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畢云 此作薄이 是也라 管子地數에 云 湯有七十里之薄이라하고 周書殷祝解에 云 湯放桀而復薄이라하고
荀子議兵에 云 古者에 湯以薄하고 武王以滈라하고 呂氏春秋에 云 湯嘗約于郼薄이라하여 皆作薄이라
地理志에 云 河南偃師尸鄕은 殷湯所都라하니 是라 今河南偃師也라
史記集解에 云 皇甫謐이 曰 梁國穀孰이 爲南亳이니 卽湯都也라
括地志에 云 宋州穀孰縣西南三十五里가 南亳故城이니 卽南亳은 湯都也라 宋州北五十里大蒙城이 爲景亳이니 湯所盟地라
因景山爲名이라 河南偃師爲西亳이니 帝嚳及湯所都요 盤庚亦從都之라
又案 薄은 惟孟子에 作亳하니 非正字也라 亳은 京兆杜陵亭이니 見說文이라
別有亳王號湯하니 在今陝西三原縣하니 地各不同이라
注
≪禮記≫ 〈經解〉 鄭玄의 注에 “‘屬’은 ‘合’과 같다.”라 하였다.
畢沅:여기에서 ‘薄’으로 한 것이 옳다. ≪管子≫ 〈地數〉에 “湯은 70리의 薄이 있었다.”라 하였고, ≪逸周書≫ 〈殷祝解〉에 “湯이 桀을 추방하고 薄을 회복하였다.”라 하였고,
≪荀子≫ 〈議兵〉에 “옛날에 湯은 薄으로 하고, 武王은 滈로 하였다.”라 하였고, ≪呂氏春秋≫에 “湯이 일찍이 郼薄에서 약속하였다.”라 하여 모두 薄으로 되어 있다.
≪地理志≫에 “河南의 偃師 尸鄕은 殷나라 湯이 도읍한 곳이다.”라 하였으니, 옳다. 지금 河南의 偃師이다.
≪史記集解≫에 “皇甫謐이 말하기를 ‘梁國 穀孰이 南亳이니 바로 이곳이 湯의 도읍이다.’라 하였다.”라 하였다.
≪括地志≫에 “宋州 穀孰縣 서남쪽 35리가 南亳의 故城이니 바로 南亳은 湯의 도읍이다. 宋州 북쪽 50리의 大蒙城이 景亳이니, 湯이 맹서한 곳이다.
그래서 景山으로 이름하였다. 河南 偃師가 西亳이니 帝嚳과 湯이 도읍한 곳이고, 盤庚 또한 따라서 도읍하였다.
또 살펴보건대 薄은 오직 ≪孟子≫에 亳으로 되어 있으니, 바른 글자가 아니다. 亳은 京兆 杜陵亭이니 ≪說文解字≫에 보인다.
별도로 亳王으로 湯을 호칭한 것이 있으니, 지금 陝西 三原縣에 있다. 지역이 각각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