 : 이 내용은 ≪戰國策≫ 권3 〈秦策〉의 ‘秦惠王謂寒泉子’ 조에 보인다.
역주5 一說에……하였다 : 결정이나 결단을 쉽게 한다는 뜻이 된다.
역주6 以孫策爲會稽太守……走破之 : “〈孫策에게〉 ‘以’자를 쓴 것은 어째서인가. 이는 上(황제)의 命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손책에게는 ‘토벌[討]’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曹操에게 ‘공격[擊]’을 쓴 것은 어째서인가. 조조는 漢나라의 逆賊이니, 역적으로 역적을 공격하게 하였을 뿐인 것이다. 하나의 袁術에 대해서 손책에게는 ‘토벌[討]’을 썼고 조조에게는 ‘공격[擊]’을 썼으니, ≪資治通鑑綱目≫의 權衡(기준, 척도)이 분명하다.[以者何 上命也 故策得書討 然則操書擊 何 操漢賊也 以賊擊賊而已矣 一袁術也 策書討 操書擊 綱目之權衡審矣]다” ≪書法≫
역주7 이……樊噲(번쾌)이다 : 樊噲는 漢 高祖 劉邦의 猛將으로 勇力이 출중하였는바, 曹操가 자신의 휘하 장수가 된 許褚가 번쾌처럼 용력이 매우 뛰어남을 비유한 것이다. 유방이 秦나라의 關中 지역을 선점하고 函谷關을 막자, 項羽는 關門을 격파하고 유방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항우의 숙부 項伯이 주선하여 유방은 鴻門으로 와서 함곡관을 막은 것에 대해 사과하였는데, 宴席에서 范增이 항우에게 유방을 죽이라는 신호를 여러 번 보냈으나 항우는 못 본 체하였다. 이에 범증이 項莊에게 劍舞를 추면서 유방을 찔러 죽이라고 사주하니, 항백도 검무를 추면서 유방을 보호하였다. 이때 밖에 있던 번쾌가 이 사실을 알고는 칼을 차고 방패를 든 채로 군막 안으로 달려 들어가서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니, 항우가 장사라고 칭찬하면서 그에게 술과 고기를 내렸다. 유방이 이를 틈타 변소에 가는 척하고 밖으로 나온 뒤에 번쾌를 불러서 홍문을 빠져나갔다.(≪史記≫ 권7 〈項羽本紀〉)
역주8 周나라……있겠습니까 : 成王은 이름이 誦으로 武王의 아들이고, 召公은 이름이 奭으로 周나라의 종친이며, 周公은 이름이 旦으로 무왕의 同母弟이고 성왕의 숙부인바, 주공과 소공은 모두 周나라를 일으킨 명재상이다. 여기에서는 楊彪를 소공에 비유하고 曹操를 주공에 비유하여 설사 황제가 양표를 죽이려고 하더라도 조조가 마땅히 直諫하여 양표를 죽이지 못하게 하여야 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9 以金尙子瑋爲郞中 : “관직을 임명함에 ‘아무개의 아들[某子]’이라고 쓴 경우가 있지 않았는데 여기에서 ‘金尙의 아들[金尙子]’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그 절개를 인정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 사사로움을 비판할 경우에는 馬初에 대해서 ‘馬惠의 아들’이라 썼고(桓帝 永興 2년(154)), 그 절개를 인정하면 金瑋에 대해서 ‘김상의 아들’이라 썼고, 그 功을 근본하면 鄧朗에 대해서 ‘鄧艾의 손자’라고 썼으니(晉나라 초기 癸巳年(273)), 이는 모두 ≪資治通鑑綱目≫에서 특별히 쓴 것이다.[拜官 未有書某子者 書金尙子 何 予節也 是故譏其私 則初書馬惠子(桓帝永興二年) 予其節 則瑋書金尙子 本其功 則朗書鄧艾孫(晉初癸巳年) 皆綱目之特筆也]” ≪書法≫ “만약 ‘金瑋를 郞中으로 삼았다.’라고 썼다면 어찌 말이 簡約하면서도 뜻이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반드시 ‘金尙의 아들 김위’라고 한 것은 절개를 위하여 죽은 의리를 기린 것이므로 특별히 표출하여 세상에 권면한 것이다.[若曰以金瑋爲郞中 豈不言簡而意足 然必曰金尙子瑋者 所以褒死節之誼 故特表而出之 爲世勸也]” ≪發明≫
역주10 馬日磾의……이르자 : 이보다 앞서 初平 3년(192) 7월의 綱에 “太傅 馬日磾와 太僕 趙岐를 보내어 關東 지방의 군벌들을 화해시켰다.”라는 내용이 보이며, 또 興平 원년(194) 9월 綱에 “馬日磾가 壽春에서 卒하였다.”라는 내용이 보이는데, 그 目에 “처음에 馬日磾가 趙岐와 함께 使命을 받들어 壽春에 이르렀는데, 조기가 뜻을 지켜 굽히지 않자 袁術이 그를 꺼렸다. 마일제가 원술에게 요구하는 바가 자못 많았는데, 원술이 조정에서 마일제에게 준 使節을 빌려서 보다가 빼앗고 돌려주지 않았다. 마일제가 떠나갈 것을 청하였으나 원술이 억류하고 보내주지 않으니, 마일제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라고 하였다.
역주11 金尙의……이르자 : 바로 이해인 建安 2년(197) 정월의 綱에 “袁術이 稱帝하고 옛날에 兗州刺史였던 金尙을 죽였다.”라고 한 내용이 보이는데, 그 目에 “원술이 김상을 太尉로 삼고자 하였는데 김상이 허락하지 않고 도망가자, 원술이 그를 죽였다.”라고 하였다.
역주12 劉備誘楊奉殺之 : “楊奉에 대해서 마땅히 ‘주살[誅]’이라고 써야 하는데 쓰지 않은 것은 유인해 살해하여 天討(天子가 하늘을 대신하여 행하는 토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楊奉宜書誅而不書者 誘而殺之 不得爲天討也]” ≪發明≫

자치통감강목(10)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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