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綱】 돈황敦煌이 관리를 파견하여 이오伊吾에 주둔하니, 거사車師(거사)와 선선鄯善이 다시 항복하였다.
目
【목目】 처음에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가 이미 한漢나라와 관계를 끊었다. 북흉노北匈奴가 다시 군대의 위엄으로 이들을 예속하여 부려서 함께 변경을 침략하니注+“역속지役屬之”는 사역하여 신하로 예속시킴을 이른다.,
돈황태수 조종敦煌太守 曹宗이 이것을 걱정하여 마침내 상주上奏하고 행장사 삭반行長史 索班(삭반)을 보내어 천여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가서 이오伊吾에 주둔하여 이들을 불러서 어루만져 위로하였다.注+“상견上遣”은 상주上奏하고서 보낸 것이다. 행장사行長史는 장사長史의 일을 임시로 대행하였을 뿐, 참으로 직책이 장사長史가 된 것은 아니다. ≪한서漢書≫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에 “군수郡守의 아래에 승丞이 있고, 변군邊郡에 또 장사長史가 있어서 병마兵馬를 관장했다.” 하였다. 삭索은 소각蘇各의 절切이니 성姓이다. 이에 차사전왕車師前王과 선선왕鄯善王이 다시 와서 항복하였다.
역주
역주1減死 :
死罪를 지은 사람에 대해 형벌의 등급을 감하여 死刑을 면해주는 것을 이른다.
역주2敦煌遣吏屯伊吾 車師鄯善復降 :
“伊吾盧를 이때에 모두 5번 썼다. 처음에는 ‘伊吾盧의 땅을 점령했다.’고 썼고, 다음에는 ‘이오로에 주둔했던 군대를 파했다.’고 쓰고는 뒤이어 ‘匈奴가 다시 이 지역을 차지했다.’고 썼으며, 세 번째에는 ‘竇憲이 다시 이오로의 땅을 점령했다.’고 쓰고는 뒤이어 ‘車師에서 아들을 들여보내 入侍하게 하였다.’고 썼고, 네 번째에는 ‘이오로의 屯田을 파하였다.’고 쓰고는 뒤이어 ‘西羌이 다시 배반했다.’고 썼으며, 여기에서는 ‘관리를 파견하여 伊吾에 주둔했다.’고 쓰고는 뒤이어 ‘車師와 鄯善이 다시 항복하였다.’고 썼으니, 합쳐서 살펴보면 이 지역이 중요한 곳이 됨이 분명하다.[伊吾盧於是凡五書矣 初書取伊吾盧地 次書罷伊吾盧屯兵 則繼書匈奴復守其地 三書竇憲復取伊吾盧地 則繼書車師遣子入侍 四書罷伊吾盧屯田 則繼書西羌復叛 此書遣吏屯伊吾 則繼書車師鄯善復降 合而觀之 其爲要地明矣]다” ≪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