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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7)

자치통감강목(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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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酉年(A.D.25)
을유년乙酉年(A.D.25)
世祖光武皇帝 建武元年이라 春正月 方望 이어늘 遣兵擊斬之注+臨涇縣, 屬安定郡.하다
나라 세조 광무황제世祖 光武皇帝 건무建武 원년이다. 봄 정월에 방망方望전 정안공前 定安公 유영劉嬰임경臨涇에서 〈옹립하여〉 황제라고 칭하자, 유현劉玄이 군대를 보내 공격하여 참수하였다.注+임경현臨涇縣안정군安定郡에 속하였다.
◑赤眉至弘農이어늘 遣兵擊之라가 大敗하니 赤眉進至湖하다
적미赤眉홍농弘農에 이르자 유현劉玄이 군대를 보내 이들을 공격하였다가 대패하니, 적미가 전진하여 에 이르렀다.
◑夏四月 公孫述 稱成帝注+以起成都故.하다
注+〈“칭성제稱成帝”는〉 성도成都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號元龍興注+時有龍出其府, 因以紀元.하다
】 〈공손술公孫述이〉 연호年號용흥龍興이라 하였다.注+이때에 이 그 에서 나왔으므로 인하여 기원紀元으로 삼았다.
蕭王 擊尤來, 大槍, 五幡하여 敗之注+大槍, 亦賊之自號.하다
소왕蕭王우래尤來대창大槍, 오번五幡을 공격하여 패주시켰다.注+대창大槍 또한 자호自號이다.
擊諸部하여 連破之하고 乘勝輕進이라가 反爲所敗하여 歸保范陽注+范陽, 縣名, 在范水之陽, 屬涿郡.하다 軍中 不見王하여 或云已歿이라하니 諸將 不知所爲어늘
소왕蕭王이 여러 를 공격하여 연달아 격파하고 승세를 타고 가볍게 전진하다가, 도리어 적에게 패하고 돌아와 범양范陽을 지켰다.注+범양范陽의 이름으로 범수范水의 북쪽에 있으니, 탁군涿郡에 속하였다. 군중軍中에서는 왕을 보지 못하여 혹은 이미 죽었다고도 하니, 장수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吳漢曰 卿曹 努力하라 王兄子在南陽하니 何憂無主리오하니 乃定注+兄子, 謂伯升子章及興也.하다
오한吳漢이 말하기를 “들은 노력하라. 소왕의 형님의 아들들이 남양南陽에 있으니, 어찌 군주가 없음을 근심하겠는가.” 하니, 여러 사람들이 비로소 진정하였다.注+형자兄子”는 백승伯升(유연劉縯)의 아들인 유장劉章유흥劉興을 이른다.
陳俊曰 賊無輜重하니 若絶其食이면 可不戰而殄也리이다
진준陳俊이 말하기를 “치중輜重이 없으니, 만약 그들의 군량수송로를 끊으면 싸우지 않고도 섬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遣俊하여 將輕騎하고 馳出賊前하여 視人堡壁堅完者하면 勅令固守하고 放散在野者 因掠取之하니 賊至 無所得하여 遂散敗하다
소왕은 진준을 보내 날쌘 기병騎兵을 거느리고 적진 앞으로 달려가게 하고서, 보루와 성벽이 견고한 것을 보면 백성들에게 칙령을 내려 굳게 지키게 하고, 흩어져 들에 있는 곡물(식량)을 보면 인하여 노략질하여 취하게 하니, 이 이르는 곳마다 얻을 것이 없어서 마침내 궤멸되었다.
朱鮪殺李軼하고 攻溫, 平陰이어늘 馮異, 寇恂 擊破之하다
주유朱鮪이일李軼을 죽이고 평음平陰을 공격하자, 풍이馮異구순寇恂이 격파하였다.
馮異遺李軼書하여 勸令歸附한대 知長安已危로되 而以伯升之死 心不自安하여 乃報異書하고 而不復與爭鋒이라
풍이馮異이일李軼에게 편지를 보내 귀순할 것을 권하자, 이일은 장안長安(경시更始)이 이미 위태로움을 알았으나, 자신이 백승伯升을 죽게 하였으므로 내심 편안하지 못해서 마침내 풍이에게 답서를 보내고 다시는 그들과 예봉을 다투지 않았다.
異得北攻天井關하여 拔上黨兩城注+劉昭志 “上黨高都縣, 有天井關.”하고 又南下城皐已東十三縣하니 降者十餘萬이러라
그러므로 풍이는 북쪽으로 천정관天井關을 공격하여 상당上黨의 두 을 함락하고注+에 “상당上黨고도현高都縣천정관天井關이 있다.” 하였다. 또 남쪽으로 성고 이동成皐 以東 13개의 을 함락할 수 있었으니, 항복한 자가 십여만 명이었다.
斬河南太守武勃注+勃, 淮陽王之將也.호되 閉門不救어늘 異以白王한대 王報曰 季文 多詐하여 人不能得其要領이라
】 〈풍이馮異가〉 하남태수 무발河南太守 武勃을 참수하였으나注+무발武勃회양왕淮陽王(경시更始)의 장수이다., 이일李軼이 문을 닫고 구원하지 않았다. 풍이가 이 사실을 소왕蕭王에게 아뢰니,
今移其書하여 告守尉當警備者注+季文, 軼字.하노라 朱鮪聞之하고 使人刺殺軼하니 由是 城中乖離하여 多有降者러라
이제 이일의 편지를 보내서 군수郡守군위郡尉들에게 알려서 경계하고 대비하게 하노라.”注+계문季文이일李軼의 자이다. 하였다. 주유朱鮪가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이일을 찔러 죽이니, 이로 말미암아 성안이 괴리乖離되어서 항복하는 자들이 많았다.
鮪遣將攻溫注+溫縣, 屬河內郡.하고 自將攻平陰하여 以綴異注+平陰, 縣名, 屬河南郡. 綴, 陟衛切, 連綴也.어늘 寇恂 聞之하고 勒軍馳出하여 移告屬縣하여 發兵會溫하니
주유朱鮪가 장수를 보내 을 공격하고注+온현溫縣하내군河內郡에 속하였다. 자신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평음平陰을 공격해서 풍이馮異를 견제하자注+평음平陰의 이름이니 하남군河南郡에 속하였다. 척위陟衛이니 연철連綴(연하여 옭아매다)의 뜻이다., 구순寇恂이 이 소식을 듣고 군대를 무장하여 달려가서 속현屬縣에 통지문을 보내 군대를 징발해서 에 모이게 하였다.
軍吏皆諫호되 宜待衆軍畢集하여 乃出이니이다 恂曰 溫 郡之藩蔽 失溫則郡不可守注+言溫縣, 於河內郡至重, 可爲河內之藩籬障蔽也.라하고
군리軍吏들이 모두 간하기를 “여러 군대가 모두 모이기를 기다려서 출동해야 합니다.” 하니, 구순이 말하기를 “하내군河內郡의 울타리이니, 을 잃으면 을 지킬 수가 없다.”注+〈“온 군지번폐溫 郡之藩蔽”는〉 온현溫縣하내군河內郡에 있어 매우 중요해서 하내河內의 울타리와 가림막이 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遂馳赴之하여 將戰할새 而馮異遣救하고 及諸縣兵皆至어늘 犇擊破之하다
마침내 싸움터로 달려가서 싸우려 할 적에 풍이가 구원병을 보내고 여러 의 군대가 모두 도착하였으므로 달려가 공격해서 격파하였다.
異亦度河하여 擊走鮪하고 與恂追至洛陽하여 環城一匝而歸注+匝, 子合切, 周回也.하니 自是 洛陽城門 晝閉러라
풍이 또한 하수河水를 건너 주유를 공격하여 패주시키고 구순과 함께 낙양洛陽까지 추격하여 을 사방으로 포위하고 돌아오니注+자합子合이니 두루함이다., 이로부터 낙양洛陽성문城門이 낮에도 닫혀 있었다.
賈復(≪雲臺三十二將圖≫)賈復(≪雲臺三十二將圖≫)
異, 恂 移檄上狀한대 諸將入賀할새 馬武進曰 大王 雖執謙退 奈宗社何잇고
풍이馮異구순寇恂이 격문을 보내 글을 올리자, 장수들이 들어와 축하할 적에 마무馬武가 나와서 말하기를 “대왕大王이 비록 겸손함을 지키시나 종묘宗廟사직社稷은 어찌하시렵니까.
宜先卽尊位하고 乃議征伐이니 今此誰賊而馳騖擊之乎잇가 不聽注+誰賊者, 蓋謂位號未正, 指誰爲賊也.하다
먼저 존위尊位에 오르고 그런 뒤에 정벌을 의논해야 마땅하니, 지금 누구를 적이라고 하여 달려가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注+수적誰賊”은 지위와 칭호가 아직 바로잡히지 못하였으니, 누구를 가리켜 적이라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蕭王 遣將하여 追尤來等하여 又大破之하다
소왕蕭王이 장수를 보내 우래尤來 등을 추격해서 또다시 대파하였다.
引軍還薊하고 復遣吳漢等하여 追尤來等하여 破散略盡하다
소왕蕭王은 군대를 이끌고 로 돌아온 뒤에 다시 오한吳漢 등을 보내 우래尤來 등을 추격하여 거의 모두 격파하여 해산시켰다.
賈復 傷瘡甚注+通鑑 “賈復與五校戰於眞定, 復傷瘡甚.”하니 大驚曰 我所以不令賈復別將者 爲其輕敵也러니 果然失吾名將이로다
가복賈復이 〈싸우다가〉 심한 상처를 입으니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가복賈復진정眞定에서 오교五校와 싸우다가 부상을 당하여 상처가 심했다.” 하였다., 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내가 가복에게 별장別將을 시키지 않은 이유는 그가 적을 깔보기 때문이었는데, 과연 나의 명장을 잃었구나.
聞其婦有孕하니 生女邪인댄 我子娶之하고 生男邪인댄 我女嫁之하여 不令其憂妻子也리라하더니 病尋愈注+通鑑 “復病尋愈, 追及王於薊, 相見甚驩.”하다
듣건대, 그의 부인이 임신을 했다 하니, 딸을 낳는다면 내 아들과 혼인시킬 것이고 아들을 낳는다면 내 딸과 혼인시켜서, 그로 하여금 처자식을 근심하지 않게 하겠다.” 하였는데, 가복이 얼마 후 병이 나았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가복賈復이 얼마 후 병이 나아서 소왕蕭王을 따라왔는데, 서로 만나보고 매우 즐거워했다.” 하였다.
】 6월에 소왕蕭王황제皇帝에 즉위하여 개원改元하고 크게 사면하였다.
還至中山하니 諸將 復上尊號어늘 不聽하고 到南平棘하여 復固請之호되 不許注+南平棘, 縣名, 屬常山郡.하다
소왕蕭王중산中山으로 돌아오니 장수들이 다시 존호尊號를 올렸으나 듣지 않았고, 남평극南平棘에 이르러 다시 굳이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注+남평극南平棘의 이름이니 상산군常山郡에 속하였다.
諸將且出이러니 耿純 進曰 天下士大夫 捐親戚하고 棄土壤하여 從大王於矢石之間者
장수들이 장차 나가려 하였는데, 경순耿純이 나아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천하天下사대부士大夫들이 친척을 버리고 고향 땅을 떠나 화살과 포석의 사이에서 대왕大王을 따르는 이유는,
其計固望攀龍鱗, 附鳳翼하여 以成其所志耳 今大王 留時逆衆하사 不正號位하시니
그 계책이 진실로 지금 대왕大王이 때를 지체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거슬러서 존호尊號지위地位를 바로잡지 않으시니,
恐士大夫望絶計窮이면 則有去歸之思하여 無爲久自苦也하리니 大衆一散이면 難可復合이니이다
저는 사대부士大夫들이 희망이 사라지고 계책이 궁해지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품어서 오랫동안 스스로 고생하려는 마음이 없어질까 염려스럽습니다.
耿純(≪雲臺三十二將圖≫)耿純(≪雲臺三十二將圖≫)
대중이 한 번 흩어지면 다시 모이기 어렵습니다.”
純言 甚誠切하니 深感曰 吾將思之호리라
경순의 말이 매우 정성스럽고 간절하니, 왕이 깊이 감동하여 말하기를 “내 장차 생각해보겠다.” 하였다.
行至鄗하여 召馮異하여 問四方動靜注+鄗, 呼各切. 地志 “常山郡, 有鄗邑, 戰國趙地. 光武於鄗南, 卽帝位, 改曰高邑.”한대 異曰 更始必敗 宗廟之憂在於大王하니 宜從衆議니이다
】 행군하여 (학)에 이르러서 풍이馮異를 불러 사방의 동정을 물으니注+호각呼各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상산군常山郡호읍鄗邑이 있으니, 전국시대戰國時代나라 지역이다. 광무제光武帝학읍鄗邑 남쪽에서 황제에 즉위하고 고을 이름을 고읍高邑으로 고쳤다.” 하였다., 풍이가 대답하기를 “경시更始는 틀림없이 패망할 것입니다.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의〉 우려가 대왕大王에게 달려 있으니, 마땅히 여러 사람의 의논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儒生彊華 自關中으로 奉赤伏符하여 來詣王注+彊, 其良切. 彊華, 姓名, 光武在長安時, 同舍生也. 讖記之書曰符. 赤伏, 其符之名也. 漢德尙火. 赤, 火色. 伏, 藏也. 此河圖文.하니 曰 劉秀發兵捕不道 四夷雲集龍鬪野로다
이때 마침 유생 강화儒生 彊華관중關中에서 적복부赤伏符를 받들고 와서 왕에게 올렸는데注+기량其良이다. 강화彊華는 사람의 성명이니, 광무제光武帝장안長安에 있을 적에 한집에서 거처한 생도이다. 도참이 기록된 글을 라 하니, 적복赤伏은 그 의 이름이다. 나라는 화덕火德을 숭상하였는데, 은 불의 색깔이고 은 숨겨 감춤이니, 이는 하도河圖의 글이다., 여기에 이르기를 “유수劉秀(소왕蕭王)가 군대를 일으켜 무도한 자들을 토벌함에, 사방 오랑캐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 이 들에서 싸우도다.
四七之際火爲主注+龍闘野, 謂群雄角力也. 四七, 二十八也, 自高祖至光武初起, 合二百二十八年, 卽四七之際也. 或謂光武以二十八歲起兵, 故云四七之際. 又二十八將, 亦應四七之數. 漢火德, 故火爲主.라하니 群臣 因復奏請한대 乃卽位於鄗南注+時, 設壇於鄗南千秋亭五城陌.하다
사칠四七의 즈음에 가 주장이 된다.”注+용투야龍闘野군웅群雄이 힘을 다툼을 이른다. 사칠四七은 28년으로, 고조高祖로부터 광무제光武帝가 처음 일어날 때까지 도합 228년이니, 바로 사칠四七의 즈음이다. 혹은 광무제光武帝가 28세에 군대를 일으켰으므로 사칠四七의 즈음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또한 사칠四七의 수에 응한다. 나라는 화덕火德이므로 가 주장이 된다고 한 것이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다시 주청하자, 소왕蕭王이 마침내 의 남쪽에서 즉위하였다.注+이때에 의 남쪽 천추정 오성千秋亭 五城의 거리에 을 설치하고 즉위하였다.
鄧禹擊定河東하다
등우鄧禹하동河東을 공격하여 평정하였다.
禹圍安邑하여 數月未下 更始大將軍樊參, 劉均 將數萬人攻禹어늘 禹擊斬之하고 遂定河東하다
등우鄧禹안읍安邑을 포위하여 몇 달이 되어도 함락하지 못하였다. 경시更始대장군 번참大將軍 樊參유균劉均이 수만 명을 거느리고 등우를 공격하자, 등우가 이들을 공격하여 참수하고 마침내 하동河東을 평정하였다.
長安하니 奔新豐하다
장안長安이 혼란하자, 유현劉玄신풍新豐으로 달아났다.
張卬 與諸將議曰 赤眉且至하여 見滅不久하리니 不如掠長安, 歸南陽이라
장앙張卬(장앙)이 장수들과 의논하기를 “적미赤眉의 군대가 장차 쳐들어와서 오래지 않아 우리가 멸망당할 것이니, 장안長安을 노략질하고 남양南陽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
事若不集이면 復入湖池中하여 爲盜耳라하고 入說更始한대
일이 만약 이루어지지 못하면 다시 호수나 늪지 가운데로 들어가서 도둑이 될 뿐이다.” 하고는 들어가 경시更始를 설득하자,
更始怒하여 使王匡, 陳牧, 成丹, 趙萌屯新豐하고 李松軍掫하여 以拒赤眉注+掫, 子侯切. 續漢志 “新豐有鴻門亭, 掫城, 卽此也.”하다
경시가 노하여 왕광王匡진목陳牧, 성단成丹조맹趙萌신풍新豐에 주둔시키고 이송李松(추)에 주둔시켜 적미를 막게 하였다.注+자후子侯이다. ≪속한지續漢志≫에 “신풍新豐홍문정鴻門亭이 있으니, 추성掫城이 바로 이곳이다.” 하였다.
與申屠建, 隗囂合謀하여 欲共劫更始하여 成前計러니 更始知之하여 斬建하고 使兵圍囂第하다
장앙張卬신도건申屠建외효隗囂와 모여 계책을 세워서 함께 경시更始를 위협하여 예전의 계책을 이루고자 하였는데, 경시가 이것을 알고는 신도건을 참수하고 군대를 보내 외효의 집을 포위하였다.
卬等 勒兵하고 燒門入戰하여 更始大敗하니 囂潰圍하고 走歸天水하다
장앙 등이 군대를 무장하여 성문을 불태우고 들어가 싸워 경시가 대패하니, 외효가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 천수天水로 돌아갔다.
更始犇新豐이러니 復疑王匡等 與卬同謀하여 乃竝召入한대
경시는 신풍新豐으로 달아났는데, 왕광王匡 등이 장앙과 함께 모의할까 거듭 의심해서 마침내 모두 불러들였다.
牧, 丹 先至어늘 卽斬之하니하여 將兵入長安하여 與卬等合하다
진목陳牧성단成丹이 먼저 도착하자 즉시 이들을 참수하니, 왕광은 두려워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장안長安에 들어가서 장앙 등과 연합하였다.
赤眉以劉盆子稱帝하다
적미赤眉유분자劉盆子를 옹립하여 황제라 칭하였다.
赤眉進至華陰하니 軍中 有齊巫하여 常鼓舞祠城陽景王注+齊巫, 齊國之巫. 城陽景王章, 有誅諸呂之功, 故齊人祠之, 以求福助.이라 狂言호되 怒曰 當爲縣官이니 何故爲賊注+縣官, 謂天子也.고하다
적미赤眉가 전진하여 화음華陰에 이르렀는데, 군중에 지역 출신인 무당이 있어서 항상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성양경왕城陽景王에게 제사하였다.注+제무齊巫”는 나라의 무당이다. 성양경왕 유장城陽景王 劉章이 여러 여씨呂氏를 주벌한 공이 있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에게 제사하여 과 도움을 구한 것이다. 그는 미친 소리로 말하기를 “경왕景王이 노하여 말씀하기를 ‘〈적미가〉 마땅히 현관縣官(천자)이 될 것이니, 무슨 연고로 적이 되려는고?’注+현관縣官천자天子를 이른다. 하신다.” 하였다.
方望弟陽 說樊崇等曰 今將軍 擁百萬之衆하고 西向帝城이로되 而無稱號注+凡名號, 謂之稱, 尺證切.하여 名爲群賊이면 不可以久
방망方望의 아우 방양方陽번숭樊崇 등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이제 장군이 백만의 무리를 보유하고 서쪽으로 제성帝城(장안長安)을 향하는데, 칭호가 없어서注+모든 명호名號이라 하니, 〈은〉 척증尺證이다. 군적群賊이라고 불리면 오래갈 수 없습니다.
不如立宗室하여 挾義誅伐이니 以此號令이면 誰敢不從이리오 崇等 以爲然하다
종실宗室을 세워서 대의大義를 내세워 주벌하는 것만 못하니, 이로써 호령한다면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번숭 등이 이 말을 옳게 여겼다.
先是 赤眉掠故式侯萌之子恭, 茂, 盆子注+地理志 “式縣, 屬泰山郡.” 萌之父曰憲, 城陽景王五世孫, 荒王順之子, 元帝時, 封式侯.하니 少習尙書러니 隨崇等降이어늘
】 이보다 앞서 적미赤眉고 식후故 式侯 유맹劉萌의 아들 유공劉恭유무劉茂, 유분자劉盆子를 포로로 잡았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식현式縣태산군泰山郡에 속했다.” 하였다. 유맹劉萌의 아버지는 유헌劉憲이니, 성양경왕城陽景王의 5세손世孫이고 황왕 유순荒王 劉順의 아들이며, 원제元帝 때에 식후式侯에 봉해졌다. 유공은 나이가 어려서 ≪상서尙書≫를 익혔는데, 번숭樊崇 등을 따라 항복하니,
更始復封式侯하여 在長安하고 茂, 盆子 留軍中하여 屬卒史劉俠卿하여 主牧牛注+漢注 “卒史, 秩百石, 九卿寺及諸郡及軍行部校, 皆有之.”하다
경시更始는 다시 그를 식후式侯로 봉하여 장안長安에 있게 하였고, 유무와 유분자는 군중軍中에 남겨두어 졸사 유협경卒史 劉俠卿에게 맡겨서 소를 기르는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注+한주漢注≫에 “졸사卒史일백석一百石이니, 구경九卿제군諸郡군행軍行부교部校에 모두 있었다.” 하였다.
至是하여 求軍中景王後하여 得茂, 盆子及前西安侯孝三人하니
】 이때에 이르러 적미赤眉는 군중에 있는 경왕景王의 후손을 찾아서 유무劉茂유분자劉盆子전 서안후前 西安侯 유효劉孝 등 세 사람을 얻었다.
崇曰 古者 天子將兵 稱上將軍이라하고 乃爲三札하여 置笥中호되 書其一爲符曰上將軍注+札, 簡也.이라하고
번숭樊崇이 말하기를 “옛날에 천자天子가 군대를 거느릴 적에 상장군上將軍이라 칭했다.” 하고는 세 개의 간찰簡札(쪽지)을 만들어서 상자 속에 두었는데, 그중 하나에 상장군上將軍이라 써서 부신符信을 만들어 넣어두었다.注+은 간찰이다.
於鄭北 設壇場大會注+鄭縣, 屬京兆.하고 列盆子等三人하여 居中立하여 以年次探札하니
그러고는 정현鄭縣의 북쪽에 단장壇場을 설치하여 사람들을 크게 모이게 하고注+정현鄭縣경조京兆에 속하였다. 유분자 등 세 사람을 중앙에 줄지어 세우고서 나이에 따라 순서대로 쪽지를 꺼내게 하였다.
盆子最幼 後探得符어늘 諸將 皆稱臣拜하니 盆子時年十五 被髮徒跣하고 敝衣赭汗 見衆拜하고 恐畏欲啼注+赭汗, 面赤, 面流汗, 惶懼之意.러라
유분자가 가장 나이가 어렸으므로 맨 뒤에 이 부신符信을 더듬어 얻으니, 장수들이 모두 이라 칭하고 그에게 절하였다. 유분자의 나이가 이때에 15세였다. 머리를 풀어 산발하고 맨발을 벗고 있었으며 해진 옷에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흘렀는데, 사람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것을 보고는 두려워 눈물을 글썽거렸다.注+자한赭汗”은 얼굴이 붉어지고 얼굴에 땀이 흐르는 것이니, 황공해하는 뜻이다.
茂謂曰 善臧符하라호되 盆子卽齧折棄之注+臧, 讀曰藏. 齧, 噬也. 折, 斷也. 謂以口嚼齧, 以手屈折也.하고 猶朝夕 拜劉俠卿하고 時欲出從牧兒戱
유무가 당부하기를 “부신을 잘 보관하라.” 하였으나, 유분자는 즉시 이것을 깨물고 찢어서 버리고는注+(보관하다)은 으로 읽는다. 은 깨묾이고 은 찢음이니, 〈“설절齧折”은〉 입으로 깨물고 손으로 접어 찢음을 이른다.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유협경劉俠卿에게 절하고 때로 나가 목동들을 따라 놀고자 하였다.
俠卿 怒止之하니 崇等 亦不復候視也하니라
유협경이 노하여 이를 금지하니, 번숭 등 또한 다시는 유분자에게 문후問候하지 않았다.
秋七月 以鄧禹爲大司徒하고 王梁爲大司空하고 吳漢爲大司馬하고 伏湛爲尙書令하다
】 가을 7월에 등우鄧禹대사도大司徒로 삼고, 왕량王梁대사공大司空, 오한吳漢대사마大司馬, 복담伏湛(복담)을 상서령尙書令으로 삼았다.
帝使使持節하여 拜禹大司徒하고 封酇侯하여 食萬戶하니 禹時年二十四注+酇縣, 屬南陽郡, 卽蕭何所封, 蓋以禹功比蕭何, 故封之.러라
】 황제가 사자使者를 시켜 부절符節을 잡고 가서 등우鄧禹대사도大司徒에 임명하고 찬후酇侯로 봉하여 만호萬戶식읍食邑으로 삼게 하니, 등우의 당시 나이가 24세였다.注+찬현酇縣남양군南陽郡에 속하니, 바로 소하蕭何를 봉한 고을이다. 등우鄧禹을 소하에 견주었으므로 이곳에 봉한 것이다.
又案赤伏符하여 以梁爲大司空注+通鑑 “帝以赤伏符曰 ‘王梁主衛作玄武.’ 丁丑, 以野王令王梁爲大司空. 帝以野王, 衛之所, 玄武, 水神之名, 司空, 水土之官也, 於是用梁.”하고 又欲以讖文으로 用孫咸하여 行大司馬注+通鑑, 用下, 有平狄將軍四字. 東觀記載讖文曰 “孫咸征狄也.”러니 衆不悅이어늘 乃以吳漢爲大司馬하다
적복부赤伏符를 상고하여 왕량王梁대사공大司空으로 삼고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황제가 적복부赤伏符에 ‘왕량王梁 지역을 주관하여 현무玄武가 된다.’라고 했다 하여, 정축년丁丑年야왕령 왕량野王令 王梁대사공大司空으로 삼았다. 황제는 야왕野王나라가 옮겨간 곳이요, 현무玄武수신水神의 이름이며, 사공司空수토水土의 관직이라고 여겨 이에 왕량王梁을 등용했다.” 하였다. 또 도참의 글에 따라 손함孫咸을 등용하여 행대사마行大司馬로 삼고자 하였는데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자 아래에 ‘평적장군平狄將軍’이란 네 글자가 더 있다. ≪동관한기東觀漢記≫에 도참의 글을 기록하여 “손함孫咸이 오랑캐를 정벌한다.”라고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자 마침내 오한吳漢대사마大司馬로 삼았다.
更始以湛爲平原太守하니 天下起兵호되 湛獨晏然하여 撫循百姓하니 一境 賴以全이라
처음에 경시更始복담伏湛평원태수平原太守로 삼았는데, 당시 천하天下가 군대를 일으켰으나 복담은 홀로 태연하여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보살피니, 온 경내가 이에 힘입어 온전하였다.
徵爲尙書하여 使典定舊制하고 又以禹西征할새 拜湛爲司直하여 行司徒事注+東都之司徒, 西都之丞相也. 司直, 卽丞相司直.하다
복담을 불러 상서尙書로 삼아 옛 제도를 맡아 정하게 하였고, 또 등우가 서쪽으로 정벌할 적에 복담을 사직司直으로 임명하여 행대사도사行大司徒事로 삼았다.注+동도東都(후한後漢)의 사도司徒서도西都(전한前漢)의 승상丞相이다. 사직司直은 바로 승상丞相사직司直이다.
鄧禹 度河하여 破左輔兵하다
등우鄧禹하수河水를 건너가 좌보左輔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禹度河하여 入夏陽注+夏陽縣, 屬馮翊.하니 更始左輔都尉公乘歙 引衆十萬拒禹어늘 禹擊破之注+左輔, 卽左馮翊也. 輔, 皆有都尉.하다
등우鄧禹가 황하를 건너 하양夏陽에 들어가니注+하양현夏陽縣풍익馮翊에 속하였다., 경시更始좌보도위 공승흡左輔都尉 公乘歙이 10만 명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등우에게 항거하였다. 이에 등우가 이들을 격파하였다.注+
帝如懷하여 遣吳漢等하여 圍洛陽注+懷, 縣名, 屬河內郡.하다
】 황제가 회현懷縣에 가서 오한吳漢 등을 보내 낙양洛陽을 포위하였다.注+의 이름이니 하내군河內郡에 속하였다.
◑八月 復入長安하다
】 8월에 유현劉玄이 다시 장안長安에 들어갔다.
更始攻王匡, 張卬於長安이러니 連戰月餘 匡等 敗走하니 更始乃復入하다
경시更始장안長安에서 왕광王匡장앙張卬을 공격하였다. 한 달이 넘도록 전투한 끝에 왕광 등이 패주하니, 경시가 이에 다시 장안長安에 들어갔다.
九月 赤眉入長安하니 奔高陵注+地理志 “高陵縣, 屬馮翊.”하다
】 9월에 적미赤眉장안長安으로 쳐들어오니, 유현劉玄고릉현高陵縣으로 달아났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고릉현高陵縣풍익馮翊에 속했다.” 하였다.
赤眉入長安하니 更始單騎走하다 式侯恭 以赤眉立其弟라하여 自繫詔獄이러니 聞敗 乃出하여 從更始於渭濱하다
적미赤眉장안長安으로 쳐들어오니, 경시更始단기單騎로 달아났다. 식후 유공式侯 劉恭은 적미가 자신의 아우를 황제로 세웠다 하여 스스로 조옥詔獄에 갇혀 있었는데, 경시가 패했다는 말을 듣자 비로소 나와 경시를 따라 위수渭水 가로 갔다.
將相 皆降호되 獨丞相曹竟 不降하여 手劍格死注+相拒而殺之曰格.하다
경시의 장수와 정승이 모두 항복하였으나, 승상 조경丞相 曹竟은 홀로 항복하지 아니하여 손수 검을 잡고 싸우다가 죽었다.注+서로 항거하여 죽이는 것을 이라 한다.
卓茂(≪雲臺三十二將圖≫)卓茂(≪雲臺三十二將圖≫)
封玄爲淮陽王하다
유현劉玄을 봉하여 회양왕淮陽王으로 삼았다.
詔敢賊害者 罪同大逆하다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회양왕淮陽王을 감히 해치는 자는 대역죄大逆罪와 같이 처벌하겠다.” 하였다.
以卓茂爲太傅하고 封褒德侯하다
탁무卓茂태부太傅로 삼고 포덕후褒德侯에 봉하였다.
宛人卓茂 寬仁恭愛하고 恬蕩樂道하며 雅實不爲華貌하고 行己在於淸濁之間注+恬, 安恬. 蕩, 坦蕩蕩也.이라
사람 탁무卓茂는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하며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마음이 편안하고 평탄하며 를 좋아하였다. 또 평소 고아하고 진실하여 화려한 모습을 꾸미지 않았고, 청류淸流탁류濁流의 사이에서 잘 처신하였다.注+은 마음이 편안함이고, 은 마음이 평탄하여 너그러운 것이다.
自束髮 至白首 與人未嘗有爭競하니 鄕黨故舊 雖行能 與茂不同이나 而皆愛慕欣欣焉하니라
어려서 머리를 묶었을 때로부터 백발에 이를 때까지 남과 서로 다툰 적이 없으니, 향당鄕黨의 친구들이 비록 행실과 재능이 탁무와 달랐으나, 모두 그를 사랑하고 흠모하여 좋아하였다.
哀, 平間 爲密令注+密縣, 屬河南郡.하여 視民如子하고 擧善而敎하여 口無惡言하니 吏民 親愛하여 不忍欺之러라
애제哀帝평제平帝 연간에 밀현密縣현령縣令이 되어注+밀현密縣하남군河南郡에 속하였다. 백성들을 자식처럼 보살피고 한 자를 등용하여 가르쳐서 입에 나쁜 말을 올리지 않으니, 관리와 백성들이 친애하여 차마 속이지 못하였다.
嘗有言 部亭長 受其米肉遺者注+部, 謂所部也. 遺, 去聲, 下同.어늘 茂曰 亭長 爲從汝求乎 爲汝有事囑之而受乎 將平居 自以恩意遺之乎注+囑, 音燭, 託也, 私請也.
】 백성 중에 일찍이 탁무卓茂의 부하 정장亭長이 자신이 선물로 보내준 쌀과 고기를 받았다고 고발한 자가 있었다.注+는 거느리고 있는 를 이른다. (주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도 같다. 탁무가 말하기를 “정장亭長이 너에게 요구하였느냐? 네가 부탁한 일이 있어서 그가 받았느냐? 아니면 평소에 스스로 은혜로운 뜻이 있어서 주었느냐?”注+은 음이 으로 부탁함이니, 사사로이 청탁하는 것이다. 하니,
民曰 往遺之耳로이다 茂曰 遺之而受어늘 何故言耶
백성이 말하기를 “그냥 제가 가서 준 것입니다.” 하였다. 탁무가 말하기를 “네가 주어서 받았는데, 무슨 연고로 나에게 말하는가?” 하니,
民曰 竊聞賢明之君 使民不畏吏하고 吏不取民이라하니 今我畏吏 是以遺之러니 吏旣卒受 來言耳注+卒, 終也.로이다
백성이 대답하기를 “삼가 듣자 하니, 현명한 군주는 백성들로 하여금 관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관리들로 하여금 백성들에게서 취하지 않게 한다 하였습니다. 지금 제가 관리(정장亭長)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주었는데 관리가 끝내 받았으므로 와서 말하는 것입니다.”注+은 마침이다. 하였다.
茂曰 汝爲敝民矣注+敝民, 敝壞之民.로다 凡人 所以群居不亂하여 異於禽獸者 以有仁愛禮義하여 知相敬事也어늘 汝獨不欲修之하니
탁무卓茂가 말하였다. “너는 예의를 파괴하는 백성이다.注+폐민敝民”은 〈예법을〉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백성이다. 사람들이 여럿이 살면서도 혼란하지 아니하여 금수와 다른 까닭은, 인애仁愛예의禮義가 있어서 서로 공경하여 섬길 줄을 알기 때문인데, 너는 홀로 이것을 닦고자 하지 않는다.
寧能高飛遠走하여 不在人間邪 吏顧不當乘威力彊請求耳니라 亭長 素善吏 歲時遺之 禮也니라
네가 어찌 금수처럼 높이 날고 멀리 달려서 인간세계에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관리는 다만 위엄과 세력을 이용하여 억지로 요구해서는 안 될 뿐이다. 정장亭長은 평소 한 관리이니, 세시歲時에 선물을 보내는 것은 이다.”
民曰 苟如此 何故禁之잇가 茂笑曰 律 設大法이요 順人情이니
백성이 말하기를 “만약 이와 같다면 어찌하여 법률에서 이것을 금하는 것입니까?” 하니, 탁무가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법률은 큰 법을 만든 것이고 예는 인정에 순응하는 것이니,
今我以禮敎汝 汝必無怨惡어니와 以律治汝 汝何所措其手足乎리오
지금 내가 예로써 너를 가르치면 네가 반드시 원망과 미워함이 없겠지만, 법률로 너를 다스리면 네가 어찌 수족手足을 둘 곳이 있겠는가.
一門之內 小者 可論이요 大者 可殺也 且歸念之注+論, 決罪也.하라
동일한 종류의 일에 작은 잘못은 논죄할 수 있고 큰 죄는 죽일 수 있으니, 우선 돌아가 잘 생각하라.”注+를 결단하는 것이다.
茂到縣 有所廢置하니 吏民笑之하고 隣城聞者皆蚩其不能注+蚩, 赤之切, 輕侮也.이러라
】 처음에 탁무卓茂에 부임하여 하찮은 일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두자, 관리와 백성들이 비웃었고 이웃의 에서 소문을 들은 자들도 모두 그의 무능함을 비웃었다.注+적지赤之이니 업신여김(비웃음)이다.
河南郡 爲置守令호되 茂不爲嫌하고 治事自若注+爲, 去聲. 茂正爲令, 郡復置守令, 使與茂竝居.이러니 數年 敎化大行하여 道不拾遺注+雖遺棄於道, 人不拾之, 言其俗淳也.
하남군河南郡에서 〈탁무를 골탕 먹이기〉 위해 따로 수령守令을 두었으나, 탁무는 개의치 않고 그대로 일을 처리하였는데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위치수령爲置守令”은〉 탁무卓茂가 바로 현령縣令으로 있었는데, 에서 탁무를 〈골탕 먹이기 위해〉 다시 수령守令을 두어 탁무와 함께 있게 한 것이다., 몇 년 뒤에 교화敎化가 크게 행해져서 길에 분실紛失된 물건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줍지 않게 되었다.注+〈“도불습유道不拾遺”는〉 비록 길에 분실된 물건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줍지 않는 것이니, 이는 풍속이 순박함을 말한 것이다.
遷京部丞하니 密人老少皆涕泣隨送注+王莽秉政, 置大司農部丞十三人, 勸課農桑. 京部丞, 主司隷所部.이러라 及王莽居攝 以病免歸러니 卽位 先訪求茂하니 茂時年七十餘
그리하여 탁무가 경부승京部丞으로 승진하니, 밀현密縣노소老少가 모두 눈물을 흘리며 따라가 전송하였다.注+왕망王莽이 정권을 잡았을 적에 대사농大司農부승部丞 13명을 두어 농업과 잠업을 권장하고 독책하였다. 경부승京部丞사예司隷가 맡은 곳을 주관하였다. 탁무는 왕망王莽거섭居攝하자 병으로 면직하고 돌아갔었는데, 이 즉위하자 먼저 탁무를 찾아 방문하니, 탁무는 이때 나이가 일흔이 넘었다.
詔曰 夫名冠天下 當受天下重賞이니 今以茂爲太傅하고 封褒德侯注+東都之制, 太傅位上公, 絶席, 在三公之右.하노라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이름이 천하에 으뜸이면 마땅히 천하의 중한 을 받아야 하니, 이제 탁무를 태부太傅로 삼고 포덕후褒德侯에 봉하노라.”注+동도東都(후한後漢)의 제도에 태부太傅상공上公의 지위이나, 자리를 따로 두어 삼공三公의 위에 있었다. 하였다.
司馬公曰 光武 卽位之初 群雄競逐하여 四海鼎沸하니 彼摧堅陷敵之人 權略詭辯之士 方見重於世어늘
사마공司馬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한 초기에 군웅群雄이 각축하여 사해四海가 솥의 물이 끓듯이 소란하였으니, 저 견고한 적진을 무너뜨리고 적을 무찌르는 사람과 권모술수와 궤변을 늘어놓는 선비가 한창 세상에서 중용重用을 받았다.
而獨能取忠厚之臣하고 旌循良之吏하여 拔於草萊之中하여 寘諸群公之首하니
그런데 광무제光武帝는 홀로 충후忠厚한 신하를 취하고 순량循良한 관리를 정표旌表하여 초야의 가운데에서 탁무卓茂를 발탁해서 여러 의 위에 두었다.
宜其光復舊物하여 享祚久長이니 蓋由知所先務而得其本原故也니라
이는 당연히 옛 물건(나라)을 광복하여 장구하게 복을 누리게 한 것이니, 이는 먼저 힘쓸 바를 알아서 그 본원本原을 얻었기 때문이다.”
朱鮪以洛陽降하니 冬十月 帝入都之하다
주유朱鮪낙양洛陽을 가지고 항복하니, 겨울 10월에 황제가 낙양洛陽에 들어가 도읍하였다.
諸將 圍洛陽數月 朱鮪堅守不下 帝以岑彭嘗爲鮪校尉라하여 令往說之注+鮪爲大司馬, 以彭爲校尉, 後從邑人韓歆於河內, 遂歸光武.한대
】 장수들이 수개월간 낙양洛陽을 포위하였으나, 주유朱鮪가 굳게 지키고 항복하지 않았다. 황제는 잠팽岑彭이 일찍이 주유의 교위校尉로 있었다 하여 그로 하여금 가서 설득하게 하니注+주유朱鮪대사마大司馬가 되어 잠팽岑彭교위校尉로 삼았었는데, 잠팽이 뒤에 고을 사람인 한흠韓歆을 따라 하내河內로 가서 마침내 광무제光武帝에게 귀순하였다.,
鮪曰 大司徒被害時 鮪與其謀注+大司徒, 帝兄縯也. 與, 讀曰預.하고 又諫更始하여 無遣蕭王北伐하니 自知罪深이라 不敢降이로라
주유가 말하기를 “대사도大司徒(유연劉縯)가 살해당할 적에 내가 그 모의에 참여하였고注+대사도大司徒는 황제의 형인 유연劉縯이다. (참여하다)는 로 읽는다., 또 경시更始에게 간해서 소왕蕭王을 보내 북쪽으로 정벌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내 스스로 죄가 많음을 안다. 감히 항복할 수가 없다.” 하였다.
還言之한대 帝曰 擧大事者 不忌小怨이라 鮪今若降이면 官爵 可保어든 況誅罰乎
잠팽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아뢰자, 황제가 말하기를 “대사大事를 일으키는 자는 작은 원망을 개의치 않는 법이다. 주유가 만약 지금 항복한다면 관작官爵도 보전시켜줄 수 있는데, 하물며 주벌誅罰을 가하겠는가.
河水在此하니 吾不食言注+指河以爲信, 言其明白也.호리라 復往告한대 鮪卽降이어늘 拜平狄將軍하고 封扶溝侯하여 傳封累世注+地理志 “扶溝縣, 屬淮陽郡.”하다
하수河水가 여기에 있으니, 〈내 하수河水를 두고 맹세하여〉 식언食言하지 않겠다.”注+하수河水를 가리켜 약속한 것은 명백함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잠팽이 다시 가서 말하자, 주유가 즉시 항복하였다. 이에 주유를 평적장군平狄將軍에 임명하고 부구후扶溝侯에 봉하여 몇 대에 걸쳐 봉읍封邑을 전하게 하였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부구현扶溝縣회양군淮陽郡에 속했다.” 하였다.
侍御史杜詩安集洛陽이러니 將軍蕭廣 縱兵暴橫이라
시어사 두시侍御史 杜詩낙양洛陽의 백성들을 편안히 정착하게 하였는데, 장군 소광將軍 蕭廣이 군대를 풀어 횡포를 부렸다.
詩勅曉不改어늘 遂格殺廣注+勅, 戒也. 曉, 開諭也.한대 召見하고 賜棨戟하여 擢任之注+棨戟, 前驅之器也. 以木爲之, 王公以下通用之. 漢制, 假棨戟以代斧鉞.하다
두시가 경계하고 타일렀으나 고치지 않자, 마침내 손으로 쳐서 소광을 죽였는데注+은 경계함이고, 는 타이름이다., 이 두시를 불러보고는 계극棨戟(나무로 만든 창)을 하사하고 발탁하여 임용하였다.注+계극棨戟은 선봉대가 쓰는 병기이다. 나무로 만드는데 왕공王公 이하가 통용하였다. 나라 제도에 계극棨戟을 빌려 부월斧鉞을 대신하였다.
十月 車駕入洛陽하여 幸南宮하여 遂定都焉하다
10월에 거가車駕낙양洛陽에 들어가 남궁南宮에 행차하고서 마침내 도읍을 정하였다.
淮陽王 降於赤眉하다
회양왕淮陽王(유현劉玄)이 적미赤眉에게 항복하였다.
更始遣劉恭하여 請降於赤眉러니 赤眉將殺之注+通鑑 “更始遣劉恭請降, 赤眉使其將謝祿往受之, 更始隨祿, 肉袒, 上璽綬於盆子, 赤眉坐更始, 置庭中, 將殺之.” 爲請不得한대 拔劍欲自刎注+爲, 去聲.이어늘
경시更始(유현劉玄)가 유공劉恭을 보내 적미赤眉에게 항복을 청하였는데, 적미가 경시를 죽이려 하였다.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경시更始유공劉恭을 보내어 적미赤眉에게 항복을 청하자, 적미가 그의 장수 사록謝祿으로 하여금 가서 항복을 받게 하니, 경시가 사록을 따라와서 위통을 벗고 옥새와 인끈을 유분자劉盆子에게 올렸다. 적미는 경시를 앉히고 뜰 가운데에 두고는 장차 죽이려 했다.” 하였다. 유공이 살려줄 것을 청원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자, 유공이 검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려 하였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다.
崇等 乃赦更始하고 封爲長沙王하니 常擁護之하니라
번숭樊崇 등이 〈이를 저지하고〉 마침내 경시를 사면하고 장사왕長沙王으로 봉하였는데, 유공이 항상 그를 따르며 보호하였다.
鄧禹引軍하여 屯栒邑하다
등우鄧禹가 군대를 인솔하여 순읍栒邑에 주둔하였다.
劉盆子居長樂宮할새 兵士暴掠하니 百姓 不知所歸러니 聞鄧禹乘勝獨克而師行有紀하고
유분자劉盆子장락궁長樂宮에 거처할 적에 그의 병사들이 포악하게 노략질을 하니, 백성들이 돌아갈 바를 알지 못하였는데, 등우鄧禹가 승세를 타고 홀로 승리하였으며 그의 군사들이 행군할 때에 기강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皆望風相攜負以迎軍하니 降者日以千數 衆號百萬注+紀, 綱紀也. 言軍師之行, 皆有條貫而不殘暴也. 攜在手, 負在背.이라하다
이에 모두 명망을 듣고 서로 물건을 손에 들거나 등에 지고 와서 군대를 맞이하니, 항복하는 자가 날마다 천 명으로 헤아려져서 무리가 백만이라 칭하였다.注+는 기강이니, 〈“사행유기師行有紀”는〉 군대의 행군이 모두 조리가 있어서 잔악하고 포악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는 짐이 손에 있는 것이고, 는 짐이 등에 있는 것이다.
禹所止 輒停車拄節하여 以勞來之하니 父老童穉垂髫戴白 滿其車下하여 莫不感悅이라 於是 名震關西注+髫, 田聊切. 垂髫, 謂小兒髮之垂者. 戴白, 謂老人頭戴白髮者.러라
등우는 주둔하는 곳마다 번번이 수레를 멈추고 부절符節을 잡고서 백성들을 위로하여 오게 하니, 백발의 부로父老와 댕기를 딴 어린아이들이 그의 수레 아래에 가득해서 감동하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등우의 이름이 관서關西에 진동하였다.注+(더벅머리)는 전료田聊이다. “수초垂髫”는 댕기 머리를 따서 드리운 어린아이를 이르고, “대백戴白”은 머리가 백발인 노인을 이른다.
諸將豪桀 皆勸禹徑攻長安한대 禹曰 不然하다 今吾衆雖多 能戰者少
】 장수들과 호걸들이 모두 등우鄧禹에게 곧바로 장안長安적미赤眉를 공격할 것을 권하니, 등우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 무리가 비록 많으나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자가 적으며,
前無可仰之積하고 後無轉饋之資注+仰, 猶恃也. 積, 子智切, 聚也.하고 赤眉新拔長安하여 財穀充實하니 鋒銳 未可當也
앞에는 믿을 만한 저축이 없고 뒤에는 수송하여 공급할 물자가 없다.注+(믿다)은 와 같다. 자지子智이니 모임이다. 그런데 적미는 새로 장안長安을 함락하여 재물과 곡식이 충실하니, 그 예봉을 당할 수가 없다.
夫盜賊群居 無終日之計하니 財穀雖多 寧能堅守者邪
그러나 도적은 떼 지어 살면서 하루를 마칠 계책(장구한 계책)이 없으니, 저들의 재물과 곡식이 비록 많으나 어찌 능히 견고히 지킬 수 있겠는가.
上郡, 北地, 安定三郡 土廣人稀하고 饒穀多畜注+畜, 謂六畜也.하니 吾且休兵北道하고 就糧養士하여 以觀其敝 乃可圖也니라
상군上郡북지北地, 안정安定은 영토가 넓고 인민이 적으며 곡식이 풍요롭고 가축이 많으니注+, 내 장차 이 북도北道에서 군대를 휴식시키고 양식을 가져다가 병사들을 기르면서 저들이 피폐할 틈을 살피면, 이에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於是 引軍하여 北至栒邑하니 所到 諸營保郡邑 皆開門歸附注+栒, 音荀. 栒邑縣, 屬右扶風. 保, 與堡同.러라
이에 등우가 군대를 인솔하여 북쪽으로 순읍栒邑에 이르니, 이르는 곳마다 여러 영보營堡군읍郡邑이 모두 성문을 열고 귀순하였다.注+은 음이 이니, 순읍현栒邑縣우부풍右扶風에 속하였다. (보루)는 와 같다.
十一月 梁王永 稱帝하다
】 11월에 양왕 유영梁王 劉永이 황제를 칭하였다.
◑十二月 하다
】 12월에 적미赤眉회양왕淮陽王(유현劉玄)을 죽였다.
三輔苦赤眉暴虐하고 皆憐更始하여 欲盜出之러니 張卬等 使謝祿縊殺之하다
삼보三輔 지역이 적미赤眉의 포악함을 괴로워하고 모두 경시更始를 불쌍히 여겨 몰래 탈출시키고자 하였는데, 장앙張卬 등이 사록謝祿을 시켜 경시를 목 졸라 죽게 하였다.
劉恭 夜往하여 收藏其屍어늘 帝詔鄧禹하여 葬之於霸陵하다
유공劉恭이 밤중에 가서 그의 시신을 거두어 매장하자, 황제는 등우鄧禹에게 조령詔令을 내려서 그를 패릉霸陵에 장례하게 하였다.
隗囂據天水하여 自稱西州上將軍하다
외효隗囂천수天水를 점거하고서 서주상장군西州上將軍이라고 자칭하였다.
隗囂歸天水하여 復聚其衆하여 自稱西州上將軍하니 三輔士大夫避亂者多歸之
외효隗囂천수天水로 돌아가서 다시 그 무리를 모아 서주상장군西州上將軍이라고 자칭하니, 삼보三輔 지역의 피난했던 사대부士大夫들이 많이 그에게 귀의하였다.
囂傾身引接하여 爲布衣交하여 以范逡爲師友하고 鄭興爲祭酒하고 申屠剛, 杜林爲治書注+治書, 卽治書侍御史.하고
외효는 힘을 다해 사대부들을 맞아 접견하고 포의布衣들과 교유하여 범준范逡사우師友, 정흥鄭興좨주祭酒, 신도강申屠剛두림杜林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로 삼았으며注+치서治書는 바로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이다.,
馬援, 楊廣, 王遵, 周宗, 行巡, 王元爲將軍注+
馬援(≪古聖賢傳略≫)馬援(≪古聖賢傳略≫)
行, 姓也.
하고 班彪之屬爲賓客하니 名震西州러라
마원馬援양광楊廣, 왕준王遵과, 주종周宗, 행순行巡왕원王元장군將軍으로 삼고注+이다. 반표班彪(반표)의 등속을 빈객賓客으로 삼으니, 명성이 서주西州에 진동하였다.
少以家貧으로 欲就邊郡田牧이러니 兄況曰注+
竇融(≪雲臺三十二將圖≫)竇融(≪雲臺三十二將圖≫)
援三兄況․余․員, 竝有才能, 莽時皆爲二千石.
大才 當晩成이라
마원馬援은 젊어서 집이 가난하였으므로 변군邊郡에 나가 농사짓고 목축을 하고자 하였는데, 형 마황馬況이 말하기를注+마원馬援의 세 형인 마황馬況마여馬余, 마원馬員은 모두 재능이 있어서 왕망王莽 때에 모두 이천석二千石이 되었다. “너는 큰 재주이니, 마땅히 늦게 대성할 것이다.
良工 不示人以朴하나니 且從所好注+朴, 與樸同. 從所好, 從其所請也.하라하니 遂之地田牧하다
훌륭한 목수는 남에게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보이지 않는 법이니, 너는 우선 네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라.”注+(통나무)은 과 같다. “종소호從所好”는 그가 원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다. 하니, 마침내 북지北地에 가서 농사짓고 짐승을 길렀다.
常謂賓客曰 丈夫爲志 窮當益堅이요 老當益壯이라하다 有畜數千頭 穀數萬斛이러니
마원이 항상 빈객賓客들에게 이르기를 “장부丈夫가 의지를 세울 적에는 곤궁할수록 더욱 견고해야 하고 늙을수록 더욱 건장해야 한다.” 하였다. 마원은 뒤에 수천 마리의 가축과 수만 섬의 곡식을 소유하였는데,
旣而 歎曰 凡殖財産 貴能賑施也 否則守錢虜耳라하고 乃盡散於親舊注+興生財利曰殖. 賑, 音震, 贍也. 施, 去聲.러라
이윽고 탄식하기를 “무릇 재산을 증식하는 것은 남을 구휼하고 은혜를 베푸는 것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니, 그렇지 않으면 수전노守錢虜일 뿐이다.” 하고는 마침내 재산을 친구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注+재리財利를 일으키고 내는 것을 이라 한다. 은 음이 이니 넉넉함이다. (은혜를 베풀다)는 거성去聲이다.
聞隗囂好士하고 往從之하니 囂甚敬重하여 與決籌策이러라 穉之子也
외효隗囂가 선비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가서 따르니, 외효는 몹시 그를 공경하고 소중히 여겨서 그와 함께 계책을 결정하였다. 반표班彪반치班穉의 아들이다.
竇融 據河西하여 自稱五郡大將軍하다
두융竇融하서河西를 점거하고서 스스로 오군대장군五郡大將軍이라 칭하였다.
竇融 累世仕宦河西하여 知其土俗注+融, 廣國七世孫也.이러니 更始時 私謂兄弟曰 天下安危 未可知
두융竇融이 여러 대 동안 하서河西에서 벼슬하여 하서의 습속을 잘 알았는데注+두융竇融두광국竇廣國의 7세손世孫이다., 경시更始 때에 은밀히 형제들에게 이르기를 “천하의 안위安危를 알 수 없다.
河西殷富하고 帶河爲固하며 張掖屬國 精兵萬騎注+漢邊郡, 皆置屬國, 有都尉以領之. 一旦緩急 杜絶河津이면 足以自守 此遺種處也注+遺, 留也. 可以保全, 不畏絶滅.라하고
하서는 백성이 많고 재물이 풍부하며, 황하가 띠처럼 두르고 있어 지형이 견고하며, 에 정예한 기병이 만기萬騎나 된다.注+나라 변군邊郡에 모두 속국屬國을 설치하고 도위都尉를 두어 거느리게 하였다. 하루아침 위급할 때에 하수河水의 나루터를 차단하면 충분히 스스로 지킬 수 있으니, 이는 자손을 남길 만한 곳이다.”注+는 남김이니, 〈“유종처遺種處”는〉 자손을 보존할 수 있어서 끊기고 멸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고는
乃因趙萌하여 求往한대 更始以爲張掖屬國都尉하다
마침내 조맹趙萌을 통하여 하서로 갈 것을 요구하자, 경시가 그를 장액속국도위張掖屬國都尉로 삼았다.
旣到 撫結雄桀하고 懷輯羌虜하여 得其歡心하고 與太守都尉梁統等五人으로 尤厚善注+五人, 酒泉太守梁統․金城太守庫鈞․張掖都尉史苞․酒泉都尉竺曾․燉煌都尉辛(彤)[肜].이러라
두융竇融하서河西에 도착하자, 영웅호걸들을 어루만져 결탁하고 강족羌族을 회유하여 불러들여 환심을 얻었으며, 태수太守도위都尉의 직책에 있는 양통梁統 등 다섯 사람과 더욱 친하게 지내었다.注+다섯 사람은 주천태수 양통酒泉太守 梁統, 금성태수 고균金城太守 庫鈞, 장액도위 사포張掖都尉 史苞, 주천도위 축증酒泉都尉 竺曾, 돈황도위 신융燉煌都尉 辛肜이다.
及更始敗 相與議曰 今天下擾亂하여 未知所歸 河西斗絶하여 在羌胡中注+斗, 僻絶也.하니
경시更始가 패망하자, 서로 의논하기를 “지금 천하가 소란하여 귀의할 바를 알지 못한다. 하서河西는 궁벽하게 멀리 떨어져 강족羌族흉노匈奴 가운데에 있다.注+는 궁벽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不同心戮力이면 則不能守 權均力齊 復無以相率이니 當推一人爲大將軍하여 共全五郡하여 觀時變動注+五郡, 張掖․酒泉․燉煌․金城․武威.이라하다
우리가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합하지 않으면 지켜내지 못하고, 세력이 대등하고 힘이 같으면 다시 서로 통솔할 수가 없으니, 마땅히 한 사람을 대장군大將軍으로 삼아 함께 다섯 을 온전히 보전하고서 때를 살펴보아 변동해야 한다.”注+오군五郡장액張掖주천酒泉, 돈황燉煌금성金城, 무위武威이다. 하였다.
乃推融行河西五郡大將軍事하고 以梁統爲武威太守하고 史苞爲張掖太守하고 竺曾爲酒泉太守注+竺, 音竹, 姓也.하고爲燉煌太守하고
이에 두융을 추대하여 행하서오군대장군사行河西五郡大將軍事로 삼고, 양통梁統무위태수武威太守, 사포史苞장액태수張掖太守, 축증竺曾(축증)을 주천태수酒泉太守注+은 음이 이니 이다., 신융辛肜(신융)을 돈황태수燉煌太守로 삼았다.
唯庫鈞 爲金城太守如故注+庫, 姓也.하며 而融 亦仍居屬國하여 領都尉職하고 置從事하여 監察五郡하다
오직 고균庫鈞은 예전처럼 금성태수金城太守로 삼았으며注+이다., 두융 또한 그대로 속국屬國에 거주하면서 도위都尉의 직책을 겸하고 종사관從事官을 두어 다섯 을 감찰하였다.
河西 民俗質樸하고 而融等政亦寬和하니 上下相親하여 晏然富殖이러라
하서河西 지역은 민속이 질박하고 두융竇融 등의 정사 또한 너그럽고 조화로우니, 상하上下가 서로 친애하여 편안하고 풍족하였다.
修兵馬하여 習戰射하고 明烽燧하여 羌胡犯塞어든 自將하여 與諸郡相救호되
군대와 말을 정돈하여 전투하는 방법과 활 쏘는 법을 익히고 봉화의 제도를 밝혀서, 강족羌族흉노匈奴가 변방을 침략하면 두융이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여러 과 서로 구원하였는데,
皆如符要하여 每輒破之注+如符要, 言赴敵不失期契也.하니 由是 羌胡震服親附하고 流民歸之러라
모두 부신符信을 사용하여 약속한 것처럼 정확하게 달려가서 번번이 격파하니注+여부요如符要”는 적에게 달려가되 약속한 시기를 놓치지 않음을 말한다., 이로 말미암아 강족羌族흉노匈奴가 두려워하여 복종하고 친근하게 따랐으며 유민流民들도 그에게 귀의하였다.
盧芳 據安定하여 自稱西平王하니 하다
노방盧芳안정安定을 점거하고서 스스로 서평왕西平王이라 칭하니, 흉노匈奴가 그를 맞이하여 세워서 나라의 황제로 삼았다.
安定盧芳 詐稱武帝曾孫劉文伯하고 自立爲上將軍西平王注+欲平定西方, 故以爲號.하여 使使與匈奴結和親하니
안정安定 사람 노방盧芳무제武帝의 증손 유문백劉文伯이라 사칭하고는 스스로 즉위하여 상장군 서평왕上將軍 西平王이 되어注+서방西方을 평정하고자 하였으므로 서평왕西平王이라고 칭한 것이다. 사신을 보내서 흉노匈奴와 화친을 맺으니,
單于以爲 漢氏中絶하여 劉氏來歸我하니 亦當如呼韓邪立之하여 令尊事我라하고 乃使騎迎芳入匈奴하여 立爲漢帝注+盧芳傳 “單于曰 ‘匈奴本與漢約爲兄弟, 後匈奴衰, 呼韓邪單于歸漢, 漢爲發兵擁護, 世世稱臣. 今漢亦中絶, 劉氏來歸我, 亦當立之, 令尊事我.’”하다
선우單于가 말하기를 “나라가 중간에 끊겨서 유씨劉氏가 나에게 와서 귀의하였으니, 나 또한 마땅히 호한야呼韓邪(호한야)와 같이 그를 세워서 나를 높여 섬기게 하겠다.” 하고는 기병騎兵을 보내 노방을 흉노로 맞아들여 나라 황제로 세웠다.注+후한서後漢書≫ 〈노방전盧芳傳〉에 “선우單于가 말하기를 ‘우리 흉노匈奴는 본래 나라와 형제가 되기로 약속하였는데, 뒤에 흉노가 쇠약해지자,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나라에 귀의하였다. 이에 나라에서 군대를 징발하여 그를 호위하니, 대대로 이라 칭하였다. 지금 나라 또한 중간에 끊겨서 유씨劉氏가 나에게 와서 귀의하니, 나 또한 마땅히 그를 세워서 나를 높여 섬기게 하겠다.’ 했다.” 하였다.
將軍馮愔하다
장군 풍음將軍 馮愔(풍음)이 반란을 일으켰다.
帝以關中未定이요 而鄧禹久不進兵이라하여 賜書責之호되 禹猶執前意하여 別攻上郡諸縣하고 更徵兵引穀이라
】 황제는, 관중關中이 아직 평정되지 못하였는데 등우鄧禹가 오랫동안 진군하지 않는다 하여 친서를 내려 책망하였다. 그러나 등우는 여전히 예전의 뜻을 고집하여 따로 상군上郡의 여러 을 공격하고 다시 병사들을 징발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였다.
將軍馮愔, 宗歆 守栒邑하여 爭權相攻注+愔, 音陰.이라가 遂殺歆하고 因及擊禹어늘
장군 풍음馮愔종흠宗歆(종흠)이 순읍栒邑을 지키면서 권력을 다투어 서로 공격하다가注+은 음이 이다., 풍음이 마침내 종흠을 죽이고 이어서 반란을 일으켜 등우를 공격하였다.
禹遣使以聞한대 帝問使人호되 愔所親愛爲誰 對曰 護軍黃防이니이다
등우가 사자使者를 보내 이 사실을 보고하자, 황제가 사자에게 “풍음이 가장 친애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호군 황방護軍 黃防입니다.” 하였다.
報禹曰 縛馮愔者 必黃防也라하고 乃遣尙書宗廣하여 持節往降之하니 果執愔歸罪하다
황제는 등우에게 답서를 보내기를 “풍음을 포박해올 자는 틀림없이 황방일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상서 종광尙書 宗廣을 보내 부절符節을 잡고 가서 황방을 항복시키니, 황방이 과연 풍음을 사로잡아가지고 와서 자수하고 죄를 인정하였다.
鄧禹承制하여 以隗囂爲西州大將軍하다
등우鄧禹제명制命을 받들어 외효隗囂서주대장군西州大將軍으로 삼았다.
馮愔之叛也 引兵西向天水어늘 隗囂擊破之하니 於是 禹承制하여 遣使持節하여 命囂爲西州大將軍하여 得專制涼州朔方事하다
풍암馮愔이 반란을 일으켰을 적에 병력을 인솔하고 서쪽으로 천수天水로 향하자, 외효隗囂가 풍음을 격파하였다. 이에 등우鄧禹제명制命을 받들어 사자使者를 보내 부절符節을 잡고 가서 외효를 서주대장군西州大將軍으로 임명하여 양주涼州삭방朔方의 일을 전적으로 통제하게 하였다.
田邑 以上黨降하다
전읍田邑상당上黨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帝遣劉延하여 攻天井關하니 更始將田邑 拒之하여 不得進이러니 及更始敗 請降이어늘 卽拜上黨太守하다
】 황제가 유연劉延을 보내 천정관天井關을 공격하였는데, 경시更始의 장수 전읍田邑이 항거하고 있어서 나아갈 수 없었다. 경시가 패하자, 전읍이 항복을 청하므로 즉시 상당태수上黨太守로 임명하였다.
帝又遣儲大伯하여 持節徵鮑永注+儲, 音除, 姓也. 大, 音太.한대 未知更始存亡이라 收繫大伯하고 遣使馳至長安하여 詗問虛實注+詗, 恥慶․火逈二切, 候伺也.하다
황제가 또 저태백儲大伯(저태백)을 보내 부절符節을 잡고 포영鮑永을 불렀는데注+는 음이 이니 이다. 는 음이 이다., 포영은 경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지 못하여 저태백을 붙잡아 옥에 가두고는, 사자使者를 보내 장안長安에 달려가서 허실虛實을 살펴 탐문하게 하였다.注+치경恥慶화형火逈의 두 가지 이니, 살핌이다.
역주
역주1 以前定安公嬰……於臨涇 : “定安公을 전에 ‘王莽이 폐위했다.’고 썼으니, 그렇다면 폐위해서는 안 되는 자이다. 그런데 여기서 ‘故太子(옛 太子)’라고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故太子’라고 쓰면 마땅히 황제가 되어야 하는데, 장성해서도 六畜의 이름을 알지 못했으니 황제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以稱帝’라고 쓴 것이다. 以는 남에게 좌지우지당하는 것이니, 제왕은 스스로 서는 자인데, 남에게 좌지우지당했으니 황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에 ‘以稱帝’라고 쓴 것이 5번(劉子嬰, 劉盆子, 梁나라의 蕭正德, 蕭莊, 閩나라 승려 卓巖明)이니, ‘使稱帝(魏나라가 梁王 詧(찰)을 시켰음)’, ‘遣稱帝(齊나라가 貞陽侯 淵明을 보냈음)’라고 쓴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定安公前書莽廢 則不宜廢者也 此其不書故太子 何 書故太子 則宜帝矣 長大不能名六畜 尙足以帝乎 故書以稱帝 以者 見以於人也 帝王所自立者也 見以於人 則不足以帝矣 綱目書以稱帝者五(子嬰盆子梁蕭正德蕭莊閩僧卓巖明) 與書使稱帝(魏使梁王詧) 遣稱帝(齊遣貞陽侯淵明)者 則又異矣]” ≪書法≫
역주2 여름……칭하였다 : 본서 395쪽 지도9 ‘A.D.25년경 群雄의 현황’ 참조.
역주3 劉昭의 ≪後漢書≫ 〈郡國志〉 : 원문의 “劉昭志”는 ≪後漢書≫ 〈郡國志〉를 가리킨다. ≪후한서≫는 南朝 宋나라 范曄에 의해 편찬되었다. 그러나 범엽이 彭城王 劉義康의 반란에 참여했다가 처형되면서 ≪후한서≫의 志 부분을 완성하지 못하였다. 梁나라 劉昭는 東晉 司馬彪가 편찬한 ≪續漢書≫ 가운데 여덟 개의 志 부분에 註釋을 붙여 30권의 ≪補注後漢志≫를 편찬하였는데, 이것이 뒤에 ≪후한서≫로 편입되었다.
역주4 소왕이……하였다 : ≪資治通鑑≫에는 이 뒤에 “衆皆怪王宣露軼書(사람들이 모두 소왕이 이일의 편지를 공개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라는 말이 있다.
역주5 蕭王……改元大赦 : “漢王(劉邦)은 이미 천하를 평정하였는데도 尊位를 바로잡지 않고 제후들이 강력히 청하기를 기다린 이후에 따랐는데, 光武帝는 아직 海內를 평정하지 못했는데도 갑자기 尊位를 바로잡은 것은 어째서인가. 창업은 중흥과는 진실로 본래 똑같지 않은 것이다. 이때를 당하여 更始가 이미 패망하였고, 사방에서 사사로이 제왕의 이름과 칭호를 도둑질한 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中外가 皇皇하여 향할 바를 알지 못하였으니, 世祖(光武帝)가 만일 일찍 존위와 칭호를 바로잡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귀속시키지 않았다면, 천하의 희망이 멀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蕭王이 황제에 즉위하여 改元하고 크게 사면하였다.’고 쓴 것은 매우 다행하게 여긴 것이니, 어찌 高祖를 비유로 삼아 의논할 것이 있겠는가.[漢王已平天下 猶未正尊位 必待諸侯力請而後從之 光武未能削平海內 遽正尊位 何哉 創業之與中興 固自不同 當是時 更始旣已敗亡 四方私竊名號者 非一 中外皇皇 莫知所嚮 世祖苟不早正位號以繫人心 則天下之望孤矣 故書蕭王卽皇帝位 改元大赦者 深幸之也 烏可以高祖爲比而擬議之哉]” ≪發明≫
역주6 龍의……때문입니다 : 용이나 봉황은 모두 帝王을 상징하므로, 제왕이 될 사람에게 의지하여 功을 세우고자 함을 이른다.
역주7 28명의 장수 : 光武帝의 건국 공신을 지칭한 것이다. 이들의 그림을 後漢 明帝 때 雲臺에 그렸는데, 이를 雲臺 28將이라 한다.
역주8 (徒)[徙] : 저본에는 ‘徒’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徙’로 바로잡았다.
역주9 (王)[三] : 저본에는 ‘王’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註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左輔는……있었다 : 옛날 長安을 싸고 있는 左馮翊과 右扶風, 京兆尹을 三輔라 하였는바, 左輔都尉의 治所는 高陵에 있었다.
역주11 畜은……이른다 : 원래는 말, 소, 양, 닭, 개, 돼지 등 6종류의 가축을 이르는데, 모든 가축의 통칭으로도 쓰인다.
역주12 赤眉殺淮陽王 : “누가 죽였는가. 張卬이 사람을 시켜 죽인 것이다. 장앙은 옛 신하인데, ‘弑’라고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이때에 劉玄이 적에게 항복하였으니, 그렇다면 이는 장앙과 동등한 것이다. 그러므로 동등한 雙方이 상대를 죽인 것으로 쓰고, 장앙을 ‘赤眉’라고 쓴 것이다. ≪資治通鑑綱目≫의 필법은 夷蠻과 盜賊에 대해서 ‘殺’이라고 쓰고 ‘弑’라고 쓰지 않는다.[孰殺之 張卬使人殺之也 卬故臣也 其不書弑 何 於是玄降賊矣 則是與卬等耳 故以兩下相殺書之 而卬書赤眉 綱目之法 夷蠻盜賊 書殺不書弑]다” ≪書法≫
역주13 (比)[北] : 저본에는 ‘比’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北’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4 張掖屬國 : 漢 武帝 때 이민족이 항복한 곳에 屬國都尉를 두었다. 張掖屬國은 무제가 河西 지역의 匈奴를 정벌하고 세운 五屬國의 하나인 듯하다. 後漢 安帝 때 장액도위가 관할하던 지역에 장액속국을 두어 장액군과 대등한 위치를 부여하였다.
역주15 (肜)[彤] : ≪後漢書≫ 권53 〈竇融列傳〉에는 ‘彤’자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 권40 〈漢紀 世祖光武皇帝〉에 대한 胡三省의 音註에 余中의 切로 표기하여 ‘肜(융)’자로 보았는바, 본서 역시 이를 따라 번역하였음을 밝힌다. 아래 訓義도 이와 같다.
역주16 匈奴迎之立以爲漢帝 : “≪資治通鑑綱目≫에 蠻夷가 세워서 帝王을 삼았다고 쓴 것이 3번이니, 匈奴가 盧芳을 세운 것과 突厥이 楊政道를 세운 것과 契丹이 石敬瑭을 세운 경우이다. 이 중 일이 이루어진 것은 오직 석경당뿐이며, 定楊(劉武周)을 可汗이라고 칭한 것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綱目書蠻夷立以爲帝王者三 匈奴於盧芳 突厥於楊政道 契丹於石敬瑭 事成 惟敬塘耳 定楊稱可汗 不與焉]다” ≪書法≫

자치통감강목(7) 책은 2019.10.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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