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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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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人事
18. 인사人事
凡鄕里世系不能悉記, 惟賢者則著其略.
무릇 향리鄕里세계世系는 모두 기록할 수 없고 오직 현자賢者만 간략하게 드러내었다.
凡諸臣之卒, 惟宰相悉書.
무릇 여러 신하들의 죽음은 오직 재상宰相만 모두 기록하였다.
賢者, 曰某官某爵姓名卒, 而注其諡注+說見崩葬例.. 常人, 則不爵不姓不諡注+姓未見者著之..
재상 가운데 현자賢者는 “모관某官 모작某爵 성명姓名하였다.[某官某爵姓名卒]”라 하며 그 시호諡號를 주석으로 달았고注+① 관련 사항은 붕장崩葬범례凡例에 보인다., 상인常人작위爵位시호諡號를 기록하지 않았다.注+이 나타나지 않은 자는 드러내었다.
凡賢臣特書, 依賢相例, 官爵惟所有.
무릇 현신賢臣은 특별히 기록하였는데 현상賢相범례凡例를 따라 관작官爵만 두었다.
處士曰處士. 衆人則因事而見, 曰某官姓名卒而已,
처사處士는 ‘처사處士’라 하였고, 중인衆人은 사안에 따라 나타내었는데 “모관某官 성명姓名하였다.[某官姓名卒]”라고만 하였다.
無官則爵, 無爵則姓名而已.
관직官職이 없으면 작위爵位를, 작위가 없으면 성명姓名만 썼다.
其官爵已見者, 亦不復書.
관작官爵이 이미 나타난 것은 또 다시 기록하지 않았다.
凡卒于軍者曰軍注+祭遵‧馮異., 非其地則地注+管寧之類..
무릇 군진軍陣에서 죽은 것은 ‘注+이다.이라 하였고, 죽은 곳이 자기 나라가 아니면 죽은 장소를 기록하였다.注+이다.
凡自殺者曰自殺, 有罪者加有罪字.
무릇 자살自殺이면 ‘자살自殺’이라 하였고, 가 있으면 ‘유죄有罪’ 2자를 추가하였다.
凡賢臣遇害曰某殺某, 其官爵如本例注+來歙‧岑彭之類..
무릇 현신賢臣이 살해를 당하면 “를 죽였다.[某殺某]”라 하였고, 그 관작官爵본례本例(賢臣의 범례)와 같다.注+이다.
凡衆殺稱人注+吳起‧蘇秦之類.. 盜殺稱盜注+俠累之類..
무릇 여러 사람이 죽인 것은 ‘’이라 칭하였고注+이다., 도살盜殺(암살)은 ‘’라 칭하였다.注+이다.
凡死節者, 皆異文以見褒注+劉崇‧翟義‧劉快‧龔勝‧王經‧劉諶‧諸葛瞻..
무릇 사절死節한 사람은 모두 문례文例를 달리하여 포장褒獎함을 나타내었다.注+, , , , , 등이다.
凡無統之世, 惟宰相不悉書, 餘竝依正統例,
무릇 무통無統의 시대에는 재상宰相도 다 기록하지 않았고, 나머지는 아울러 정통正統범례凡例에 따랐다.
但各加其國名.
다만 각각 그 국명國名만 추가하였다.
凡僭國之臣, 不以賢否, 皆因事乃見, 而依無統常人之例.
무릇 참국僭國의 신하는 현부賢否를 따지지 않고 모두 사안을 통해서만 나타내되 무통無統상인常人범례凡例에 따랐다.
凡簒賊之臣書死注+范增‧王舜‧揚雄之類..
무릇 찬적簒賊한 신하는 ‘’라고 기록하였다.注+이다.
凡戰死書死.
무릇 전사戰死는 ‘’라 기록하였다.
凡一人之往來去就, 關國家利害, 繫時世輕重者, 不以賢否皆書注+孟軻‧吳起‧衛鞅‧李斯‧張良‧諸葛亮‧管寧之類..
무릇 한 사람의 왕래거취往來去就국가國家이해利害에 관계되고 시세時世경중輕重에 달렸으면 현부賢否를 따지지 않고 모두 기록하였다.注+, , , , , , 의 경우이다.
或有他事當見者亦書注+田文之類..
혹 다른 일도 마땅히 나타낼 것은 또 기록하였다.注+이다.
凡有官者書官, 惟初除一見, 後改除乃復見之.
무릇 관직이 있는 자는 관직을 썼는데, 처음 제수될 때 한 번 나타내고 나중에는 다른 관직에 제수되면 다시 나타내었다.
凡宰相官重者, 書官而去姓注+如相國何‧大將軍光之類.. 爵異者, 書爵而去姓注+魏公操‧魏王操之類..
무릇 재상宰相으로 관직官職이 중요한 자는 관직을 쓰고 을 쓰지 않았으며注+① 예를 들면 상국相國 (蕭何)와 대장군大將軍 (霍光)의 경우이다., 작위爵位가 특별한 자는 작위를 쓰고 을 쓰지 않았다.注+위공魏公 (曹操)와 위왕魏王 (曹操)의 경우이다.
凡無統大國之臣, 依正統小國. 僭國, 雖權臣貴重, 但書姓名.
무릇 무통無統 중에 대국大國의 신하는 정통正統소국小國을 따랐고, 참국僭國은 비록 권신權臣으로 지위가 높고 직임이 중하더라도 단지 성명姓名만 썼다.
凡正統, 諸侯王旣卒, 皆以諡稱.
무릇 정통正統제후왕諸侯王이 죽은 뒤에는 모두 시호諡號로 칭하였다.
역주
역주1 祭遵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癸巳(33) 後漢 光武帝 建武 9년에 “봄 정월에 정로장군 潁陽侯 祭遵이 군중에서 卒하였다.[春正月 征虜將軍潁陽侯祭遵卒於軍]”라 하였고, 甲午(34) 後漢 光武帝 建武 10년에 “여름에 정서대장군 夏陽侯 馮異가 군중에서 卒하였다.[夏 征西大將軍夏陽侯馮異卒於軍]”라 하였다.
역주2 管寧의 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辛酉(241) 蜀漢 後主 延熙 4년에 “管寧이 魏나라에서 卒하였다.[管寧卒於魏]”라 하였다.
역주3 來歙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未(35) 後漢 光武帝 建武 11년에 “公孫述이 王元을 보내어 河池에서 막게 하였다. 6월에 여러 장수가 왕원을 격파하였다. 공손술이 자객을 시켜 감호사자 來歙을 암살하니, 조서를 내려 장군 馬成으로 대신하였다.[公孫述遣王元拒河池 六月 諸將擊破之 述使盜殺監護使者來歙 詔以將軍馬成代之]”라 하고, “겨울 10월에 공손술이 자객을 시켜 정남대장군 舞陰侯 岑彭을 암살하였다.[冬十月 公孫述使盜刺殺征南大將軍舞陰侯岑彭]”라 하였다.
역주4 吳起와……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子(B.C. 381) 周 安王 21년에 “楚나라 임금 類가 卒하니 楚나라 사람이 吳起를 죽였다.[楚君類卒 楚人殺吳起]”라 하였고, 甲辰(B.C. 317) 周 愼靚王 4년에 “齊나라 대부가 蘇秦을 죽였다.[齊大夫殺蘇秦]”라 하였다.
역주5 俠累의 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甲申(B.C. 397) 周 安王 5년에 “韓나라 정승 俠累를 盜殺하였다.[盜殺韓相俠累]” 하였다.
역주6 劉崇 翟義 : 115쪽 역주 252) 참조.
역주7 劉快 : 《資治通鑑綱目》에서 己巳(9) 新莽 始建國 원년에 “여름 4월에 徐鄕侯 劉快가 기병하여 王莽을 토벌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夏四月 徐鄕侯劉快起兵討莽 不克 死之]”라 하였다.
역주8 龔勝 : 《資治通鑑綱目》에서 辛未(11) 新莽 始建國 3년에 “王莽이 龔勝을 맞이하여 태자사우좨주로 삼으니 공승이 음식을 먹지 않고 죽었다.[莽迎龔勝爲太子師友祭酒 勝不食而卒]”라 하였다.
역주9 王經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辰(260) 蜀漢 後主 景耀 3년에 “여름 5월에 魏나라 司馬昭가 그 임금 曹髦를 남궐 아래에서 시해하고 상서 王經도 죽였다.[夏五月 魏司馬昭弑其主髦於南闕下 尙書王經死之]”라 하였다.
역주10 劉諶 : 《資治通鑑綱目》에서 癸未(263) 蜀漢 後主 炎興 원년에 “鄧艾가 成都에 이르니 황제가 나와 항복하고 황자 北地王 劉諶이 죽으니 漢나라가 망하였다.[鄧艾至成都 帝出降 皇子北地王諶死之 漢亡]”라 하였다.
역주11 諸葛瞻 : 《資治通鑑綱目》에서 癸未(263) 蜀漢 後主 炎興 원년에 “위장군 諸葛瞻이 鄧艾와 綿竹에서 싸워서 지자 그 아들 諸葛尙과 함께 모두 죽었다.[衛將軍諸葛瞻及鄧艾戰於綿竹 敗績 及其子尙皆死之]”라 하였다.
역주12 范增과……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酉(B.C. 204) 漢 高祖 3년에 “亞父 范增이 죽었다.[亞父范增死]”라 하였고, 辛未(11) 新莽 始建國 3년에 “王莽이 태사 王舜을 죽였다.[莽太師王舜死]”라 하였고, 戊寅(18) 新莽 天鳳 5년에 “왕망이 대부 揚雄을 죽였다.[莽大夫揚雄死]”라 하였다.
역주13 孟軻 : 《資治通鑑綱目》에서 乙酉(B.C. 336) 周 顯王 33년에 “孟軻가 魏나라에 이르렀다.[孟軻至魏]”라 하였고, 壬寅(B.C. 319) 周 愼靚王 2년에 “魏나라 임금 罃이 卒하였다. 孟軻가 魏나라를 떠나 齊나라에 갔다.[魏君罃卒 孟軻去魏適齊]”라 하였다.
역주14 吳起 : 《資治通鑑綱目》에서 甲午(B.C. 387) 周 安王 15년에 “魏나라 吳起가 楚나라로 달아나자 楚나라가 정승으로 삼았다.[魏吳起奔楚 楚以爲相]”라 하였다.
역주15 衛鞅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申(B.C. 361) 周 顯王 8년에 “魏나라 公孫鞅이 秦나라에 들어갔다.[衛公孫鞅入秦]”라 하였다.
역주16 李斯 : 《資治通鑑綱目》에서 甲子(B.C. 237) 秦 始皇 10년에 “秦나라가 크게 빈객을 찾아내어 추방하였다. 객경 李斯가 글을 올리자 그를 불러 옛 관직을 회복시키고 마침내 그 명령을 없앴다.[秦大索 逐客 客卿李斯上書 召復故官 遂除其令]”라 하였다.
역주17 張良 : 《資治通鑑綱目》에서 癸未(B.C. 218) 秦 始皇 29년에 “황제가 동쪽 지방으로 유람하다가 陽武에 이르렀을 때 韓나라 사람 張良이 저격하였으나 잘못하여 副車를 맞췄다.[帝東遊至陽武 韓人張良狙擊 誤中副車]”라 하였다.
역주18 諸葛亮 : 《資治通鑑綱目》에서 丁亥(207) 後漢 獻帝 建安 12년에 “劉備가 隆中에서 諸葛亮을 만났다.[劉備見諸葛亮於隆中]”라 하였다.
역주19 管寧 : 《資治通鑑綱目》에서 辛未(191) 後漢 獻帝 初平 2년에 “管寧, 邴原, 王烈이 遼東으로 갔다.[管寧邴原王烈適遼東]”라 하였다.
역주20 田文의 경우 : 《資治通鑑綱目》에서 庚子(B.C. 321) 周 顯王 48년에 “齊나라가 薛公 田文의 칭호를 孟嘗君이라 하였다.[齊號薛公田文爲孟嘗君]”라 하였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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