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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예전에 北魏 尚書令 劉絜이 오랫동안 중요한 기밀을 주관하여 총애를 믿고 스스로 전횡하니
注+① 宋나라 高祖(武帝) 永初 말기에 北魏 明元帝가 병으로 눕자, 魏主가 監國할 적에 劉絜과 古弼 등을 선발하여 東宮(태자)을 모시면서 둘이서 중요한 기밀을 종합 관리하니, 이때까지 20여 년이다., 魏主가 마음속으로 그를 싫어하였다.
장차 柔然을 기습하려고 할 때 유혈이 諫言하기를 “蠕蠕(柔然)은 옮겨 다니는 것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出兵했을 적에 고생만하고 공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注+② 〈“前者出師 勞而無功”은〉 太延 4년(438)에 北魏가 柔然을 정벌하였으나 오랑캐를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온 일을 가리킨다. 농사를 확대하고 곡식을 비축하여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崔浩가 굳게 魏主에게 출병할 것을 권유하자, 魏主가 그것을 따랐다. 유혈은 자기의 간언이 채택되지 않음을 수치스럽게 여겨서 魏軍을 패배시키려고 하였다.
魏主가 諸將들과 함께 약속된 기일을 정하여 鹿渾谷에서 집결하고자 했는데 유혈이 조서를 고쳐서 약속한 기일을 바꾸고, 魏主가 鹿渾谷에 도착하여 유연을 공격하려고 할 적에 유혈이 또한 제지하며 諸將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도록 하였다.
이렇게 6일 동안 머물러도 제장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柔然이 결국 멀리 달아났고 군대가 돌아오는 중에 군량미가 다하여 병사들이 많이 죽었다. 유혈이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北魏 군대를 놀라게 하고 魏主에게 군대를 버리고 경무장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는데 따르지 않았다.
또 군대가 출동했으나 공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崔浩의 죄를 다스리도록 요청하였다. 魏主가 말하기를 “제장들이 집결 기일을 놓쳐 적들을 만나도 공격하지 못했으니, 최호가 무슨 죄인가.”라고 하였다. 최호가 유혈이 조서를 고친 일을 魏主에게 아뢰니 유혈을 잡아서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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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魏主가 白臺를
注+① 魏主 拓跋嗣가 白臺를 平城 남쪽에 건립하였다. 건축하였는데 탁발비가 꿈에 그 정상에 올라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術士 董道秀에게 그것을 점쳐보라고 명하니, 吉하다고 하였다.
탁발비가 침묵하였으나 기쁜 표정이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탁발비가 죽자〉 동도수도 또한 죄에 연루되어 棄市되었다.
高允이 그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무릇 점치는 자는 모두 응당 爻象에 의거하여 忠孝로 권유해야만 한다. 왕의 물음에 동도수가 마땅히 말하기를 ‘궁극의 높음은 亢(너무 높음)이 되는 것이니, ≪易經≫ 乾卦에 이르기를 「亢龍(너무 높이 올라간 용)은 후회가 있다.」라고 하고,
또 「높아서 백성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모두가 상서롭지 못합니다. 왕께서는 경계하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하였다면 왕은 위에서 편안하고 자신은 아래에서 온전할 것인데, 동도수가 그것을 반대로 하였으니 죽임을 당한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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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魏主가 조서를 내려 살찐 말을 사냥하는 騎兵들에게 지급하도록 하였다. 尚書令 古弼이 留守하고 있었는데 모두 빈약한 말을 지급하였다. 魏主가 크게 노하여 尙書臺로 돌아가서 그의 목을 베려고 하니, 고필의 부하가 떨면서 함께 죄에 걸려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다.
고필이 말하기를 “나는 신하된 자로서 주군이 돌아다니면서 사냥하는 것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죄가 작은 것이고, 뜻밖을 대비하지 못하여 군대와 국가에 쓸 용품을 부족하게 하는 것은 그 죄가 큰 것이다.
지금 蠕蠕이 한창 강성하고 남쪽 오랑캐(宋나라)는 멸망하지 않았으니 나는 나라의 먼 장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注+① 爲(위하다)는 去聲이다. 비록 죽을지언정 어찌 서글프겠는가. 또 내 스스로 그것을 한 것이니 그대들이 걱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魏主가 그것을 듣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이런 신하가 있으니, 나라의 보물이다.”라고 하고, 옷 한 벌을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