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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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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未年(B.C. 86)
을미년(B.C. 86)
孝昭皇帝始元元年이라
[綱] 나라 효소황제孝昭皇帝 시원始元 원년이다.
益州夷反이어늘 募吏民하여 發犇命하여 擊破之注+舊時, 郡國皆有材官騎士, 以赴急難, 今夷反, 常兵不足以討之, 故權取精勇, 聞命犇赴, 故謂之犇命.하다
여름에 익주益州의 오랑캐가 배반하자, 관리와 백성들을 모집하여 명령에 달려가 싸울 수 있는 자들을 징발해서 격파하였다.注+예전에 군국郡國에 모두 재관材官기사騎士가 있어서 국가의 급난急難(위급危急)에 달려가게 하였는데, 지금 오랑캐가 배반함에 상비군常備軍으로는 토벌하기 부족하여, 임시로 정예롭고 용감한 자들을 선발해서 명령을 듣고 달려가게 했으므로 “분명犇命”이라 한 것이다.
◑ 秋七月하다
[綱] 가을 7월에 사면赦免하였다.
◑ 大雨至于十月하다
[綱] 큰 비가 10월까지 내렸다.
[綱] 연왕燕王 유단劉旦이 모반하였는데 사면하여 치죄治罪하지 않고, 함께 참여한 도당徒黨들은 모두 복주伏誅하였다.
武帝崩이어늘 賜諸侯王璽書한대
[目] 처음에 무제武帝하자, 제후諸侯에게 새서璽書(옥새玉璽를 찍은 황제의 친서)를 하사하였다.
燕王旦 得書하고 不肯哭曰 璽書封小하니 京師 疑有變注+文小則封小.이라하고 遣幸臣하여 之長安하여 問禮儀하고 陰刺候朝廷事注+陰, 猶言暗地也. 剌, 七亦切, 察也. 候, 問也.하다
연왕燕王 유단劉旦은 새서를 받고 하려 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새서의 봉함이 너무 작으니, 경사京師변란變亂이 있는가 의심된다.”注+글이 적으면 봉함이 작은 것이다. 하고는, 총애하는 신하를 보내 장안長安에 가서 〈국상國喪의〉 예의禮儀를 묻는다며 은밀히 조정의 일을 살펴 탐문하게 하였다.注+암지暗地(은밀히)라는 말과 같다. 칠역七亦이니 살핌이요, 는 탐문함이다.
及詔賜錢益封하여는 怒曰 我當爲帝하니 何賜也오하고
그러다가 황제가 조령詔令을 내려서 제후왕들에게 돈을 하사하고 봉지封地를 더해주자, 연왕燕王 유단劉旦은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황제가 되어야 하는데, 어찌 〈어린 황제(소제昭帝)가〉 돈을 하사한단 말인가.” 하였다.
遂與齊孝王孫澤等으로 結謀하여 詐言호되 以武帝時受詔하여 得職吏事하여 修武備하여 備非常注+諸侯不得治民與職事, 是以爲詐言 “受詔, 得知職事, 發兵爲備也.”이라하고
그러고는 마침내 제효왕齊孝王의 손자인 유택劉澤 등과 함께 계략을 꾸며, “무제武帝 때에 내가 조령詔令을 받아 관리의 일을 주관해서 무비武備를 닦아 비상사태에 대비하도록 하였다.”注+제후諸侯는 백성과 관직의 일을 다스릴 수 없다. 이 때문에 “조령詔令을 받아서 관리의 일을 주관하고 군대를 일으켜 대비한다.”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爲姦書하여 言少帝非武帝子
또 간사한 글을 만들어 말하기를 “어린 황제는 무제武帝의 아들이 아니다.
天下宜共伐之라하여 使人傳行郡國하여 以搖動百姓하다
천하가 마땅히 함께 토벌해야 한다.” 하고는, 사람을 보내 파발마로 군국郡國을 다니면서 백성들을 동요하게 하였다.
謀歸發兵臨菑注+臨菑, 齊郡太守ㆍ靑州剌史治所.하고 招來郡國姦人하여 賦斂銅鐵하여 作甲兵하고數閱其車騎, 材官卒注+數, 音朔.하고 發民大獵하여 以講士馬하여 須期日注+講, 習也. 須, 待也. 澤歸臨菑, 謀擧兵, 故旦閱兵以待期.하며
유택은 임치臨菑로 돌아가 군대를 일으킬 것을 도모하고,注+임치臨菑제군태수齊郡太守청주랄사靑州剌史치소治所가 있는 곳이다. 유단은 군국郡國의 간사한 사람들을 불러와 에 대한 세금을 거두어 갑옷과 병기를 만들고 거기車騎재관材官의 병사들을 자주 사열하였으며,注+(자주)은 음이 이다. 백성들을 징발해서 크게 사냥하여 병사와 말을 훈련시키면서 출동 기일을 기다렸다.注+은 익힘이고, 는 기다림이다. 유택劉澤임치臨菑로 돌아가 거병擧兵을 도모하였으므로, 유단劉旦이 군대를 사열하면서 기일을 기다린 것이다.
殺諫者韓義等凡十五人하다
그리고 한의韓義하는 자 15명을 모두 죽였다.
八月 靑州刺史雋不疑 收捕澤等以聞한대 遣大鴻臚丞治하여 連引燕王이어늘
[目] 8월에 청주자사靑州刺史 준불의雋不疑유택劉澤 등을 체포하여 아뢰자, 대홍려승大鴻臚丞을 보내 치죄治罪하게 하였는데, 연왕燕王이 연루되었다.
詔以燕王至親勿治하고 而澤等 皆伏誅하다
이에 ‘연왕은 지친至親이니 치죄治罪하지 말고 유택 등은 모두 복주伏誅하라.’고 조령詔令을 내렸다.
[綱] 준불의雋不疑경조윤京兆尹으로 삼았다.
不疑爲京兆尹하니 吏民 敬其威信이러라
[目] 준불의雋不疑경조윤京兆尹이 되니, 관리와 백성들이 그의 위엄과 신의를 공경하였다.
每行縣하여 錄囚徒하고注+行縣, 謂案行諸縣也. 錄囚徒, 謂省錄之, 知其情狀有寃滯與否也. 其母輒問不疑호되 有所平反하여 活幾何人고하여
준불의가 매번 을 순행하여 죄수들을 기록하고 돌아오면,注+행현行縣”은 조사하려고 여러 을 순행함을 이른다. “녹수도錄囚徒”는 죄수들을 살펴 기록해서, 그 정상에 억울한지 또 오랫동안 옥사獄事가 체류되었는지의 여부를 아는 것을 이른다. 그 어머니가 번번이 준불의에게 “평번平反(잘못된 옥사를 바로잡음)한 바가 있어서 몇 명을 살려주었는가?”라고 물어서,
卽多所平反이면 母喜笑異他時하고 或無所出이면 母怒하여 爲不食注+爲, 去聲.이라
평번한 것이 많으면 어머니가 기뻐하여 웃기를 다른 때와 달리 하였고, 혹 평번하여 죄수를 내보낸 것이 없으면 어머니가 노하여 음식을 먹지 않았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不疑爲吏 嚴而不殘하니라
이 때문에 준불의는 관리가 되었을 적에 엄하면서도 잔혹하지 않았다.
九月 車騎將軍 秺侯金日磾卒하다
[綱] 9월에 거기장군車騎將軍 투후秺侯(여후) 김일제金日磾하였다.
武帝以日磾捕反者馬何羅功으로 遺詔封爲秺侯注+秺, 音如. 班志 “秺侯國, 屬濟陰郡.”한대 日磾以帝少 不受封이러니
[目] 처음에 무제武帝김일제金日磾가 반역을 도모한 마하라馬何羅를 체포한 이 있다 하여 유조遺詔를 내려 투후秺侯로 봉하게 하였는데,注+는 음이 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투후秺侯의 나라는 제음군濟陰郡에 속하였다.” 하였다. 김일제는 황제(소제昭帝)의 나이가 어리다 하여 봉함을 받지 않았다.
及病困 白封之하니 臥受印綬하고 一日커늘 諡曰 敬이라하다
그러다가 병이 위독하게 되자, 곽광霍光이 황제에게 아뢰어 를 봉하였는데, 병석에 누워 인수印綬를 받고는 다음날에 하니, 시호를 이라 하였다.
日磾兩子賞, 建 俱侍中하여 與上臥起
김일제의 두 아들인 김상金賞김건金建이 모두 시중侍中으로 궁중에서 황제를 모셔 과 함께 기거하였다.
奉車하고 駙馬都尉러니 及賞嗣侯하여 佩兩綬 謂光曰 金氏兄弟兩人 不可使俱兩綬耶 對曰 賞 自嗣父爲侯耳이다
김상은 수레를 받들고 김건은 부마도위駙馬都尉가 되었는데, 김상이 를 계승하여 두 인수印綬를 차게 되자, 은 곽광에게 이르기를 “김씨金氏 형제 두 사람을 모두 의 두 인수印綬를 차게 할 수는 없는가?” 하니, 곽광이 대답하기를 “김상은 본래 아버지를 뒤이어 가 된 것입니다.” 하였다.
笑曰 侯不在我與將軍乎 對曰 先帝之約 有功이라야 乃得封侯하니이다하니 遂止하다
이 웃으며 말하기를 “를 시키는 것은 나와 장군에게 달려 있지 않은가?” 하였으나, 곽광은 대답하기를 “선제先帝의 약속에 이 있어야 비로소 에 봉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마침내 중지하였다.
閏月 遣使行郡國하여 擧賢良하고 問民疾苦하다
[綱] 윤달에 사자를 보내 군국郡國을 순행하여 현량賢良을 천거하고 백성들의 질고疾苦(고통)를 묻게 하였다.
◑ 冬 無氷하다
[綱]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역주
역주1 燕王旦……赦弗治 : “‘사면하고 治罪하지 않았다.[赦弗治]’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형벌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함을 비판한 것이다. 죄를 다스리지 않은 것에 대한 글이 두 가지이니, 燕王 劉旦이 모반하였는데 ‘용서하고 치죄하지 않았다.’는 것은 죄가 있는 사람을 잃었다는 말이니 비판한 것이요, 有司가 梁王 劉立의 죄를 아뢰었으나 ‘중지하고 치죄하지 않았다.’고 한 것은 후덕함을 보존한 말이니, 찬미한 것이다. 찬미함과 나쁘게 여김에 그 표현이 똑같음을 혐의하지 않는다.[書赦弗治 何 譏失刑也 弗治之辭二 燕王旦謀反 赦弗治 失有罪之辭也 譏也 有司奏梁王立罪 寝不治 存厚之辭也 美也 美惡不嫌同辭]” 《書法》
역주2 以雋不疑爲京兆尹 : “京兆尹으로 삼음을 쓴 것이 이때 시작되었다. 西漢의 세대가 끝날 때까지 京兆尹으로 삼음을 쓴 것이 여덟 번인데, 모두 엄하고 유능한 관리였다. 오직 黃霸만이 관직에 걸맞지 못하므로 ‘파면되어 옛 관직으로 돌아갔다.’고 썼다.[書京兆尹始此 終西漢之世 書京兆尹八 皆嚴能吏也 惟黃霸以不稱職 書罷歸故官]” 《書法》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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