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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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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巳年(177)
정사년丁巳年(177)
六年이라 夏四月 大旱, 蝗하다
나라 효령황제 희평孝靈皇帝 熹平 6년이다. 여름 4월에 크게 가뭄이 들고 충해가 있었다.
以旱, 蝗으로 詔令三公하여 條奏長吏苛酷貪汙者하여 罷免之하니 平原相陽球 坐嚴酷하여 徵詣廷尉注+陽, 姓也.러니
】 가뭄과 충해가 있다 하여 조령詔令을 내려서 삼공三公에게 장리長吏 중에 가혹하고 탐욕스러운 자를 조목조목 아뢰어서 파면하게 하니, 평원상 양구平原相 陽球가 너무 엄하고 가혹하다는 죄에 걸려서 정위廷尉에게 불려왔다.注+이다.
帝以球前爲九江太守하여 討賊有功으로 特赦之하고 拜議郞注+球傳 “九江山賊起, 三府上球有理姦才, 拜九江太守. 球到, 設方略, 凶賊殄破.”하다
그러나 황제는 양구가 전에 구강태수九江太守로 있을 적에 산적山賊을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하여, 특별히 사면하고 의랑議郞을 제수하였다.注+후한서後漢書≫ 〈양구전陽球傳〉에 “구강九江에 산적이 일어나자, 삼공부三公府에서는 양구陽球가 간악한 적을 다스리는 재주가 있다고 천거하여 구강태수九江太守를 제수하였다. 양구가 부임하여 방략方略을 마련하니, 흉적들이 괴멸되었다.” 하였다.
鮮卑寇三邊注+鮮卑强盛, 東․西․北三邊皆被寇也.하다
선비鮮卑가 세 변경을 침략하였다.注+선비鮮卑가 강성하여 동쪽, 서쪽, 북쪽의 세 변경이 모두 침략을 당한 것이다.
선릉효자宣陵孝子태자사인太子舍人으로 삼았다.
市賈小民 有相聚爲宣陵孝子者數十人이라 詔皆除太子舍人注+宣陵, 桓帝陵. 百官志 “太子舍人, 秩二百石, 更直宿衛, 如三署郞中.”하다
】 시장에서 장사하는 백성 중에 서로 모여 선릉효자宣陵孝子라고 말하는 자가 수십 명이었다. 이에 조령詔令을 내려 모두 태자사인太子舍人을 제수하였다.注+선릉宣陵환제桓帝이다. ≪후한서後漢書≫ 〈백관지百官志〉에 “태자사인太子舍人이백석二百石이니, 번갈아 숙직宿直하며 시위侍衛하기를 삼서三署낭중郞中과 똑같이 한다.” 하였다.
帝好文學하여 自造皇羲篇五十章하고 引諸生能爲文賦者하여 幷待制鴻都門下하고
】 황제는 문학文學을 좋아하여 스스로 ≪황희편皇羲篇≫ 50을 짓고, 제생諸生 중에 문장과 시부詩賦를 잘하는 자를 데려다가 홍도문鴻都門 아래에서 제명制命이 내리기를 기다리게 하였다.
諸爲尺牘及工書鳥篆者 皆加引召하니 遂至數十人注+尺牘, 木簡, 以書辭賦也, 一尺之長, 故曰尺牘. 鳥篆, 字爲蟲鳥之形.이라
뒤에 또 척독尺牘조전鳥篆의 글씨를 잘 쓰는 자들을 모두 불러다가 만나보니, 마침내 수십 명에 이르렀다.注+척독尺牘목간木簡이니, 사부辭賦를 쓰는 것인데 길이가 한 자이기 때문에 척독尺牘이라 한 것이다. 조전鳥篆은 글자가 벌레와 새의 형상으로 된 것이다.
侍中祭酒樂松, 賈護 多引無行趣勢之徒하여 置其間하여 憙陳閭里小事注+百官志 “侍中有僕射一人. 中興, 轉爲祭酒.” 趣, 七逾切. 憙, 通作喜.하니
시중좨주侍中祭酒악송樂松가호賈護는 행실이 없고 세력을 따르는 무리를 많이 데려다가 그 사이에 두어서 항간의 하찮은 일을 아뢰기를 좋아하니注+후한서後漢書≫ 〈백관지百官志〉에 “시중侍中복야僕射(복야) 1명이 있었는데, 나라가 중흥中興함에 좨주祭酒(좨주)로 바뀌었다.” 하였다. (따르다)는 칠유七逾이다. (좋아하다)는 와 통한다.,
帝甚悅之하여 待以不次之位하고 又久不親行郊廟之禮하다
황제가 매우 기뻐하여 파격적인 지위로 대우하였다. 황제는 또 오랫동안 교묘郊廟를 친히 행하지 않았다.
詔群臣하여 各陳政要어늘 蔡邕 上封事曰 夫迎氣五郊하고 淸廟祭祀하고 養老辟雍 皆帝者之大業이요 祖宗所祗奉也注+續漢書曰 “迎氣五郊之兆, 四方之兆各依其位, 中央之兆在未, 壇皆三尺. 立春之日, 迎春於東郊, 祭靑帝勾芒. 立夏之日, 迎夏於南郊, 祭赤帝祝融, 先立秋十八日, 迎黃靈於中兆, 祭黃帝后土. 立秋之日, 迎秋於西郊, 祭白帝蓐收. 立冬之日, 迎冬於北郊, 祭黑帝玄冥.어늘
】 때마침 조령詔令을 내려 신하들에게 각각 정사의 요점을 아뢰게 하자, 채옹蔡邕봉사封事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교五郊에서 를 맞이하여 제사하고 청묘淸廟(종묘宗廟)에서 제사를 올리고 벽옹辟雍에서 양로養老를 행하는 것은 모두 황제의 큰일이고 조종조祖宗朝에서 공경히 받들어온 것입니다.注+에 “오교五郊(제단祭壇)에서 를 맞이하니, 사방四方는 각각 그 방위에 따르고 중앙中央미방未方(서남西南)에 있는데, 은 모두 3이다. 입춘立春의 날에 동교東郊에서 봄을 맞이하여 청제 구망靑帝 勾芒에게 제사하고, 입하立夏의 날에 남교南郊에서 여름을 맞이하여 적제 축융赤帝 祝融에게 제사하고, 입추立秋의 18일 전에 중조中兆에서 황령黃靈을 맞이하여 황제 후토黃帝 后土에게 제사하고, 입추立秋의 날에 서교西郊에서 가을을 맞이하여 백제 욕수白帝 蓐收에게 제사하고, 입동立冬의 날에 북교北郊에서 겨울을 맞이하여 흑제 현명黑帝 玄冥에게 제사한다.” 하였다.
而有司數以藩國疎喪 宮內産生及吏卒小汙 廢闕不行注+疎喪, 謂疎屬之喪也. 小汙, 謂病及死也.하여 忘禮敬之大하고 任禁忌之書하여 拘信小故하여 以虧大典하니
그런데 유사有司가 자주 번국藩國(제후국)의 먼 친족의 궁내宮內의 출산, 관리와 병졸들의 질병이나 사망을 이유로 제사를 폐하고 행하지 않아서注+소상疎喪”은 소원한 친족의 을 이른다. “소오小汙”는 질병이나 죽음을 이른다. 의 큰 것을 잊고, 금기禁忌하는 책을 따라 작은 변고變故에 얽매이고 지나치게 믿어서 큰 전례典禮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自今齋制 宜如故典注+漢制, 凡齋, 天地七日, 宗廟山川五日, 小祀三日, 齋日內, 有汚染, 解齋, 副倅行禮, 先齋一日, 有汚穢災變, 齋祀如儀.이니이다 國之將興 至言 數聞하여 內知己政하고 外見民情이니 當使抱忠之臣으로 展其狂直이니이다
지금부터는 재계齋戒하는 제도를 마땅히 옛 전례와 같이 해야 합니다.注+나라 제도에, 재계齋戒천지天地에 제사할 적에는 7일, 종묘宗廟산천山川에는 5일, 작은 제사에는 3일이니, 재계하는 날에 나쁜 일이 있으면 재계를 풀고 부관副官이 예를 행하며, 재계하기 하루 전에 나쁜 일과 재변이 있으면 재계하고 제사하기를 의식과 같이 한다. 나라가 장차 흥하려 할 적에는 지극한 말이 자주 진달陳達되어 군주가 안으로 자신의 정사政事득실得失을 알고 밖으로 백성들의 실정實情을 알게 되니, 마땅히 충심忠心을 간직한 신하로 하여금 구애받지 말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又古者取士 必使諸侯歲貢注+尙書大傳 “古者, 諸侯之於天子, 三歲一貢士.”하니이다 孝武之世 郡擧孝廉하고 又有賢良, 文學之選이라
】 또 옛날에 선비를 뽑을 적에는 반드시 제후諸侯로 하여금 매년 선비(인재)를 천거하게 하였습니다.注+상서대전尙書大傳≫에 “옛날에 제후諸侯천자天子에게 3년에 한 번씩 선비를 천거했다.” 하였다. 효무제孝武帝 때에는 에서 효렴孝廉을 천거하였고 또 현량賢良문학文學의 선발이 있었습니다.
於是 名臣輩出하여 文武幷興하니 漢之得人 數路而已注+數路, 謂孝廉․賢良․文學之類也.니이다
이에 명신名臣이 배출되어 문덕文德무공武功이 함께 흥성하였습니다. 나라에서 인재를 뽑는 것은 이상의 몇 가지뿐이었습니다.注+수로數路”는 효렴孝廉현량賢良, 문학文學의 따위를 이른다.
夫書畵辭賦 才之小者 匡國治政 未有其能이라
서화書畵사부辭賦는 작은 재주이니, 나라를 바로잡고 정사를 다스리는 데에는 별 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陛下游意篇章하사 聊代博奕하시니 非以爲敎化取士之本이어늘
그런데 폐하陛下께서는 편장篇章에 뜻을 두셔서 겨우 장기와 바둑 대신 소일거리로 삼으시니, 이는 교화敎化하여 선비를 뽑는 근본이 아닙니다.
而諸生競利하여 作者鼎沸 連偶俗語하여 有類俳優하고 或竊成文하여 虛冒名氏호되 皆見拜擢하니
그런데도 제생諸生들은 명리名利를 다투어서 서화와 사부를 짓는 자가 솥에 물이 끓듯 기세가 대단합니다. 대구對句속어俗語를 사용하여 배우와 유사하거나 혹 표절하여 문장을 이루고서 거짓으로 명성을 차지해도, 모두 발탁되어 관직에 제수되었습니다.
難復收改어니와 但不可復使治民及在州郡注+蔡邕傳, 在作仕.이니이다
제수한 을 다시 거두어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다시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고 주군州郡에서 벼슬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注+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는 ‘’가 ‘’로 되어 있다.
孝宣 會諸儒于石渠하고 章帝集學士於白虎하사 通經釋義하니 其事優大 文武之道 所宜從之니이다
】 옛날 효선제孝宣帝유생儒生들을 석거관石渠館에 모으고 장제章帝학사學士들을 백호관白虎館에 모아서 경서經書의 뜻을 해석하고 의리를 밝혔습니다. 그 일이 매우 훌륭하였으니, 문무文武는 마땅히 이를 따라야 합니다.
宣陵孝子 虛僞小人이요 本非骨肉이라 群聚山陵하여 假名稱孝하니 義無所依하고 至有姦軌之人 通容其中하니이다
선릉효자宣陵孝子허위虛僞소인小人으로 본래 골육지친骨肉之親이 아닙니다. 이들은 산릉山陵에 모여서 효자라는 이름을 빌려 칭하니, 의리에 근거한 바가 없고 심지어는 간악한 사람들이 그 가운데에 용납되고 있습니다.
太子官屬 宜搜選令德이니 豈有但取丘墓凶醜之人이리오 其爲不祥 莫大焉이니 宜遣歸田里하여 以明詐僞니이다
태자太子관속官屬은 마땅히 훌륭한 이 있는 자를 잘 가려 뽑아야 하는데, 어찌 한갓 구묘丘墓의 흉악한 사람들을 취한단 말입니까. 그 상서롭지 못함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마땅히 전리田里로 돌려보내 그들이 허위의 소인임을 밝혀야 합니다.”
書奏 帝乃親迎氣北郊하고 及行辟雍之禮하고 又詔宣陵孝子爲舍人者 悉改爲丞, 尉焉注+漢縣, 置丞․尉. 丞, 署文書, 典知倉獄. 尉, 主盜賊.하다
글을 아뢰자 황제는 마침내 친히 북교北郊에서 제사하여 를 맞이하고 벽옹辟雍를 행하였으며, 또 조령詔令을 내려 선릉효자宣陵孝子 중에 사인舍人이 된 자들을 모두 으로 바꿔 임명하게 하였다.注+나라의 에는 를 설치하였으니, 문서文書를 관장하고 창고倉庫을 맡아 주관하며, 도적盜賊을 체포하는 일을 주관하였다.
秋八月 遣校尉夏育等하여 擊鮮卑러니 敗績하다
】 가을 8월에 교위 하육校尉 夏育 등을 보내 선비鮮卑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크게 패하였다.
護烏桓校尉夏育 上言호되 鮮卑寇邊 自春以來 三十餘發이라 請徵幽州諸郡兵하여 出塞擊之하면 一冬, 二春 必能禽滅이리이다
호오환교위 하육護烏桓校尉 夏育상언上言하기를 “선비鮮卑가 봄부터 30여 차례나 변경을 침략하였습니다. 청컨대 유주幽州 여러 의 병력을 징발하여 변경을 나가 공격하면, 겨울 한 번과 봄 두 번이 지날 사이에 반드시 적을 사로잡아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하였다.
先是 護羌校尉田晏 坐事論刑이러니 欲立功自效하여 因請王甫하여 求得爲將한대
】 이보다 앞서 호강교위 전안護羌校尉 田晏이 일에 걸려 논죄論罪를 당하여 을 받게 되었는데, 을 세워 스스로 속죄하려고 왕보王甫를 통해 요청하여 장수가 되고자 하였다.
乃拜晏爲破鮮卑中郞將하니 大臣 多不同者 乃召百官議하니 蔡邕 議曰
그리하여 전안을 파선비중랑장破鮮卑中郞將으로 임명하니, 대신大臣들 중에 찬동하지 않는 자가 많았다. 이에 백관百官을 불러 의논하니, 채옹蔡邕이 다음과 같이 의논을 올렸다.
自匈奴遁逃 鮮卑彊盛하여 據其故地注+事見和帝永元五年.하고 稱兵十萬하니 才力勁健하여 意智益生하고
흉노匈奴가 멀리 도망한 뒤로부터 선비鮮卑가 강성해져서 흉노의 옛 지역을 점거하고注+〈“자흉노둔도自匈奴遁逃……거기고지據其故地”는〉 이 일이 화제 영원和帝 永元 5년(93)에 보인다. 병력이 10만이 된다고 하는데, 병사들의 재능이 날렵하고 강건하여 의기意氣지모智謀가 점차 더합니다.
加以關塞不嚴하고 禁網多漏하여 精金良鐵 皆爲賊有하며 漢人逋逃하여 爲之謀主하고 兵利馬疾 過於匈奴니이다
게다가 우리의 관문關門과 변경이 엄격하지 못하고 금망禁網에 소략함이 많아서 좋은 금과 쇠가 모두 적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또 나라 사람이 도망가서 그들의 모주謀主가 되었으며, 병기의 예리함과 말의 신속함이 흉노匈奴보다도 더합니다.
今育, 晏 虛計二載하여 自許有成하니 若禍結兵連이면 豈得中休리오
지금 하육夏育전안田晏이 근거 없이 두 해를 계산하여 성공이 있을 것이라고 자부하니, 만약 병화兵禍가 이어지고 전란戰亂이 계속되면 어찌 중간에 그칠 수 있겠습니까.
當復徵發하여 轉運無已하리니 是爲耗竭諸夏하고 幷力蠻夷니이다
마땅히 다시 군대를 징발하여 끝없이 군량軍糧을 수송해야 할 것이니, 이는 중국을 고갈되게 하고 오랑캐에게 힘을 더해주는 것이 됩니다.
夫邊垂之患 手足之注+疥, 瘡也. 搔, 本作瘙, 音噪, 痒也. 中國之困 胸背之瘭疽注+瘭, 卑道切, 疽病也, 疽, 癰也.
】 변경의 폐해는 비유하면 손과 발에 있는 가려운 옴이요注+(옴)는 이다. 는 본래 로 되어 있으니, 로 가려움증이다., 중국中國의 곤궁함은 가슴과 등의 종기입니다.注+비도卑道저병疽病(창독瘡毒)이니, 는 종기이다.
方今郡縣盜賊 尙不能禁이어든 況此醜虜 而可伏乎잇가 天設山河하여 以別內外하니 苟無蹙國之患則可矣
현재 군현郡縣의 도적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 추악한 오랑캐를 굴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강하江河를 만들어서 내외內外를 구별하였으니, 진실로 나라의 영토를 잃는 폐해가 없으면 되는 것입니다.
豈與蟲螘之虜 校往來之數哉注+螘, 與蟻同.리잇가 今乃欲以齊民易醜虜하고 皇威辱外夷하니
어찌 개미와도 같은 오랑캐와 오고 가는 술수術數를 따질 수 있겠습니까.注+(개미)는 와 같다. 그런데 지금 마침내 백성을 추악한 오랑캐와 바꾸고 황제의 위엄으로 오랑캐에게 을 당하고자 하시니,
就如其言이라도 猶已危矣어든 況得失 不可量耶잇가 帝不從하다
만약 그들(하육夏育전안田晏)의 말과 같더라도 너무 위태로운데, 하물며 득실得失을 헤아릴 수 없는 경우이겠습니까.” 그러나 황제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八月 遣育出高柳하고 晏出雲中하여 各將萬騎하여 出塞二千餘里하다
】 8월에 군대를 보내 하육夏育고류高柳에서 출동하고 전안田晏운중雲中에서 출동하여 각각 10,000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변방에서 2,000여 리를 나갔다.
檀石槐命三部大人하여 各率衆逆戰하니 育等 大敗하여 喪其節傳輜重注+傳, 株戀切.하고 各將數十騎犇還하니
선비鮮卑단석괴檀石槐삼부三部(동부東部, 중부中部, 서부西部)의 대인大人에게 명하여 각각 군대를 거느리고 〈하육과 전안의 군대를〉 맞아 싸우게 하니, 하육 등이 크게 패하여 부절符節치중輜重을 잃고注+(관문關門 등을 출입할 때 사용하던 증빙證憑)은 주련株戀이다. 각각 수십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도망해 돌아왔는데,
死者什七八이라 檻車徵下獄하여 贖爲庶人하다
죽은 자가 10에 7, 8이었다. 함거檻車로 불러 하옥下獄하였는데, 하육 등은 속죄贖罪하여 서인庶人이 되었다.
冬十月朔 日食하다
】 겨울 10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地震하다
】 지진이 있었다.
선비鮮卑요서遼西를 침략하자, 태수 조포太守 趙苞가 격파하였다.
遼西太守趙苞到官하여 遣使迎母하여 道經柳城注+柳城縣, 屬遼西郡.이러니 値鮮卑萬餘人 入塞寇鈔하여 劫質苞母하여 載以擊郡注+質, 音致. 劫質, 劫以爲質也.이라
요서태수 조포遼西太守 趙苞가 관청에 부임한 뒤에, 사자를 보내 어머니를 요서遼西로 모셔오게 하였는데, 길이 유성柳城을 경유하게 되었다.注+유성현柳城縣요서군遼西郡에 속하였다. 그런데 마침 선비족鮮卑族 10,000여 명이 변방을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는 상황을 만나서, 〈선비족이〉 조포의 어머니를 협박하여 인질로 삼고는 수레에 태우고 요서군遼西郡을 공격하였다.注+(인질)는 이니, “겁질劫質”은 겁박하여 인질로 삼는 것이다.
苞出戰對陳注+陳, 讀曰陣. 出母示苞한대 苞悲號하고 謂母曰 爲子無狀하여 欲以微祿으로 奉養朝夕이러니 不圖爲母作禍注+爲, 去聲.니이다
조포가 출전하여 대진對陣할 적에注+(군대의 대형隊形)은 으로 읽는다., 이 어머니를 나오게 하여 조포에게 보여주자, 조포가 슬피 울부짖으며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식이 불초하여 적은 녹봉으로 아침저녁을 봉양하고자 하였는데, 저 때문에 어머니에게 화를 끼치게 될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注+(때문이다)는 거성去聲이다.
昔爲母子러니 今爲王臣하니 義不得顧私恩하여 毁忠節이라 唯當萬死 無以塞罪로이다
예전에는 어머니의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왕(황제)의 신하가 되었으니, 의리상 사사로운 은혜를 돌아보아 충절을 훼손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마땅히 만 번 죽어야 할 뿐이니, 죄를 보상할 길이 없습니다.”
母遙謂曰 人各有命하니 何得相顧하여 以虧忠義리오 爾其勉之하라
어머니가 멀리서 이르기를 “사람은 각각 이 있으니, 어찌 나를 돌아보아 충의忠義를 훼손하겠는가. 너는 부디 충의에 힘써라.” 하였다.
苞卽時進戰하여 賊悉摧破호되 其母 爲賊所害하다
조포가 즉시 나와 싸워서 적이 모두 격파되었으나, 그의 어머니는 적에게 살해당하였다.
苞歸葬訖 謂鄕人曰 食祿而避難 非忠也 殺母以全義 非孝也 如是인댄 有何面目立於天下리오하고 遂歐血而死하다
조포趙苞는 돌아가 장례를 마친 다음 고향 사람에게 이르기를 “나라의 祿을 먹으면서 을 피하는 것은 충성이 아니요,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하면서 를 온전히 하는 것은 가 아니다. 이와 같다면 내 무슨 면목으로 천하에서 살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피를 토하고 죽었다.
程子曰 以君城降賊而求生其母 固不可矣어니와 然亦當求所以生母之方이니 奈何不顧而遽戰乎
정자程子(정이程頤)가 다음과 같이 하였다. “임금의 을 가지고 적에게 항복하여 자신의 어머니를 살리려고 해서는 진실로 안 된다. 그러나 또한 마땅히 어머니를 살리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니, 어찌 돌아보지 않고 대번에 싸운단 말인가.
必不得已인댄 身往降之可也 徐庶於此 蓋得之矣注+獻帝建安十三年, 曹操追劉備, 及於當陽之長阪, 徐庶母爲操所獲, 庶辭備曰 “今失老母, 方寸亂矣, 請從此別.” 遂詣操.니라
만일 부득이하다면 자신만 가서 항복하는 것이 옳다. 서서徐庶는 이러한 경우에 잘 대처하였다.”注+헌제 건안獻帝 建安 13년(208)에 조조曹操유비劉備를 추격하여 당양當陽장판長阪에 이르렀는데, 서서徐庶의 어머니가 조조에게 붙잡혔다. 서서가 유비에게 하직인사를 하기를 “지금 노모老母를 잃어서 마음이 어지러우니, 청컨대 이로부터 작별하겠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조조에게로 갔다.
역주
역주1 以宣陵孝子爲太子舍人 : “宣陵孝子는 누구인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백성들이 스스로 이름한 것이다. 스스로 이름하였는데 어찌하여 선릉효자라고 썼는가. 그들이 칭하는 말을 따라 선릉효자라고 칭하였으니, 속임수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太子舍人으로 삼았으니, 그 意義가 없음을 심하게 여긴 것이다.[宣陵孝子 何 市賈小民自名也 自名也 曷爲以爲宣陵孝子書 因其稱而稱之 所以著其誣也 而以爲太子舍人 其無義謂甚矣]다” ≪書法≫
역주2 續漢書 : 晉나라 司馬彪가 撰한 것으로 모두 80권이 있는데 오래전에 逸失되었고 范曄의 ≪後漢書≫에 여덟 종류의 志가 빠져 있었는데 南朝의 宋나라 사람들이 이 책에서 채록하여 志를 보충하였다.
역주3 (瘠)[疥] : 저본에는 ‘瘠’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과 아래 訓義에 의거하여 ‘疥’로 바로잡았다.
역주4 鮮卑寇遼西 太守趙苞破之 : “趙苞가 國事를 급하게 여겨서 마침내 어머니의 목숨을 보전하지 못함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비록 그가 피를 토하고 죽었으나 ≪資治通鑑綱目≫에서 또한 생략하고 쓰지 않았으니, 이는 輕重을 저울질하여 교훈을 보인 것이다. 아, 筆法이 은미하다.[趙苞急於王事 遂至不能全其母 故雖歐血而死 綱目亦略而不書 所以權輕重而示訓也 嗚呼 微矣]” ≪發明≫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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