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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유경劉敬이 이르기를, ‘묵특선우冒頓單于는 잔인해서 인의仁義로 설득할 수가 없다.’라고 하고는 그와 더불어 혼인하고자 하였으니, 어찌 그리 앞뒤가 서로 모순되는가.
제왕帝王이 이적夷狄을 제어하는 방법은 복종하면 덕으로써 품어주고 배반하면 위엄으로써 두렵게 하였으니, 그들과 혼인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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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관고貫高와 원한이 있는 집에서 그의 음모를 알고
고변告變을 올렸다.
注+상上(올리다)은 시장時掌의 절切이다. “상변고上變告”는 비상非常한 일을 고해 올렸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조왕趙王 장오張敖와 여러 배반한 자들을 체포할 적에
注+체逮는 관련된다는 뜻이니, “체포逮捕”는 일에 관련된 자를 모두 잡아온다는 뜻이다. 일설에 “체逮는 그 사람이 있어서 쫓아가 잡아오는 것이고, 포捕는 그 사람이 없으면 조사해서 잡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하였다. “감히
조왕趙王을 따라오는 자가 있으면
멸족滅族하겠다.”
注+종從(따라오다)은 재용才用의 절切이다.는
조령詔令을 내렸다.
이에 조오趙午 등이 모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자, 관고가 홀로 노하여 꾸짖기를 “공들이 모두 죽으면 누가 우리 왕이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겠소.” 하고는
마침내
함거轞車(함거)에 갇혀
장안長安으로 압송되었는데,
注+백白은 명백하게 구별함을 이르니, 명백하게 밝힌다는 뜻이다. 함거轞車는 수레에 우리[함檻]를 만들어놓은 것이니, 판자로 사방을 둘러 밖을 볼 수 없게 하고 여기에다가 아교를 칠함을 이르니, 주밀周密함을 취한 것이다. 일설에 “교膠는 죄인의 눈을 붙여놓아 볼 수 없게 해서 변란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하였다. 치致는 압송하는 것이다.낭중郞中 전숙田叔과
빈객賓客 맹서孟舒가 모두 스스로 머리를 깎고 목에
항쇄項鎖를 차고 왕의
가노家奴가 되어 따라왔다.
관고가 옥리獄吏에게 대답하기를 “이 일은 단지 우리들이 한 것이고, 왕은 실로 알지 못합니다.” 하였다.
태장笞杖을 가하고 쇠꼬챙이로 찔러 몸에 더 이상 형벌을 가할 곳이 없었는데도 끝내 다시 말하지 않았다.
注+철剟은 척렬陟劣의 절切이니, 쇠로 찌르는 것이다.
정위廷尉가 이런 사실을 보고하자, 상上이 말하기를 “장사壯士로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였는데,
설공泄公이 말하기를
注+설泄은 성姓이니, 사서史書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신이 평소 잘 아니, 이 사람은 참으로
조趙나라에서
의리義理를 세워 남의 모욕을 받지 않으며 말하고 승낙하는 것을 신중하게 하는 자입니다.”
注+〈“입의불침立義不侵 위연락爲然諾”은〉 의리義理를 스스로 세워 남의 모욕을 받지 않고, 자신이 말하고 대답(승낙)하는 것을 신중하게 한다는 뜻이다. 일설에 “침侵은 뛰어넘는다[과월過越]는 말과 같다.” 하였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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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상上이
설공泄公으로 하여금
부절符節을 가지고 가서 묻게 하기를 “
장왕張王(
장오張敖)이 과연 모반을 계획한 일이 있는가?”
注+부不는 부否로 읽는다. 하니,
관고貫高가 대답하기를 “이제 우리
삼족三族을 모두
사형死刑으로
논죄論罪하고 있으니, 내 어찌 왕을 사랑하는 것이 내 친족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겠는가.
생각건대
조왕趙王은 실로 모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注+고顧는 생각함이요, 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하고는 조왕이 모반한 사실을 알지 못한 상황을 자세히 말하였다.
이에 설공이 이런 상황을 보고하자, 황제는 장오를 사면하여 폐위한 다음 강등시켜 선평후宣平侯로 삼고 대왕代王 유여의劉如意를 옮겨 조왕으로 삼았다.
상上이 관고를 훌륭하게 여겨 사면하였는데, 관고가 말하기를 “내가 죽지 않은 까닭은 왕이 모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지금 왕이 이미 풀려나 나의 책임을 다하였으니,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
그리고 신하가 되어 황제를 시해하려 했다는 죄명을 받았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황상을 섬길 수 있겠는가.”
하고는 머리를 들어 우러러보고 목을 끊어 죽었다.
注+강亢(목)은 음이 강岡이고, 또 하랑下郞의 절切이다. “앙절항仰絶亢”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고 목을 끊는 것이다.
상上이
전숙田叔 등을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漢나라 조정의 신하들 중에 그보다 나은 자가 없자, 그들을 모두 제수해서
군수郡守와
제후諸侯의 정승으로 삼았다.
注+수守는 군수郡守이고 상相은 제후諸侯의 정승이다. 한漢나라 초기에 제후왕諸侯王의 나라에 승상丞相이 있어 여러 관원들을 통솔하기를 한漢나라 조정처럼 하였는데, 경제景帝 때에 이르러 승丞자를 없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