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賈至南越하니 佗恐하여 頓首謝罪하고 願奉明詔하여 長爲藩臣하여 奉貢職하다
下令國中曰 兩雄不俱立하고 兩賢不竝世하니 漢皇帝는 賢天子라
稱蠻夷大長老夫臣佗
는 昧死再拜上書皇帝陛下
注+大長, 猶言酋長也. 昧死, 秦以爲人臣上書, 當言昧犯死罪而言, 後世遂遵之.하노이다
高皇帝幸賜臣佗璽하여 以爲南越王하시고 孝惠皇帝義不忍絶하사 所賜老夫者甚厚러시니
高后用事
에 別異蠻夷
하여 出令曰 毋與蠻夷越金鐵田器馬牛羊
注+以越爲蠻夷, 故曰蠻夷越.하고 卽予
라도 予牡
하고 毋予牝
注+卽, 就也. 予, 賜也. 毋, 禁止之辭. 言就令予馬牛羊, 亦止令予牡, 而不令予牝, 恐其蕃息也. 이라하시니
老夫處僻
하여 馬牛羊齒已長
注+長, 展兩切. 言馬牛羊皆已老, 不可供祭祀. 蓋祭祀之牲, 貴少壯肥腯, 故下云祭祀不修. 諱言盡絶, 故但云已長.이라 自以祭祀不修
하면 有死罪
라하여 使內史藩, 中尉高, 御史平凡三輩
하여 上書謝過
호대 皆不反
注+南越雖蠻夷, 官名皆用漢藩國之制.하니이다
又風聞父母墳墓已壞削
하고 兄弟宗族已誅論
注+風聞, 謂風聲傳聞也. 誅論者, 以罪論死也.이라하니
吏相與議曰 今內不得振於漢
하고 外亡以自高異
라하여 故更號爲帝
하니 自帝其國
이요 非敢有害於天下
注+振, 起也. 言爲漢所貶削, 不得振起也.어늘
高皇后聞之하시고 大怒하여 削去南越之籍하여 使使不通하니
然
이나 夙興夜寐
하여 寢不安席
하고 食不甘味
하며 目不視靡曼之色
하고 耳不聽鐘鼓之音者
는 以不得事漢也
注+靡, 音美, 細也. 曼, 音萬, 澤也. 靡曼, 美色也.일새니이다
今陛下幸憐하사 復故號하고 通使漢如故하시니 老夫死라도 骨不腐라
改號
하여 不敢爲帝矣
로리이다賈誼
目
[目] 진평陳平이 병으로 사양하며 말하기를, “고조高祖 때에는 주발周勃의 공功이 신臣의 공功만 못했었는데, 여러 여씨呂氏를 주벌하고서는 신의 공功이 또한 주발의 공功만 못하니, 우승상右丞相을 주발에게 사양하기를 원합니다.” 하니, 그의 말을 따랐다.
주발이
조회朝會가
파罷하여 종종걸음으로 나갈 적에 매우 득의양양하였는데,
注+〈“의득심意得甚”은〉 매우 자득自得(만족)해 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상上은 그를 공손히
예우禮遇하고 항상 눈여겨 배웅하였다.
注+〈“상목송지常目送之”는〉 그가 나갈 때까지 눈여겨보는 것이다.
낭중郞中 원앙袁盎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주승상周丞相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니, 상上이 말하기를, “사직社稷을 보호하는 중신重臣이다.” 하였다.
“주승상周丞相은 공신功臣이지 사직을 보호하는 중신이 아닙니다.
사직을 보호하는 중신은 임금이 보존되면 함께 보존되고 임금이 망하면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注+〈“주재여재主在與在 주망여망主亡與亡”은〉 목숨을 바쳐 군주를 위해서 군주와 존망存亡을 함께함을 말한다.
여씨가 정권을 잡았을 적에
유씨劉氏가 쇠약하여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당시에 주승상은 병권을 잡고 있었는데도 바로잡지 못하였습니다.
注+“본병병本兵柄”은 병권兵權의 근본을 쥐고 있음을 이른다.
여후呂后가 붕崩하자 대신大臣들이 함께 여러 여씨들을 토벌할 적에 주승상이 마침 공功을 이룩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승상은 군주에게 교만한 기색이 있는 듯하고
注+여如는 비슷함이다.폐하陛下께서는 겸양하시어 신하와 군주 간에 예를 잃으시니, 삼가 폐하를 위해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뒤로 조회할 때에
상上은 점점 더 엄숙해졌고 주승상은 점점 더 두려워하였다.
注+장莊은 엄숙嚴肅함이다.
目
[目]
유사有司가 태자를 일찍 세울 것을 청하자,
상上이 말하기를, “
짐朕이 이미 부덕하니, 비록
천하天下의 어질고 성스럽고
덕徳이 있는 사람을 널리 구해서 천하를
선양禪讓하지는 못할망정
注+선禪(물려주다)은 거성去聲이다. 태자를 미리 세우자고 말하니, 이는 나의 부덕을 보태는 것이다.
천천히 하라.”
注+중重은 직용直用의 절切이니, 증익增益(더 보탬)하는 것이다. 기其는 발성사發聲辭이다. “안지安之”는 서서히 하는 모양이니, 추진하는 데 급급히 해서는 안 됨을 말한다. 하였다.
유사가 아뢰기를, “태자를 미리 세우는 것은 종묘와 사직을 중히 여기고 천하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上이 말하기를, “
초왕楚王(
유문劉文)은 숙부인데
춘추春秋(연세)가 높아서 천하의
의리義理를 겪은 것이 많고 국가를 다스리는 체통에 밝으며,
注+열閱(겪다)은 경력更歷과 같다.
오왕吳王(
유비劉濞)은
형兄인데
덕德을 좋아하고
회남왕淮南王(
유장劉長)은 아우인데 모두
덕徳을 가지고 짐을 보좌하니, 어찌 기쁘지 않은가.
注+《사기史記》 〈효문본기孝文本紀〉에는 개皆자가 없다. 배陪는 보좌한다는 뜻이다.
지금 이 중에서 선발하지 않고 반드시 아들에게
전위傳位하라고 말하니,
注+〈“필자必子”는〉 반드시 자식에게 전위傳位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하면 사람들이
짐朕에 대해 어질고 덕이 있는 자를 잊어버리고 오로지 자식을 세우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니, 이는 천하를 걱정하는 방도가 아니다.” 하였다.
유사가 굳이 청하기를, “옛날에 은殷나라와 주周나라가 모두 천여 년 동안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편안했던 것은 이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니, 반드시 아들로 후사를 세우는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습니다.
고제高帝께서 천하天下를 평정하여 태조太祖가 되셨으니, 자손子孫이 후사가 되어 대대로 끊이지 않아야 됩니다.
이제 마땅히 세워야 할
적자嫡子를 버리고
제후諸侯와
종실宗室에서 다시 선발하는 것은 고제의 뜻이 아니니, 다시 의논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注+석釋은 버린다는 뜻이다. “의건宜建”은 황제의 지위를 계승할 적자를 이른다. “갱의불의更議不宜”는 다시 의논해서는 안 됨을 이른다.
아들이신 유계劉啓가 가장 나이가 많고 순후純厚하고 인자仁慈하니, 세워서 태자로 삼을 것을 청합니다.” 하니, 상上이 그제야 허락하였다.
目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문제文帝가 대代나라에서 올 적에 공로가 있었던 자에 대한 논공論功을 시행한 것이 봄, 여름, 가을의 세 계절이 지난 뒤에 있었고 또 후侯로 봉한 자가 겨우 송창宋昌 한 사람이었으니, 이는 후세後世의 모범이 될 만하다.
후세에 번왕藩王(제후왕)으로 있다가 들어와 대통大統을 이은 자가 있으면 옛 저택에서 함께 있었던 무리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데 급급汲汲해서 매번 융성한 은혜를 더해주었으니, 이것은 천하에 자신의 마음이 넓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
目
[目] 황제가 국가의 사업을 더욱 분명히 익혔다.
注+“명습明習”은 자세히 살피고 되풀이하여 익히는 것이다.
조정에
임어臨御하여
우승상右丞相 주발周勃에게 묻기를,
注+조朝는 조정에 임하는 것이다. “
천하天下에서 1년에
옥사獄事를 판결하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하였는데, 주발이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또다시 묻기를, “1년에 전곡錢穀을 출입出入하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하였는데, 주발이 또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고는 황공하고 부끄러워 식은땀이 나서 등을 적셨다.
상上이 좌승상左丞相 진평陳平에게 물으니, 진평은 대답하기를, “주관主管하는 자가 따로 있습니다.” 하였다.
상上이 묻기를, “누구를 이르는가?” 하니, 진평이 대답하기를, “
폐하陛下께서
옥사獄事를 판결하는 것에 대해 물으시려면
정위廷尉에게 요구하시고,
전곡錢穀에 대해 물으시려면
치속내사治粟內史에게 요구하소서.”
注+치속내사治粟內史는 진秦나라의 관직이니, 곡식穀食을 빌려주는 일을 관장하였다. 하였다.
상上이 묻기를, “그렇다면 당신이 주관하는 것은 무슨 일이오?” 하니,
진평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 신이 노둔하고 재주가 없는 것을 알지 못하시고
재상宰相을 맡기셨으니,
注+“노하駑下”는 노둔하고 재주가 없는 말[마馬]이니, 자신의 불초不肖함을 스스로 여기에 비유한 것이다. 무릇 “대죄待罪”라고 말한 것은 참으로 죄가 있는 것이 아니요, 신하가 겸사謙辭로 하는 말이니, 사령使令에 걸맞지 못해서 죄과罪過를 면할 수 없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재상은 위로
천자天子를 보좌하여
음양陰陽을 다스리고
사시四時에 순응하며, 아래로
만물萬物의 마땅함을 이루어주고
밖으로 사이四夷와 제후諸侯를 진무鎭撫하며, 안으로 백성百姓을 친히 하여 의지하게 하고, 경대부卿大夫들에게 각기 그 직임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니, 황제가 마침내 칭찬하였다.
目
[目] 주발周勃이 크게 부끄러워하고 나와서 진평陳平을 꾸짖기를, “그대는 어찌 평소 나에게 대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 하니, 진평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그 지위에 있으면서 그 임무를 모르십니까?
또 폐하陛下께서 만일 장안長安에 있는 도적盜賊의 수數를 물어보시면 그대는 억지로 대답하고자 하십니까?” 하였다.
이에 주발은 자신의 능력이 진평보다 크게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어떤 사람이 주발을 설득하기를, “그대는 이미 여러 여씨呂氏를 주벌하고 대왕代王을 세워 위세威勢가 천하天下에 진동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존귀한 자리에 있으면 화禍가 몸에 미칠 것입니다.” 하니, 주발 또한 스스로 위태롭게 여겨서 마침내 병을 이유로 면직免職되니, 진평이 혼자서 승상丞相이 되었다.
目
[目]
황제皇帝가 이에
진정眞定에 있는
조타趙佗의 부모 무덤을 위하여 지키는
읍邑을 두어
세시歲時에 제사를 받들게 하고,
注+위爲(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친親은 부모父母를 이른다. 그의 형제를 불러 물건을 후하게 하사하였다.
그리고 다시 육가陸賈를 남월南越에 사신 보내어서 조타에게 다음과 같은 조서詔書를 내려주었다.
“
짐朕은
고황제高皇帝 측실側室의 아들로
注+〈“측실지자側室之子”는〉 본처가 낳은 적자嫡子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경기京畿 밖에 버려져
대代나라에서 북쪽의
번신藩臣으로 있었으니, 길이 아득히 멀며 어둡고 우둔해서 편지를 보내지 못하였소.
注+〈“미상치서未嘗致書”는〉 월越과 사신을 왕래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고황제께서 돌아가시고
효혜황제孝惠皇帝께서 세상을 떠나시니,
注+즉卽(떠나다)은 취就이니, “취세就世”는 죽음을 이른다.고후高后께서 친히
정사政事를 다스리셨지만 불행히도 병환이 드시자 여러
여씨呂氏들이
변란變亂을 일으켰소.
그런데
공신功臣들의 힘에 의지해서 모두 토벌하니, 짐은
왕王,
후侯,
이吏가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황제가 되었소.
注+“불석不釋”은 황제의 자리를 사양辭讓하였으나 내버려두지(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근자에 듣건대, 왕이 장군將軍 융여후隆慮侯(주조周竈)에게 편지를 보내어 ‘친형제를 찾고 장사長沙의 두 장군將軍을 파罷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하니,
짐은 왕의 편지에 따라
장군將軍 박양후博陽侯(
주취周聚)를
파罷하고
注+여후呂后 7년에 조타趙佗가 반란을 일으켜 장사長沙를 공격하였기 때문에 두 장군將軍을 파견하여 장사에 주둔해서 대비하게 한 것이다. 두 장군將軍은 융여후隆慮侯와 박양후博陽侯 주취周聚이다. 혹자는 “《사기史記》 〈공신표功臣表〉에 박양후博陽侯 진비陳濞가 있으니, 이때에 장군將軍이 되었을 것이다.” 하였다.진정眞定에 있는 친형제에게는 이미 사람을 보내어 문안하고
선인先人의 무덤을 잘 관리하게 하였소.
이전에 듣건대, 왕이 변방에서 군대를 일으켜 끊임없이 노략질을 하는 바람에
장사長沙 지방은 이를 괴롭게 생각하였고
남군南郡은 더욱 심하였다고 하니, 아무리 왕의 나라라고 하더라도 어찌 홀로 이로웠겠소.
注+전투戰鬪가 벌어지면 남월南越에도 이익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필시 사졸士卒을 많이 죽이고 훌륭한 장리將吏를 다치게 해서 다른 사람의 아내를 과부로 만들고 다른 사람의 자식을 고아孤兒로 만들고 다른 사람의 부모를 외로운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니, 하나를 얻고 열을 잃는 일을 짐은 차마 하지 못하겠소.
내가 왕의 땅을 얻더라도 더 큰 나라가 될 수 없고 왕의 재물을 얻더라도 더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없으니,
복령服嶺 이남은 왕이 스스로 다스리시오.
注+“복령이남服領以南”은 의 밖을 이른다.
하지만 왕의
칭호稱號를
제帝라 하니 두
황제皇帝가 나란히 서서 1
승乘의
사신使臣도 길을 통해 왕래하지 않는다면 이는 다투는 것이니, 다투면서 사양하지 않는 것은
인자仁者가 하지 않는 일이오.
注+무亡(없다)는 무無로 읽는다. 승乘(탈것)과 사使(사신)는 모두 거성去聲이다. “망일승지사亡一乘之使(1승乘의 사신使臣도 없다.)”는 한 명의 사자使者도 파견하여 보내지 않음을 이른다.
원컨대 왕과 예전의 나쁜 감정은 함께 버리고 이제부터는 옛날처럼 사신을 서로 파견하기를 바라오.”
注+피차彼此 함께 나쁜 감정을 버리기 때문에 분分이라고 말한 것이다. 지금부터 사신을 왕래하여 끝까지 갈 것이기 때문에 “종금이래終今以來”라고 말한 것이다.
目
[目] 육가陸賈가 남월南越에 이르니, 조타趙佗가 두려워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謝罪하고 밝은 조서詔書를 받들어 길이 번신藩臣이 되어 공직貢職을 받들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국중國中에 영令을 내리기를, “두 영웅은 함께 설 수 없고 두 현인은 나란히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니, 한漢나라의 황제는 어진 천자天子이다.
나는 이제 황제의 제도인 황옥黃屋과 좌독左纛을 없앤다.” 하고, 인하여 편지를 써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만이蠻夷의
추장酋長이며
노부老夫인
신臣 조타趙佗는 죽음을 무릅쓰고 두 번 절하여
황제皇帝 폐하陛下께 글을 올립니다.
注+“대장大長”은 추장酋長이라는 말과 같다. “매사昧死”는, 진秦나라는 신하가 되어 글을 올릴 적에 “외람되이 죽을죄를 범하며 아룁니다.”라고 말해야 했는데, 후세에 마침내 그 예를 따른 것이다.
고황제高皇帝께서 다행히 신 조타에게 옥새玉璽(옥쇄)를 하사하여 남월왕南越王으로 삼으셨고, 효혜황제孝惠皇帝는 의리상 차마 끊지 못하여 노부에게 하사한 물건이 매우 후하셨는데,
고후高后께서 권력을 행사하실 적에
만이蠻夷를 특별히 차별하여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
만이蠻夷인
월越에는
금철金鐵,
전기田器(농기구), 말‧소‧양을 주지 말고,
注+월越을 만이蠻夷라고 했기 때문에 만이蠻夷인 월越이라고 한 것이다. 가령 주더라도 수컷을 주고 암컷을 주지 말라.’
注+즉卽(가령)은 취就이다. 여予는 주는 것이다. 무毋는 금지禁止하는 말이다. 가령 말, 소, 양을 주더라도 오직 수컷만 주고 암컷은 주지 못하게 하라고 말한 것이니, 번식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하셨습니다.
이에 노부는
궁벽窮僻한 곳에 살아서 말‧소‧양이 이미 늙은 까닭에
注+장長(늙다)은 전량展兩의 절切이니, 〈“마우양치이장馬牛羊齒已長”는〉 말‧소‧양이 모두 이미 늙어서 제사祭祀에 바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제사祭祀에 쓰는 희생犧牲은 어리고 건장하고 살찐 것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 글 아래에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못한다.[제사불수祭祀不修]”고 말한 것이다. 모두 죽었다고 말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단지 “이미 늙었다.[이장已長]”고 한 것이다. 스스로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못하면 죽을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내사內史 번藩,
중위中尉 고高,
어사御史 평平 등 무릇 세 사람으로 하여금 글을 올려 사과하게 하였으나 모두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注+남월南越이 비록 만이蠻夷이지만 관명官名은 모두 한漢나라 번국藩國의 제도制度를 사용하였다.
또
풍문風聞에
부모父母의
분묘墳墓가 이미 무너지고
형제兄弟와
종족宗族이 이미 논죄하여 죽었다고 하니,
注+“풍문風聞”은 바람결에 전해 들음을 이른다. “주론誅論”은 사형死刑으로 논죄한 것이다.
관리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지금 안으로는
한漢나라에
폄삭貶削되어 떨쳐 일어날 수가 없고, 밖으로는 스스로 높고 남다르게 내세울 것이 없다.’라고 해서 일부러 칭호를 바꾸어
제帝라고 칭하였으니, 스스로 자기 나라에서 황제가 되었고 감히
천하天下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注+진振은 일어나는 것이다. 〈“부득진어한不得振於漢”은〉 한漢나라에 폄삭貶削되어 진기振起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고황후高皇后께서 듣고 크게 노하여 남월왕南越王으로 봉한 문적文籍을 삭제해서 사신을 서로 왕래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노부는 삼가 장사왕長沙王이 신을 참소한 것이라 의심하였기 때문에 군대를 동원하여 그 변방을 정벌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잠을 자도 잠자리가 편안하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음식이 맛있지 않으며, 눈에는 아름다운 여색이 보이지 않고 귀에는
종고鐘鼓의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한漢나라를 섬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注+미靡는 음이 미美이니 가늘다는 뜻이고, 만曼은 음이 만萬으로 윤택하다는 뜻이니, “미만靡曼”은 아름다운 여색이다.
이제 폐하께서 다행히 가련하게 여겨서 옛 칭호를 회복시켜주시고 옛날처럼 한漢나라와 사신을 서로 왕래하게 하시니, 노부는 죽더라도 뼈는 썩지 않을 것입니다.
칭호를 바꾸어 감히 제帝라고 칭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