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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3)

자치통감강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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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卯年(B.C. 150)
七年이라
冬十一月 하여 爲臨江王하다
燕王臧荼 孫女臧兒 嫁王仲하여 生男信與兩女러니 仲死 更嫁田氏하여 生蚡注+蚡, 扶粉切. 하다
文帝時 臧兒長女 爲金王孫婦하여 生女俗注+俗, 其所生女名.하니 卜筮之한대 曰 兩女皆當貴라하더니
臧兒乃奪金氏婦하여內之太子宮하여 生男徹注+內, 入也. 하다
及帝卽位하여 長公主嫖 欲以女嫁太子榮注+帝之姊妹, 稱長公主. 嫖, 音飄, 長公主之名也. 堂邑侯陳午尙之.하니 하다
公主欲予徹이어늘 王夫人 許之하니 由是 公主日讒栗姬而譽徹之美하고 帝亦自賢之하니라
王夫人 知帝嗛栗姬注+嗛, 與銜通, 恨也, 又苦簟切.하고 因怒未解
하여 陰使人趣大行하여 請立栗姬爲皇后注+大行, 官名, 掌郊廟行禮‧讚九賓.한대 帝怒曰 是而所宜言邪注+而, 汝也, 言此事非汝所當得言.아하고 遂按誅大行하고 而廢太子하다
太傅竇嬰 力爭不能得하여 乃謝病免하고 栗姬恚恨而死하다
是月晦 日食하다
◑ 春 丞相靑하니 以周亞夫爲丞相하고 罷太尉官하다
◑ 夏四月 立夫人王氏하여 爲皇后하고 膠東王徹爲皇太子하다
注+郅, 音質, 姓也.하다
都爲中郞將하여 敢直諫하다
嘗從入上林이러니 賈姬如厠 野彘卒來入厠注+賈姬, 生趙王彭祖及中山王勝者也. 卒, 讀曰猝.이라
目都호되 都不行注+目, 動目以使也.이어늘 欲自救姬러니
都伏上前曰 亡一姬 復一姬進이니 天下所少 寧賈姬等乎잇가
陛下縱自輕이나 奈宗廟太后何잇고하니 乃還하다
都爲人 勇悍公廉하여 不發私書하며 問遺 無所受하고 請謁 無所聽이러니
及爲中尉 先嚴酷하여 行法 不避貴戚注+先, 悉薦切.하니 列侯, 宗室 見都 側目而視하고 號曰蒼鷹注+言其鷲擊之甚.이라하다


신묘년(B.C. 150)
[綱] 나라 효경황제孝景皇帝 7년이다.
겨울 11월에 태자太子 유영劉榮을 폐하여 임강왕臨江王으로 삼았다.
[目] 처음에 연왕燕王 장도臧荼의 손녀 장아臧兒왕중王仲에게 시집가서 아들 왕신王信과 두 딸을 낳았는데, 왕중이 죽자 다시 전씨田氏에게 시집가서 전분田蚡을 낳았다.注+부분扶粉이다.
문제文帝 때에 장아의 장녀가 김왕손金王孫의 부인이 되어 딸 김속金俗을 낳았는데,注+은 그녀가 〈김씨金氏에게서〉 낳은 딸의 이름이다. 점을 치자 점괘에 이르기를 “〈왕씨王氏에게서 낳은〉 두 딸(왕지王娡왕식후王息姁)이 모두 마땅히 귀하게 될 것이다.” 하였다.
장아가 마침내 김씨金氏의 부인인 장녀를 이혼시켜 태자궁太子宮에 들여서 아들 유철劉徹을 낳았다.注+은 들인다는 뜻이다.
황제(경제景帝)가 즉위하자, 장공주長公主 유표劉嫖가 그 딸(왕미인王美人)을 태자太子 유영劉榮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였는데,注+황제의 자매를 장공주長公主라 칭한다. 는 음이 이니, 장공주長公主의 이름이다. 당읍후堂邑侯 진오陳午가 그녀에게 장가들었다. 유영의 어머니인 율희栗姬후궁後宮과 여러 미인들이 모두 장공주長公主를 통하여 황제를 뵙고 총애를 받는다 하여 노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장공주가 유철劉徹에게 딸을 주려고 하자, 왕부인王夫人(임지壬娡)이 이를 허락하니, 이로 말미암아 장공주가 날마다 율희를 비방하고 유철劉徹의 미덕을 칭찬하였으며, 황제 자신도 유철을 어질게 여겼다.
[目] 왕부인王夫人은 황제가 율희栗姬에게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알고는注+과 통하니 한다는 뜻이요, 또 고점苦簟이다. 노여움이 풀리지 않았을 때를 이용하여, 은밀히 사람을 시켜 대행大行을 재촉해서 율희를 황후皇后로 세울 것을 청하게 하니,注+대행大行관명官名이니, 천지天地에 지내는 교제郊祭선조先祖에 지내는 묘사廟祠를 행하는 것과 구빈九賓을 돕는 일을 관장하였다. 황제가 노하여 말하기를 “이것이 네가 마땅히 말해야 할 일인가.”注+는 너라는 뜻이니, 이 일은 마땅히 네가 말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는 말이다.라 하고는 마침내 대행을 조사하여 죽이고 태자를 폐위시켰다.
태부太傅 두영竇嬰이 강력히 간쟁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두영은 마침내 병으로 사양하여 면직하고, 율희는 성내며 한을 품고 죽었다.
[綱] 이달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綱] 봄에 승상丞相 도청陶靑이 면직되니, 주아부周亞夫승상丞相으로 삼고 태위太尉의 관직을 없앴다.
[綱] 여름 4월에 부인夫人 왕씨王氏(미인美人 왕지王娡)를 황후皇后로 세우고, 교동왕膠東王 유철劉徹황태자皇太子로 삼았다.
[綱] 질도郅都중위中尉로 삼았다.注+은 음이 이니, 이다.
[目] 처음에 질도郅都중랑장中郞將이 되어서 과감하게 직간直諫을 하였다.
일찍이 황제를 따라 상림원上林苑에 들어갔었는데, 가희賈姬가 측간에 갔을 적에 멧돼지가 갑자기 달려와 측간으로 들어갔다.注+가희賈姬조왕趙王 유팽조劉彭祖중산왕中山王 유승劉勝을 낳은 자이다. (갑자기)은 로 읽는다.
이 질도에게 〈구원하라고〉 눈짓을 하였으나 질도가 가지 않으니,注+은 눈동자를 움직여 눈짓으로 시키는 것이다. 황제가 직접 달려가 가희를 구원하려고 하였다.
질도가 의 앞에 엎드려 아뢰기를 “한 가희를 잃으면 다시 한 가희(미녀美女)를 올릴(바칠) 수 있으니, 천하의 젊은 아가씨가 어찌 가희뿐이겠습니까.
폐하께서 비록 스스로 몸을 가볍게 여기시나 종묘宗廟태후太后를 어찌하시렵니까.” 하니, 이 마침내 돌아왔다.
질도는 사람됨이 용감하고 공정하고 청렴하여 사사로운 편지를 왕래하지 않았으며 선물을 받는 바가 없었고 청탁을 들어주는 일이 없었다.
중위中尉가 되자 엄격함과 혹독함을 앞세워 법을 시행함에 귀척貴戚을 꺼리지 않으니,注+(우선하다)은 실천悉薦이다.열후列侯종실宗室들이 질도를 볼 적에 두려워하여 똑바로 보지 못하였고 ‘푸른 새매[창응蒼鷹]’라고 불렀다.注+〈새매[창응蒼鷹]는〉 매우 사납게 공격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廢太子榮 : “景帝 4년(B.C. 153) 여름에 ‘아들 劉榮을 세워 皇太子로 삼았다.’고 썼는데, 이때 이미 4년이 지났으나 황태자에게 失德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갑자기 폐위한단 말인가? 경제가 시기하고 각박한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廢’라고 쓰고 ‘죄가 있다.’고 쓰지 않았으니, 폐위당한 것이 도리에 맞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廢后薄氏’라고 쓴 것도 그 뜻이 또한 이와 같다.[四年夏 書立子榮爲皇太子 至是 已閱四載 未聞其有失德 何爲遽廢之哉 景帝忌刻 於斯可見 書廢而不書有罪 則見廢之不以其理 爲可知 上書廢后薄氏 其義亦然]” 《發明》
역주2 其母栗姬……怒不許 : 《史記》 〈外戚世家〉에는 이 부분이 “栗姬는 질투심이 많았는데, 景帝의 여러 美人이 모두 長公主를 통하여 황제를 뵙고 귀함과 총애를 받는 것이 모두 율희보다 더하였다. 이 때문에 율희가 원망하고 노여워하여 장공주의 청혼을 사절하고 허락하지 않았다.[栗姬妬 而景帝諸美人皆因長公主見景帝 得貴幸 皆過栗姬 栗姬日怨怒 謝長公主 不許]”라고 기록되어 있다.
역주3 王夫人……因怒未解 : 《史記》 〈外戚世家〉에 “景帝가 일찍이 몸이 불편하여 마음이 즐겁지 못하여서 王으로 봉해진 여러 아들들을 栗姬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 이들을 잘 보살펴주어라.’ 하였는데, 율희가 怒하여 응하려 하지 않고 말을 불손하게 하였다. 경제가 노하여 서운한 마음을 품었으나 아직 드러내지는 않았다.[景帝常體不安 心不樂 屬諸子爲王者於栗姬 曰 百歲後 善視之 栗姬怒 不肯應 言不遜 皇帝恚 心嗛之而未發也]”라고 보인다.
역주4 以郅都爲中尉 : “‘中尉’에 대해 쓴 적이 없는데, 景帝에 이르러서 처음으로 썼다. 郅都와 甯成이 바로 中尉였으니, 황제의 각박하고 까다로움이 이들을 불러들인 것이다.[中尉未有書者 至景帝 始書則郅都甯成其人焉 帝之刻深 有以召之矣]” 《書法》

자치통감강목(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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