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2 人之與人之相賊하고 君臣不惠忠하고 父子不慈孝하고 兄弟不和調니
注
兪云 崇字는 無義니 乃察字之誤라 何用生者는 何以生也라
詩桑柔篇에 逝不以濯이라한대 尙賢篇에 引作鮮不用濯이라하니 卽其證也라
言 國與國相攻하고 家與家相篡하고 人與人相賊하여 以及君臣父子兄弟之不惠忠不慈孝不和調하니 當察其害之何以生이라
故曰 然則察此害컨대 亦何用生哉아하니라 上篇에 曰 當察亂何自起라하니 與此同義라하다
案 兪說이 是也라 蘇云 用은 疑當作由라하니 非라
사람끼리 서로 해치며 임금이 은혜를 베풀지 않고 신하가 충성하지 않으며 아버지가 자애롭지 않고 자식이 효성스럽지 않으며 형제간에 우애롭게 지내지 않으니,
이와 같은 것이 바로 천하의 해로움이다.”라 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해로움을 살펴보건대 또한 무엇 때문에 생기는가.
注
兪樾:‘崇’자는 뜻이 통하지 않으니, 곧 ‘察’자의 誤字이다. ‘何用生’은 ‘何以生’이다.
≪一切經音義≫ 권7에서 ≪蒼頡篇≫을 인용하면서 “‘用’은 ‘以’이다.”라 하였고,
≪詩經≫ 〈大雅 桑柔〉에서 “逝不以濯(물로 씻지 않겠는가)”이라 하였는데 ≪墨子≫ 〈尙賢 中〉에서 이를 인용하면서 “鮮不用濯”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나라끼리 서로 침공하고 家끼리 서로 빼앗고 사람끼리 서로 해쳐서 君臣‧父子‧兄弟간에 은혜를 베풀고 충성하지 않고 자애롭게 대하고 효성을 다하지 않으며 우애 깊이 지내지 않게 되니 마땅히 그 해로움이 무엇 때문에 생기는지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그렇다면 이러한 해로움을 살펴보건대, 또한 무엇 때문에 생기는가.”라 한 것이다. ≪墨子≫ 〈兼愛 上〉에 “마땅히 亂이 발생하는 원인을 살펴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과 같은 뜻이다.
案:兪樾의 설이 옳다. 蘇時學은 “‘用’은 아마도 ‘由’가 되어야 할 것 같다.”고 했는데,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