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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是에 護羌校尉田晏이 坐事論刑이러니 欲立功自效하여 因請王甫하여 求得爲將한대
乃拜晏爲破鮮卑中郞將하니 大臣이 多不同者라 乃召百官議하니 蔡邕이 議曰
自匈奴遁逃
로 鮮卑彊盛
하여 據其故地
注+事見和帝永元五年.하고 稱兵十萬
하니 才力勁健
하여 意智益生
하고
加以關塞不嚴하고 禁網多漏하여 精金良鐵이 皆爲賊有하며 漢人逋逃하여 爲之謀主하고 兵利馬疾이 過於匈奴니이다
今育, 晏이 虛計二載하여 自許有成하니 若禍結兵連이면 豈得中休리오
當復徵發하여 轉運無已하리니 是爲耗竭諸夏하고 幷力蠻夷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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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目】 또 옛날에 선비를 뽑을 적에는 반드시
제후諸侯로 하여금 매년 선비(인재)를 천거하게 하였습니다.
注+≪상서대전尙書大傳≫에 “옛날에 제후諸侯는 천자天子에게 3년에 한 번씩 선비를 천거했다.” 하였다. 효무제孝武帝 때에는
군郡에서
효렴孝廉을 천거하였고 또
현량賢良과
문학文學의 선발이 있었습니다.
이에
명신名臣이 배출되어
문덕文德과
무공武功이 함께 흥성하였습니다.
한漢나라에서 인재를 뽑는 것은 이상의 몇 가지뿐이었습니다.
注+“수로數路”는 효렴孝廉과 현량賢良, 문학文學의 따위를 이른다.
서화書畵와 사부辭賦는 작은 재주이니, 나라를 바로잡고 정사를 다스리는 데에는 별 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폐하陛下께서는 편장篇章에 뜻을 두셔서 겨우 장기와 바둑 대신 소일거리로 삼으시니, 이는 교화敎化하여 선비를 뽑는 근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제생諸生들은 명리名利를 다투어서 서화와 사부를 짓는 자가 솥에 물이 끓듯 기세가 대단합니다. 대구對句와 속어俗語를 사용하여 배우와 유사하거나 혹 표절하여 문장을 이루고서 거짓으로 명성을 차지해도, 모두 발탁되어 관직에 제수되었습니다.
제수한
명命을 다시 거두어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다시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고
주군州郡에서 벼슬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注+≪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는 ‘재在’가 ‘사仕’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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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옛날 효선제孝宣帝는 유생儒生들을 석거관石渠館에 모으고 장제章帝는 학사學士들을 백호관白虎館에 모아서 경서經書의 뜻을 해석하고 의리를 밝혔습니다. 그 일이 매우 훌륭하였으니, 문무文武의 도道는 마땅히 이를 따라야 합니다.
선릉효자宣陵孝子는 허위虛僞의 소인小人으로 본래 골육지친骨肉之親이 아닙니다. 이들은 산릉山陵에 모여서 효자라는 이름을 빌려 칭하니, 의리에 근거한 바가 없고 심지어는 간악한 사람들이 그 가운데에 용납되고 있습니다.
태자太子의 관속官屬은 마땅히 훌륭한 덕德이 있는 자를 잘 가려 뽑아야 하는데, 어찌 한갓 구묘丘墓의 흉악한 사람들을 취한단 말입니까. 그 상서롭지 못함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마땅히 전리田里로 돌려보내 그들이 허위의 소인임을 밝혀야 합니다.”
글을 아뢰자 황제는 마침내 친히
북교北郊에서 제사하여
기氣를 맞이하고
벽옹辟雍의
예禮를 행하였으며, 또
조령詔令을 내려
선릉효자宣陵孝子 중에
사인舍人이 된 자들을 모두
울尉와
승丞으로 바꿔 임명하게 하였다.
注+한漢나라의 현縣에는 승丞과 울尉를 설치하였으니, 승丞은 문서文書를 관장하고 창고倉庫와 옥獄을 맡아 주관하며, 울尉는 도적盜賊을 체포하는 일을 주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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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目】 이보다 앞서 호강교위 전안護羌校尉 田晏이 일에 걸려 논죄論罪를 당하여 형刑을 받게 되었는데, 공功을 세워 스스로 속죄하려고 왕보王甫를 통해 요청하여 장수가 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전안을 파선비중랑장破鮮卑中郞將으로 임명하니, 대신大臣들 중에 찬동하지 않는 자가 많았다. 이에 백관百官을 불러 의논하니, 채옹蔡邕이 다음과 같이 의논을 올렸다.
“
흉노匈奴가 멀리 도망한 뒤로부터
선비鮮卑가 강성해져서 흉노의 옛 지역을 점거하고
注+〈“자흉노둔도自匈奴遁逃……거기고지據其故地”는〉 이 일이 화제 영원和帝 永元 5년(93)에 보인다. 병력이 10만이 된다고 하는데, 병사들의 재능이 날렵하고 강건하여
의기意氣와
지모智謀가 점차 더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관문關門과 변경이 엄격하지 못하고 금망禁網에 소략함이 많아서 좋은 금과 쇠가 모두 적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또 한漢나라 사람이 도망가서 그들의 모주謀主가 되었으며, 병기의 예리함과 말의 신속함이 흉노匈奴보다도 더합니다.
지금 하육夏育과 전안田晏이 근거 없이 두 해를 계산하여 성공이 있을 것이라고 자부하니, 만약 병화兵禍가 이어지고 전란戰亂이 계속되면 어찌 중간에 그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다시 군대를 징발하여 끝없이 군량軍糧을 수송해야 할 것이니, 이는 중국을 고갈되게 하고 오랑캐에게 힘을 더해주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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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目】
요서태수 조포遼西太守 趙苞가 관청에 부임한 뒤에, 사자를 보내 어머니를
요서遼西로 모셔오게 하였는데, 길이
유성柳城을 경유하게 되었다.
注+유성현柳城縣은 요서군遼西郡에 속하였다. 그런데 마침
선비족鮮卑族 10,000여 명이 변방을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는 상황을 만나서, 〈선비족이〉 조포의 어머니를 협박하여 인질로 삼고는 수레에 태우고
요서군遼西郡을 공격하였다.
注+지質(인질)는 음音이 치致이니, “겁질劫質”은 겁박하여 인질로 삼는 것이다.
조포가 출전하여
대진對陣할 적에
注+진陳(군대의 대형隊形)은 진陣으로 읽는다.,
적賊이 어머니를 나오게 하여 조포에게 보여주자, 조포가 슬피 울부짖으며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식이 불초하여 적은 녹봉으로 아침저녁을 봉양하고자 하였는데, 저 때문에 어머니에게 화를 끼치게 될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注+위爲(때문이다)는 거성去聲이다.
예전에는 어머니의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왕(황제)의 신하가 되었으니, 의리상 사사로운 은혜를 돌아보아 충절을 훼손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마땅히 만 번 죽어야 할 뿐이니, 죄를 보상할 길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멀리서 이르기를 “사람은 각각 명命이 있으니, 어찌 나를 돌아보아 충의忠義를 훼손하겠는가. 너는 부디 충의에 힘써라.” 하였다.
조포가 즉시 나와 싸워서 적이 모두 격파되었으나, 그의 어머니는 적에게 살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