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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子閒詁(1)

묵자간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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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간고(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9-9-1 然則親而不善하여 以得其罰者 誰也 曰 若昔者 帝之元子
大戴禮記五帝德篇 云 禹 高陽之孫이요 鯀之子也라하고 帝繫篇産鯀이라하다
史記夏本紀 云 鯀之父曰帝顓頊이라하고 三代世表 亦云 顓頊生鯀이라한대
索隱 云 皇甫謐云 鯀 帝顓頊之子 字熙라하고 系本 亦以鯀爲顓頊子한대
漢書律曆志 則云 顓頊 五代而生鯀이라하니 按 鯀旣仕堯與舜하니 代系殊懸이라
舜卽顓頊六代孫이니 則鯀非是顓頊之子 蓋班氏之言 近得其實이라하다
案 小司馬說 於理近是 漢志 亦引帝繫 而與今本大戴禮 舛異
楚辭離騷王注 引帝繫及淮南子原道訓高注한대 說竝與漢志同이라
越王無余外傳 亦以鯀爲顓頊之後한대
山海經則云 生駱明하고 駱明生白馬하니 白馬 是爲鯀이라하니 則又以鯀爲黃帝之孫이니 諸文錯互
此書 云 帝之元子라하니 疑墨子於鯀之世繫 亦同世本說하니 未能審校其年代也


그렇다면 왕의 육친이면서 선하지 못하여 벌을 받은 자는 누구인가? 옛날 伯鯀같은 자는 元子이면서
四凶服罪圖四凶服罪圖
大戴禮記≫ 〈五帝德〉에 “高陽孫子이고 의 아들이다.”라 하였고, 〈帝繫〉에 “顓頊을 낳았다.”고 하였다.
史記≫ 〈夏本紀〉에 “의 아버지는 顓頊이다.”라 하였고, 〈三代世表〉에서도 “顓頊을 낳았다.”고 하였는데,
史記索隱≫에서 “皇甫謐이 ‘ 顓頊의 아들인데, 이다.’라 하였다.”라 하였다. ≪系本≫에도 顓頊의 아들이라 하였다.
그런데 ≪漢書≫ 〈律曆志〉에서는 ”顓頊의 5 후에 이 태어났다.“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이 이미 임금에게 벼슬하였으니 代系가 현격히 차이난다.
은 곧 顓頊의 6대손이니 顓頊의 아들이 아니다. 아마도 班氏(班固)의 말이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라 하였다.
:小司馬(司馬貞)의 설이 이치상 옳은 것 같다. ≪漢書≫ 〈藝文志〉에서도 〈帝繫〉를 인용하였는데, 지금의 ≪大戴禮記≫와는 다르다.
楚辭≫ 〈離騷王逸에서 〈帝繫〉와 ≪淮南子≫ 〈原道訓高誘를 인용하였는데, 설이 모두 ≪漢書≫ 〈藝文志〉와 같다.
吳越春秋≫ 〈越王無余外傳〉에서도 顓頊의 후손이라 하였는데,
山海經≫에서는 “黃帝駱明을 낳았고, 駱明白馬를 낳았으니, 白馬가 바로 이다.”라 하였으니, 이는 黃帝의 후손으로 보는 것으로 여러 글들과 다르다.
이 책에서 ‘元子’라 하니, 이는 아마도 墨子世繫에 대해서는 ≪世本≫의 설과 같이 본 것으로 그 연대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 같다.


역주
역주1 伯鯀 : 중국 五帝時代 신화 속의 인물로 姓은 姒이고 字는 熙이다. 堯임금에 의해 崇땅에 伯爵으로 봉해졌는데, 후에 치수사업의 실패로 인해 사형당하였으며, 驩兜, 三苗, 共工 등과 함께 ‘四凶’으로 불리게 되었다.
역주2 顓頊 : 五帝의 하나인 高陽氏이며, 黃帝 軒轅氏의 손자로 少昊를 이어 즉위하였다.
역주3 吳越春秋 : 後漢 때 趙煜이 지은 일종의 역사서이다. 吳나라 泰伯으로부터 夫差까지, 越나라 無餘로부터 句踐까지 두 나라의 흥망을 기록하였다.
역주4 黃帝 :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이다. 이름이 軒轅이므로 ‘軒帝’라고도 한다. B.C.2704년경에 태어나 B.C.2697년에 제왕이 되었다고 한다. 통치기구와 동전의 사용법을 도입하고 수레‧배‧문자를 만드는 등 문명을 발전시켰으며, 그의 아내는 여인들에게 누에를 치고 비단실을 뽑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그의 통치 기간을 황금시대라 부를 정도로 지혜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죽어서 신이 되었다고 믿어졌다.

묵자간고(1)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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