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7)

자치통감강목(7)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丙午年(A.D.46)
병오년丙午年(A.D.46)
二十二年이라 春閏正月 帝如長安하여 祠高廟하고 上陵注+上, 時掌切.하다
나라 세조 광무황제世祖 光武皇帝 건무建武 22년이다. 봄 윤정월閏正月에 황제가 장안長安에 가서 고묘高廟에 제사하고 에 올라 제사하였다.注+(올라가다)은 시장時掌이다.
◑二月 還宮하다
】 2월에 황제가 환궁하였다.
◑夏五月晦 日食하다
】 여름 5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秋九月 地震하다
】 가을 9월에 지진이 있었다.
◑冬 大司空浮免하니 以杜林爲大司空하다
】 겨울에 대사공 주부大司空 朱浮가 면직되니, 두림杜林대사공大司空으로 삼았다.
◑以劉昆爲光祿勳하다
유곤劉昆광록훈光祿勳으로 삼았다.
爲江陵令 縣有火災어늘 向火叩頭한대 火尋滅注+江陵縣, 屬南郡.하고 後爲弘農太守 虎皆負子渡河
】 처음에 유곤劉昆강릉령江陵令이 되었을 적에 에 화재가 났는데 유곤이 불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자 불이 곧 꺼졌고注+강릉현江陵縣남군南郡에 속하였다., 뒤에 홍농태수弘農太守가 되었을 적에는 호랑이가 모두 새끼를 업고 황하黃河를 건너갔다.
帝聞而異之하여 徵昆하여 代林爲光祿勳하고 帝問昆曰 前在江陵 反風滅火하고 後守弘農 虎北渡河하니
황제는 이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겨 유곤을 불러 두림杜林을 대신해서 광록훈光祿勳으로 삼았다. 황제가 유곤에게 묻기를 “지난번 강릉江陵에 있을 적에는 바람의 방향을 되돌려 불을 끄고, 뒤에 홍농弘農을 맡았을 적에는 호랑이가 북쪽으로 황하를 건너갔으니,
行何德政而致是事 對曰 偶然耳니이다 左右皆笑어늘 帝歎曰 此乃長者之言也라하고 顧命書諸策注+回顧史官, 令寫入史策.하다
무슨 덕스러운 정사를 행하여 이런 상서로운 일을 불러왔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우연일 뿐입니다.” 하였다. 좌우左右가 모두 웃자, 황제는 감탄하여 “이는 바로 장자長者의 말이다.” 하고는 사관史官을 돌아보고 이 내용을 사책史策에 쓰게 하였다.注+〈“고명서제책顧命書諸策”은〉 사관史官을 돌아보고서 하여금 사책史策에 기입하게 한 것이다.
靑州蝗하다
청주靑州황충蝗蟲의 재해가 있었다.
◑匈奴單于輿死하니 子蒲奴立하여 이어늘 許之하다
흉노匈奴선우 여單于 輿(호도이시도고약제선우呼都而尸道皐若鞮單于)가 죽으니, 아들 (흉노 제22대 선우, 북흉노北匈奴 제1대 선우)가 즉위하여 화친을 요구하므로 이를 허락하였다.
匈奴中 連年旱, 蝗하여 赤地數千里 人畜饑疫하여 死耗太半注+赤地, 言在地之物, 皆盡也.이라
흉노匈奴에 몇 년에 걸쳐 가뭄과 황충의 피해가 있어서 수천 리가 불모지가 되었고, 사람과 가축이 굶주리고 역병이 유행하여 태반이 죽고 없어졌다.注+적지赤地”는 땅에 있는 물건이 다 없어짐을 말한 것이다.
單于畏漢乘其敝하여 乃遣使詣漁陽하여 求和親이어늘 帝遣中郞將李茂하여 報命하다
선우單于나라가 자신들의 피폐한 틈을 타서 공격할까 염려하여 사신을 어양漁陽에 보내 화친을 요구하였다. 이에 황제는 중랑장 이무中郞將 李茂를 사신으로 보내서 답례하게 하였다.
詔罷邊郡亭候하고 招降烏桓하다
조령詔令을 내려 변군邊郡에 있는 정후亭候를 해산하고 오환烏桓을 불러 항복을 권하였다.
烏桓 乘匈奴之弱하여 擊破之하니 匈奴北徙數千里하여 地空이라
오환烏桓흉노匈奴의 약한 틈을 타고서 흉노를 격파하니, 흉노가 북쪽으로 수천 리를 옮겨가서 사막 남쪽의 땅이 텅 비었다.
詔罷諸邊郡亭候吏卒하고 以幣帛으로 招降烏桓하다
조령詔令을 내려 여러 변군邊郡정후亭候(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정자나 보루)에 있는 관리와 병졸을 해산하고, 폐백으로 오환을 불러 항복을 권하였다.
서역西域이 다시 도호都護를 파견해줄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으니, 마침내 흉노匈奴에게 귀속하였다.
西域諸國侍子 久留敦煌하니 皆愁思亡歸 莎車王賢 知都護不出하고 擊破鄯善하고 攻殺龜玆王注+句.하다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에서 보낸 시자侍子들이 오랫동안 돈황敦煌에 머물러 있으니, 모두 도망하여 돌아갈 것을 생각하였다. 사차왕 현莎車王 賢도호都護가 파견되지 않은 줄을 알고는 선선鄯善을 격파하고 구자왕龜玆王을 공격하여 죽였다.注+여기서 구를 뗀다.
鄯善王安 上書하여 願復遣子入侍하고 更請都護호되 都護不出이면 誠迫於匈奴라한대
선선왕 안鄯善王 安상서上書하기를 “다시 아들을 보내 입시入侍하기를 원하고, 다시 도호를 파견해줄 것을 청합니다. 만일 도호가 파견되지 않으면 진실로 흉노匈奴에게 압박을 받을 것입니다.” 하니,
帝報曰 今使者大兵 未能得出하니 如諸國 力不從心이면 東西南北 自在也注+言任其所從也.니라 於是 鄯善, 車師 復附匈奴하다
황제가 답하기를 “지금 사자使者의 큰 병력이 출동할 수가 없으니, 만일 여러 나라가 힘이 마음을 따르지 못하면 동서남북 어디든지 자유롭게 따르라.”注+〈“자재야自在也”는〉 그 따르는 바에 맡김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이에 선선鄯善거사車師가 다시 흉노에게 귀속하였다.
班固曰 孝武之世 圖制匈奴하여 患其兼從西國하고 結黨南羌注+兼從西國, 謂與西域諸國, 兼幷合從也. 南羌, 卽湟中諸羌.하여
반고班固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효무제孝武帝의 때에는 흉노匈奴를 제압할 것을 도모하여, 흉노가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를 겸병, 합종하고 남강南羌과 결맹할까 염려해서注+겸종서국兼從西國”은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를 겸병하고 합종함을 이른다. 남강南羌은 바로 황중湟中의 여러 강족羌族들이다.
乃表河曲列四郡하고 開玉門, 通西域하여 以斷匈奴右臂하고 隔絶南羌, 月氏注+河西九曲, 本西戎地, 在河開縣西河. 千里而一曲, 曲, 言其隈地也. 四郡, 謂酒泉․武威․張掖․敦煌.하니 單于失援이라
마침내 하서河西(하곡河曲)를 경계로 하여(경략해서) 4개 (하서河西 4군)을 나열하고 옥문관玉門關을 열어 서역과 통해서 흉노의 오른팔을 자르고 남강南羌월지月氏(월지)를 가로막으니注+하서河西구곡九曲은 본래 서융西戎 지역이니, 하개현 서하河開縣 西河에 있다. 황하는 천 리에 한 번씩 물길이 굽으니, 은 굽이진 곳을 말한다. 네 개의 주천酒泉, 무위武威, 장액張掖, 돈황敦煌을 이른다., 선우單于가 지원받을 세력을 잃었다.
由是遠遁하여 而幕南 無王庭矣이나 通西域에는 近有龍堆하고 遠則蔥嶺, 身熱, 頭痛, 懸度之阨注+龍堆, 卽白龍堆也, 形如土龍身, 無頭有尾, 高大者二三丈, 卑者丈餘, 皆東北向相似也. 在西域中, 樓蘭王所居地.이라
이로 인해 멀리 도망하여 사막의 남쪽에는 선우의 왕정王庭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서역을 통과하려면 注+용퇴龍堆는 바로 백룡퇴白龍堆이니, 지형이 지렁이와 같아서 머리가 없고 꼬리만 있는데, 높이가 높은 곳은 2, 3(길)이고, 낮은 곳은 1 남짓으로 모두 동북향을 하여 서로 비슷하다. 서역西域에 있으니 누란왕樓蘭王이 거주하던 곳이다.
淮南, 杜欽, 揚雄之論 皆以爲此天地所以界別區域하여 絶外內也라하니라
그리하여 회남왕淮南王두흠杜欽, 양웅揚雄의 의논에 모두 ‘이는 천지가 구역을 한계 짓고 구별해서 안팎을 끊은 것이다.’ 하였다.
西域諸國 各有君長이나 兵衆分弱하여 無所統一하니 雖屬匈奴 不相親附하고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는 저마다 군장君長이 있었으나 병력이 나뉘고 약하여 통일된 바가 없으니, 비록 흉노匈奴에 소속되었으나 서로 친히 따르지 않았으며,
匈奴能得其馬畜, 旃罽 而不能統率하여 與之進退注+旃, 與氊同. 罽, 通作𦇧. 西胡毳布, 織毛爲之.
흉노는 이들의 말과 가축, 털방석과 융단을 얻었으나 제대로 통솔하여 그들과 진퇴를 함께하지는 못하였다.注+과 같다. 는 𦇧와 통하니, 〈“전계旃罽”는〉 서역西域의 모포로 털을 짜서 만든다.
與漢隔絶하고 道里又遠하여 得之不爲益이요 棄之不爲損하니 盛德在我하여 無取於彼
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어 단절되었고 또 거리가 멀어서 얻어도 유익하지 않고 버려도 손해되지 않으니, 성덕盛德이 우리 나라에 있어서 저들에게서 취할 것이 없었다.
自建武以來 西域 思漢威德하여 咸樂內屬하여 數遣使置質于漢하고 願請都護注+質, 音致, 謂侍子也.
그러므로 건무建武 연간 이래로 서역이 나라의 위엄과 덕을 사모하여 모두 기꺼이 내속內屬해서 여러 번 사자使者를 보내 나라에 인질을 두고 도호都護를 파견해줄 것을 청하였다.注+는 음이 이니 시자侍子를 이른다.
聖上 遠覽古今하고 因時之宜하여 辭而未許하시니 雖大禹之序西戎하고 周公之讓白雉하고 太宗之却走馬라도 義兼之矣注+禹貢 “西戎卽序.” 卽, 就也. 序, 次也. 禹就而序之, 非尙威服, 致其貢物也. 越裳氏獻白雉曰 “天之無烈風淫雨, 海不揚波三年矣, 意者, 中國有聖人乎. 盍往朝之.” 周公謙讓而歸之成王, 稱先王之神所致, 以薦宗廟. 太宗, 文帝也, 却走馬事, 見文帝元年.로다
그러나 성상聖上이 고금을 멀리 보고 시의를 따라서 사양하고 허락하지 않으시니, 비록 대우大禹서융西戎을 질서정연하게 하고 주공周公이 흰 꿩을 사양하고 태종太宗명마名馬를 물리친 것이라도 〈이보다 크게 더하지 못하여〉 그 의의意義를 겸했다 할 것이다.”注+서경書經≫ 〈하서 우공夏書 禹貢〉에 하였으니, 은 나아감이요, 는 질서정연하게 펴짐이다. 임금이 나아가 질서정연하게 한 것이지 그 위엄으로 복종시킴을 숭상하여 공물貢物을 바친 것이 아니다. 태종太宗문제文帝이니, 잘 은 문제 원년 조에 보인다.
역주
역주1 蒲奴 : 이후 日逐王 比가 자립하여 匈奴가 南北으로 분열되자, 蒲奴는 北匈奴의 선우가 된다.
역주2 求和親 : “求라고 쓴 것은 또 請이라고 쓴 것보다 더욱 간절하니, ‘求和親(화친을 요구하다.)’이라 쓴 것이 이때 처음 보인다.[書求 又切於書請者矣 書求和親 始此]” ≪書法≫
역주3 幕南 : 幕는 漠과 통용하며, 외몽골과 내몽골 사이에 위치한 고비사막을 가리킨다. 幕南은 고비사막 이남 지역에 대한 범칭이다.
역주4 西域……遂附於匈奴 : “앞에서 ‘都護를 파견해줄 것을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고 썼고, 지금 ‘다시 都護를 파견해줄 것을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고 썼으니, 그렇다면 황제가 멀리 經略하는 일에 수고하지 않아서 안으로 국내 정치에 힘쓰고 밖으로 영토 확장에 힘쓰지 않은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漢나라 基業이 편안해진 것이 당연하다.[前書請都護不許 今書復請都護不許 則帝不勤遠略 務內不務外之意 曉然見矣 漢業鼎安 宜哉]” ≪發明≫
역주5 가까이는……있었다 : 龍堆, 蔥嶺, 身熱, 頭痛, 懸度는 모두 西域에 있는 옛 지명이다. 龍堆는 白龍堆로, 서역에 있는 沙丘의 명칭인바, 현재 新疆省 天山南路에 있다. 蔥嶺은 崑崙과 天山이 시작되는 곳으로, 현재 신강성 서남쪽과 인도에 걸쳐 있는 파미르 고원 일대를 가리킨다. 身熱은 身熱阪이고 頭痛은 大頭痛山과 小頭痛山으로, 이곳을 지나면 몸에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서 구토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懸度는 石山으로, 계곡에 길이 통하지 못하여 끈을 매달아 끌어당겨서 지나가야 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역주6 西戎이……나아갔다 : 大禹는 禹王으로 ≪書經≫ 〈夏書 禹貢〉에 “織皮(직물과 가죽옷)는 崑崙과 析支와 渠搜에서 바치는데, 이들 西戎이 질서정연하게 펴짐에 나아갔다.[織皮 崑崙 析支 渠搜 西戎 卽敍]”라고 보이는데, 蔡沈의 ≪書經集傳≫에 “〈崑崙과 析支와 渠搜〉 세 나라가 모두 가죽으로 만든 옷을 바쳤으므로 織皮를 앞에 놓았고, 모두 西方의 오랑캐 부락이므로 西戎으로 총괄한 것이다. 卽은 나아감이다. 雍州는 水土가 이미 다스려짐에 남은 功이 西戎에 미쳤다. 그러므로 끝에 붙인 것이다.[三國皆貢皮衣 故以織皮冠之 皆西方戎落 故以西戎總之 卽 就也 雍州水土旣平 而餘功及於西戎 故附于末]” 하였다.
역주7 越裳氏가……올렸다 : 이 내용은 ≪尙書大傳≫ 〈嘉禾傳〉에 보인다.
역주8 달리는……일 : 漢 文宗 원년에 천리마를 올리는 자가 있었는데, 황제가 물리치며 말하기를 “鸞旗가 앞에 있고 屬車가 뒤에 있으니, 내 천리마를 타고 홀로 먼저 어디를 가겠는가.” 하였다.

자치통감강목(7) 책은 2019.10.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