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書鈔九十二御覽八十一에 引帝王世紀하여 云 舜南征하여 崩於鳴條하니 年百歲라
殯以瓦棺하고 葬於蒼梧九疑山之陽이라 是爲零陵이니 謂之紀市니 在今營道縣이라하며 孟子離婁篇에 云 舜卒於鳴條라하며
史記五帝本紀에 舜踐帝位三十九年에 南巡狩라가 崩於蒼梧之野하여
葬於江南九疑니 是爲零陵이라한대 集解에 皇覽에 曰 舜冢在零陵營浦縣이라하다
畢云 後漢書注에 引作舜葬紀市하고 又一引作葬南巴之中하며 太平御覽에 亦作紀하다
呂氏春秋安死에 云 舜葬于紀市에 不變其肆라한대 高誘曰 傳에 曰 舜葬蒼梧九疑之山이라한대
按컨대 南己는 實當作南巴니 形相近하여 字之譌也라 高誘는 以爲紀邑하니 非라 九疑는 古巴地라
史記正義
에 云 周地志
에 云 南渡老子水
하고 登巴領山
하여 南回
大江
이라한대 此南是古巴國
이니 因以名山
이라하니 是已
라하다
王云 南己는 後漢書王符傳注에 引作南巴하니 巴는 卽己之誤라 畢以作巴者를 爲是하고 且云 九疑는 古巴地라하다
案 北堂書鈔及初學記禮部下에 引墨子에 竝作南己하다 後漢書趙咨傳注와 及太平御覽에 竝引作南紀하며
呂氏春秋安死篇에 舜葬於紀市는 卽所謂南紀之市니 則己는 非誤字也라 若是巴字면 則不得與紀通矣라
墨子에 稱舜所葬地는 本不與諸書同하니 不必牽合舜葬九疑之文也라
至謂九疑爲古巴地하여 以牽合南巴니 則顯與上文西敎乎七戎으로 不合하니 此無庸辯也라하다
案 王說이 是也라 舜葬을 古書多云在蒼梧라하고 孟子又云卒鳴條라하니 與此云葬南己로 竝不相涉이라
困學紀聞에 引薛季宣謂蒼梧山은 在海州界하니 近莒之紀城하며
는 路史注
에 又謂紀
는 卽冀
니 河東皮氏東北有冀亭
이요 鳴條
는 在安邑西北
이니 其地相近
이라하니
斯竝欲傅合諸說爲一
이니 實不可通
이라 近
又謂周書王會篇
에 正西枳己
는 卽此南己
라
云紀市는 與枳己로 聲近이니 蓋卽一地라하니 尤肊說不足據라
劉賡稽瑞에 引墨子하여 曰 舜葬於蒼梧之野에 象爲之耕이라한대 與此不同하니 疑誤以他書之文改此書라
注
≪北堂書鈔≫ 92와 ≪太平御覽≫ 81에서 ≪帝王世紀≫를 인용하여 “舜이 南行을 하여 鳴條에서 붕어하였으니, 향년 100세였다.
陶棺으로 빈소를 마련하였다가 蒼梧의 九疑山 남쪽에 장사를 지냈다. 이곳이 零陵인데 紀市라고 하니 지금의 營道縣이다.”라 하였으며, ≪孟子≫ 〈離婁〉에 “舜임금은 鳴條에서 별세하셨다.”라 하였으며,
≪史記≫ 〈五帝本紀〉에 “舜이 帝位에 오른 지 39년에 남쪽으로 巡狩를 하다가 蒼梧의 들에서 붕어하여
江南의 九疑에서 장사를 지냈으니 이곳은 零陵이다.”라 하였는데, ≪史記集解≫에 “≪皇覽≫에 ‘舜의 무덤은 零陵 營浦縣에 있다.’라 하였다.”라 하였다.
畢沅:≪後漢書注≫에 이 대목을 인용한 곳에 “舜葬紀市(舜을 紀市에 장사 지내다.)”로 되어 있으며, 또 한 곳에는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葬南巴之中(南巴에서 장사를 지내다.)”이라 하였으며, ≪太平御覽≫에는 또 ‘紀’로 되어 있다.
≪呂氏春秋≫ 〈安死〉에 “舜葬于紀市 不變其肆(舜을 紀市에서 장사를 지낼 때, 그 저자에 변화가 없었다.)”라 하였는데, 高誘의 注에 “傳에 ‘舜을 蒼梧의 九疑山에 장사를 지냈다.’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紀市에서 〈장사 지냈다.〉’라 하였으니, 九疑山 아래에 또한 紀邑이 있는 듯하다.”라 하였다.
생각건대, ‘南己’는 실로 ‘南巴’로 되어야 하니, 〈‘己’와 ‘巴’는〉 모양이 서로 비슷하여 글자가 잘못된 것이다. 高誘는 ‘紀邑’이라 하니, 옳지 않다. ‘九疑’는 옛날의 ‘巴’ 지역이다.
≪史記正義≫에 “≪周地志≫에 ‘南渡老子水 登巴領山 南回記大江(남으로 老子水를 건너고 巴領山에 올라 남쪽으로 돌아 大江에 이른다.)’이라 하였는데, 여기 남쪽이 옛날 ‘巴國’이니, 이 때문에 산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라 하였으니, 옳다.
王念孫:‘南己’는 ≪後漢書≫ 〈王符傳〉의 注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南巴’로 썼으니, ‘巴’는 바로 ‘己’의 誤字이다. 〈그런데〉 畢沅은 ‘巴’로 되어 있는 것을 옳다고 여겼고, 또 九疑를 옛날 巴地라고까지 하였다.
생각건대, ≪北堂書鈔≫와 ≪初學記≫ 〈禮部 下〉에 ≪墨子≫의 이 대목을 인용한 곳에는 모두 ‘南己’라고 되어 있다. ≪後漢書≫ 〈趙咨傳〉의 注와 ≪太平御覽≫에는 모두 ‘南紀’라고 인용하였으며,
≪呂氏春秋≫ 〈安死〉의 “舜葬於紀市”의 〈‘紀市’는〉 바로 이른바 “南紀之市”이니, 그렇다면 ‘己’는 誤字가 아닌 것이다. 만일 ‘巴’자라고 한다면 ‘紀’와 통용될 수 없다.
≪墨子≫에서 舜을 장사 지낸 곳을 일컬은 것은 본래 여러 책들과 같지 않으니, 舜을 九疑에서 장사 지냈다고 하는 글과 굳이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다.
심지어 九疑를 옛날 巴 지역이라고 하면서 ‘南巴’와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니, 이는 윗글 “西敎乎七戎(서쪽으로 七戎을 교화하다.)”과 현저히 부합하지 않으니, 이는 분변할 필요가 없다.
案:王念孫의 설이 옳다. 舜의 葬地를 古書에서는 대부분 “蒼梧”라 하였으며, ≪孟子≫에서는 또 “鳴條에서 별세하셨다.”고 하였으니, 이 대목에서 “南己에 장사를 지냈다.”는 것과는 모두 관계가 없다.
≪困學紀聞≫에서 薛季宣이 “蒼梧山은 海州의 경계에 있는데 莒의 紀城과 가깝다.”라 한 것을 인용하고 있으며,
羅泌는 또 ≪路史≫ 注에서 “‘紀’는 ‘冀’이니 河東의 皮氏의 동북에 冀亭이 있고, 鳴條는 安邑 서북쪽에 있으니 두 지역이 서로 가깝다.”라 하였으니,
이는 모두 여러 설을 附會하여 하나로 만들고자 한 것이니, 실로 뜻이 통하지 않는다. 근래에 또 何秋濤가 “≪逸周書≫ 〈王會解〉의 ‘正西枳己(正西쪽의 枳己)’가 바로 여기서의 ‘南己’이다.
‘紀市’라고 한 것은 ‘枳己’와 소리가 비슷해서이니, 아마도 곧 같은 땅인 듯하다.”라 하였으니, 더욱 억설이라 근거로 삼기에 부족하다.
劉賡의 ≪稽瑞≫에 ≪墨子≫를 인용하면서 “舜을 蒼梧의 들에서 장사 지냈는데 코끼리가 땅을 갈았다.”라 하였는데, 이곳과 같지 않으니, 아마도 실수로 다른 책의 글로 이 책을 바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