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15 授之政
하니 其謀得
하고 文王擧
泰顚於罝罔之中
하여
注
書君奭
에 云 惟文王
이 尙克修和我有夏
는 亦惟有若
과 有若閎夭
와 有若散宜生
과 有若泰顚
과 有若南宮括
이라한대
僞孔傳에 云 閎과 泰는 氏요 夭와 顚은 名이라하다 詩周南兔罝敍에 云 兔罝는 后妃之化也라
關雎之化行하니 則莫不好德하고 賢人衆多也라하고 毛傳에 云 兔罝는 兔罟也라하다
畢云 事未詳
이라 或以詩兔罝有公侯腹心之
而爲說
이니
恐此詩卽賦閎夭泰顚事라 古者書傳未湮에 翟必有據라하다
蘇云 罝
는 卽詩所謂兔罝
니 當爲閎夭而作
이라 泰顚
은 當卽
也
라
罝屬夭면 則罔屬顚이요 與太公釣渭遇文王事로 亦合이라
迨馬融注
이면 以泰顚與太公望竝擧
하니 後世以爲二人
이라
然文王諸臣은 自以太公爲稱首로되 書君奭篇에 唯以泰顚與諸臣竝擧하고 而不及太公하고
逸周書克殷篇도 亦然이라 若使果爲二人이면 豈容都不道及이리오 是顚卽望은 無疑也라하다
案 罝罔通稱
이니 蘇分屬二人
은 非也
라 太顚卽太公
은 乃宋
之謬說
이라
攷詩大雅緜컨대 孔疏에 引鄭君奭注云 不及呂望太師也는 敎文王以大德이나 謙不以自比焉이라하니
是馬鄭竝以泰顚與太公非一人이라 周書克殷篇에 有泰顚하고 又有尙父하니 尤其塙證이라 吳說不足據어늘 蘇從之하니 傎矣라
그에게 정사를 맡기니 〈桀을 타도할〉 계획을 실현할 수 있었고, 文王이 사냥하다가 閎夭와 泰顚을 기용하여
注
≪書經≫ 〈君奭〉에 “文王이 우리의 諸夏를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또한 오직 虢叔과 閎夭와 散宜生과 泰顚과 南宮括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라 하였고
≪僞古文尙書≫의 僞孔安國傳에 “閎과 泰는 氏이고 夭와 顚은 名이다.”라 하였다. ≪詩經≫ 〈周南 兔罝〉 毛序에 “〈兔罝〉는 后妃의 교화를 읊은 것이다.
〈關雎〉의 교화가 행해지니 德을 좋아하지 않음이 없고 어진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였고, 毛傳에 “兔罝는 兔罟(토끼 잡는 그물)이다.”라 하였다.
畢沅:이 일은 자세히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詩經≫ 〈兔罝〉에 ‘公侯의 좋은 짝이로다.[公侯腹心]’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설명하기도 하니
아마도 이 시는 閎夭와 泰顚의 일을 읊은 것인 듯하다. 옛날 ≪書傳≫이 없어지지 않았을 때에 墨翟이 반드시 근거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蘇時學:罝는 곧 ≪詩經≫에서 이른바 〈兔罝〉이니 閎夭를 두고 지은 것일 터이다. 泰顚은 응당 바로 太公望일 것이다.
罝가 閎夭에 관한 일이면 罔은 泰顚에 관한 일이고 太公이 渭水에서 낚시질하다가 文王을 만난 일과 부합한다.
그런데 馬融의 十亂에 대한 주에 이르면 泰顚과 太公望을 함께 거론하니 후대에는 이들을 두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文王의 여러 신하들 중 원래 太公望을 제일 먼저 꼽는데 ≪書經≫ 〈君奭〉에서만 泰顚과 다른 신하들을 함께 꼽으면서 太公望을 언급하지 않았고
≪逸周書≫ 〈克殷〉 또한 그러하니, 만약 정말 두 사람이라면 어찌 전혀 언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으로 泰顚이 곧 太公望임은 의심할 바 없다.
案:罝와 罔은 通稱이니 蘇時學이 이를 두 사람에게 分屬한 것은 잘못이다. 太顚이 곧 太公望이라는 설은 宋나라 吳仁傑의 잘못된 설이다.
≪詩經≫ 〈大雅 緜〉 孔穎達의 疏에서 ≪書經≫ 〈君奭〉 鄭玄의 注를 인용하여 “〈周公이 泰顚 등 다른 신하들을 열거하면서〉 太公望 太師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太公望이〉 큰 덕으로 文王을 가르쳤으니 周公 자신이 겸손하게 스스로 거기에 견주지 않은 것이다.”라 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馬融과 鄭玄 모두 泰顚과 太公望을 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書經≫ 〈周書 克殷〉에 泰顚도 있고 尙父(太公望)도 있으니 더욱 확실한 증거가 된다. 吳仁傑의 설은 근거할 만하지 않은데 蘇時學이 이를 따랐으니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