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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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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申年(B.C. 97)
갑신년(B.C. 97)
四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천한天漢 4년이다.
봄 정월에 이광리李廣利 등을 보내어 흉노匈奴를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族誅李陵家하다
이릉李陵의 가족을 주살誅殺하였다.
發天下七科謫하여 遣李廣利等四將軍하여 出塞注+四將軍, 李廣利‧路博德‧韓說‧公孫敖.러니
[目] 천하의 7에 속하는 죄인들을 징발하여 이광리李廣利 등 네 장군을 보내 변방으로 출동시켰다.注+사장군四將軍(네 장군將軍)”은 이광리李廣利노박덕路博德한설韓說(한열)과 공손오公孫敖이다.
匈奴聞之하고 悉遠其累重於余吾水北注+累, 謂妻子. , 謂輜重. 余, 餘‧徐二音. 一作斜, 音邪. 余吾水, 在朔方郡北.하고 而單于以兵十萬으로 待水南하니 漢軍 戰不利하여 引歸하다
흉노匈奴는 이 말을 듣고 가솔과 치중輜重여오수余吾水 북쪽으로 모두 멀리 옮기고,注+처자妻子를 이르고 치중輜重을 이른다. 두 가지 음이 있다. 일본一本에는 ‘’로 되어 있으니, 음이 이다. 여오수余吾水삭방군朔方郡 북쪽에 있다. 선우單于가 10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여오수余吾水 남쪽에서 기다리니, 나라 군대가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하여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遣公孫敖하여 深入匈奴하여 迎李陵이러니 敖還하여 因曰 捕得生口하니 言李陵敎單于爲兵하여 以備漢軍이라
[目] 이때 공손오公孫敖를 보내어 흉노匈奴에 깊숙이 쳐들어가서 이릉李陵을 맞아오게 하였는데, 공손오가 돌아와서 아뢰기를 “포로를 잡았는데, 말하기를 ‘이릉이 선우單于를 교사하여 군대를 출동시켜 나라 군대를 방비한다.’ 하였습니다.
臣無所得이니이다
이 때문에 은 얻은 바가 없이 그대로 왔습니다.” 하였다.
於是 族陵家러니 旣而聞之하니 乃李緖 非陵也注+李緖, 本塞外都尉, 居奚侯城, 匈奴攻之, 緖降而單于客遇, 緖常坐陵上.
은 이에 이릉의 집안을 멸족하였는데 얼마 후에 들으니, 선우를 교사한 자는 바로 이서李緖이고 이릉李陵이 아니었다.注+이서李緖는 본래 변방 밖의 도위都尉해후성奚侯城에 거주하였는데, 흉노匈奴가 공격하자 이서가 항복하니, 선우單于가 손님으로 예우하여 이서가 항상 이릉의 윗자리에 앉아 있었다.
單于以女妻陵하고 立爲右校王하여 與衛律 皆貴用事注+右校, 胡之別種也. 立爲王而主其人.하다
선우는 딸을 이릉에게 시집보내고 우교왕右校王으로 삼아서 위율衛律과 함께 모두 귀한 신분이 되어 권력을 행사하게 하였다.注+우교右校는 오랑캐의 별종別種인데, 이릉李陵으로 세워서 그 종족을 주관하게 한 것이다.
夏四月 立子髆하여 爲昌邑王注+髆, 音博. 昌邑國, 屬兗州, 卽山陽郡地.하다
[綱] 여름 4월에 아들 유박劉髆을 세워 창읍왕昌邑王으로 삼았다.注+은 음이 이다. 창읍국昌邑國연주兗州에 속하니, 바로 산양군山陽郡 지역이다.
하다
[綱] 죽을죄를 지은 자들로 하여금 돈을 바치고 속죄하게 하였다.
錢五十萬이면 減死一等하다
[目] 50만 을 바치면 사형死刑을 한 등급 감하였다.
역주
역주1 遣李廣利等……族誅李陵家 : “위에서 ‘李廣利가 匈奴를 공격하다가 승리하지 못했다.’고 썼으니, 그렇다면 李陵의 집안이 죽임을 당한 것은 그의 죄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誅’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이릉이 지난번 오랑캐에게 항복했을 적에 《資治通鑑綱目》에서 ‘패전하여 항복했다.’고 쓴 것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니, 혹여 이것을 이릉이 부득이하여 항복한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패망한 군대의 항복한 장수가 懲毖될 곳이 없다. 그러므로 이릉의 三族을 멸한 일로 인하여 ‘誅’라고 썼으니, 이는 오랑캐에게 항복한 벌을 보여주어 세상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上書李廣利擊匈奴不利 則陵家死不以其罪 可知也 然則其書誅 何 陵前降虜 綱目書戰敗降 紀實也 或者亮其不得已 則奔軍降將 無所示懲矣 故因其族之而書誅 所以示降虜之罰 爲世戒也]” 《書法》
“李陵의 집안은 죄가 없이 멸족을 당하였는데, 오히려 ‘誅’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이릉은 오랑캐에게 항복한 죄가 있고 또 오랑캐에게 등용되었으니, 그 집안을 주벌함은 바로 이릉을 주벌한 것이니, 그 뜻이 엄하다.[陵家以無罪見族 猶書曰誅 何哉 蓋陵有降虜之罪 又用事於虜 誅其家 所以誅陵也 其旨嚴矣哉]” 《發明》
역주2 (所)[重] : 저본에는 ‘所’로 되어 있으나, 문맥을 살펴 ‘重’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令死罪入贖 : “앞에서 ‘詔令을 내려 백성들에게 속죄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쓴 것은 비판이었고, 여기에 ‘죽을죄를 지은 자로 하여금 재물을 바쳐 속죄하게 하였다.’고 쓴 것은 더욱 심하게 비판한 것이다. 속죄가 죽을죄에까지 이른다면 부자들이 사람을 죽였을 경우에는 모두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資治通鑑》에서는 쓰지 않았는데, 《資治通鑑綱目》에서는 특별히 쓴 것이다.[前書詔民得贖罪 譏矣 於是而書死罪入贖 甚譏之也 贖至死罪 則富者殺人 皆不死矣 故通鑑不書 綱目特書之]” 《書法》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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