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초왕楚王 한신韓信이 처음 초楚나라에 가서 현읍縣邑을 순행할 적에 병력을 진열하고 출입하니, 한신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글을 올려 고발하는 사람이 있었다.
황제가 여러 장수들에게 묻자, 모두 말하기를, “빨리 군대를 일으켜 그놈을 잡아다가 파묻어 죽이소서.” 하였는데,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 진평陳平에게 묻자, 진평이 대답하기를 “어떤 사람이 한신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고발한 사실을 한신이 알고 있습니까?” 하니, 상上이 말하기를, “그는 모르고 있다.” 하였다.
진평이 묻기를, “폐하의 군대를 초楚나라의 군대와 비교해볼 때 누가 더 정예롭습니까?” 하니, 상上이 대답하기를, “우리 군대가 그의 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진평이 또 묻기를, “여러 장수들 중에 용병用兵을 한신보다 더 잘하는 자가 있습니까?” 하니, 상上이 대답하기를, “그를 따라갈 자가 없다.” 하였다.
진평이 말하기를, “이와 같은데 군대를 동원하여 공격하는 것은 그를 재촉해서 싸우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폐하에게 위태로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注+촉趣(재촉하다)은 촉促으로 읽는다. 하였다.
상上이 묻기를,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하니, 진평이 대답하기를, “옛날에는
천자天子가
순수巡狩하여 제후와 회합하였으니, 폐하께서 다만 밖으로 나가서 거짓으로
운몽雲夢 지역을 유람한다고 하고 제후들과
진陳 땅에서 회합하소서.
注+제第는 다만이라는 뜻이다.
진陳 지역은
초楚나라의 서쪽 경계이니, 한신은 천자가 제후들과 회합하러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형편상 반드시 아무 일 없이 교외로 나와 맞이하여 배알할 것이니,
注+〈“교영알郊迎謁”은〉 교외까지 나와 멀리 가서 맞이하여 알현하는 것이다. 폐하께서 이때를 틈타 사로잡으신다면 이것은 단지 한 명의
역사力士만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였다.
目
[目] 황제가 진평陳平의 말을 옳게 여겨 마침내 제후들에게 고하기를, “제후들은 진陳 땅에 모이도록 하라.
내 장차 남쪽으로 가서 운몽雲夢 지역을 유람하겠다.” 하고, 그대로 따라 나섰다.
한신은 이 소식을 듣고 의심스럽고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때
항우項羽의 옛 장수였던
이 도망해서 한신에게 와 있었는데,
한漢나라에서는 한신에게 명하여 그를 체포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이 종리말을 참수斬首하여 바치라고 한신에게 건의하였다.
상上이 진陳 땅에 도착하자 한신이 종리말의 머리를 가지고 와서 상上을 알현하였는데, 상上이 무사들을 시켜 한신을 포박해서 뒤의 수레에 싣게 하였다.
그러자 한신이 말하기를 “과연 사람들이 하는 말과 같구나.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잘 달리는 사냥개는 삶아지고, 높이 나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은 깊숙한 곳에 보관되고, 적국이 격파되면
모신謀臣은 망한다고 하더니,
注+이 내용은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나는 참으로 삶아지겠구나.” 하였다.
마침내 그를 형틀에 묶어 돌아오고 인하여 천하의 죄인들을
사면赦免하였다.
注+계械는 하계下戒의 절切이다. 계械는 형틀에 채우는 것이고, 계繫는 포승줄로 묶는 것이다.
目
[目] 〈황제가 돌아오다가〉 낙양洛陽에 이르러 한신韓信을 사면하고 회음후淮陰侯에 봉하였다.
한신은 황제가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서 대부분 병을 핑계 대고 조정에 나와 황제를 알현하거나 황제를 수행하지 않았으며,
注+오惡(미워하다)는 오로烏路의 절切이다. 조朝는 조회하여 알현한다는 뜻이고 종從은 수행隨行하는 것이다. 항상 불평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내면서
강후絳侯(
주발周勃)나
관영灌嬰 같은 사람들과 같은 반열에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注+앙앙鞅鞅(앙앙불락하다)은 앙앙怏怏과 통용하여 쓰인다. 강絳은 강후絳侯 주발周勃을 이르고, 관灌은 장군將軍 관영灌嬰을 이른다. 한신韓信이 예전에는 대장大將이었고 또 왕王에 봉해졌었는데, 지금은 후侯에 봉해졌기 때문에 〈이들과 같은 반열에 있음을〉 부끄럽게 여긴 것이다.
상上이 일찍이 여유롭게 한신과 함께 여러 장수들의 능력이 병사를 얼마나 거느릴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상上이 묻기를 “나와 같은 자는 몇 명을 거느릴 수 있겠는가?” 하니, 한신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10만 명을 거느리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였다.
상上이 묻기를 “그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상上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사람인데 어찌하여 나에게 사로잡혔는가?” 하니, 한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는 병졸을 거느리는 것은 잘하지 못하시지만 장수들은 잘 거느리시니, 이것이 제가 폐하에게 사로잡히게 된 이유입니다.
그리고 폐하는 이른바 ‘하늘이 내려준 분이고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目
[目] 장량張良도 전투한 공로가 없었는데, 황제가 제齊나라 지방의 3만 호를 직접 고르게 하였다.
이에 장량이 말하기를 “신이 처음
하비下邳에서
기병起兵하여
상上과
유留 땅에서 만났으니,
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하비현下邳縣은 동해군東海郡에 속하였다.” 하였다. 이 말하기를 “상비上邳가 있기 때문에 하비下邳라고 한 것이다.” 하였다. 이것은 하늘이 신을 폐하에게 준 것입니다.
폐하께서 신의 계책을 써서 다행히 때때로 그 계책이 들어맞았으니,
注+중中(들어맞다)은 거성去聲이다. “시중時中”은 때때로 맞았다는 뜻이니, 겸사謙辭이다. 신은
유留 땅에 봉해지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3만 호는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마침내 장량을 봉하여 유후留侯로 삼았다.
진평陳平을 봉하여
호유후戶牖侯를 삼으니,
注+호유戶牖는 향鄕의 이름이니 진류군陳留郡 양무현陽武縣에 속하였다. 진평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신의 공이 아닙니다.” 하였다.
상上이 말하기를 “내가 선생의 계책을 써서 전투에서 승리하여 적을 이겼으니, 이것이 공功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니, 진평이 말하기를 “위무지魏無知가 아니면 신이 어떻게 등용될 수 있었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상上은 말하기를 “그대와 같은 자는 근본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이를 만하다.” 하고는 마침내 다시 위무지에게 상을 내렸다.
目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선왕先王이 세상을 다스리던 법이 진秦나라 때에 이르러 완전히 없어졌다.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일어나서 천하를 이미 평정하였으니, 의당 대신大臣에게 명해서 등용되지 않은 현자賢者를 구하고 선왕先王의 법제法制를 강구하되 맨 먼저 정전법井田法을 복구해야 하였다.
이때는 진秦나라 시대와 멀지 않아서 경계經界(경계를 다스리는 일)와 구혁溝洫에 대해 반드시 그래도 상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큰 근본이 한 번 바로잡히고 이것을 바탕으로 땅을 나누어 나라를 봉해주었으면 거리의 멀고 가까움과 영토의 크고 작음이 각각 합당하게 되어 요堯‧순舜의 이제二帝와 하夏‧상商‧주周의 삼왕三王이 천하를 만인萬人과 함께하였던 공심公心이 다시 전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고제高帝는 옛날의
법제法制를 상고하지 않고 멋대로 땅을 나누어
들에게 봉해주되, 천하의 반을 나누어주어
注+《시고詩詁》에 “정처正妻의 장자長子를 적嫡이라 하고, 그 나머지를 서庶라 하고, 첩과 노비의 자식을 얼孽이라 하니, 얼孽이라는 말은 그루터기의 움싹[얼蘖]이라는 뜻이다. 죄를 진 여자는 적몰籍沒하여 사역시킬 뿐인데, 군주에게 총애를 받아서 자식을 낳으면 이것은 마치 벤 나무의 그루터기[알枿]에서 움싹이 나오는 것과 같다. 알枿은 얼蘖과 통한다.” 하였다. 일시적으로 구차하게 처리해서 후세에 걱정거리를 남겼다.
황제의 지혜가 이미 이러한 데에 미치지 못하였고, 장량張良이나 진평陳平 같은 신하들도 이러한 것에 대해 계책을 내는 자가 없었으니, 이것은 아마도 선왕先王의 은택이 없어져서 하늘이 그 충심衷心을 열어주지 않아 그런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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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조참曹參이 제齊나라에 부임하여 선생先生들을 모두 불러 백성들을 안집安集시킬 방책에 대해 물었다.
제齊나라의 옛 유자儒者들이 100명 정도가 되었는데, 사람들의 말이 각각 달랐다.
조참은,
교서膠西 지역에
개공蓋公(합공)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황로黃老의 학설에 조예가 깊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만나기를 청하였다.
注+개蓋은 고합古闔의 절切이다. 개공蓋公은 사서史書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합공이 말하기를 “다스리는 방도는 청정淸淨한 것을 귀하게 여기니, 청정하면 백성들이 저절로 안정됩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조참이 정당正堂을 피하여 그를 거처하게 하고 그의 말대로 하니, 제齊나라가 안정되어 그를 어진 정승이라고 칭하였다.
目
[目] 상上이 큰 공功이 있는 공신 20여 명을 봉하였고, 그 나머지는 공을 다투는 것 때문에 결정을 못 내려 봉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상上이 복도複道에 있으면서 여러 장수들이 왕왕 서로 백사장에서 함께 모여 얘기하는 것을 멀리서 보고 묻기를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 하니, 유후留侯(장량張良)가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모르십니까?
상上이 묻기를 “무엇 때문인가?” 하니, 유후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는
포의布衣로 일어나서 이들을 데리고 천하를 얻으셨는데,
注+“차속此屬(이들)”은 차도此徒라는 말과 같다. 지금 봉해준 사람은 모두 폐하의 옛 친구와
친애親愛하는 자제들이고 죽인 사람은 모두 평소 원한이 있는 자들이니, 이들이 폐하께서 다 봉해주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또 평소 잘못한 일 때문에 의심을 받아 죽게 될까 염려해서 서로 모여 반란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상上이 걱정하여 말하기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자, 유후가 대답하기를 “상께서 평소 미워하는 사람 중에 여러 신하들이 함께 아는 것은 누가 가장 심합니까?” 하니,
상上이 말하기를 “
옹치雍齒가 나와 묵은 원한이 있어서 여러 번 나를 곤궁하게 하고 욕보였다.”
注+고제高帝가 처음 군대를 일으켰을 적에 옹치雍齒로 하여금 풍읍豐邑을 지키게 하였는데, 옹치가 평소 고제에게 소속되기를 싫어하였기 때문에 즉시 풍읍을 가지고 위魏나라에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고제가 여러 번 공격한 뒤에야 이길 수 있었다. 하였다.
유후가 아뢰기를 “지금 우선 급히 옹치를 봉해주시면 여러 신하들이 모두 스스로 안정될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옹치를 봉해
십방후什方侯를 삼고, 급히
승상丞相과
어사御史를 재촉하여
공功을 결정해서
분봉分封을 시행하게 하였다.
注+십방什方은 현縣의 이름인데,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광한군廣漢郡에 속하였다.” 하였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모두 기뻐하여 말하기를 “옹치도 오히려 후侯가 되었으니, 우리들은 걱정할 것이 없다.” 하였다.
目
[目]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장량張良은 고제高帝의 심복心腹이 되었으니 마땅히 아는 것을 모두 말해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제장諸將들이 모반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도 고제가 스스로 보기를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말을 한 것인가?
이것은 고제가 자주
애증愛憎의 감정에 따라
주벌誅罰과
상賞을 시행해서 여러 신하들이 왕왕 원망하여 스스로 위태롭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注+결觖은 음이 결決이니 부족하다는 뜻이다. “결망觖望”은 바라는 바에 차지 않아 원망하는 것을 이른다.
그러므로 장량이 이 일로 인하여 충언忠言을 바쳐서 고제의 생각을 바꾸게 하여, 윗사람으로 하여금 공정하지 못한 잘못이 없게 하고 아래의 신하들로 하여금 시기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였으니, 잘 간했다고 이를 만하다.”
目
[目] 처음에
흉노匈奴가
진秦나라를 두려워하여 북쪽으로 옮겨갔었는데,
진秦나라가 멸망하자 다시 차츰
남하南下하여
하수河水를 건너왔다.
注+이 하수河水는 북하北河이니 삭방군朔方郡 북쪽에 있다.
두만頭曼(
흉노匈奴의 제1대 선우)에게 태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묵특冒頓(묵특, 흉노의 제2대 선우)이었다.
注+만曼은 막안莫安의 절切이니 두만頭曼은 선우單于의 이름이다. 묵특冒頓은 음이 묵특墨特이니, 혹은
두만이 늦게 작은아들을 얻고는 묵특을 죽이고 그를 세우려고 하자, 묵특이 마침내 두만을 죽이고 스스로 선우가 되었다.
동호東胡에서 묵특선우에게 사자를 보내 말하기를 “두만선우가 있을 때의 천리마千里馬를 얻고 싶습니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주지 말라고 하였으나, 묵특선우는 말하기를 “어떻게 이웃 나라가 되어 말 한 필을 아낄 수가 있는가?” 하고, 마침내 천리마를 주었다.
동호가 또 선우의 아내인
연지閼氏 한 명을 달라고 하였는데,
注+연지閼氏는 음이 언지焉支이니, 흉노匈奴의 연지閼氏는 중국中國의 황후皇后와 같다.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성을 내면서 공격하자고 청하였으나 묵특선우는 말하기를 “어떻게 이웃 나라가 되어 여자 한 명을 아낄 수가 있는가?” 하고, 또다시 연지를 주니, 동호의 왕이 더욱 교만해졌다.
目
[目] 두 나라 사이에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땅이 천여 리 정도 있었다.
注+“막거莫居”는 거주하는 사람이 없음을 말한다.
동호東胡가 이것을 차지하려고 하자, 신하들이 혹 말하기를 “이곳은 버려진 땅이니 주어도 괜찮고 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묵특선우冒頓單于가 크게 성을 내며 말하기를 “땅은 나라의 근본인데 어떻게 남에게 줄 수가 있는가?” 하고, 주자고 말한 자를 모두 참수하였다.
그리고 즉시 말에 올라타 나라 안에 명령을 내리기를 “뒤에 오는 자는 참수하겠다.”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동호를 쳐서 멸망시키고, 또
월지月氏를 쫓아내고,
누번왕樓煩王과
백양왕白羊王이 거주하는
하남河南 땅을 합병하고,
注+주走는 거성去聲이니 몰아서 달아나게 하는 것이다. 일설에 “주走는 본음으로 읽으니, 월지月氏가 공격을 당해 달아나서 자기 나라를 떠나감을 말한다.” 하였다. 씨氏는 음이 지支이다. 월지는 서역西域의 나라이니, 처음에는 의 서쪽, 의 동쪽에 있었는데, 뒤에 둘로 나뉘어 규수嬀水(아무다리아 강) 북쪽에 도읍한 것이 대월지大月氏이고, 그 나머지 소수의 무리가 남산南山의 강족羌族을 차지한 것이 소월지小月氏인데, 양관陽關과의 거리가 수만 리이다. 병幷은 거성去聲이니 겸해서 소유한다는 뜻이다. 백양白羊은 흉노匈奴의 별종別種이다. 백양白羊과 누번樓煩의 두 왕이 사는 곳이 하남河南에 있다. 마침내
연燕‧
대代 지방을 침략하여
몽념蒙恬이 빼앗았던
흉노匈奴의 옛 땅을 모두 수복하니, 활을 가득히 당길 수 있는 힘센 군사가 30여만 명이나 되었다.
注+공控은 당긴다는 뜻이니, “공현控弦”은 활을 가득히 당길 수 있는 자를 말한다.
이때에 이르러 〈흉노가〉 한왕韓王 한신韓信을 마읍馬邑에서 포위하자, 한신이 사자를 보내 화해할 것을 요청하였다.
한漢나라에서는 한신이 두 마음을 품고 있다고 의심하여 사람을 보내 꾸짖자, 한신은 주벌誅伐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마읍을 가지고 흉노에게 항복하니, 흉노가 마침내 태원太原을 공격하여 진양晉陽에까지 이르렀다.
目
[目] 황제가 진秦나라의 까다로운 의식儀式을 모두 제거하여 예법禮法을 간편하게 만들었는데, 여러 신하들이 술을 마시고 공을 다투어, 취하면 간혹 함부로 고함을 치고 칼을 뽑아 기둥을 치기도 하니, 황제가 더욱 싫어하였다.
숙손통叔孫通이 상上을 설득하기를 “유자儒者는 함께 나아가 나라를 취하기는 어렵지만 함께 왕업王業을 지킬 수는 있습니다.
신은 원컨대 노魯나라 지방의 여러 유생儒生들을 불러 함께 조정의 의례儀禮를 기초起草하고 싶습니다.” 하였다.
황제가 “내용이 너무 어렵지 않겠는가?” 하고 물으니, 숙손통이 대답하기를 “오제五帝는 음악을 달리하였고 삼왕三王은 예禮가 같지 않으니, 예禮라는 것은 시대時代와 인정人情을 따라 등급과 형식을 정하는 것입니다.
신은 원컨대 옛날의 예禮를 많이 채택하고 여기에 진秦나라의 의례儀禮를 섞어서 만들었으면 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상上이 말하기를 “시험 삼아 만들되, 알기 쉽게 하여 내가 행할 수 있는가를 헤아려 만들도록 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