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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子閒詁(2)

묵자간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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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9 道死하시니 葬南己之市하니라
書鈔九十二御覽八十一 引帝王世紀하여 云 舜南征하여 崩於鳴條하니 年百歲
殯以瓦棺하고 葬於蒼梧九疑山之陽이라 是爲零陵이니 謂之紀市 在今營道縣이라하며 孟子離婁篇 云 舜卒於鳴條라하며
史記五帝本紀 舜踐帝位三十九年 南巡狩라가 崩於蒼梧之野하여
葬於江南九疑 是爲零陵이라한대 集解 皇覽 曰 舜冢在零陵營浦縣이라하다
畢云 後漢書注 引作舜葬紀市하고 又一引作葬南巴之中하며 太平御覽 亦作紀하다
呂氏春秋安死 云 舜葬于紀市 不變其肆라한대 高誘曰 傳 曰 舜葬蒼梧九疑之山이라한대
云 于紀市라하니 九疑山下亦有紀邑이라하다
컨대 南己 實當作南巴 形相近하여 字之譌也 高誘 以爲紀邑하니 九疑 古巴地
史記正義 云 周地志 云 南渡老子水하고 登巴領山하여 南回大江이라한대 此南是古巴國이니 因以名山이라하니 是已라하다
王云 南己 後漢書王符傳注 引作南巴하니 卽己之誤 畢以作巴者 爲是하고 且云 九疑 古巴地라하다
案 北堂書鈔及初學記禮部下 引墨子 竝作南己하다 後漢書趙咨傳注 及太平御覽 竝引作南紀하며
呂氏春秋安死篇 舜葬於紀市 卽所謂南紀之市 則己 非誤字也 若是巴字 則不得與紀通矣
墨子 稱舜所葬地 本不與諸書同하니 不必牽合舜葬九疑之文也
至謂九疑爲古巴地하여 以牽合南巴 則顯與上文西敎乎七戎으로 不合하니 此無庸辯也라하다
案 王說 是也 舜葬 古書多云在蒼梧라하고 孟子又云卒鳴條라하니 與此云葬南己 竝不相涉이라
困學紀聞 引薛季宣謂蒼梧山 在海州界하니 近莒之紀城하며
路史注 又謂紀 卽冀 河東皮氏東北有冀亭이요 鳴條 在安邑西北이니 其地相近이라하니
斯竝欲傅合諸說爲一이니 實不可通이라又謂周書王會篇 正西枳己 卽此南己
云紀市 與枳己 聲近이니 蓋卽一地라하니 尤肊說不足據
劉賡稽瑞 引墨子하여 曰 舜葬於蒼梧之野 象爲之耕이라한대 與此不同하니 疑誤以他書之文改此書


도중에 돌아가시니 南己의 저자에 장사 지냈다.
北堂書鈔≫ 92와 ≪太平御覽≫ 81에서 ≪帝王世紀≫를 인용하여 “南行을 하여 鳴條에서 붕어하였으니, 향년 100세였다.
陶棺으로 빈소를 마련하였다가 蒼梧九疑山 남쪽에 장사를 지냈다. 이곳이 零陵인데 紀市라고 하니 지금의 營道縣이다.”라 하였으며, ≪孟子≫ 〈離婁〉에 “임금은 鳴條에서 별세하셨다.”라 하였으며,
史記≫ 〈五帝本紀〉에 “帝位에 오른 지 39년에 남쪽으로 巡狩를 하다가 蒼梧의 들에서 붕어하여
江南九疑에서 장사를 지냈으니 이곳은 零陵이다.”라 하였는데, ≪史記集解≫에 “≪皇覽≫에 ‘의 무덤은 零陵 營浦縣에 있다.’라 하였다.”라 하였다.
畢沅:≪後漢書注≫에 이 대목을 인용한 곳에 “舜葬紀市(紀市에 장사 지내다.)”로 되어 있으며, 또 한 곳에는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葬南巴之中(南巴에서 장사를 지내다.)”이라 하였으며, ≪太平御覽≫에는 또 ‘’로 되어 있다.
呂氏春秋≫ 〈安死〉에 “舜葬于紀市 不變其肆(紀市에서 장사를 지낼 때, 그 저자에 변화가 없었다.)”라 하였는데, 高誘에 “에 ‘蒼梧九疑山에 장사를 지냈다.’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紀市에서 〈장사 지냈다.〉’라 하였으니, 九疑山 아래에 또한 紀邑이 있는 듯하다.”라 하였다.
생각건대, ‘南己’는 실로 ‘南巴’로 되어야 하니, 〈‘’와 ‘’는〉 모양이 서로 비슷하여 글자가 잘못된 것이다. 高誘는 ‘紀邑’이라 하니, 옳지 않다. ‘九疑’는 옛날의 ‘’ 지역이다.
史記正義≫에 “≪周地志≫에 ‘南渡老子水 登巴領山 南回記大江(남으로 老子水를 건너고 巴領山에 올라 남쪽으로 돌아 大江에 이른다.)’이라 하였는데, 여기 남쪽이 옛날 ‘巴國’이니, 이 때문에 산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라 하였으니, 옳다.
王念孫:‘南己’는 ≪後漢書≫ 〈王符傳〉의 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南巴’로 썼으니, ‘’는 바로 ‘’의 誤字이다. 〈그런데〉 畢沅은 ‘’로 되어 있는 것을 옳다고 여겼고, 또 九疑를 옛날 巴地라고까지 하였다.
생각건대, ≪北堂書鈔≫와 ≪初學記≫ 〈禮部 〉에 ≪墨子≫의 이 대목을 인용한 곳에는 모두 ‘南己’라고 되어 있다. ≪後漢書≫ 〈趙咨傳〉의 와 ≪太平御覽≫에는 모두 ‘南紀’라고 인용하였으며,
呂氏春秋≫ 〈安死〉의 “舜葬於紀市”의 〈‘紀市’는〉 바로 이른바 “南紀之市”이니, 그렇다면 ‘’는 誤字가 아닌 것이다. 만일 ‘’자라고 한다면 ‘’와 통용될 수 없다.
墨子≫에서 을 장사 지낸 곳을 일컬은 것은 본래 여러 책들과 같지 않으니, 九疑에서 장사 지냈다고 하는 글과 굳이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다.
심지어 九疑를 옛날 지역이라고 하면서 ‘南巴’와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니, 이는 윗글 “西敎乎七戎(서쪽으로 七戎을 교화하다.)”과 현저히 부합하지 않으니, 이는 분변할 필요가 없다.
:王念孫의 설이 옳다. 葬地古書에서는 대부분 “蒼梧”라 하였으며, ≪孟子≫에서는 또 “鳴條에서 별세하셨다.”고 하였으니, 이 대목에서 “南己에 장사를 지냈다.”는 것과는 모두 관계가 없다.
困學紀聞≫에서 薛季宣이 “蒼梧山海州의 경계에 있는데 紀城과 가깝다.”라 한 것을 인용하고 있으며,
羅泌는 또 ≪路史에서 “‘’는 ‘’이니 河東皮氏의 동북에 冀亭이 있고, 鳴條安邑 서북쪽에 있으니 두 지역이 서로 가깝다.”라 하였으니,
이는 모두 여러 설을 附會하여 하나로 만들고자 한 것이니, 실로 뜻이 통하지 않는다. 근래에 또 何秋濤가 “≪逸周書≫ 〈王會解〉의 ‘正西枳己(正西쪽의 枳己)’가 바로 여기서의 ‘南己’이다.
紀市’라고 한 것은 ‘枳己’와 소리가 비슷해서이니, 아마도 곧 같은 땅인 듯하다.”라 하였으니, 더욱 억설이라 근거로 삼기에 부족하다.
劉賡의 ≪稽瑞≫에 ≪墨子≫를 인용하면서 “蒼梧의 들에서 장사 지냈는데 코끼리가 땅을 갈았다.”라 하였는데, 이곳과 같지 않으니, 아마도 실수로 다른 책의 글로 이 책을 바꾼 듯하다.


역주
역주1 : 저본 傍注에 “畢沅이 인용한 ≪史記正義≫는 張守節의 ≪史記正義≫ 〈蘇秦列傳〉에 보인다. ‘南回記大江’의 ‘記’자는 뜻이 통하지 않지만, 원문은 이와 같다. 아마도 ‘記’자는 ‘訖’의 오자(‘訖’은 ‘迄’과 같다.)이거나 혹은 衍文인 듯하다.”라고 하였다.
역주2 羅泌 : 1131~1189. 宋나라 사람으로, 字는 長遠이다. 저서에 ≪路史≫ 47권, ≪古史攷≫가 있다.
역주3 何秋濤 : 1824~1862. 字는 原船이고, 福建 光澤 사람이다. 淸나라의 官員이면서 學者로 활동하였다. 저서에 ≪朔方備乘≫ 80권이 있다.

묵자간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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