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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6)

자치통감강목(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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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巳年(A.D.9)
기사년(A.D.9)
新莽始建國元年이라
春正月 廢孺子爲定安公하고 孝平皇后爲定安太后하다
[] 봄 정월에 왕망王莽유자孺子를 폐하여 정안공定安公으로 삼고 효평황후孝平皇后정안태후定安太后라 하였다.
策命孺子爲定安公하고 封以萬戶하니 地方百里注+莽以平原‧安德‧漯陰‧鬲‧重丘五縣, 爲定安國.
[] 왕망王莽유자孺子에게 책서策書를 내려 정안공定安公으로 삼고 1만 를 봉하니, 땅의 넓이가 100리였다.注+왕망王莽평원平原안덕安德, 탑음漯陰(탑음)과 (격), 중구重丘 다섯 정안국定安國으로 삼았다.
立漢祖宗之廟於其國하여 與周後竝行其正朔服色하고
나라 조종祖宗의 사당을 그의 나라에 세워서 나라의 후손과 함께 나라의 정삭正朔의복衣服의 색깔을 시행하게 하고,
以孝平皇后 爲定安太后하다
효평황후孝平皇后정안태후定安太后라 하였다.
讀策畢 親執孺子手하고 流涕歔欷曰
책서의 글을 다 읽자, 왕망이 직접 유자孺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기를
周公 攝位하여 終得復子明辟이러니
“옛날 주공周公천자天子의 지위를 섭정하면서 끝내 성왕成王에게 밝은 군주의 자리를 돌려주었는데,
今予 獨迫皇天威命하여 不得如意라하고
지금 나는 황천皇天위명威命에 압박을 받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하고,
哀嘆良久러라
한동안 슬퍼하고 한탄하였다.
中傅將孺子下殿하여 北面稱臣하니 百僚陪位莫不感動注+漢諸侯王國, 有太傅‧中傅, 中傅則在宮中, 傅王者耳. 或曰 “中傅, 宦者也.”하니라
중부中傅유자孺子를 데리고 궁전을 내려가서 북면北面하여 이라 칭하니, 자리에 모시고 있던 백관들이 모두 슬퍼하고 두려워하였다.注+나라의 제후국에는 태부太傅중부中傅가 있었으니, 중부는 궁중宮中에 있으면서 을 보좌하는 자이다. 혹자는 “중부는 환관이다.” 하였다.
定安第 置門衛使者監領注+以大鴻臚府, 爲定安公第.하고 勅阿乳母하여 不得與語하고
[] 정안공定安公의 집에 문위사자門衛使者를 두어 감시하게 하고注+대홍려부大鴻臚府정안공定安公의 집으로 삼았다. 아보阿保유모乳母에게 명하여 안정공과 말하지 못하게 하고,
常在四壁中하니 至長大 不能名六畜注+令定安公居四壁中, 不得有所見.하니라
사방이 막힌 방 안에 항상 있게 하니, 〈안정공은〉 장성하여서도 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注+② 〈“상재사벽중常在四壁中”은〉 정안공定安公을 사방이 막힌 방 안에 거처하게 하여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 〈왕망王莽이〉 금궤金匱를 상고하여 자신의 당여黨與를 봉하고 임명하였다.
按金匱하여 封拜王舜, 平晏, 劉秀, 哀章爲四輔하고 甄邯, 王尋, 王邑爲三公하고 甄豐, 王興, 孫建, 王盛爲四將하니 凡十一公注+金匱, 哀章所獻金匱圖‧金策書也. 四輔, 王舜爲太師, 平晏爲太傅, 劉秀爲國師, 哀章爲國將. 三公, 甄邯爲大司馬, 王尋爲大司徒, 王邑爲大司空. 四將, 甄豐爲更始將軍, 王興爲衛將軍, 孫建爲立國將軍, 王盛爲前將軍.이라
[] 왕망王莽금궤金匱를 상고하여 〈당여黨與들을〉 봉하고 제수해서 왕순王舜평안平晏, 유수劉秀애장哀章사보四輔로 삼고, 진감甄邯왕심王尋, 왕읍王邑삼공三公으로 삼고, 견풍甄豐왕흥王興, 손건孫建왕성王盛4장四將으로 삼으니 모두 11이었다.注+금궤金匱애장哀章이 올린 금궤도金匱圖금책서金策書이다. 사보四輔왕순王舜태사太師가 되고 평안平晏태부太傅가 되고 유수劉秀국사國師가 되고 애장哀章국장國將이 된 것이다. 삼공三公진감甄邯대사마大司馬가 되고 왕심王尋대사도大司徒가 되고 왕읍王邑대사공大司空이 된 것이다. 4장四將견풍甄豐경시장군更始將軍이 되고 왕흥王興위장군衛將軍이 되고 손건孫建입국장군立國將軍이 되고 왕성王盛전장군前將軍이 된 것이다.
王興 故城門令史 王盛 賣餠兒注+城門令史, 事城門校尉, 掌文書. 餠, 竝也, 麥使合竝也, 蒸餠‧湯餠之屬, 隨形而名之.
왕흥은 옛 성문영사城門令史이고, 왕성은 떡을 파는 아이였는데注+성문영사城門令史성문교위城門校尉를 섬기니, 문서文書를 관장한다. 은 아우른다는 뜻이니, 보릿가루를 반죽하여 합한 것으로 증병蒸餠탕병湯餠의 등속은 모양에 따라 이름한 것이다.,
按符命하여 求得此姓名十餘人하니
왕망은 부명符命을 상고해서 이 성명姓名의 10여 명을 얻으니,
兩人容貌應卜相일새 徑從布衣登用하여 以示神焉하다
두 사람의 용모가 점괘에 부응하므로 곧바로 포의布衣에서 등용하여 신묘함을 보인 것이다.
改諸官名하고 降漢諸侯王하여 皆爲公하고 王子侯 皆爲子하다
[] 여러 관명官名을 바꾸고 나라의 제후왕을 강등하여 모두 으로 삼고 왕자王子는 모두 로 삼았다.
王二十二人이요 侯百八十一人이러라
[] 이 22명이고, 가 181명이었다.
立九廟할새 以漢高廟 爲文祖廟하다
天子九廟圖(《五經圖彙》)天子九廟圖(《五經圖彙》)
[] 구묘九廟를 세울 적에 나라 고조高祖문조묘文祖廟라 하였다.
因漢承平之業하여 一朝有之하니 其意未滿이라
[] 왕망王莽나라의 태평한 기업基業을 인습하여 하루아침에 천하를 소유하니, 그 뜻에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陿小漢家制度하여 欲更爲疏闊注+未滿, 未饜足也. 更, 工衡切, 言欲變改制度以從古也.하여
나라의 제도를 협소하게 여겨 바꾸어 크게 넓히고자 해서注+① “미만未滿”은 만족하지 못함이다. (바꾸다)은 공형工衡이니, 제도를 변경하여 옛것을 따르고자 함을 말한다.
乃自謂黃帝虞舜之後 至齊王建孫濟北王安하여 失國하니
마침내 스스로 〈우리 왕씨王氏는〉 黃帝와 우순虞舜의 후손으로 제왕齊王 전건田建의 손자인 제북왕濟北王 전안田安에 이르러 나라를 잃었는데,
齊人 謂之王家라하여 因以爲氏
나라 사람들이 왕가王家라 하여 인하여 왕씨王氏로 삼았다고 말하였다.
以黃帝爲初祖하고 虞帝爲始祖하고
그 러므로 黃帝를 초조初祖로 삼고 우제虞帝시조始祖로 삼고
追尊陳胡公爲陳胡王하고 田敬仲爲齊敬王하고
진호공陳胡公을 추존하여 진호왕陳胡王, 전경중田敬仲을 추존하여 제경왕齊敬王이라 하고
諡濟北王安爲愍王注+以黃帝之後分爲有虞氏, 有虞之後封於陳, 田敬仲自陳奔齊爲田氏, 田安之後爲王家故也.하고
제북왕濟北王 전안田安을 시호하여 민왕愍王이라 하고注+② 黃帝의 후손이 나뉘어 유우씨有虞氏가 되었고 유우씨有虞氏의 후손이 나라에 봉해졌는데, 전경중田敬仲나라에서 나라로 달아나 전씨田氏가 되었으며, 전안田安의 후손이 왕가王家가 되었기 때문이다.
立祖廟五, 親廟四하니
조묘祖廟 다섯과 을 세우니,
天下姚, 嬀, 陳, 田, 王五姓 皆爲宗室注+姚, 音遙. 嬀, 音龜.하다
천하에 요씨姚氏규씨嬀氏(구씨)‧진씨陳氏전씨田氏왕씨王氏 다섯 이 모두 종실宗室이 되었다.注+는 음이 이고, 는 음이 이다.
以漢高廟 爲文祖廟注+欲法舜受終于文祖.하고 漢氏園廟祠薦 如故하다
나라 고조高祖문조묘文祖廟라 하고注+을 본받고자 한 것이다. 나라의 원묘園廟에 대한 제사와 천신薦新을 옛날처럼 하였다.
禁剛卯, 金刀하다
[] 강묘剛卯금도金刀를 금하였다.
以劉之爲字 卯金刀也라하여
[] 왕망王莽라는 글자가 ‘묘금도卯金刀’의 합자合字라 하여
詔正月剛卯, 金刀之利 皆不得行注+剛卯, 以正月卯日作, 佩之, 長三寸, 廣一寸, 四方或用玉, 或用金, 或用桃, 著革帶佩之. 金刀, 莽所鑄之錢也. 莽以劉字上有卯, 下有金, 旁又有刀, 故禁剛卯及金刀也.하고
조령詔令을 내려 정월正月강묘剛卯와 통용되던 금도金刀(돈)를 모두 유통하지 못하게 하고注+강묘剛卯정월正月 묘일卯日에 만들어서 몸에 차니, 길이가 3이고 너비가 1이며, 사방에 을 사용하거나 을 사용하거나 혹은 복숭아나무를 사용하여 혁대에 착용하였다. 금도金刀왕망王莽이 주조한 돈이다. 왕망은 자는 위에 가 있고 아래에 이 있고 옆에 또 가 있다 하여 강묘剛卯금도金刀를 금지한 것이다.,
乃罷錯刀, 契刀及五銖錢하고 更作小錢하니
마침내 착도錯刀계도契刀, 오수전五銖錢을 없애고 다시 소전小錢을 만드니,
徑六分이요 重一銖
지름이 6이고 무게가 1였다.
與前大錢五十者 爲二品하고
〈이 소전小錢을〉 앞서 50짜리인 대전大錢과 두 가지 등급으로 나누었고,
欲防民盜鑄하여 乃禁不得挾銅炭注+挾, 藏也.하다
백성들이 몰래 돈을 주조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과 숯을 보관하지 못하게 금하였다.注+은 보관함이다.
夏四月 徐鄕侯劉快 起兵討莽이라가 不克하여 死之注+快, 膠東康王寄玄孫, 恭王授之子也.하다
[] 여름 4월에 서향후徐鄕侯 유쾌劉快왕망王莽을 토벌하려고 군대를 일으켰다가 이기지 못하여 죽었다.注+유쾌劉快교동강왕膠東康王 유기劉寄현손玄孫이고, 공왕恭王 유수劉授의 아들이다.
◑莽 禁不得買賣田及奴婢하다
[] 왕망王莽이 금하여 전지田地노비奴婢를 매매하지 못하게 하였다.
莽曰
[] 왕망王莽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古者 一夫百畝 什一而稅러니
“옛날에는 한 가장家長전지田地 100를 받아 10분의 1을 세금으로 바쳤는데,
秦壞聖制하여 廢井田하니
나라가 성인聖人의 제도를 파괴하여 정전법井田法을 폐지하니,
彊者 規田以千數 弱者 曾無立錐之居하고
강한 자는 땅을 점유한 것이 1,000으로 헤아려지고 약한 자는 송곳조차 세울 땅이 없게 되었다.
又置奴婢之市하여 與牛馬同闌하여 制於民臣하여 顓斷其命하니
노비奴婢의 시장을 설치하여 소, 말과 함께 노비를 가두어서 백성과 신하들에게 제재받게 하여 노비의 생명을 마음대로 결단하니,
繆於天地之性人爲貴之義注+闌, 謂遮闌之, 若牛馬闌圈也.
천지天地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뜻에 어긋난다.注+은 가둠을 이르니, 〈“여우마동란與牛馬同闌”은〉 소와 말처럼 노비奴婢를 우리에 가두는 것이다.
漢氏減輕田租하여 三十稅一이로되
나라는 전조田租를 경감하여 30분의 1을 세금으로 바쳤으나,
常有更賦하여 罷癃咸出하고 豪民侵陵하여 分田劫假하니
항상 또 다른 명목의 세금이 있어서 늙고 병든 자들도 모두 세금을 납부하였고, 호강豪强한 백성들이 침탈하고 능멸해서 가난한 자들에게 전지田地를 세주고는 위협하여 그 세를 받으니,
實什稅五也注+更, 工衡切. 罷, 讀曰疲. 癃, 音隆, 病也. 言雖老病者, 皆復出口算也. 分田, 謂貧者無田而取富人之田, 耕種, 共分其所收也. 劫, 謂富人劫奪其稅, 侵欺之也. 假, 謂貧人賃富人之田也.
실제로는 10분의 5를 세금으로 바쳤다.注+(바꾸다)은 공형工衡이다. (피폐하다)는 로 읽고, 은 음이 이니 병듦이다. 비록 늙고 병든 자라도 모두 다시 사람의 수에 따른 세금인 구산口算을 냄을 말한다. “분전分田”은 가난한 자가 전지田地가 없어서 부유한 사람의 전지田地를 취하여 경작하고 그 수확을 함께 나눔을 말한다. 은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세를 강제로 빼앗아서 침탈하고 능멸함을 이른다. 는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의 전지를 세내는 것을 이른다.
富者 驕而爲邪하고 貧者 窮而爲姦하여 俱陷于辜하여 刑用不錯注+錯, 置也.
그러므로 부유한 자는 교만하여 사악한 짓을 하고, 가난한 자는 곤궁하여 간악한 짓을 하여서 함께 죄에 빠져 형벌이 이 때문에 없어지지 못하였다.注+는 버려둔다는 뜻이다.
今更名天下田曰王田이요 奴婢曰私屬이라하여 皆不得買賣하고
이제 이름을 바꾸어 천하의 전지田地왕전王田이라 하고 노비奴婢사속私屬이라 하여 모두 매매하지 못하게 하고,
其男口不盈八而田過一井者 分餘田하여 予九族隣里鄕黨注+予, 讀曰與.하고
일할 수 있는 남자가 8명이 못 되는데 전지田地가 1을 넘는 자는 나머지 토지를 나누어 구족九族인리隣里, 향당鄕黨에 주게 하고注+(주다)는 로 읽는다.,
故無田이라가 今當受田者 如制度호되
옛날에는 전지田地가 없다가 지금 전지田地를 받게 된 자는 제도와 같이 주되,
敢有非井田聖制하여 無法惑衆者
감히 성인聖人의 제도인 정전법井田法을 비난하여 법을 무시하고 백성들을 미혹하게 하는 자가 있으면,
投諸四裔하여 以禦魑魅 如皇始祖考虞帝故事注+四夷, 如衣之裔末, 故謂之四裔. 魑, 音螭, 山神也. 魅, 音媚, 老物精也. 舜投四凶於四裔, 以禦魑魅.하라
황시조皇始祖우제虞帝(임금)의 고사故事와 같이 사방 변방으로 귀양 보내서 이매魑魅(도깨비)를 막게 하라.”注+사이四夷는 옷자락의 끝과 같다. 그러므로 사방 변방을 “사예四裔”라 이른다. 는 음이 이니 산신山神이고, 는 음이 이니 오래된 물건의 정령精靈이다.
胡氏曰
[]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井田 良法이니 致治平之本也
정전제도井田制度는 훌륭한 법이니, 치평治平을 이루는 근본이다.
古之帝王 以天下爲公하여 視民飢寒 如在己
옛날의 제왕들은 천하를 공적인 것으로 여겨 백성들의 굶주림과 추위를 자기 몸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均地利以予民하여 而不專其奉하고
그러므로 토지에서 얻는 이익을 균등하게 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그의 봉양을 독차지하지 않았다.
加以公卿諸侯 選賢擧德하여 共行此道하여 持以悠久
게다가 , 제후諸侯는 어진 사람을 선발하고 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여 함께 이 방도를 행해서 유구하게 지켰다.
法立而弊不生하여 維持千有餘年이러니
그러므로 법이 확립되고 폐단이 생기지 아니하여 천여 년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及秦廢之 漢不能復이라가
나라에 이르러 정전법井田法을 폐지하였고 나라는 이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至董仲舒하여 始欲以限田하여 漸復古制하니 其意甚美
그러다가 동중서董仲舒에 이르러 처음으로 한전법限田法을 실시하여 점점 옛 제도를 회복하고자 하였으니, 그 뜻이 참으로 아름답다.
이나 終不能行者 以人主自爲兼幷하여 無以使民興於廉也
그 러나 끝내 이것을 행하지 못한 것은 군주가 스스로 겸병을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청렴한 풍속을 일으키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又況莽賊而能行乎
또 더구나 역적인 왕망王莽이 이것을 행할 수 있었겠는가.
然井田 實萬世之良法이요 而買賣奴婢之禁 亦仁政所當先이니
그러나 정전井田은 실로 만대의 훌륭한 법이요, 노비의 매매를 금지한 것 또한 인정仁政을 행함에 있어 마땅히 먼저 해야 할 바이니,
不可以莽所嘗爲而指以爲非也니라
왕망이 일찍이 했던 것이라 하여 나쁜 제도라고 해서는 안 된다.”
遣五威將帥하여 班符命하고 更印綬하다
[] 가을에 오위장수五威將帥를 보내 부명符命을 반포하고 인수印綬를 바꾸었다.
遣五威將王奇等十二人注+五威將, 分左‧右‧前‧後‧中帥, 衣冠‧車服‧駕馬, 各如其方面色數.하여 班符命四十二篇於天下하여
[] 오위장五威將 왕기王奇 등 12명을 보내注+오위장五威將중수中帥로 나누어 의관衣冠, 수레와 관복, 가마駕馬를 모두 천하에 부명符命 42편을 반포해서
王侯官吏 外及蠻夷
, 관리官吏로부터 밖으로 오랑캐에 이르기까지
皆卽授新印綬하고 因收故漢印綬할새
모두 즉시 나라의 인수印綬를 주고, 나라의 옛 인수印綬를 거두었는데,
五威將 乘乾文車하고 駕坤六馬하고 背負鷩鳥之毛하니 服飾甚偉注+乾文車, 畫天文象於車也. 坤六馬, 坤爲牝馬, 六地數也. 鷩, 音鼈, 雉屬, 卽鵔鸃也.
이때 오위장五威將건문거乾文車를 타고 곤육마坤六馬를 멍에하고 등에는 별조鷩鳥(별조, 금계錦鷄)의 깃을 짊어지니, 복식이 매우 성대하였다.注+건문거乾文車천문天文을 수레에 그린 것이다. 은 음이 이니, 꿩의 등속으로 바로 준의鵔鸃(준의)이다.
每一將 各置五帥하여 將持節하고 帥持幢注+帥, 所類切. 幢, 傳江切, 旛也.호되
위장威將마다 각각 다섯 명의 를 배치하여 을 잡고 (당)을 잡았는데注+(장수)는 소류所類이다. 전강傳江이니 깃발이다.,
東至夫餘하고 南歷益州하고 西至西域하고 北至匈奴庭注+高句麗王朱蒙, 在北扶餘所生子來爲太子. 次子溫祚, 恐爲太子所不容, 遂與十臣南行, 至漢山, 都河南禮城, 以十臣爲輔, 國號十濟, 是漢成帝鴻嘉三年也. 後改號百濟, 本出扶餘, 故以扶餘爲氏.하니라
동쪽으로 부여夫餘(부여扶餘)에 이르고 남쪽으로 익주益州를 지나고 서쪽으로 서역西域에 이르고 북쪽으로 흉노匈奴의 조정에 이르렀다.注+고구려왕高句麗王 주몽朱蒙북부여北扶餘에 있으면서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太子가 되었다. 차자次子온조溫祚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마침내 10명의 신하와 함께 남쪽으로 가서 한산漢山에 이르러 하남河南 위례성慰禮城에 도읍하고 10명의 신하를 보필로 삼고는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니, 나라 성제成帝 홍가鴻嘉 3년(B.C.18)의 일이다. 뒤에 국호를 백제百濟로 고치니, 본래 부여扶餘에서 나왔으므로 부여扶餘로 삼았다.
하고 桐華하고 大雨雹하다
[] 겨울에 우레가 치고 오동나무에 꽃이 피고 큰 우박이 내렸다.
역주
역주1 新나라……원년이다 : 이후로는 無統이다. 凡例에 國號, 諡號, 姓名, 年號, 年度의 경우 正統은 大字로 쓰고 無統은 小字로 쓴다고 하였는데, 이를 따라 小字로 처리하였다.
역주2 六畜 : 소‧말‧돼지‧양‧개‧닭의 여섯 가축을 이른다.
역주3 按金匱 封拜其黨與 : “특별히 쓴 것이다. 이때에 봉하고 제수한 자가 11公이었는데, 다 쓰지 않고 그의 黨與라고 썼으니, 이는 그들을 賤하게 여긴 것이다.[特筆也 於是 封拜者十一公 不悉書 書曰其黨與 賤之也]” 《書法》
역주4 (搜)[溲] : 저본에는 ‘搜’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溲’로 바로잡았다.
역주5 親廟 넷 : 四親의 廟로 高祖‧曾祖‧祖‧考의 4대의 廟를 가리킨다. 이들은 親이 다하여 五代가 되면 廟를 毁撤하였다.
역주6 舜임금이……것 : 《書經》 〈虞書 舜典〉에 “正月 上日에 終을 文祖에게서 받았다.[正月上日 受終于文祖]” 하였는데, 蔡沈의 《集傳》에 “上日은 초하루이다. ‘受終’은 堯임금이 이때 帝位의 일을 끝마쳐 舜임금이 받은 것이다. 文祖는 堯임금의 사당이니, 가리킨 바가 누구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하였다.
역주7 舜임금은……하였다 : 四凶은 堯‧舜時代 네 명의 惡人으로 共工‧驩兜‧三苗‧鯀을 이르며, 四裔는 사방의 먼 지역으로 幽洲‧崇山‧三危‧羽山을 가리킨다. 《書經》 〈虞書 舜典〉에 “共工을 幽洲에 유배하고 驩兜를 崇山에 유치하고 三苗를 三危로 몰아내고 鯀을 羽山에 위리안치하여 네 사람을 벌주었다.[流共工于幽洲 放驩兜于崇山 竄三苗于三危 殛鯀于羽山 四罪]”라고 보인다. 또 《春秋左氏傳》 文公 18년조에 “舜임금이 堯임금의 신하로 섭정하면서 四方의 門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四凶인 渾敦‧窮奇‧檮杌‧饕餮을 四裔로 쫓아내어 螭魅를 막게 했다.[舜臣堯 賓于四門 流四凶族 渾敦‧窮奇‧檮杌‧饕餮 投諸四裔 以禦螭魅]”라고 보이는바, 渾敦은 驩兜, 窮奇는 共工, 檮杌은 鯀, 饕餮은 三苗라 한다.
역주8 그 방면의……하였다 : 方面은 方位와 같다. 陰陽五行說에 1‧6은 水로 방위는 北方이고 색깔은 黑色이며, 2‧7은 火로 南方에 赤色이며, 3‧8은 木으로 東方에 靑色이며, 4‧9는 金으로 西方에 白色이며, 5‧10은 土로 中央에 黃色인바, 東方에 제후를 세우게 되면 靑色을 사용하고 印文에도 3 또는 8자를 새겼다.
역주9 坤六馬는……수이다 : 《周易》 坤卦 卦辭에 “坤은 크게 형통하고 암말의 貞함이 이롭다.[坤元亨 利牝馬之貞]”라고 보이며, 또 〈繫辭傳〉에 “하늘은 1이고 땅은 2이며, 하늘은 3이고 땅은 4이며, 하늘은 5이고 땅은 6이며, 하늘은 7이고 땅은 8이며, 하늘은 9이고 땅은 10이다.[天一地二 天三地四 天五地六 天七地八 天九地十]”라고 보인다. 특히 《周易》에 陽의 數는 九, 陰의 數는 六으로 표현하는바, 乾은 陽을, 坤은 陰을 대표하기도 한다.
역주10 (尉)[慰] : 저본에는 ‘尉’로 되어 있으나, 《三國史記》에 의거하여 ‘慰’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6)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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