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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6)

자치통감강목(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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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卯年(B.C.6)
을묘년(B.C.6)
孝哀皇帝建平元年이라 春正月 隕石于北地十六하다
[] 나라 효애황제孝哀皇帝 건평建平 원년이다. 봄 정월에 북지北地운석隕石 16개가 떨어졌다.
[] 신성후新城侯 조흠趙欽이 죄로 면직되고 요서遼西로 귀양 갔다.
司隷解光 奏言호되
[] 사례司隷 해광解光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臣聞許美人及故中宮史曹宮 皆御幸孝成皇帝하여 産子러니 子隱不見이라하여늘 臣遣吏問하여 皆得其狀注+中宮, 皇后宮也. 史, 女史也. 曹宮, 姓名. 見, 賢遍切. 子隱不見, 謂趙昭儀隱匿其所産之子也. 通鑑 “臣遣吏驗問, 皆得其狀. 元延元年, 宮有身, 其十月, 宮乳掖庭牛官令舍, 中黃門田客, 持詔記, 與掖庭獄丞籍武, 令收置暴室獄, 毋問兒男女誰兒也. 宮曰 ‘善臧我兒胞. 丞知是何等兒也.’ 後三日, 客持詔記與武, 問兒死未. 武對未死, 客曰 ‘上與昭儀大怒, 奈何不殺.’ 武叩頭啼曰 ‘不殺兒, 自知當死, 殺之亦死.’ 卽因客奏封事曰 ‘陛下未有繼嗣, 子無貴賤, 唯留意.’ 奏入, 客復持詔記取兒, 付中黃門王舜, 舜受詔, 內兒殿中, 爲擇乳母, 告善養兒, 且有賞, 毋令漏泄. 舜擇官婢張棄, 爲乳母, 後三日, 客復持詔記幷藥以飮宮, 宮曰 ‘果也, 欲姊弟擅天下. 我兒, 男也. 頟上有壯髮, 類孝元皇帝, 今兒安在, 危殺之矣, 奈何令長信得聞之.’ 遂飮藥死. 棄所養兒, 十一日, 宮長李南, 以詔書取兒去, 不知所置. 許美人, 元延二年, 懷子, 十一月乳, 昭儀謂成帝曰 ‘常紿我言從中宮來, 卽從中宮來, 許美人兒, 何從生中. 許氏竟當復立邪.’ 懟, 以手自擣, 以頭擊壁戶柱, 從牀上自投地, 啼泣不肯食, 曰 ‘今當安置我. 我欲歸耳.’ 帝曰 ‘今故告之, 反怒爲, 殊不可曉也.’ 帝亦不食, 昭儀曰 ‘陛下自知是, 不食何爲. 陛下常自言, 「約不負女.」 今美人有子, 竟負約, 謂何.’ 帝曰 ‘約以趙氏, 故不立許氏, 使天下無出趙氏上者, 毋憂也.’ 後, 詔使中黃門靳嚴, 從許美人取兒去, 盛葦篋, 置飾室簾南去. 帝與昭儀坐, 使御者于客子, 解篋緘, 未已, 帝使客子及御者皆出, 自閉戶, 獨與昭儀在, 須臾開戶, 嘑客子, 使緘封篋及詔記, 令中黃門吳恭, 持以與籍武曰 ‘告武篋中有死兒, 埋屛處, 勿令人知.’ 武穿獄樓垣下爲坎, 埋其中.” 乳, 産也. 壯髮, 當頟前侵下而生.하니이다
이 듣건대, 허미인許美人과 옛 중궁中宮여사女史조궁曹宮이 모두 효성황제孝成皇帝에게 총애를 받아 시침侍寢을 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므로, 신이 관리를 보내어 물어서 그 정상을 모두 알아냈습니다.注+중궁中宮황후皇后이고, 여사女史이다. 조궁曹宮성명姓名이다. (보이다)은 현편賢遍이다. “자은불견子隱不見”은 조소의趙昭儀가 그녀들이 낳은 아들을 숨김을 이른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이 관리를 보내어 조사하여 물어서 그 정상을 모두 알아내었습니다. 원연元延 원년(B.C.12)에 조궁曹宮이 임신하여 10개월 만에 액정掖庭에 있는 우관령牛官令의 방에서 출산하였는데, 중황문中黃門 전객田客조기詔記(황제가 친히 쓴 조서詔書)를 가지고 와서 액정옥掖庭獄적무籍武에게 주어 그로 하여금 조궁을 잡아다가 폭실옥暴室獄(액정 안에 있는 감옥)에 가두되, ‘아이의 성별性別과 누구의 아이인지를 심문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조궁이 말하기를 ‘이 아이의 태[]를 잘 보관하라. 옥승獄丞은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 것이다.’ 하였습니다. 3일 후에 전객이 조기詔記를 가지고 와서 적무에게 주면서 그 아이가 죽었는지를 묻자, 적무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대답하니, 전객이 말하기를 ‘조소의趙昭儀께서 크게 노하시는데 어찌하여 죽이지 않았는가?’ 하고 문책하였습니다. 이에 적무는 머리를 조아리고 울며 말하기를 ‘이 아이를 죽이지 않으면 내 마땅히 죽어야 함을 잘 아나, 죽여도 또한 죽을 것이다.’ 하고는, 즉시 전객을 통하여 봉사封事로 아뢰기를 ‘폐하께서 아직 후사를 두지 못하셨으니, 자식은 소생所生의 귀천을 따질 것이 없습니다. 부디 유념하소서.’ 하였습니다. 아뢰는 글이 들어가자, 전객이 다시 조기詔記를 가지고 와서 아이를 데려다가 중황문中黃門 왕순王舜에게 맡기니, 왕순은 조령詔令을 받고 아이를 궁전 안으로 들여보내고는 그를 위해 유모를 선발하고, 유모에게 이 아이를 잘 기르면 장차 이 있을 것이니 절대로 누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왕순이 관비官婢장기張棄를 선발하여 유모를 삼은 지 3일 후에, 전객이 다시 조기詔記와 독약을 가지고 와서 조궁에게 마시게 하니, 조궁은 말하기를 ‘과연 조소의의 자매가 천하를 독차지하고자 하는구나. 나의 아이는 사내아이이다. 이마 위에 장발壯髮이 있어서 효원황제孝元皇帝를 닮았으니, 지금 이 아이가 어디에 있는가. 죽임을 당할까 위험한데, 어찌하여 장신궁長信宮황태후皇太后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가.’ 하고는, 마침내 독약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장기가 기르던 아이는 11일에 궁장宮長이남李南조서詔書를 갖고 와서 아이를 데려갔는데, 지금 어디에 두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허미인許美人원연元延 2년(B.C.11)에 아들을 잉태하여 11개월 만에 출산하였는데, 조소의가 성제成帝에게 이르기를 ‘황제께서 항상 저에게 중궁中宮의 처소로부터 오신다고 거짓말을 하시더니, 만일 중궁中宮의 처소로부터 왔다면 허미인의 아이가 어떻게 궁중에서 태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허씨를 끝내 다시 황후로 세우려 하십니까.’ 하고는, 불평하면서 손으로 가슴을 치고 머리로 벽의 문기둥을 치고 침상에서 땅으로 몸을 던지고서, 큰 소리로 울면서 음식을 먹지 않고 말하기를 ‘지금 마땅히 저를 편안히 놔두소서. 저는 죽고 싶습니다.’ 하였습니다. 황제께서 말씀하기를 ‘내 이제 〈허미인이 출산한 사실을〉 일부러 일러주었는데도 성을 내니,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하고는 수라를 드시지 않자, 조소의가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본래 이 사실을 알고 계셨는데 어찌하여 수라를 들지 않습니까. 폐하께서는 항상 스스로 말씀하기를 「너를 저버리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라고 하셨는데, 지금 허미인이 아들을 낳아서 끝내 약속을 저버렸으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였습니다. 황제께서 말씀하기를 ‘조씨趙氏와 약속하였기 때문에 허씨許氏를 황후로 세우지 않아서, 천하의 여인들로 하여금 조씨의 위로 솟아날 자가 없게 하였으니, 걱정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뒤에 조령詔令을 내려 중황문中黃門 근엄靳嚴(근엄)으로 하여금 허미인에게서 아이를 데려다가 갈대로 짠 상자[위협葦篋]에 넣어서 식실飾室(세수하고 화장하는 방)의 주렴 남쪽에다 놓고 가게 했습니다. 황제께서 조소의와 함께 앉아 어자御者(시종侍從)인 우객자于客子로 하여금 함봉한 갈대상자를 풀게 하셨는데, 이것을 다 풀기도 전에 황제가 우객자와 어자御者들을 모두 내보내고, 직접 문을 닫고서 황제와 조소의 두 분만 계셨습니다. 잠시 후에 문을 열고 우객자를 불러서 그에게 갈대상자와 조기詔記를 봉함하게 하고는, 중황문中黃門 오공吳恭을 시켜 이것을 갖다가 적무에게 주라고 하면서 말씀하기를 ‘적무에게 갈대상자 안에 죽은 아이가 있으니, 한적한 곳에 묻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알려라.’ 하셨으므로, 적무가 옥루獄樓의 담장 아래를 파서 구덩이를 만들어 그 안에 묻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는 출산이다. 장발壯髮은 이마 앞에 모발이 늘어져 난 것이다.
飮藥傷墮者無數호되 事皆在四月丙辰赦令前이니이다
또 기타 독약을 마시게 하여 해치고 낙태시킨 자가 무수히 많았으나, 이 일은 모두
臣謹案永光三年 男子忠等 發長陵傅夫人冢호되
[] 이 삼가 살펴보건대, 남자男子 등이 장릉長陵 부부인傅夫人의 무덤을 발굴하였습니다.
事更大赦注+忠, 男子之名也, 史失其姓.러니 孝元皇帝下詔曰 朕所不當得赦也라하시고 窮治하여 盡伏辜하니 天下以爲當注+當, 丁浪切.이라하니이다
이 일은 대사령大赦令이 지난 뒤였는데注+남자男子의 이름이니, 사서史書에 그 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효원황제孝元皇帝가 조칙을 내리시기를 ‘이 일은 짐이 사면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하시고, 끝까지 옥사를 다스려서 모두 죄를 받게 하니, 천하 사람들이 합당하다고 여겼습니다.注+(합당하다)은 정랑丁浪이다.
趙昭儀傾亂聖朝하여 親滅繼嗣하니 家屬 當伏天誅어늘 而同産親屬 皆在尊貴之位하여 迫近帷幄하니 群下寒心이라 請窮竟하여 議正法注+窮竟, 謂窮治其獄而竟其情也. 議正法, 謂令外朝大議, 以正其罪也.하노이다
조소의趙昭儀성조聖朝를 혼란시켜 직접 계사繼嗣를 없앴으니, 가솔들이 마땅히 하늘(군주)의 벌을 받아야 하는데, 형제들과 친족들이 모두 존귀한 지위에 있어서 황제를 가까운 곳에서 모시고 있으니, 아랫사람들이 한심해 합니다. 청컨대 끝까지 옥사를 다스려서 〈조정의 신하들로 하여금〉 의논하여 법을 바로잡게 하소서.”注+③ “궁경窮竟”은 이 옥사를 끝까지 다스려서 그 정상을 다 캐냄을 이른다. “의정법議正法”은 외조外朝의 신하들로 하여금 크게 의논하여 그 죄를 바로잡게 함을 이른다.
於是 免新城侯欽等하여 皆爲庶人하고 將家屬하여 徙遼西郡注+地理志 “河南郡, 有新城縣.” 欽, 趙太后弟也.하다
이에 신성후新城侯 조흠趙欽 등을 면직하여 모두 서인庶人을 삼고 가솔들을 거느리고서 요서군遼西郡으로 귀양 가게 하였다.注+④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하남군河南郡신성현新城縣이 있다.” 하였다. 조흠趙欽조태후趙太后의 아우이다.
耿育 上疏言호되
[] 경육耿育이 상소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臣聞世必有非常之變然後 乃有非常之謀라하니이다
이 들으니, 세상에는 반드시 비상한 변고가 있은 뒤에야 비로소 비상한 계책이 생긴다고 합니다.
孝成皇帝自知繼嗣不以時立이면 念雖末有皇子 萬歲之後 未能持國하여 恐危社稷하고 傾亂天下注+末, 晩暮也. 人之生也, 以死爲諱, 故常人以死後爲百年之後, 天子曰千秋萬歲後.라하사
효성황제孝成皇帝께서는, 스스로 계사繼嗣를 제때에 세우지 않으면 비록 말년에 황자皇子를 두더라도 승하한[만세萬歲] 뒤에 나라를 지키지 못할 것을 아시고는, 사직社稷을 위태롭게 하고 천하天下를 혼란시킬까 우려하셨습니다.注+은 말년이다. 사람은 살아생전에 죽는 것을 꺼리므로 보통 사람들은 사후死後를 백 년 뒤라 하고, 천자天子천추만세千秋萬歲의 뒤라 한다.
知陛下有賢聖仁孝之德이라 廢後宮就館之漸注+就館, 謂外舍産子也.하시고
그리하여 폐하께서 성스럽고 어질며 인자하고 효성스러운 덕이 있음을 아시고는, 후궁들이 〈산달이 되어〉 외사外舍에 나아가 출산하는 조짐을 막고注+② “취관就館”은 〈산달이 되어〉 외사外舍에 나아가 출산하는 것을 이른다.,
乃欲致位陛下하여 以安宗廟하시니 豈當世庸庸斗筲之臣 所能及哉注+筲, 所交切.리잇가
마침내 폐하에게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어 종묘宗廟를 편안히 하고자 하셨으니,
且褒廣將順君父之美하고 匡救銷滅旣往之過 古今通義也注+見人有善, 則獎飾而宣播之, 所謂褒廣也. 見人爲善, 則因而誘引成就之, 所謂將順也.
[] 또 군부君父의 아름다움을 장려하여 성사시키고 예전의 잘못을 바로잡아 없어지게 하는 것은 고금에 공통된 의리입니다.注+① 남이 선행을 하는 것을 보면 장려하여 퍼뜨리는 것이 이른바 “포광褒廣”이고, 남들이 선행을 하는 것을 보면 따라 유도해서 성취시키는 것이 이른바 “장순將順”이다.
事不當時固爭하여 防禍於未然하고 各隨指阿從하여 以求容媚라가 晏駕之後 尊號已定하고 萬事已訖이어든 乃探追不及之事하고 訐揚幽昧之過하여 空使謗議 上及山陵하고 下流後世 甚非先帝託後之意 此臣之所深痛也로소이다
일을 당시에 굳게 간쟁하여 화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고, 각각 군부君父의 뜻에 따라 아첨하여 용납되고 잘 보이기를 바라다가, 황제께서 승하한 뒤에 존호가 정해지고 만사가 이미 끝났는데, 비로소 미치지 못할 일을 뒤늦게 찾아내고 드러나지 않은 잘못을 들춰내 폭로해서, 공연히 비방이 위로 산릉山陵에 계신 선제先帝에게까지 미치고 아래로 후세에까지 이르게 한다면, 이는 선제先帝께서 에게 후사를 부탁하신 뜻이 절대로 아니니, 이것이 이 몹시 가슴 아파하는 바입니다.”
帝亦以爲太子 頗得趙太后力이라하여 遂不竟其事하다
황제 또한 자신이 태자太子가 된 것은 자못 조태후趙太后의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마침내 이 일을 끝까지 다스리지 않았다.
以傅喜爲大司馬하다
[] 부희傅喜대사마大司馬로 삼았다.
◑秋九月 隕石于虞二注+地理志 “虞縣, 屬梁國.”하다
[] 가을 9월에 우현虞縣에 운석 2개가 떨어졌다.注+①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우현虞縣양국梁國에 속했다.” 하였다.
◑策免大司空高樂侯丹하여 爲庶人이러니 復賜爵關內侯하다
[] 책서策書를 내려 대사공大司空 고악후高樂侯 사단師丹을 면직하여 서인庶人을 삼았었는데, 다시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하사하였다.
泠褒, 段猶等 奏言注+泠, 音零, 姓也.호되
[] 영포泠褒(영포)와 단유段猶 등이 다음과 같이 상주上奏하였다.注+(령)은 음이 이니 이다.
定陶共皇太后, 共皇后 皆不宜復引定陶藩國之言하여 以冠大號하니 車馬衣服 宜皆稱皇之意注+稱, 尺孕切. 皇者, 至尊之號, 其服御, 宜皆副稱之也.하며 置吏二千石以下하여 各供厥職注+謂詹事‧太僕‧少府等衆官也.이요 又宜爲共皇하여 立廟京師注+爲, 去聲, 下故爲同.니이다
정도공황태후定陶共皇太后공황후共皇后는 모두 다시 정도定陶라는 번국藩國의 말을 끌어다가 존호의 앞에 놓는 것이 옳지 않으니, 수레와 말과 의복을 모두 의 뜻에 걸맞게 하고注+(걸맞다)은 척잉尺孕이다. 지존至尊의 칭호이니, 〈“차마의복車馬衣服 의개칭황지의宜皆稱皇之意”는〉 그 의복과 사용하는 물건을 마땅히 모두 지존의 칭호에 부응하여 걸맞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천석二千石 이하의 관리를 두어 각각 그 직책을 담당하게 하며注+③ 〈이천석二千石 이하의 관리는〉 첨사詹事태복太僕, 소부少府 등의 여러 관원을 이른다., 또 마땅히 공황共皇을 위하여 경사京師에 사당을 세워야 합니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의 “고위故爲”의 도 같다.
復下其議하니 群下多順指하여 言母以子貴하니 宜立尊號하여 以厚孝道라호되
이 다시 이 일을 회부하여 의논하게 하니, 여러 신하들이 대부분 황제의 뜻에 순종하여 말하기를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귀하게 되는 것이니, 마땅히 존호를 세워서 효도를 넓혀야 합니다.”라 하였으나,
唯丞相光 大司馬喜 大司空丹 以爲不可라하다
오직 승상丞相 공광孔光대사마大司馬 부희傅喜대사공大司空 사단師丹은 불가하다고 하였다.
丹曰
[] 사단師丹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聖王制禮 取法於天地하니 尊卑之禮明이면 則人倫之序正하나니
성왕聖王를 제정할 적에 하늘과 땅에서 법을 취하였으니, 높고 낮은 가 분명하면 인륜의 차례가 바루어집니다.
尊卑者 所以正天地之位 不可亂也니이다
높고 낮음은 하늘과 땅의 자리를 바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어지럽혀서는 안 됩니다.
今定陶共皇太后 共皇后 以定陶共爲號者 母從子, 妻從夫之義也注+共皇太后之號, 爲母從子. 共皇后之號, 爲妻從夫.
지금 정도공황태후定陶共皇太后공황후共皇后정도공定陶共이라 칭호한 것은, 어머니가 아들을 따르고 부인이 남편을 따르는 이니注+공황태후共皇太后의 칭호는 어머니가 자식을 따르는 것이고, 공황후共皇后의 칭호는 부인이 남편을 따르는 것이다.,
欲立官置吏하고 車服 與太皇太后竝 非所以明尊無二上之義也
관청을 세우고 관리를 두며 수레와 의복을 태황태후太皇太后와 똑같이 하는 것은 ‘높임에 두 군주가 없다.[존무이상尊無二上]’는 의리를 밝히는 방법이 아닙니다.
定陶共皇號諡已前定하니 義不得復改니이다
그리고 정도공황定陶共皇의 시호가 이미 예전에 정해져 있으니, 의리상 다시 고칠 수가 없습니다.
父爲士 子爲天子어든 祭以天子하고 其尸服以士服 子無爵父之義 尊父母也注+祭以天子, 養以子道也. 古者祭祀, 必有尸. 尸, 神象也. 上服字, 猶衣也, 謂以士服服其尸也. 父本無爵, 不敢以己爵加之, 嫌於卑之.니이다 爲人後者 爲之子
에 아버지가 가 되고 자식이 천자天子가 된 경우에 천자天子로써 제사하고 그 시동尸童에게 의 의복을 입히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관작을 내리는 가 없어서이니, 이는 부모를 높이는 것입니다.注+② “제이천자祭以天子”는 자식의 로써 봉양하는 것이다. 옛날에 제사에는 반드시 시동尸童이 있었으니, 시동은 의 상징이다. 위의 자는 (입히다)와 같으니, 시동에게 의 의복을 입힘을 말한 것이다. 아버지가 본래 관작이 없으면 아들이 감히 자신의 관작을 아버지에게 가하지 못하니, 이는 아버지를 낮추는 일이 될까 혐의해서이다. 양자[인후人後]가 된 자는 그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爲所後하여 服斬衰三年하고 而降其父母朞하니 明尊本祖而重正統也注+本祖, 謂所後之祖也.니이다
그러므로 양부모를 위해서는 참최斬衰 삼년복三年服을 입고 자기 생부모를 위해서는 기년복朞年服으로 강등하니, 이는 본조本祖를 높이고 정통正統을 중하게 여김을 밝히는 것입니다.注+본조本祖는 양자[소후所後] 간 집안의 할아버지를 이른다.
孝成皇帝聖恩深遠이라 爲共王立後하여 奉承祭祀하여 令共皇으로 長爲一國太祖하여 萬世不毁케하시니 恩義已備注+前稱共王, 後稱共皇, 隨其時之所稱而稱之也. 諸侯之國, 以始封之君, 爲國太祖.니이다
[] 효성황제孝成皇帝성은聖恩이 깊고 큽니다. 그러므로 공왕共王을 위하여 후사를 세워서 제사를 받들게 하여 공황共皇으로 하여금 영원히 한 나라의 태조太祖가 되어 만세에 훼철되지 않게 하셨으니, 은혜와 의리가 이미 구비되었습니다.注+① 앞에서 공왕共王이라 칭하고 뒤에서 공황共皇이라 칭한 것은, 그 당시의 호칭한 바를 따라 칭한 것이다. 제후諸侯의 나라는 처음 봉해진 군주를 나라의 태조太祖로 삼는다.
陛下旣繼體先帝하시고 持重大宗하사 承宗廟天地社稷之祀하시니 義不可復奉定陶共皇祭하여 入其廟니이다
폐하陛下는 이미 선제先帝의 후사가 되고 대종大宗을 지켜 종묘宗廟천지天地, 사직社稷의 제사를 받드시니, 의리상 다시 정도공황定陶共皇의 제사를 받들어 그의 사당에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今欲立廟於京師하고 而使臣下祭之 是無主也 又親盡이면 當毁
이제 경사京師에 사당을 세우고 신하들로 하여금 정도공황定陶共皇에게 제사하게 하려 하면, 이는 제사를 주관할 사람이 없고 또 이 다하면 마땅히 사당을 훼철해야 할 것입니다.
空去一國太祖不墮之祀하고 而就無主當毁不正之禮 非所以尊厚共皇也注+墮, 讀曰隳. 共皇立廟於定陶, 則爲一國太祖之廟, 萬世不毁. 立廟於京師, 則其祭莫適爲主, 又親盡當毁, 而於禮又爲不正也.니이다
부질없이 한 나라의 태조로서 훼철하지 않는 제사를 버리고, 제사를 주관할 사람이 없고 마땅히 훼철해야 할 바르지 못한 에 나아가는 것은, 공황共皇을 높이고 후하게 하는 방법이 아닙니다.”注+(훼철하다)는 로 읽는다. 공황共皇의 사당을 정도定陶에 세우면 한 나라의 태조太祖의 사당이 되어 만세토록 훼철하지 않게 되고, 경사京師에 사당을 세우면 그 제사를 딱히 주관할 사람이 없고 또 이 다하면 마땅히 훼철해야 하니, 에 있어서도 또 바르지 못하다.
由是 浸不合上意注+浸, 漸也.하니라
사단師丹은 이 때문에 점점 의 뜻에 부합하지 못하였다.注+은 점점이다.
有上書言호되 古者 以龜貝爲貨러니 今以錢易之하니 民以故貧이라 宜可改幣注+貝, 海介蟲也, 古者貨貝而寶龜.니이다
[] 마침 어떤 사람이 상서上書하여 “옛날에는 거북껍질과 조개껍질을 화폐로 삼았는데 지금 돈으로 바뀌니, 백성들이 이 때문에 가난합니다. 마땅히 화폐를 바꾸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注+① 조개는 바다의 갑충甲蟲[개충介蟲]이니, 옛날에 조개껍질과 거북껍질을 화폐로 삼았다.
以問丹한대 對言可改니이다
이 이것을 사단師丹에게 물으니, 사단은 대답하기를 “고칠 만합니다.” 하였다.
章下有司議하니 皆以爲 行錢以來久하여 難卒變易注+卒, 讀曰猝.이라하다
이 글을 유사有司에게 회부하여 의논하게 하니, 모두 말하기를 “돈을 유통시킨 지가 오래되어서 갑자기 바꾸기 어렵습니다.” 하였다.注+(갑자기)은 로 읽는다.
老人이라 忘其前語하여 復從公卿議하고 又使吏書奏러니 吏私寫其草하다
사단은 노인이어서 예전에 한 말을 잊어버리고는 다시 공경公卿들의 의논을 따랐으며, 또 부하 관리를 시켜 아뢰는 글을 쓰게 하였는데, 그 아전이 자기 마음대로 초고를 베껴 써서 〈사람들에게 보였다.〉
丁, 傅子弟聞之하고 使人上書하여 告丹上封事 行道人 徧持其書注+丁‧傅, 謂丁姬‧傅太后也.라한대
정희丁姬부태후傅太后의 자제들이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상서上書하여 사단이 봉사封事를 올릴 적에 이것을 공개公開하여 길 가는 사람들도 모두 봉사한 글을 갖고 있다고 고발하게 하자注+정희丁姬부태후傅太后를 이른다.,
事下廷尉하니 劾丹大不敬하다
이 일을 정위廷尉에게 회부하니, 정위는 사단이 크게 불경죄를 지었다고 탄핵하였다.
博士申咸, 炔欽 上書言注+炔, 音桂, 姓也.호되
[] 박사博士신함申咸계흠炔欽(계흠)이 상서上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注+는 음이 이니, 이다.
經行無比 發憤懣하여 奏封事할새 不及深思하여 使主簿書하니 漏泄之過 不在丹이어늘 以此貶黜하면 恐不厭衆心注+經行, 謂經術‧德行也. 漢三公府, 皆有主簿, 錄省衆事.일까하노이다
사단師丹경술經術덕행德行이 비견할 자가 없습니다. 울분을 토하여 봉사封事를 올릴 적에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서 주부主簿로 하여금 쓰게 하였으니, 봉사封事를 누설한 잘못은 사단에게 있지 않은데 이것을 가지고 폄하하여 내치신다면, 여러 사람의 마음에 만족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注+② “경행經行”은 경술經術덕행德行을 이른다. 나라의 삼공三公관부官府에는 모두 주부主簿가 있어서 여러 가지 일을 살피고 기록하였다.
貶咸, 欽秩各二等注+博士, 秩比六百石, 貶二等, 則比四百石.하고 遂策免丹曰 朕惟君位尊任重호되 懷諼迷國하여 進退違命하고 反覆異言하니 甚爲君恥之注+爲, 去聲, 下爲賢同.하노라 以君嘗託傅位일새 未忍考于理注+嘗託傅位, 謂嘗傅上於東也. 理, 理官也, 謂廷尉也, 言未忍召致廷尉而考問之也. 一說 “理, 法也, 未忍考致于法也.”하노니 其上大司空高樂侯印綬하고 罷歸注+恩澤侯表 “高樂侯, 國於東海.”하라
이에 은 신함과 계흠의 을 각각 두 등급씩 낮추고注+박사博士이니, 두 등급을 폄하하면 비사백석比四百石이다., 마침내 책서策書를 내려 사단을 면직하며 말하기를 “짐이 생각하건대 그대는 지위가 높고 임무가 막중한데, 속임수를 품고 나라를 혼미하게 하여 나아가고 물러감에 황명皇命을 어기고 번복하여 다른 말을 하였으니, 내 심히 그대를 위하여 부끄럽게 여기노라.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의 “위현爲賢”도 같다. 그대가 일찍이 사부師傅의 지위에 있었으므로 내 차마 법관(정위廷尉)에게 신문하게 하지 못하니注+⑤ “상탁부위嘗託傅位”는 일찍이 동궁東宮에서 사부師傅로 있었음을 이른다. 이관理官으로 정위廷尉를 이르니, 차마 정위에 송치해서 신문하지 못함을 말한다. 일설에 “는 법이니, 차마 법조문에 의해 불러다가 신문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다., 대사공大司空고악후高樂侯인수印綬를 바치고 사직하고 돌아가라.” 하였다.注+⑥ 《한서漢書》 〈외척은택후표外戚恩澤侯表〉에 “고악후高樂侯동해東海에 도읍했다.” 하였다.
尙書令唐林 上疏曰
[] 상서령尙書令 당림唐林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竊見免大司空丹策書하니 泰深痛切이니이다 君子作文 爲賢者諱하나니
“삼가 대사공大司空 사단師丹을 면직한 책서策書를 살펴보니, 너무 통절痛切하였습니다. 군자君子는 글을 지을 적에 현자賢者를 위하여 숨기는 법입니다.
經爲世儒宗하고 德爲國黃耉注+經爲世儒宗, 言經學爲當世儒者所宗也. 黃耇, 老人之稱也. 黃, 謂白髮落盡, 更生黃者也. 耇, 老人面凍梨色, 如浮垢也.하여 親傅聖躬하여 位在三公하니
사단은 경학經學이 온 세상 유자儒者들의 종사宗師가 되고 덕행德行은 나라의 원로[황구黃耉]가 되어서注+① “경위세유종經爲世儒宗”은 경학經學이 당세 유자儒者들의 존중을 받았음을 말한 것이다. “황구黃耇”는 노인老人의 칭호이니, 은 백발이 모두 빠지고 다시 누런 털이 남을 말한 것이요, 는 노인의 얼굴이 언 배의 껍질 색[동리색凍梨色]이어서 마치 때가 떠 있는 듯한 것이다., 친히 성상聖上을 가르쳐 지위가 삼공三公에 있습니다.
所坐者微어늘 免爵泰重이라
연루된 죄는 작은데 관작을 면직하시니, 그 벌이 너무 무겁습니다.
識者咸以爲宜復丹邑爵하여 使奉朝請이라하니 唯陛下裁之하소서
식자들이 모두 ‘마땅히 사단의 봉읍과 관작을 회복해서 그로 하여금 ’라고 말하니, 부디 폐하께서는 헤아리소서.”
詔賜丹爵關內侯하다
이에 조령詔令을 내려 사단에게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하사하였다.
冬十月 以朱博爲大司空하다
[] 겨울 10월에 주박朱博대사공大司空으로 삼았다.
[] 중산왕中山王태후太后풍씨馮氏와 그의 아우인 의향후宜鄕侯 풍삼馮參이 모두 자살하였다.
中山王箕子 幼有眚病이어늘 祖母馮太后 自養視할새 數禱祠解注+箕子, 中山孝王興之子. 眚, 所景切, 災眚之眚, 謂妖病也. 解, 爲解釋禳除之義, 謂頻數禱祠, 祈病除也.하다
[] 중산왕中山王 유기자劉箕子는 어려서 요망한 병[생병眚病]이 있었는데, 조모祖母풍태후馮太后가 직접 보살펴 양육할 적에 에게 자주 기도하고 제사하여 병이 제거되기를 기원하였다.注+기자箕子중산효왕中山孝王 유흥劉興의 아들이다. 소경所景이니, 요망한 병을 이른다. 는 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제사하여 재앙을 없애는 뜻이니, 〈“수도사해數禱祠解”는〉 자주 에게 기도하고 제사하여 병이 낫기를 기원함을 이른다.
遣中郞謁者張由하여 將醫治之注+灌謁者郞中, 比三百石, 掌賓贊受事及上章報問. 中郞謁者, 蓋卽灌謁者郞中也.하니
중랑알자中郞謁者 장유張由를 보내어 의원을 데리고 가서 중산왕中山王의 병을 치료하게 하였다.注+관알자낭중灌謁者郞中비삼백석比三百石이니, 이 일을 받는 것과 글을 올려 보고하고 묻는 것을 관장하였다. 중랑알자中郞謁者는 바로 관알자낭중灌謁者郞中이다.
由素有狂易病注+狂易者, 狂而變易常性也.이라 病發西歸하여 因誣馮太后祝詛上及傅太后注+通鑑 “西歸長安, 尙書簿責由擅去狀. 由恐, 因誣言中山太后祝詛上及傅太后.”하다
장유는 평소 광역병狂易病(정신착란증)을 앓았는데注+③ “광역狂易”은 미쳐서 평상시의 성품이 바뀌는 것이다., 마침 병이 발작하여 서쪽 장안長安으로 돌아와서는, 인하여 풍태후가 부태후傅太后를 저주했다고 모함하였다.注+④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서쪽 장안長安으로 돌아오자, 상서尙書가 문서로 장유張由에게 제멋대로 떠난 이유를 책망하였다. 장유는 두려운 나머지 중산태후中山太后부태후傅太后를 저주했다고 거짓말하였다.”라고 하였다.
傅太后與馮太后 竝事元帝하여 爲倢伃러니
[] 처음에 부태후傅太后풍태후馮太后와 함께 원제元帝를 섬겨서 첩여倢伃(첩여)가 되었었는데,
嘗從幸虎圈할새 逸出攀檻하니 傅倢伃等 皆驚走로되 馮倢伃直前當熊而立이라
일찍이 원제元帝를 따라 동물원인 호권虎圈에 갔을 적에 곰이 우리를 뛰쳐나와 궁전의 난간을 타고 오르니, 부첩여傅倢伃 등은 모두 놀라 달아났으나, 풍첩여馮倢伃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 곰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問之한대 對曰 猛獸得人而止하나니 妾恐熊至御坐 以身當之하니이다
이 그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맹수는 사람을 만나면 멈춥니다. 첩은 곰이 어좌御座에까지 이를까 염려하여 몸으로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였다.
帝嗟歎하고 倍敬重焉하니 傅倢伃慙하여 由是有隙하여 常追怨之러라
원제元帝는 크게 감탄하고는 그녀를 갑절로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니, 부첩여가 부끄러워하여 이 때문에 틈이 생겨서 항상 풍첩여를 원망하였다.
因是하여 遣御史丁玄하여 案驗數十日호되 無所得이라
[] 〈부태후傅太后가〉 장유張由의 무고로 인하여 어사御史 정현丁玄을 보내어 〈풍태후馮太后를〉 수십 일 동안 조사하게 하였으나, 찾아낸 바가 없었다.
更使中謁者令史立으로 治之注+中宮謁者令, 主報中章, 宦者爲之. 史立, 姓名.한대 受傅太后指하고 治馮太后女弟弟婦하니 死者數十人注+女弟弟婦, 通鑑 作女弟習及弟婦君之.이라
다시 중알자령中謁者令 사입史立을 시켜 치죄하게 하였는데注+중궁알자령中宮謁者令은 궁중의 글을 보고하는 일을 주관하니, 환관宦官이 담당하였다. 사입史立은 사람의 성명이다., 사립이 부태후의 지시를 받고 풍태후馮太后의 여동생[여제女弟]과 아우의 부인을 치죄하니, 죽은 자가 수십 명이었다.注+② “여제제부女弟弟婦”는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여동생인 풍습馮習과 아우의 부인인 군지君之’로 되어 있다.
誣奏云 祝詛하여 謀殺上하고 立中山王이라하여
사립이 무함誣陷하여 아뢰기를 “〈풍태후가〉 저주하여 을 시해하고 중산왕中山王을 세울 것을 모의했습니다.”라고 하였다.
責問馮太后하니 無服辭어늘 立曰 熊之上殿 何其勇이러니 今何怯也
〈이후 사립이〉 풍태후에게 꾸짖으며 물었는데, 풍태후가 자복自服하는 말이 없자, 사립이 말하기를 “곰이 궁전의 난간을 타고 올랐을 적에는 그리도 용감하더니, 지금은 어찌하여 겁을 먹습니까? ” 하였다.
太后還謂左右호되 此乃中語前世事 吏何用知之리오 欲陷我效也라하고 乃飮藥自殺注+中語, 謂宮中之言語也. 馮太后謂當熊之事, 外人不知, 此乃宮中之言語也. 效, 徵驗也.하다
풍태후는 돌아와서 좌우에 이르기를 “이것은 바로 궁궐 안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지난날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옥리가 어떻게 이 일을 아는가. 이는 나를 모함하려는 증거이다.” 하고는, 마침내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注+③ “중어中語”는 궁궐 안의 이야기를 이른다. 풍태후馮太后는 “곰을 가로막은 일을 궁궐 밖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니, 이는 바로 궁궐 안의 이야기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는 증거이다.
弟宜鄕侯參 召詣廷尉한대 亦自殺하다
아우인 의향후宜鄕侯 풍삼馮參정위廷尉에게 불려오게 되자, 역시 자살하였다.
爲人矜嚴하여 好修容儀하니 以嚴見憚하여 不得近侍帷幄이나
[] 풍삼馮參은 사람됨이 장엄하고 행동거지를 잘 단속하니, 엄숙하다는 이유로 황제에게 두려움을 받아서 유악帷幄에서 황제를 가까이 모시지 못하였으나
以王舅 封侯하여 奉朝請하니 五侯皆敬憚之러라
중산왕中山王의 외숙으로 에 봉해져서 조청朝請을 받들게 하니, 왕씨王氏오후五侯가 모두 존경하고 두려워하였다.
翟方進 謂參호되 宜少詘하라호되
적방진翟方進이 풍삼에게 이르기를 “마땅히 다소 자신을 굽혀야 합니다.”라고 하였으나,
終不改其操러니 且死 嘆曰 不敢自惜이로되 傷無以見先人於地下라하니라
풍삼은 끝내 그 조행操行을 바꾸지 않았는데, 임종을 앞두고 탄식하기를 “내 스스로 목숨을 아까워하지는 않으나 선인先人을 지하에서 뵐 수 없는 것을 서글퍼한다.” 하였다.
馮氏死者 十七人이니 衆莫不憐之러라
풍씨馮氏로서 죽은 자가 17명이니, 이들을 가엾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司隷孫寶 奏請覆治한대 傅太后大怒어늘 乃下寶獄하니
[] 사례司隷 손보孫寶가 옥사를 다시 심리할 것을 주청奏請하자, 부태후傅太后가 크게 노하니 이 마침내 손보를 하옥하였다.
尙書僕射唐林 爭之어늘 左遷燉煌魚澤障候注+燉煌效穀縣, 本魚澤障也.하다
상서복야尙書僕射(상서복야) 당림唐林이 간쟁하자, 그를 돈황燉煌어택장후魚澤障候로 좌천시켰다.注+돈황燉煌효곡현效穀縣은 본래 어택장魚澤障이었다.
大司馬喜 光祿大夫龔勝 固爭한대
대사마大司馬 부희傅喜광록대부光祿大夫 龔勝龔勝이 굳이 간쟁하자,
爲言太后하여 出寶復官하고 張由 賜爵關內侯하고 史立 遷中太僕하다
태후太后에게 말하여 손보를 출옥시켜 관직을 회복시켜주고, 장유張由에게는 관내후關內侯의 관작을 하사하고, 사입史立중태복中太僕으로 승진시켰다.
역주
역주1 新城侯……徙遼西 : “이때에 解光이 ‘趙昭儀가 聖朝를 위태롭게 하고 혼란시켰으며 친히 繼嗣를 滅絶하였다.’고 아뢰었으므로 趙欽을 면직시켜 다른 지역으로 옮겼으나 실제는 조흠의 죄가 아니다. 그런데 죄가 있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조흠을 죄준 것은 바로 趙昭儀를 죄준 것이다.[於是 解光奏趙昭儀傾亂聖朝 親滅繼嗣 故免徙欽 非欽罪也 其書以罪 何 罪欽 所以罪昭儀也歟]” 《書法》
역주2 4월……있었습니다 : 《資治通鑑考異》에 “〈哀帝紀〉에 哀帝가 4월 丙辰日에 즉위하여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다고 하였으니, 傳寫의 오류인 듯하다. 혹자는 즉위한 지 10일 뒤인 丙辰日에 사면령을 내렸다고도 한다.” 하였다.
역주3 (宅)[他] : 저본에는 ‘宅’으로 되어 있으나, 《御批資治通鑑綱目》에 의거하여 ‘他’로 바로잡았다.
역주4 永光 3년 : 漢나라 元帝 8년인 B.C.41년이니, 永光은 元帝 재위시의 두 번째 연호이다.
역주5 어찌……바이겠습니까 : 斗는 1말, 筲는 1말 2되들이의 대나무 그릇을 말하는데, 도량이 좁고 식견이 천박한 신하를 가리킨다. 《論語》 〈子路〉에 “좁고 천박한 사람을 굳이 따질 것이 있겠는가.[斗筲之人何足算也]”라는 孔子의 말씀이 보인다.
역주6 比六百石 : 漢나라의 관제는 봉록으로 그 등급을 나누었다. 당시 이를 秩이라 하였는데, 품계와 비슷하다. 다만 품계는 曹魏 시기 九品中正制가 출현하면서 쓰인다. 漢나라 관직의 서열은 秩 二千石, 千石, 六百石, 四百石, 三百石, 二百石, 百石을 기준으로 하며, 石은 연봉으로 지급된 곡물의 양이나 실제 그 양을 받지 않았다. 또한 二千石이라 해도 中二千石(眞二千石), 二千石, 比二千石으로 구분되었다. 二千石 아래로는 中은 없고, 千石, 比千石, 六百石, 比六百石 등으로 나누어졌다.
역주7 (官)[宮] : 저본에는 ‘官’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宮’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朝請을……한다 : 고대에 제후가 봄에 천자를 朝見하는 것을 朝, 가을에 朝見하는 것을 請이라 하였는바, 정기적으로 조회에 참여하는 것을 ‘조청을 받든다[奉朝請]’라고 하였다. 漢代에는 퇴직한 大臣이나 將軍 또는 황실이나 외척 등이 ‘봉조청’이라는 명칭으로 조회에 참여하였다.
역주9 中山王……皆自殺 : “自殺에 이유를 쓰지 않은 적이 있지 않은데 이유를 쓰지 않은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니, 이유가 없는 것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에 그 잘못을 책임질 자가 있는 것이다.[自殺未有不書故者 不書故 無故也 無故者 必有其故 於是有任其咎者矣]” 《書法》
역주10 災眚의 眚 : 災는 천재지변의 재앙으로 어쩔 수 없이 지은 잘못이고 眚은 모르고 지은 잘못으로 《書經》 〈虞書 舜典〉에 “災와 眚은 풀어주고 사면하라.[災眚肆赦]”라고 보인다.
역주11 賓贊 : 典禮를 거행할 적에 儀式을 인도하는 사람이다.

자치통감강목(6)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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